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칼럼] 제3화. “미래, 준비하되 고민하지 말자”_이주호 마스터 편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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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마스터칼럼, "미래, 준비하되 고민하지 말자", 3편 이주호 마스터(DMC연구소 글로벌표준팀)

오는 9월 1일이면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만 16년이 됩니다. 1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세월을 한마디로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이주호 마스터

정말 많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참석했던 글로벌 표준회의, 믿었던 파트너에게 본의 아니게 뒤통수(?)를 맞은 후 이 악문 채 귀국했던 비행기 안, 치열한 논쟁 직후 경쟁사 관계자들과 술잔 기울이며 회포 풀던 순간, 비행 도중 말 그대로 벼락을 맞고 인생무상을 실감했던 날, 마스터로 임명된 2013년 12월의 어느 날….

무수한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은 시계를 그때로 돌려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영국 밴드 비틀스의 명곡 ‘렛잇비(Let it be)’가 제 ‘인생 넘버’로 자리 잡은 계기인 동시에,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 공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 흘린 경험에 관한 얘기죠.
 

제1장. 1년 중 100일을 해외에서 뛰는 사나이

운 좋게도 전 입사 이후 줄곧 이동통신 기술 표준 분야에 몸 담아왔습니다. 3GPP[1]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 출장도 자주 다녔죠(3GPP는 3G부터 4G, 5G에 이르기까지 이동통신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개최되는 글로벌 회의체입니다). 업무 특성상 요즘도 1년 중 3분의 1, 100일가량은 해외에 나가 있습니다. 표준회의 일정이 대개 주중 내내 잡히다보니 연중 주말의 절반 이상은 비행기 안에서 보내곤 합니다. 2009년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인 디 에어(Up In The Air)’ 기억 나세요? 극중 조지 클루니가 연기했던 주인공 ‘라이언 빙햄’이 딱 제 모습이더군요.

통신 기술 부문에서의 글로벌 표준회의는 개별 기업이 제안하는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통신장비(기지국 등)나 휴대 단말기(스마트폰 등) 제조를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명 ‘표준 기술’을 만들어가는 장(場)입니다. 이 자리에선 업체별 관계자들이 총집결, 일정 기간 동안 회의와 세션을 번갈아 하며 자사 기술이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치열한 경합을 벌입니다.

이주호 마스터

전 지난 2003년부터 6년간 3GPP 무선접속네트워크물리계층워킹그룹 회의 부회장을 맡아 4G LTE 주요 기술 중 하나인 MIMO[2] 분야 세션을 이끌었습니다.

MIMO가 당시 이동통신 기술의 핵심 부문이었던 만큼 회의장은 매번 ‘피만 안 튀었을 뿐 사실상 전쟁터’였습니다. 삼성전자를 포함, 전 세계에서 모인 기업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설전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기술 경쟁력을 설득하는 한편, 경쟁 업체 기술을 견제하기 바빴습니다. 일단 회의가 시작됐다 하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가 진행되는) 호텔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죠.

희한한 건 그런 와중에도 동료애가 싹텄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전우애’랄까요. 국적도, 사용하는 영어의 억양도 달랐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는 점에서 우린 서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이틀씩, 길면 사흘씩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세션이 끝난 후면 우린 늘 함께 인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술도 한 잔씩 기울이며 흉금을 털어놓았죠.

 

제2장. 평생 잊히지 않을 ‘인생 넘버’, 렛잇비

2009년 8월, 6년간의 부의장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장내 정리를 하려는 찰나, 평소 함께 세션을 들락거리며 친분을 쌓았던 다른 회사 참석자들이 “중요한 순서가 하나 더 남았다”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 순간, 꺼져 있던 회의장 전면 빔프로젝터 전원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뒤이어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오더군요. 렛잇비 전주였죠. “When I find myself in RAN[3]1 meetings/ working for a company/ there is someone present/ Juho lee~♬” 지난 6년간의 부의장직 수행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을 담아 동료들이 개사와 녹음, 사진 편집까지 도맡은 영상이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스크린 가득 떠올랐습니다.

