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케이팝(K-pop) 열풍’이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

2014/10/24 by 손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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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애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초빙 교수


 

모 대학 초빙 교수직을 맡아 몇 달 전부터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여름 이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때는 8월 중순, 장소는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 위치한 대형 공연장 ‘스포츠 아레나(Sports Arena)’였다.

“지지지지 베이베 베이베(Gee Gee Gee Gee Babe Babe)~♬” 관중석을 가득 메운 1만5000여 관객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국 걸그룹 소녀시대의 히트곡 ‘지(Gee)’였다. 무대에선 소녀시대 멤버 중 한 명인 티파니가 열창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탄성을 지르며 열광하는 관객 중 상당수는 미국 젊은이였다. 이 같은 장면은 공연이 계속된 두 시간여 내내 이어졌다. 미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한류 열풍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LA 한복판서 ‘소녀시대 팬 군단’ 만나다

행사의 정식 명칭은 CJ그룹이 이틀에 걸쳐 개최한 ‘케이콘(KCON) 2014’였다. 공연장을 찾은 건 순전히 10대 청소년인 두 딸 때문이었다. 당시 난 미국에 있는 동안 머무를 아파트를 찾기 위해 며칠간 LA 곳곳을 헤매고 있었다. 날 따라 다니던 두 딸은 피곤함과 무료함에 잔뜩 짜증이 난 상태였다. 우리 가족에겐 ‘기분 전환 수단’이 필요했고 때마침 눈에 띈 행사가 케이콘 2014였다. 내가 동행한 이유는 단 하나, 도심 공연장에 아이들만 보낼 수 없어서였다.

콘서트를 즐기는 관중들입니다.

그날 우연찮게 접한 케이팝(K-pop) 공연이 내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아시아에서나 통하는 음악’이라고 여겼던 케이팝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팝음악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케이팝이 얼마든지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날 우연찮게 접한 케이팝(K-pop) 공연이 내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아시아에서나 통하는 음악’이라고 여겼던 케이팝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팝음악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케이팝이 얼마든지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 미국에서 인정받는다면 진정한 세계 제패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지도입니다.▲케이팝은 미국 곳곳에서 위상을 떨치며 한국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케이팝의 위상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딸들이 전학할 현지 중·고교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신통찮아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지인은 내게 이런 얘길 들려줬다. “지난 봄 학기에 미국 땅을 처음 밟은 한 한국 중학생(7학년)이 전학 간 현지 학교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대요.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문화에도 어두운 아이였다는데… 비결이 뭐였는 줄 아세요? 인기 케이팝 그룹 멤버와의 개인적 친분이었어요.” 그는 내게 “딸들에게도 ‘미국 친구 사귈 때 한국 가수에 관심 있는 아이부터 찾아보라’고 귀띔하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사상 최대 트위터 트래픽 이끈 ‘엑소쇼’

문득 아리랑 TV·라디오 사장으로 있던 1년 전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아리랑 채널은 구글 행아웃과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활용,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반영한 케이팝 쇼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이 전 세계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구성인데 해외 시청자들이 정말 반응을 보일까?’ 날 비롯한 관계자 전원은 프로그램 방영 직전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룹 엑소의 단체사진입니다.▲ 트위터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그룹 엑소 (출처: 삼성 뮤직/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첫 방송이 전파를 탄 지 1년여 만에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화제를 모은 만큼 방영 기간 동안 각종 기록도 쏟아졌다. 한 예로 보이그룹 엑소(EXO)가 출연했던 방송의 경우, 재난 관련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트위터 역사상 최고의 트래픽(traffic)을 기록했다(트위터 공식 집계 기준).

결국 그날 해당 쇼 제작진은 부랴부랴 다른 시간대에 관련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설했다. 몰려드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밤잠 설쳐가며 대화를 요청해 오는 전 세계 케이팝 팬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케이팝의 위력을 처음 실감했던 순간인 것 같다.

