[전문가 칼럼] 리더는 커뮤니케이터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해 말, 그리고 올 초 유독 잘못된 소통 방식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가 많았다. 보육교사가 어린 원생을 구타한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 도로에서 자동차를 몰던 운전자가 시비 끝에 가스총으로 다른 운전자를 위협한 사건, 항공사 임원이 고함을 지르며 활주로를 이동 중인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내리게 한 사건…. 마치 사회의 분노 조절 장치가 고장 난 것처럼 상식 밖의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이 얽힌 불상사는 사회적 파장도 만만찮다. 리더가 사회·조직 구성원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마찰을 일으킬 경우, 본인의 명성과 경력에 상처를 입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자칫 조직을 회복 불능의 위기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의 리더들은 효율 중심 커뮤니케이션에 비교적 강한 반면, 공감과 조화를 달성하는 커뮤니케이션엔 많은 약점을 안고 있다.
“야!”와 “너!”가 예사로 오가는 직장
10년쯤 전의 일이다. 한 금융 기업 직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과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다소 오래된 정보이긴 하지만 결과가 흥미로워 소개한다.
우선 ‘가장 듣고 싶은 말’ 항목이다. 응답자의 29%가 고른 1위는 “내가 도와줄게”였다. 다음으로 “일찍 퇴근합시다”(15.6%), “오늘 수고 많았어요”(14.4%), “감사합니다”(13.8%), “아주 잘했어”(9%)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는 “이런 것도 몰라?”(18.4%)였다. “제 일이 아닌데요”(17.6%), “벌써 퇴근하니?”(15%), “○○은 잘하는데 자네는…”(9.2%), “야! 너! 당신!”(9%) 등을 선택한 응답자도 많았다.
사람들이 조직 내 다른 구성원에게 원하는 게 ‘공감과 존중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단어는 참 섬뜩했다. 이 조사는 엘리트 직장인이 모여든다는 소위 ‘1류 기업’에서 진행됐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조차 “야! 당신! 이런 것도 몰라?”란 말이 아무렇잖게 오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 말을 예사로 듣고 산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직장 생활 자체에 회의가 생길 수밖에 없으리라. 제아무리 부하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상사가 그에게 막말을 던지는 순간, 수많은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부하가 반성하고 발전할 기회, 상사 본인의 평판, 팀의 조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리더가 리더다운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면 조직에 많은 피해를 입힌다. 우선 상사와 부하 사이에 갈등이 생겨 조직 내 의사소통에 높은 장벽을 만든다. 또한 정보의 흐름이 단절되고 신념과 목표 공유가 어려워진다. 이런 부작용이 쌓이면 결국 조직이나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도 하나의 ‘커뮤니티’다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장애로 인한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은 단기적 성과 저하만 가져오는 게 아니다. 기업은 ‘목표지향형 조직’인 동시에 사람들이 모여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커뮤니티(community)’다. 커뮤니티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하는 공동체’로 정의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은 직장에서 업무에 대한 성취감뿐 아니라 소속감·안정감·신뢰감 같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잭 웰치 전(前)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GE가 커뮤니케이션 단절로 벽이 생기는 대기업이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재밌게 일하는 ‘구멍가게’ 방식의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역시 일찌감치 ‘커뮤니티로서의 기업관’을 간파한 것이다.
좋은 조직의 공통점은 뭘까? 명확한 목표 설정, 가치 공유, 적절한 역할 분담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높이려면 적절한 소통 채널을 개설하고 임직원을 교육, 훈련시켜야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리더십의 역할이다.
리더의 언행은 늘 모두의 주목을 받는다. 구성원들은 리더를 역할 모델로 삼아 리더의 말과 행동을 학습한다. 또한 리더가 발신하는 메시지나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조직의 성과나 사기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 해도 구성원들과의 소통에 실패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많은 조직과 리더가 소통 능력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긴다.
한국의 리더, 혹은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지금 당장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리더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리더가 꼭 갖춰야 할 역할은 뭘까? 사업 분야나 조직 내 역할에 따라 많은 유형과 변주(variation)가 있을 수 있겠지만, 리더에게 가장 요구되는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은 ‘경청자(listener)’ ‘의미 생산자(meaning maker)’ ‘비폭력 대화자(nonviolent communicator)’ 등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역할에 대한 자각과 자기 훈련은 당신을 한 단계 더 높은 리더십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경청자로서의 리더_제대로, 잘 들어라
리더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청(傾聽)이란 상대의 말을 ‘그냥 듣지(hear)’ 않고 ‘귀 기울여 주의해 듣는다(listen)’는 뜻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 말에 담긴 귀중한 정보나 교훈 때문이 아니다.
경청은 ‘대화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신호다. 돌이켜보면 오래도록 존경 받아온 역사적 인물은 예외 없이 훌륭한 경청자였다. ‘삼국지 최고 스타’ 유비만 해도 그렇다. 유비는 똑똑한 조조나 귀공자 손권에 비해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책사 방통의 교만함을 안아줄 줄도, 장비의 성급함을 사려 깊게 참아줄 줄도 알았다.
유비는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확실한 소통법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삼국지는 민초들이 자신의 희망과 의지를 담아 오랜 세월 고쳐가면서 전승(傳承)돼온 역사 소설이다. 하지만 그 어떤 판본에서도 주인공은 유비다. 어느 시대건 팔로워(follower)들이 원하는 리더는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리더란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다.
