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최종 결정권자는 소비자… 본질에 충실하라”_류현석 마스터 편
제1장. 고객의 고객, 그 고객의 고객까지 생각하다
안녕하세요, 류현석입니다. 종합기술원(이하 ‘기술원’)에서 DS부문으로 옮긴 지 이제 막 3주가 됐네요. 기술원에서 연구해온 뉴로모픽(neuromorphic) 센서 기술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간 제가 진행해온 과제는 거대한 여정의 초입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단계입니다. 아직 구체적 업무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칼럼을 쓴다는 게 저로선 약간 부담스럽기도, 민망하기도 합니다.
뉴로모픽 센서는 쉽게 말해 인간 신경(神經∙nerve)을 모방한 컴퓨팅 기술입니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기, 자율주행 차량 등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한 제품 영역의 기반이죠.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교 등 전 세계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이미 30여 년 전부터 연구돼온 분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 제품으로 상용화된 적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신생 분야, 미개척 분야인 셈입니다.
▲류현석 마스터는 삼성전자 입사 이후 줄곧 몸담아온 종합기술원을 떠나 최근 DS부문 시스템LSI부로 소속을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요즘 제가 골몰하는 화두는 고객의 수요(needs)입니다. 연구 중인 과제가 상품화 단계로까지 나아가도록 제반 조건을 하나씩 따지며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거든요, 그 끝엔 늘 고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품의 최종 사용자인 고객을 만나고 중간 단계 협력자들의 기술적 요구 사항을 지원하다보면 결국 ‘본질’에 관한 고민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 제 상사이기도 했던 손욱 원장님(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죠. “당신의 고객의 고객, 그리고 그 고객의 고객이 뭘 중요하게 생각할지 고민해라.”
이 말은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제가 벽에 부딪칠 때마다 일종의 부표(浮標)가 돼줬습니다. 실제로 뭔가 팔고 싶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그 물건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제품에서 그 존재는 소비자가 되겠죠. 최종 고객에게 가 닿기 전 무수한 결정권자를 거쳐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두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말이지만 또한 간과하기 쉬운 진리이기도 합니다.
전 기나긴 여정을 거쳐오며 길을 잃을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그러면 늘 답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리됐죠. 사실 요즘처럼 기술 발달이 숨가쁜 시대엔 고객조차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모르곤 합니다. 아직 제품화되지 않은 기술이 있기 때문이죠. 그럴 때 어떤 걸 제품화할지 여부는 결국 생산자의 고민에 따른 산물입니다. 전 그 해답이 본질, 즉 해당 기술의 궁극적 쓰임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장.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이 가장 재미있다
요즘 제 머릿속은 온통 ‘이 기술은 제품화가 가능할까?’란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입사 이래 지금이 가장 도전적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회사란 구조에서 동료들이 기획한 걸 생산까지 끌고 가는 일명 ‘보텀업(bottom-up)’ 방식 과제 수행의 기회를 얻는 건 상당한 행운입니다. 단순히 아이디어만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아니죠. 뭐니 뭐니 해도 기획의 장래성을 믿고 지지해주는 분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 순간 과제의 방향을 바로잡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내 선배들의 존재감이 부쩍 크게 다가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류현석 마스터는 본인 말마따나 ‘좀 느슨한’ 선배다. 그는 “능동적 사람이라면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고 그 결과에 책임도 지면서 뿌듯해하는 법”이라며 “후배들이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좀 더 생각나네요.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매일 머릴 맞대는 11명의 팀원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칫 지치고 막막할 수 있는 상황을 헤쳐가는, 제 든든한 동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사(人事)에 관한 한 전 그리 꼼꼼한 상사가 아닙니다. 부하 직원의 업무를 하나하나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보다 개개인에게 적합한 업무를 위임, 스스로 진행하게 합니다. 물론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도록 하고요.
‘그래도 마스터 하면 명색이 기술 부문 리더인데 너무 나태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의 재미는 스스로 찾아 하는 데서 온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손수 일거리를 찾고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극복해가는 과정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직장 생활의 묘미죠. 단지 ‘선배’란 이유로 제가 그 즐거움을 빼앗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3장. 산다는 건 ‘나 같지 않은’ 이와 어울리는 일
회사 생활이 언제나 쉽고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매 순간 여럿이 협력해야 하는 환경에서 종종 제 안의 모난 구석을 발견하고 좌절하곤 하죠. 어쩌면 조직 생활이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이해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 말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을 배려하지 못해 갈등을 빚던 시기도 있었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시절은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마련입니다. 일종의 ‘통과의례’랄까요. 언제, 얼마만큼의 강도로 오느냐 하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전 외려 이 시기를 되도록 빨리, 격렬하게 겪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레 ‘어울려 간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니까요. 그 경험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껍질을 깨고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갈등으로 좌절하는 일은 한 번 겪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엇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며 조금씩 지혜로워진다는 사실이죠. 입사한 지 햇수로 18년째, 저 역시 계속해서 배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백 번의 말이 무슨 소용 있을까요, 앞으로도 몸으로 부딪치고 치열하게 경험하며 더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끊임없는 사진작가의 ‘포즈 연출’ 요구에 어색해하던 류현석 마스터는 “결혼식 사진 찍을 때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면서도 “가족이 좋아할 것 같다”며 용기(?)를 내어 사진 촬영에 임했다
류현석 마스터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1998년 삼성전자에 입사, 종합기술원에서 광네트워크와 뉴로모픽 센서 등의 분야를 연구했다. 지난달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로 옮겨 새로운 기술 과제를 준비하고 있다. 2013년 12월 마스터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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