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미국서 경험한 ‘블랙 프라이데이’

2014/12/26 by 손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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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애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초빙 교수


한국 여성 평균치에 비해 키도, 발도 큰 편이어서 미국에 갈 일이 생기면 빼놓지 않고 옷이나 신발 쇼핑에 나서곤 한다(신체 조건이 현지 쇼핑에 유리하지 않았다 해도 쇼핑 그 자체를 즐기긴 했을 테지만). 미국 생활을 시작하며 쇼핑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건 당연지사. 더욱이 12세 이후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맞게 되면서 한동안 꽤 흥분 상태였다.

 

1년 매출, 하루 장사로 ‘흑자’ 전환?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할인을 하고 있는 매장의 모습입니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유일한 공휴일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홍보하며 파격적 할인을 제공,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전략적 산물인 셈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980년 전후라고 한다(위키피디아). ‘이날 하루 매출로 매장의 1년 결산이 적자(red ink)에서 흑자(black ink)로 돌아서기 때문’이란 게 블랙 프라이데이 명칭을 둘러싼, 꽤 설득력 있는 유래다. 미국인은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본격적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어간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여기저기 장식돼 있던 ‘추수감사절의 상징’ 오렌지색 호박이 추수감사절이 끝나는 주말, 일제히 사라졌다. 그 자리엔 약속이나 한 듯 붉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내걸렸다. 미국인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장만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도 이 즈음이다.

결국 블랙 프라이데이는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유일한 공휴일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홍보하며 파격적 할인을 제공,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전략적 산물인 셈이다. 상업적 천재가 따로 없다.

미국인이 본격적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에 나서는 시점은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이후다. 이 점에 착안, 한 백화점 광고는 아예 대놓고 소비자를 재촉했다. “설거지는 잊으시고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 하러 오세요!(Forget the dishes! Come get the Black Friday Savings!)”

 

미국인에게 쇼핑은 또 하나의 ‘오락’

나 역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쇼핑에 나섰다. 한밤중에 나가는 건 무리일 듯해 다음 날 새벽 백화점을 공략하기로 했다. 오전 6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곳은 거의 잠옷 차림으로 새벽 쇼핑에 나선 나 같은 고객들로 벌써 인산인해였다. ‘과연 미국은 쇼핑의 천국이구나!’ 새삼 실감했다.

인산인해인 쇼핑센터의 모습입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미국 기업의 마케팅 경쟁은 ‘전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필사적이다.

 

그날 매장에 전시된 상품들이 ‘밤잠 설치고 구입할 만큼’ 저렴했는지 여부는 한동안 현지 언론 사이에서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내가 느낀 것 한 가지는 분명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의 전통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날 내가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부스스한 얼굴이었지만 표정만은 더없이 환했다. 맘에 드는 물건을 값싸게 장만한 후 즐기는 모닝 커피의 여유를 위해 카페의 기나긴 대기 행렬에도 기꺼이 합류했다.

미국 전국소매연합(National Retail Federation, NRF)에 따르면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중 대형 소매업체 매출은 509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同期)에 비해 11% 감소했다. 1인당 지출액도 6.4% 줄었다. 하지만 이 수치만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열풍이 식었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 세일 기간이 단 하루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소매업자들이 며칠에 걸쳐 세일을 분산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블랙 프라이데이 직후 월요일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일명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였다. 실제로 올해 사이버 먼데이 매출은 지난해보다도 8.7%가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USA투데이).

소비자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미국 기업의 마케팅 경쟁은 ‘전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필사적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이튿날 새벽 6시 30분, 내가 찾은 백화점 내 한 의류 매장 입구에선 젊은 점원들이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며 고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같은 날 오전 10시, 물건을 사면서 카운터에 있던 중년 여성 점원에게 “몇 시부터 일했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4시”란 대답이 돌아왔다. “피곤하지 않아요?” 내 걱정스런 질문이 무색하게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즐거워요. 저도 좀 있다 근무 끝나면 쇼핑하러 갈 거거든요.”

 

‘퍼포먼스’ 빠지지 않는 미국 서비스업

추수감사절 기간 동안 미국 동부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덕(?)에 오랜만에 미국 항공사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 예상대로 미국 여객기는 한국 여객기에 비해 좌석이 비좁은 데다 제공 서비스도 별로 없었다. 승무원은 하나같이 중·장년층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나이와 외모를 넘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산타 모자를 쓰고 있는 항공 기장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의 승객으로서 ‘고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본인의 체면 따위는 생각지 않는’ 그 승무원의 자세가 한없이 고마웠다. 생각은 자연스레 ‘다음 번에도 이 항공사를 이용해야겠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착륙 후 활주로에서 한동안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승무원이 마이크에 대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지루해하고 있을 고객을 위해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덕분에 노래가 끝날 때쯤 모든 승객은 박수를 치며 기분 좋게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그 항공사 승무원 매뉴얼에 ‘승객들이 지루해하면 노래를 불러라’란 조항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승무원은 고객을 배려하는 서비스의 ‘기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이번엔 한 승무원이 장장 다섯 시간 동안 칠면조 요리 모양 모자를 쓴 채로 근무하며 고객을 즐겁게 했다. 틀림없이 한국 승무원 복장 규정엔 어긋나는 차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한 사람의 승객으로서 ‘고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본인의 체면 따위는 생각지 않는’ 그 승무원의 자세가 한없이 고마웠다. 생각은 자연스레 ‘다음 번에도 이 항공사를 이용해야겠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한국 기업이 놓치고 있는 2%는?

미국이 ‘쇼핑하기 좋은 나라’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 기업은 그만큼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같은 자세는 비단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맘때 뉴욕 시내 곳곳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세군 빨간 냄비가 설치된다. 하지만 모든 풍경이 똑같진 않다. 올겨울 록펠러센터(Rockefeller Center) 옆 구세군 냄비를 지키는 흑인 할아버지는 신나는 춤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곳을 지나던 딸은 그 광경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겠다며 가까이 다가갔다. 막상 사진을 찍고 나니 그냥 돌아 나오기가 뭣해 결국 주머니를 털어 얼마간의 돈을 냄비에 넣었다. 물론 기분 좋게!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의 춤사위는 한층 흥겨워졌다.

춤을 추거나 기타를 연주에 노래를 부르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구세군 냄비 지킴이들의 모습입니다.

기술 개발이나 디자인 연구는 두말할나위 없이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다.
하지만 소비자를 배려한 서비스 정신 역시 놓쳐선 안 될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한 뉴스에 나온 구세군 대변인은 “수많은 냄비 지킴이들이 제각기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준비해 행인들을 맞는다”고 말했다. “기부를 종용하는 기관이 워낙 많다 보니 뭔가 특별한 걸 보여줘야 시선을 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같은 정신은 미국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 기술 개발이나 디자인 연구는 두말할나위 없이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다. 하지만 소비자를 배려한 서비스 정신 역시 놓쳐선 안 될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사실 이 부분은 한국 기업이 ‘놓치고 있는 2%’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 제품과 서비스에도 이런 정신이 깃든다면 ‘사이즈’를 핑계 삼아 습관적으로 해 오던 내 미국 쇼핑도 한국 쇼핑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 같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손지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초빙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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