3GPP 부의장 활동이 끝나던 날, 동료들이 ‘깜짝 선물’로 제작해준 영상 속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주호 마스터다. ▲3GPP 부의장 활동이 끝나던 날, 동료들이 ‘깜짝 선물’로 제작해준 영상 속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주호 마스터다. 때론 치열한 경쟁자로, 때론 미더운 동료로 국적과 소속을 초월해 함께했던 사진 속 이들과는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접하고 어안이 벙벙했던 것도 잠시, 제 눈에선 어느새 주책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삼성전자가 ‘이동통신 기술 표준화 분야 후발주자’에서 ‘표준 기술을 이끌고 없던 길을 개척해가는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기까지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한 장면씩 재생됐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간 자신의 영역에서 묵묵히 기술 개발에 애써온 삼성전자 식구들의 진심이 떠올라 괜스레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이주호 마스터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나 혼자 받은 선물이 아니다’라고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리 애썼다 한들 (표준으로 채택될 만큼의) 기술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을까요? 협상력도, 물밑 관계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기본’입니다. 결국 첫째도, 둘째도 튼실한 기술력인 거죠. 실제로 저 같은 기술 인력에게 기술력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한 순간 방심하면 경쟁자가 치고 올라오죠. 자칫 멀쩡하게 잘 보유하던 기술을 빼앗길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표준 부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특정 기술이 해당 분야의 ‘표준’으로 인정 받으려면 몇 년은 예사로 걸리죠. 이건 제 경험담이기도 합니다.

 

제3장. ‘지금 여기, 내 자리’에서 최선 다하기

비행기에서 벼락 맞은 얘기, 제가 했던가요? 단언컨대 이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우르릉, 쾅!” 벼락이 제가 탄 비행기를 강타한 순간, 승무원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고 정전이 돼 컴컴해진 기내엔 한동안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다행히 “걱정할 것 없고 항공기는 정상 운행 중”이란 기장의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습니다. 그의 말대로 잠시 기우뚱하는가 싶던 비행기는 제 궤도를 찾았는지 정상적으로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천운(天運)이었죠.

이주호 마스터 이주호 마스터는 1년 365일 중 100일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 자연히 항공사 이용도 잦은 편. 그의 항공사 애플리케이션 초기 화면 속 ‘밀리언 마일러 클럽’ 문구가 선명하다 ▲이주호 마스터는 1년 365일 중 100일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 자연히 항공사 이용도 잦은 편. 그의 항공사 애플리케이션 초기 화면 속 ‘밀리언 마일러 클럽’ 문구가 선명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제겐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순간의 행복’에 눈뜨게 됐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전 요즘도 매 순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회사 동료와 선후배, 업계 경쟁자 할 것 없이 함께하는 모든 이와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려 애쓰죠. 인생은 본인이 행복하다고 여길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렛잇비 영상’을 선물한 동료, 그 영상을 보며 “아빠 최고!”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워준 두 아이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지닌 최고의 자산입니다.

이주호 마스터 사무실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퍼즐 액자. 직접 그린 초상을 다시 퍼즐로 만든, 만든 이의 품이 꽤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그는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비서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 ▲이주호 마스터 사무실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퍼즐 액자. 직접 그린 초상을 다시 퍼즐로 만든, 만든 이의 품이 꽤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그는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비서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 갓 입사했을 당시, 제 또래 동료들이 종종 당시 부장급 상사에게 던지던 질문이 있습니다. “저희 모두 수석(연구원)이 될 수 있을까요?” 16년이 흐른 지금, 그들 대부분은 정말 수석으로 승진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혹자는 임원이, 혹자는 저처럼 마스터가 됐죠. 지금 돌아보니 그 비결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약 당시 제가, 그리고 제 동료들이 ‘난 언제쯤 승진할 수 있을까?’에만 골몰했다면 과연 오늘날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바로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그곳에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즐겁게 살아가세요. 어느 순간, 여러분 자신도 모르는 새 훌쩍 성장한 본인 모습에 놀라게 될 겁니다. 돌이켜보면 전 단 한 번도 ‘이런 사람이 돼야겠다’ ‘회사에서 어느 자리까지 올라가야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국제회의를 무리 없이 이끌기 위해 부족한 영어 실력이나마 논리 구성에 힘썼더니 기본 영어 회화 정도는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됐죠. 부족한 시장 내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우리 편’을 하나라도 더 만들려 뛰어 다녔더니 적(敵)보다 동지가 훨씬 많아졌고요.

미래에 대한 준비, 당연히 해야죠.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지레 고민하는 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는 데 도움 될 게 없거든요. 그보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그 사이사이 최선을 다해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게 훨씬 값집니다. 회사 후배, 그리고 인생 후배들에게도 그 얘길 꼭 들려주고 싶네요.

 

이주호 마스터, 미래를 준비하되 고민하지 말자.

이주호 마스터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CDMA 간섭 제거 기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줄곧 통신 기술 표준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2013년 12월 마스터로 선임됐다

 

 

 

 


[1] 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t. 3세대 이동통신 시스템 규격을 제정하기 위해 유럽∙일본 이동통신 단체 주도로 결성된 표준화 단체
[2] Multiple-Input Multiple-Output. 여러 개의 안테나로 데이터를 동시에 주고받아 전송 효율을 높이는 기술.
[3] Radio Access Network. 무선접속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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