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리들리 스콧,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_‘마션’과 ‘스파이 브릿지’를 보고

2015/11/13 by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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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리들리 스콧,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마션'과 '스파이 브릿지'를 보고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양승철 GQ코리아 에디터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지난 2012년 내놓은 ‘프로메테우스’는 충격적이었다. 그만의 상상력(이지만 일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인류의 근원을 우주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후 ‘카운슬러’(2013)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 등 연달아 개봉한 그의 연출작은 둘 다 실망스러웠다. 힘이 들어간 듯했고 어쩐지 기대에 못 미쳤다. 평단의 혹평은 왠지 그의 엄청난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 중 내가 “끝내준다”고 믿는 작품은 전부 우주를 다룬 것들이었다. '블레이드 러너'(1982)와 '에이리언’(1987)이 여전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믿는 내게 프로메테우스가 선물과도 같았던 이유다. 지난달 개봉한 ‘마션’을 올 초부터 손꼽아 기다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맷 데이먼 마션 ▲영화 '마션'의 포스터 입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마크 와트니는 왜 그렇게 살려고 애썼을까?

마션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유일한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가 홀로 화성에서 살아남고 끝내 지구로 돌아오는가, 가 줄거리의 거의 전부다. 만약 누군가 ‘와트니는 살아서 돌아온다’는 이 영화의 결말을 가리켜 스포일러(spoiler)라고 말한다면 그건 좀 가혹하다. 관객도, 배우도, 심지어 스태프도 그의 무사 귀환에 거는 기대 없이 영화를 대하진 않(았)을 테니까.

한 남자가 우주복을 입고 서 있습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도 이 영화의 ‘재미’는 그가 과연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여부가 주는 긴장감이 쥐고 있다. 말하자면 그건 상업 영화의 ‘기본 덕목’이다. 영화는 그 긴장(의 수축)을 유지한 채 와트니가 살아 돌아오는 과정, 아니 끝끝내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말한다. “내게 남겨진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사느냐, 죽느냐. 만약 살겠다고 결정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와트니의 대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당위성에 대해 묻는다. 누구나 뜨문뜨문, 이를테면 월요일 아침이나 일요일 저녁 ‘개그 콘서트’(KBS)를 보면서, 야근 할 때마다, 혹은 취업 준비로 지쳐 야근하는 사람이 마냥 부러울 때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질문이다. “난 왜 사는 거지?”

한 남자가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마션은 ‘생존’을 말하지만 과장하지 않는다. 절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복잡한 생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누구나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려 집중한다. 굳이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지 않는다. 와트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능력과 체력, 노력을 총동원해 화성에서 생존하려 안간힘을 쓴다. 과학자의 본분인 ‘기록’을 위해 시간 날 때마다 혼잣말로 영상을 녹화하지만 그건 매 순간 약해지는 자신을 다잡는, 일종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는 뚜껑 없는 우주선 탑승을 ‘오픈카 운전’에 비유하며 우주를 부유(浮遊)해야 하는 자신을 ‘아이언맨(Iron Man)’이라고 부른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3000㎞ 이상의 여정을 앞두고도 “내 발길이 닿은 흔적은 모두 인류 최초 아니냐”며 자신을 다독인다.

한 남자가 벽에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리들리 스콧은 ‘인간이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거창하지 않게 얘기한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대신 (살고자 하는) 본능에 집중한다. 인간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지만 죽고자 하는 건 인간(좀 더 넓게 보면 동물)의 속성이 아니다. 생존하려는 속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고 인류를 화성으로 보냈다. 와트니가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예의 그 ‘생존 본능’ 덕분이었다.

 

“네 목소리를 찾아. 그걸 좇아가는 게 중요해”

톰 행크스 불가능한 비밀협상, 모두가 숨죽였던 그날의 사건이 공개된다 스파이 브릿지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포스터 입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도 최근 ‘스파이 브릿지’로 돌아왔다. 영화는 냉전 시대 실화를 다룬다. 1957년, 보험 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 분)은 옛 소련 스파이였던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 분)의 변호를 맡게 된다. 반공(反共)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 누구도 맡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이었지만 도노반은 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소명(‘인간은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을 지키기 위해 아벨의 변호를 시작한다. 정치적 상황이나 대중의 시선, 거대 세력의 압박 따위에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움직인다.

아벨 역시 자신이 지닌 소련의 비밀을 미국에 털어놓지 않음으로써 스파이의 본분을 다하며 조용히 판결을 기다린다. 비슷한 시기, U-2 정찰기를 타고 사진을 찍다 소련에 붙잡힌 미국 CIA 요원 ‘게리 파워스’(오스틴 스토웰 분) 역시 미국 스파이로서의 신념을 지킨다. 마침내 도노반은 독일 동베를린에서 아벨과 파워스의 ‘맞교환 협상’에 나선다. 영화는 그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양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극중 도노반은 아벨에게 “사형 당하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아벨은 이렇게 답한다. “Would it help?” “걱정한다고 달라지나?”로 번역된 이 대사야말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도노반도, 아벨도, 그리고 파워스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가만히 그 결과를 기다린다. 나라의 운명과 개인의 삶이, 삶과 죽음이 첨예하게 맞닿아 있지만 그들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

일이란 대체 뭘까? 인생의 절반 이상, 하루 중 3분의 2를 투자하는 것.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사실상 거의 모든 것. 스티븐 스필버그는 핵(核)전쟁의 위기 속 ‘인질 교환’ 실화에서 이 묵직한 주제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빠른 편집이나 극적인 상황에 집착해 과도한 긴장감을 조성하진 않는다.

차 유리창 안으로 중절모를 쓴 남자가 보이는 사진입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예전부터 그는 인물 클로즈업 숏을 적절히 활용, 영화 속 결정적 장면(climax)을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놀랍거나 긴장된 순간, 혹은 감동적인 상황에서 카메라가 배우 얼굴 가까이 접근해 관객이 그 장면을 거울 들여다보듯 발견하게 하는 기법이다. 일명 ‘스필버그 페이스(The Spielberg Face)’로 알려진 이 연출법은 종종 극적 감정을 품은 주인공의 얼굴에 카메라가 다가가며 완성된다.

하지만 스파이 브릿지는 좀 다르다. 도노반도, 아벨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들에게선 좀처럼 표정 변화를 찾기 힘들다. 그 덤덤한 얼굴을 보여주며 스필버그는 관객이 뭘 발견하길 바랐을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진 중요하지 않아. 네가 신념을 따랐는지가 중요해.” 도노반은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그걸 좇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건 이런저런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일하며 가족과 보내는) ‘지금’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그렇다. 종일 묵묵히 일하며 포커페이스로 하루를 충실히 견딘다, 는 점에서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기자들에게 둘러쌓여 있습니다.
© 2015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두 거장, 섣부른 ‘정답’ 대신 ‘위트’를 택하다

리들리 스콧과 스티븐 스필버그. 둘 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이 곧 (그가 종사하는) 직업의 대명사란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둘의 엄청난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더할 나위 없이 간략하고 겉치레 없는’ 두 감독의 최근작이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을까?

마션, 그리고 스파이 브릿지는 ‘인간은 왜(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을 다룬 영화다. 스콧도, 스필버그도 섣불리 답하지 않는다. 그저 화두를 던질 뿐이다, 마치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듯. 대신 그 자리를 위트(wit)로 빈틈없이 채웠다. 두 거장이 말하고자 했던 건 어쩌면 이 명제인지도 모른다. “웃음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같다.” 거장은 마지막까지 힘을 뺀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양승철

아르스프락시아 팀장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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