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마법’ 양자컴퓨터 세계가 온다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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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찰나의 마법 양자컴퓨터 세계가 온다.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층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어느 큰 성(城)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다고 치자. 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갈 사람과 그러지 못할 사람을 구분해내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문지기, 성격이 꽤 변덕스러워 어떤 날은 성문 앞에 모인 사람 전부를 들여보내고 어떤 날은 그중 절반만 통과시킨다.

사실 그는 컴퓨터과학 애호가다. 그래서 카드에 숫자 ‘0’ 혹은 ‘1’을 써놓은 후 성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 수만큼 탁자 위에 엎어놓는다. 문지기의 신호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각자 한 장씩의 카드를 뒤집어본다. ‘0’이 쓰인 카드를 쥔 사람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1’이 쓰인 카드를 집어 든 사람에겐 성문이 열린다.

어느 날, 성문 앞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 여덟 명이 모였다. 여덟 장의 카드가 뒷면을 위로 향한 채 나란히 놓였다. 사람들은 각자 한 장씩의 카드에 손을 댄 채 문지기의 신호만 기다린다. 문지기가 모든 사람을 들여보내려고 마음 먹었는지, 절반만 들여보내기로 했는지 알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양자컴퓨터의 특성, ‘문지기 확률’에 그 힌트가?!

이 질문은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와 일반 컴퓨터 간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오늘날 양자컴퓨팅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리처드 조사(Richard Jozsa)와 데이빗 도이치(David Deutsch)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이론물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설명을 살짝 변형했다.

일단 답부터 생각해보자. 카드를 어떻게 뒤집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것이다. 한 장씩 뒤집어 보면 많게는 다섯 장을 뒤집어야 문지기의 그날 계획을 알 수 있다. 처음 네 장의 카드에 모두 1이 쓰여있다 해도 한 장을 더 열어봐야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동시에 뒤집으면 어떤 경우든 즉시 답을 알 수 있다.

경우의 수(트럼프 카드 이미지)

이 경우 카드를 한 장씩 뒤집어 보는 건 일반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 반면, 모든 카드를 동시에 뒤집어 보는 게 바로 양자컴퓨터 방식이다. 이 차이는 데이터 값이 늘어날수록 커진다. 그리고 데이터 양이 천문학적으로 많아져도 양자컴퓨터는 한순간에 그 구조를 파악하기 때문에 답을 ‘언제나 즉시’ 얻을 수 있다.

 

양자컴퓨터 실용화되면 현행 암호 체계 ‘무용지물’

양자컴퓨터는 올 들어 전 세계 IT 업계에서 부쩍 존재감을 키워온 기술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Nature)’를 비롯한 유수 연구기관, 그리고 글로벌 미디어가 발표한 ‘2017 IT 개발 동향’ 보고서는 하나같이 양자컴퓨터를 ‘2017년을 이끌어갈 주요 기술’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 환경청(EPA)의 연구 프로그램 ‘홈랜드 시큐리티 리서치(Homeland Security Research)’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양자컴퓨터(와 관련 서비스) 시장 규모는 84억5000만 달러(약 9조6500억 원)에 이른다. 이중 정부 주도의 관련 기술 연구∙개발(R&D) 기금 규모는 22억5000만 달러(약 2조5700억 원) 수준이다.

양자컴퓨터는 현재 널리 보급돼 있는 컴퓨터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특정 형태의 계산에만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자컴퓨터가 일반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제한적 차별성만으로도 세상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양자컴퓨터가 실용화 단계에 이르면 일단 지금까지 컴퓨터를 이용, 온라인을 통해 해왔던 모든 활동에 걸린 암호 체계를 전부 바꿔야 한다. 오늘날 온라인 쇼핑과 은행 거래 등 금전(이나 기타 이해)관계나 프라이버시가 걸려 있는 활동엔 반드시 암호가 필요하다.

암호를 만드는 법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 아래엔 공통적으로 인수분해 원리가 숨어있다. 예를 들어 “1357×2468은?”이란 질문에 대해 즉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일반 컴퓨터는 순식간에 “3,349,076”이란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숫자를 제시한 후 이게 어떤 네 자리 수와 어떤 네 자리 수를 곱한 값이냐고 묻는다면 얘긴 전혀 달라진다.

빠른 계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일반 컴퓨터는 1000에서 9999까지 모든 숫자 중 두 개의 조합을 꼼꼼히 곱해보며 ‘3,349,076’이란 답을 도출해낸다. 앞선 예에서 문지기가 나눠준 카드를 하나하나 뒤집어보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컴퓨터 성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까지 걸리는 작업이다.

이 시간은 숫자의 자릿수가 높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제까지 해본 실험 중 가장 자릿수가 많았던 129자리 숫자를 인수분해하는 데엔 1600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달려들어도 꼬박 8개월이 걸렸다. 인수분해가 암호에 쓰이는 건 이런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를 만든 사람은 쉽게 만들고 답도 알고 있지만, 만들지 않은 사람이 그걸 풀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받대한 데이터를 나타내는 배경

만약 양자컴퓨터라면 이렇게 복잡한 숫자의 인수분해 값을 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야말로 ‘찰나’, 즉 몇 십 분의 1초 안에 답이 나온다. 앞의 예시 문제에서 본 것처럼 양자컴퓨터는 모든 자료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특성 덕분에 다양한 업무에 투입될 수 있다. 하나같이 ‘무수한 데이터 값이 연관된 과정에서 아주 단순한 정답을 얻어내는’ 일이다. 수많은 요인이 상호 작용하는 생화학 반응 과정을 예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를 이용해 부작용 없고 효능이 확실한 신약 개발을 앞당길 수도 있다. 지금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확한 날씨 예측 역시 가능하다. 장거리를 날아가는 무기의 탄도 계산이나 다수가 참석하는 회의에서 최적의 자리 배치법을 찾는 일 등 크고 작은 최적화(optimization) 계산도 간편해진다. 안면 인식 등 인공지능이 하는 일의 경우, 빅데이터를 동원하지 않아도 쉽게 처리된다.

