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요즘 마케팅계 화두는 ‘현명한 모순’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소비자는 하나를 얻는 대신 다른 걸 양보할 것이다.’ 제품(혹은 서비스) 제공자가 흔히 하는 착각이다. ‘내가 뭔가 하나 제대로 해줬으니 이 정도면 상대도 날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싸게 줬으니 품질은 안 보겠지’ ‘건강에 좋으니 맛이 좀 없어도 참겠지’ 따위가 대표적 예다.
하지만 당신이 뭔가를 제공 받는 입장에 섰을 때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듯 당신의 고객 또한 양보란 없다. 소비자 자체가 지갑 여는 걸 고통으로 여기는 ‘경제적 존재’란 사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나를 해주고 다른 하나까지 더 해준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몰릴 것이다. 소비자에게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리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 상쇄관계)’ 따위는 없다. 기왕 여는 지갑이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
소비자에게 ‘트레이드오프’ 따윈 없다
생산자 관점에서의 트레이드오프를 고객이나 소비자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생산자나 기술자가 지닌 저마다의 가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사회를 어느 한 방향으로만 이해하는 건 무리다. 어쩌면 우리의 오류는 긍정도, 부정도 절대적 형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인간은 본래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존재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와 오해는 상당 부분 상대방을 ‘상반되는 가치 중 어느 하나만 존재할 것’이라고 단정하며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모순, 즉 양립 불가능한 가치는 자연의 순리다. 대부분의 실패는 이런 모순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인간의 무의식 세계는 모순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으레 그 중 한 면만 표현한다. (실상 그 내면은 그렇지 않은데도) 의식 세계에 있는 자아가 타인의 눈치, 사회적 눈치를 보며 그렇게 답하도록 강요한다. 인간의 무의식적 내면은 모순투성이다. 반대 측면은 늘 공존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혹 뭔가에 빠져든 경험이 있다면 그 순간을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아마 긍정과 부정이 교차할 것이다. 불편도, 어려움도 있지만 그런 만큼 기쁨과 웃음도 함께하기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이다. 실제로 긍정은 부정과 공존할 때 그 가치가 배가된다. 즐거움은 괴로움과 함께할 때 그 의미가 한층 크게 다가온다. 도박과 같은 정신적 중독엔 양가성(兩價性)이 존재한다. (돈을) 잃기도, 따기도 하는 교차가 일어나기 때문에 쉬이 중독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길지 질지 모르는,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확률적 불확실성 때문에 급속도로 빠져드는 것이다. 늘 이기기만 하면 반대공존이 없어지면서 불확실성도 사라져 금세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 쪽만 있으면 그 존재적 의미를 잃는다. 양면이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온전하게 지속될 수 있다.
도박·게임 인구가 줄지 않는 이유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친 자극으론 누군가를 빠져들게 할 수 없다. 웃음과 눈물, 좋음과 싫음 등 상반된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 사람들은 거기에 몰입한다. 인간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모순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미술·건축 할 것 없이 옛것과 현대적인 것이 함께할 때 가장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 ‘과거와 미래의 공존’이란 시간적 모순도 사람의 무의식과 닮아 있기에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인간의 감정 표현에도 모순적 공존이 담겨 있다. 양가적 표현은 오랫동안 기억될 뿐 아니라 강력한 실행 능력도 지닌다. 설렘이 대표적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설렜던 순간엔 늘 긴장과 기대가 공존한다. 성공에 대한 기대는 약간의 위험이 수반될 때 가장 짜릿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다. 묘한 느낌으로 표현되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을 각각 상기시켜보라. 거기엔 예외 없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반대 경험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의 기저에 흐르는 의미는 한 가지 메시지를 시사한다. ‘현명한 모순(smart ambivalence)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모순, 다시 말해 서로 배척되는 두 가지를 양립시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소비자를 설득하려면 트레이드오프 관계의 두 속성을 양립시키는 게 효과적이다. ‘친환경적이면서 강력한 세척 기능을 겸비한’ 세제, ‘맛있으면서도 건강에도 좋은’ 조미료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대표적 혁신 사례, 혹은 소비자에게서 꾸준히 사랑 받는 브랜드의 인기 비결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양립 불가능’을 ‘양립 가능’으로 돌려놓은 역발상 사례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일관된 변화(consistent change)를 보여주는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만 해도 그렇다. 벤츠나 BMW, 포르쉐 등은 한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예의 그 고유한 기운을 잃지 않는다. 그 덕에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서 ‘명차’로 인정 받는다.
부정적 단어 앞에 반대 의미의 수식어를 붙여보는 시도도 의미 있다. ‘짜릿한 불확실성’ ‘즐거운 기다림’ ‘건강한 긴장’ ‘착한 소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착한 소음을 실제로 구현한 사례가 ‘커피티비티(Coffitivity)’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커피티비티는 ‘커피숍에서 나는 소음이 창의성을 증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실제 앱 개발로 연결시켜 주목 받았다. ‘소음은 나쁜 것’이란 일방적 해석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리고 조용함과 시끌벅적함이 함께하는 커피숍 소음의 순기능적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스웨덴 가구 업체 이케아(IKEA)는 ‘작은 공간(small space)’이란 부정적 의미 앞에 ‘극대화할 수 있는(maximizing)’이란 단어를 붙여 ‘작은 공간에서 얻는 빅 아이디어’란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2인 가구(household)가 증가하면서 작은 공간이 대세가 되는 현실에 맞춰 ‘좁지만 넓게 이용하는’ 가구(furniture) 개념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모순적 접근을 잘 실천한 사례다. 비록 좁은 공간이라도 사이사이에 ‘숨겨진 의외의 공간’이 많으며, 이를 잘 활용하면 넓은 공간 못잖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케아 ‘빅 아이디어’ 캠페인의 교훈
비커에 자갈을 넣으면 금세 꽉 차 더 넣을 공간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는 모래를 넣으면 자갈 틈새를 메우며 계속 들어가게 마련이다. 우리가 못 보는 이면, 즉 반대편을 동시에 보면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혁신과 창조는 ‘작은 공간에서도 사치란 말이 어울리게 하는’ 데서 나온다. 어쩌면 우린 ‘A하면 B할 것이다’란 1차원적(혹은 단편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인간 무의식에 존재하는 실제 마음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기업(혹은 마케터)는 생산자 관점에서 소비자에게 일면적 착각을 강요해오진 않았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유가 없으면 사치는 가당찮다’가 아니라 ‘여유가 없어도 때론 사치를 부리고 싶다’가 인간의 본성이란 사실을 자각할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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