 

‘케이팝’ 마니아, 대부분 ‘코리아’ 마니아로

케이콘 행사 직후 밖으로 나온 난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공연장 옆에 마련된 임시 장터의 풍경 때문이었다. 그곳에선 케이팝, 아니 한국의 모든 것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이돌 그룹 관련 상품은 단연 압권이었다. 포스터는 물론이고 멤버들의 사진으로 장식된 티셔츠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장터 한 편에 들어선 푸드 코트에선 떡볶이·순대·불고기 등 한국 전통 먹거리가 햄버거나 타코와 나란히 팔리고 있었다. 이날 공연 출연진 중 하나였던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케이팝뿐 아니라 한국 문화를 사랑해줘서 고맙다”며 팬들에게 인사하던 장면이 그 광경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성장 그래프입니다.▲10년 넘게 꾸준히 성장해온 케이팝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가 케이팝 열풍을 “한낱 거품일 뿐”이라며 폄하한다. 특히 기성세대 중 상당수는 “최근의 케이팝 한류는 과대평가되고 있다”며 우려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케이팝은 벌써 10년 이상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강남 스타일’로 대표되는 싸이의 대성공 이후 케이팝은 꽤 많은 나라에서 어엿한 ‘중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케이팝에 매료됐던 청소년들이 어느덧 20대, 혹은 30대 청년으로 자라 관심 대상을 ‘대한민국’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애용하고 정통 한식을 즐겨 먹는가 하면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 전통 문화에 열광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2014년 10월, 케이팝은 더 이상 ‘한때 유행’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언제 이 열풍이 사그라질까 염려하는 게 아니라 케이팝의 인기를 마중물 삼아
어떤 걸 더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이 대열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4년 10월, 케이팝은 더 이상 ‘한때 유행’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언제 이 열풍이 사그라질까 염려하는 게 아니라 케이팝의 인기를 마중물 삼아 어떤 걸 더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이 대열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사 제품을 세계 시장에 좀 더 매력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케이팝 한류’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 케이팝 마중물 삼아 기회 창출하길

시끄럽고 정신없는 공연장을 피해 잠시 라운지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라틴계 웨이터는 내게 자신의 아들이 케이팝 마니아라고 밝혔다. “그럼 당신은요?” 내 질문에 그는 빙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저도 케이팝이 좋아요. 일단 들으면 즐겁거든요. 게다가 한국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있잖아요. 그런 게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답니다.”

그 얘길 들으며 난 무릎을 쳤다. 케이팝을 계기로 한국이란 나라 자체에 관심 갖는 글로벌 인구가
느는 현상이야말로 한국 기업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미국 청소년, 특히 히스패닉이나
흑인 계통 청소년층의 인기를 얻고 싶은 기업이라면 이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 얘길 들으며 난 무릎을 쳤다. 케이팝을 계기로 한국이란 나라 자체에 관심 갖는 글로벌 인구가 느는 현상이야말로 한국 기업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미국 청소년, 특히 히스패닉이나 흑인 계통 청소년층의 인기를 얻고 싶은 기업이라면 이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해당 부문의 사업 기회를 포착, 발 빠르게 시장 개척에 나선 한국 기업이 많은 것 같진 않다. 이와 관련, 국내 모 중견 화장품 기업을 위해 일하는 홍보회사 임원의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한국 기업은 아직 한류의 잠재성을 충분히 활용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이제 슬슬 성공 사례를 만날 때가 됐다.”

테이크 액션 표지판입니다.▲케이팝 열풍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한국 기업은 한류의 잠재성을 활용해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명심해야 할 건 아무리 기반이 튼실하다 해도 케이팝 역시 ‘언제 인기가 꺾일지 모르는’ 대중문화란 사실이다. 케이팝 열풍이 품고 있는 가능성의 수명이 무한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서둘러 행동으로 옮기자. 계속해서 무시와 외면으로 일관한다면 기회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테니까.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손지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초빙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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