 

양자컴퓨터 속성 알려면 양자역학부터 이해해야

양자컴퓨터의 능력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양자컴퓨터의 기본 패러다임인 양자역학 원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양자(quantum)’의 사전적 정의는 ‘에너지나 물질 등 물리적 속성을 갖고 있는, 가능한 한 가장 작은 단위’다. 원자를 구성하는 부분 중 하나인 전자 따위도 포함된다.

양자의 세계는 나노미터의 세계다. 예를 들어 전자의 크기는 0.1 나노미터, 즉 1미터의 100억 분의 1에 해당된다. 이런 극미립자 세계에선 현대인이 일상에서 접하는 물리적 현상들과 전혀 다른 운동 원칙이 적용된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물질’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기보다 ‘파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 결과, 양자의 운동방식은 몇 가지 특별한 성질을 지닌다.

일반 컴퓨터라면 모든 데이터와 그걸 처리하는 데 관련한 지시는 ‘0’ 아니면 ‘1’의 두 숫자 중 하나인 포지션으로 표시되며 이를 ‘비트(bit)’라고 한다. 이 두 포지션이 무수히 다른 조합으로 이어지면서 내용이 주어지고 작동 방식이 선택된다.

이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특정 시점에서의 상태가 0일 수도, 1일 수도, 0과 1 모두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작용 단위는 ‘퀀텀 비트’, 줄여서 ‘큐비트(qubit)’라고 하는데 큐비트는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상태를 모두 포괄하는 일명 ‘슈퍼포지션(superposition)’으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양자 세계에선 모든 데이터가 공존하는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데이터 처리 방식 '비트'

문제는 이 값이 그야말로 찰나에 주어지고 사라져버린단 것이다. 미시적 물리세계의 운동 주체인 양자는 주변의 다른 힘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해간다. 또한 양자와 양자 사이에 경계가 있어도 그대로 통과해 넘어가버린다. 모두 양자의 에너지량이 너무 적어 생기는 현상이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컴퓨터나 컵 같은 물체는 양자 수준의 에너지 주체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에너지가 응축, 발현된 존재다. 웬만큼 센 힘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일정 모습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양자는 현존하는 세계 속에 작용하는 힘에 비해 지극히 적은 양의 에너지이므로 그 힘들이 움직일 때마다 끊임없이 반응하며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양자에 작용하는 외부 에너지 중 하나가 인간의 의식이고 시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운동의 가능성을 내포한 슈퍼포지션이었던 양자는 인간이 그걸 관측하려고 시선을 보내거나, 아니면 단순히 그런 의도를 품는 순간 고정돼 한 가지 포지션만 보여준다. 보는 입장에 따라 그 포지션은 달리 보인다. 요컨대 양자역학에선 어떤 값이든 확실하게 고정돼 주어지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얘기? 머잖아 세상 뒤집어놓을 혁신”

이런 성질의 양자를 활용, 인류의 필요를 충족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설사 가능하다 해도 만만찮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양자컴퓨터 개발 과정은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앞서 본 것처럼 양자컴퓨터 개발 열기는 점점 더해가고 있다.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공학 발달 과정 자체가 점점 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사실도 무시하기 어렵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데이터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는 반면, 관련 기기 크기는 줄어드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한 건 (나노 수준의) 미세한 트랜지스터 활용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그런데 이처럼 소재들이 계속 소형화되면 어느 지점에서 이들은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통제하려는 노력 자체가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노력과 맞물리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컴퓨터가 개발됐단 거야, 안 됐단 거야?”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은 “아직은 아니다”다.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따지면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실제로 2의 4제곱, 즉 16개 인수가 관련된 계산에서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는 양자컴퓨터도 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지금의 컴퓨터론 시간이 너무 걸려 못하는 계산도 해내는 수준의 양자컴퓨터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양자컴퓨터

분명한 건 양자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단 사실이다. 19세기 후반 처음 등장했을 때에만 해도 뜬구름 잡는 얘기로 간주됐던 양자역학은 21세기 들어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는 추세다. 진공관 컴퓨터의 큰 덩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형화시킨 반도체 기술 역시 양자역학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양자컴퓨터 개발 과정 역시 지금은 비약적 문제 해결 방식이 눈에 띄지 않지만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 주요 해결책을 터득하고 나면 이후 컴퓨터 기술 혁명의 불길이 전 세계를 휩쓰는 건 시간 문제다.

어쩌면 양자컴퓨터 개발 속도에 대한 진단은 데이빗 머민(N. David Mermin) 미국 코넬대학교 응집물질물리학부 교수의 그것이 가장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2050년이 돼도 쓸 만한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기 어렵다고 말하는 건 경솔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쓸 만한 양자컴퓨터가 개발돼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역시 경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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