경청은 힘든 작업이다. 사람은 누구나 듣는 것보다 말하는 걸 좋아한다. 또 상대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경청은 리더의 직업이다. 우리는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후회를 자주 한다. 반면, “오늘 너무 많이 들어줬다”며 반성한 경험은 극히 드물 것이다.
이왕 듣기로 결정했다면 제대로, 잘 들어야 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의 저자 마이클 겔브는 ‘최악의 듣기 태도’로 다음 몇 가지를 꼽았다. △타인이 말하고 있을 때 자기가 할 말을 머릿속에서 다듬는다 △대화하는 도중 전화를 받는다 △상대방이 말하는 데 불쑥 끼어든다 △자기 마음대로 화제를 바꾼다 △계속 자신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불필요한 충고를 던진다 △대화를 나눌 때 시선을 피한다.
의미 생산자로서의 리더_매사 가치를 부여해라
부하들에게 “야. 이제 모두 일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리더가 아니라 노예농장 감독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로버트 마이(Robert Mai)와 앨런 애커슨(Alan Akerson)은 커뮤니케이션 리더십의 핵심 역할을 ‘의미 생산자’로 규정했다. 이때 의미 생산이란 직장과 직업, 인간관계에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의미 생산은 상품 기획을 ‘인류사의 일대 사건’으로, 직장을 ‘위대한 도전을 위한 최전선’으로, 팀을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나서는 스파르타군 선봉대’로 변화시키는 마법의 기술이다.
리더는 팀과 그 구성원을 위해 끊임없이 의미를 생산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일만 끝나면 한 잔 세게 하자!” 이건 그릇이 너무 작다. “김 대리, 당신은 내 고교 후배잖아.” 이건 의미가 아니라 정실주의와 질투를 생산할 수 있는 말이다.
마이와 애커슨은 의미 생산자가 누구냐 하는 물음에 다음 네 가지 질문으로 답한다. 첫째, 당신은 팀과 구성원을 묘사할 때 그들이 당신과 운명공동체란 느낌을 갖고 말하는가? 둘째, 당신은 구성원들에게 ‘이 사람은 우리 편’이란 느낌이 전달되도록 커뮤니케이션하는가? 셋째, 당신은 조직이 하는 일을 미션과 가치의 틀 안에서 위치 지을 수 있는가? 넷째, 당신은 현재 팀에 주어진 과제를 커다란 비전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비폭력 대화자로서의 리더_공감을 말로 표현해라
내로라하는 국내 언론사 모 신입 기자에게서 실제로 들은 얘기다. 그에게 차장급 기자 한 명이 다가와 갑자기 말하더란다. “○○대학 나왔다며? 당신 때문에 우리 회사 학력 제한이 철폐됐다던데?” 속칭 1류 대학 출신만 뽑던 그 신문사에 다른 대학 출신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비꼰 것이다. 그렇게 말한 사람의 인격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요즘도 직장에서 이렇게 폭력적인 대화가 오간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미스 김, 오늘 무슨 일 있어? 입술 빨갛게 바르고 어디 가?” “너, 그것밖에 못 해? 대학은 진짜 나왔니?” 이런 대화는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조직에도, 사회에도 백해무익한 ‘폭력적 대화다’. 폭력적 대화는 자신의 주의나 주장만 고집하는 불관용의 대화법이다. 자기 생각은 반드시 관철돼야 할 ‘특별한’ 것, 상대의 생각은 ‘하찮은’ 것으로 매도하는 대화법이다. 폭력적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다.
마셜 로젠버그는 대화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한편, 그 공감에서 나온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일명 ‘비폭력 대화’를 제창했다. 로젠버그에 따르면 현실에서의 비폭력 대화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 등 네 단계를 거쳐 적용될 수 있다.
관찰은 말할 때 ‘평가’하지 않고 ‘관찰’을 서술하는 기법이다. 예컨대 부하 직원이 회의 시간에 늦었을 때 “당신 진짜 시간 개념 없다”고 말하는 건 평가, “지금껏 5분 이상 늦은 게 세 번째”라고 말하는 건 관찰이다. 평가엔 상대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있지만 관찰엔 비난 의도가 없어야 한다.
느낌 단계에선 생각과 느낌을 구별해야 한다. “난 김 대리가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아.” 이건 생각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게 마치 자신에 대한 평가인 양 부정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를 느낌으로 고치면 이렇게 된다. “나는 김 대리가 아직 자기 능력을 다 내놓지 않아 섭섭해.”
욕구 단계의 핵심은 타인을 비판·비난·분석·해석하는 대신 자신의 욕구를 직접 표현하는 것이다. 로젠버그는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넌 날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다’고 했다면 그 말은 사실 당신에게 이해 받길 바라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건 폭력적 대화다. 비폭력 대화에선 자신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한 번 연습해보자. “난 김 대리가 좀 더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부탁 단계에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요청하게 된다. 부탁은 앞서 말한 관찰·느낌·욕구를 사용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 후 그가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김 대리, 나 이번 일 꼭 성공시키고 싶어. 그러려면 김 대리의 도움이 필요해. 김 대리는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잖아.” 처음엔 간지럽고 쑥스러워도 연습을 거듭하면 점차 나아지는 자신과 그에 비례해 밝아지는 동료, 부하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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