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O2O 맹신론’을 경계하라
김학용 부산대 사물인터넷산학협력단 교수
친구들을 만나러 커피숍에 갔다.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기다리는 줄이 길어 스마트폰 주문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이용해 주문, 결제까지 마쳤다.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우연히 동기들 중 제일 잘나가는 아인이가 이번에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했단 사실을 알게 됐다. 모바일 메신저로 친구들에게 2만 원씩 걷어 곧장 축하 꽃바구니를 보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자 모두들 스마트폰을 꺼내 택시를 불렀다. 집에 도착해보니 집 안이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깨끗했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길, 스마트폰으로 홈클리닝 업체에 집 안 청소를 신청해놓은 덕분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출출해져 배달 앱으로 평소 즐겨 먹는 치킨을 주문했다.
이상은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 한 장면이다. 놀라운 건 커피 주문에서부터 집 안 청소에 이르기까지 모바일(스마트폰)로 시작해 모바일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 그대로 ‘모바일 온리(mobile only)’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M2O(Mobile-to-Offline)’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우린 ‘O2O(Online-to-Offline)’라고 부른다.
오프라인 매장, “쇼루밍족(族)을 붙잡아라”
서점에서 책 내용 일부를 미리 살펴보고 집이나 사무실의 컴퓨터를 이용해 책을 주문해본 경험,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옷을 구경한 후 컴퓨터로 구매하거나 전자제품 매장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을 비교해보고 집에 돌아와 온라인으로 구매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가격 비교만 잘 하면 오프라인 매장보다 훨씬 싼 가격에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매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확인’만 하고 실제로 ‘구매’하진 않자, 기껏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매장을 꾸민 오프라인 매장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돈으로 온라인 판매자를 위해 오프라인 전시장(showroom)을 제공해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구경하고 가격이 저렴한 온라인을 이용해 구매하는 경향을 ‘쇼루밍(showrooming) 현상'이라고 한다.
쇼루밍 현상을 불만스러워하던 오프라인 판매자들은 판매 가격 인하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온라인 판매자에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전략은 온라인 판매자의 그것과 좀 달랐다. 온라인 할인가로 구매하되, 구매자가 직접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수령하도록 한 것. 이렇게 하면 배송비를 줄일 수 있을뿐더러 매장 방문 고객에게 추가 구매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런 움직임을 ‘역쇼루밍(reverse-showrooming) 현상’이라고 한다.
초기에 일부 제품에 대해 제한적으로 시도됐던 오프라인 판매자들의 역쇼루밍 전략은 이제 어엿한 트렌드(trend)가 돼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분야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호출하던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대리기사를 부르고 택배를 신청하며 세차까지 맡긴다. 음식 배달은 기본. 스마트폰으로 맞춤 옷을 주문하거나 베이비 시터를 구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먼저 결제한 후 오프라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령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일명 ‘O2O 트렌드’의 등장이다.
O2O 트렌드도 머지않아 ‘구식’ 될 것
여기까지만 보면 앞으로의 상거래는 온라인상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또는 구매)하고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수령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형태로 완전히 바뀔 것처럼 보인다. 즉,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O2O 트렌드가 더욱 확산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기술 진화에 따른 변화로 인식하는 덴 동의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것처럼 스마트폰 중심의 O2O 현상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려는 노력의 결과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O2O 트렌드가 ‘모바일 중심(mobile-centric)’ 혹은 ‘모바일 온리’가 될지 여부 역시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컴퓨터 중심 온라인 전자상거래가 그랬듯, O2O와 같은 모바일 중심 상거래가 나타나고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온∙오프라인 전자상거래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O2O는 기존 상거래 방식을 ‘대체’하기보다 ‘다양화’시킬 공산이 크다.
머지않아 모바일 중심 O2O 트렌드 역시 새로운 상거래 방식에 의해 구닥다리 취급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물이나 인공지능(AI)이 ‘나’를 대신해 구매해주고 ‘나’는 그저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스마트 냉장고가 식재료를 주문해줄 수도, 인공지능 서비스가 사용자의 일정표와 선호도를 바탕으로 한 달 후 해외여행을 위한 항공권과 호텔을 알아서 예약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만으로 생필품이나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건 물론, 홈 CCTV가 출동보안 서비스를 자동으로 호출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술 발달로 상거래 방식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구매 방식’일 뿐이며 ‘구매 행위’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니라 ‘구매’ 자체
이처럼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 방식이 다양해지는 현상을 가리켜 ‘멀티채널(Multi-Channel)화’라고 일컫는다. 결제 방법과 제품 수령 방식, 서비스 이용 채널 등이 일제히 다양해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다양화된 상거래 환경에선 어떤 요인이 중요해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구매자에게 일관된 상거래 경험을 제공하는 게 아닐까 한다. 이런 노력을 흔히 ‘옴니채널(Omni-Channel)화’라고 한다. 뛰어난 옴니채널을 제공하려면 구매 이력이나 성별, 연령 등 사용자 관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정보’와 ‘사용자 친화적 이용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판매자는 검색∙구매∙결제∙배송 등 제품 구매에 관한 일련의 절차를 간편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오프라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품질일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품질은 단순히 ‘좋고 나쁨에 대한 언급’을 넘어 ‘서비스 플랫폼의 신뢰도’와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모바일이든 O2O든 상거래 방식의 종류에 불과하며, 변하지 않는 건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 자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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