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램’을 아세요?

2015/07/03 by 유지성
공유 레이어 열기/닫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지성 오지레이서


 

여럿이 모였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가 ‘여행’이다. 국내는 기본이고 요즘은 일본·중국·동남아·유럽·미국 등 목적지도 다양하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이들의 얘길 듣다 보면 △17대 1 뒷골목 격투 신(scene) △외국인과의 짜릿한 러브 스토리 △인디애나 존스 뺨치는 모험담 따위의 ‘미확인 무용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모르는 사람 귀엔 이런 얘기들이 신기하고 궁금하지만 경험 많은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를 재미로 듣고 흘려버린다.

공항에서 여행을 준비하는 청년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여행 좀 다녀봤다”는 이들은 익숙한 장소와 경험의 나열을 식상해 한다. 그나마 최근엔 남미 지역 여행객이 늘면서 보다 이국적인 대륙 얘기가 흥밋거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 편에 남는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평생 여행만 다니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인 만큼 모든 여행은 아쉬운 뒷맛을 남긴다. 여행을 자주 다닌 사람일수록 여행지의 기억에서 ‘특별한 가치’를 얻고 싶어하는 건 그 때문이다.

 

뻔한 여행에서 ‘특별한 가치’ 찾기

즐거운 표정으로 여행을 즐기는 참가자들의 모습입니다.

뻔한 여행이 지겹다면 좀 다른 방식의 여행에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같은 곳을 가더라도 언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에 따라 그 느낌과 분위기는 전혀 달라진다. 말하자면 ‘여행의 재해석’인 셈이다. 그런 소소한 변화가 때론 전혀 생각지 못했던 희망과 활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좀 남다른, 특별한 여행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트레일러닝(trail running)의 한 분야인 오지 레이스(奧地 race)가 그것이다. 트레일러닝은 산과 들, 사막과 정글 등 도심을 벗어나 비포장의 자연을 달리는 운동이다. 최근 유럽과 미주, 아시아 지역에서 떠오르고 있는 ‘핫(hot) 스포츠’이기도 하다.

눈길을 걸어가며 스키를 즐기는 여행자들의 모습입니다.

오지 레이스 중에서도 ‘포 데저트 레이스(4 desert race)’란 게 있다. 4개 사막(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에서 펼쳐지는 각 250㎞, 도합 1000㎞ 코스의 달리기 대회를 가리키는 용어다. 일명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램’으로 통하는 4개 대회를 1년 안에 완주하면 ‘그랜드슬래머’로 인정 받게 된다.

 

겪을수록 중독된다, ‘사막 바이러스’

모래가 끝없이 이어진 사막의 모습입니다.

흔히 ‘사막’이라고 하면 누런 모래밭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광경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막엔 모래뿐 아니라 자갈과 바위도 많다. 평지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계곡과 강, 높은 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트레일러닝 코스로선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구성이다.

사막을 트래킹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입니다.

어떨 땐 ‘모래지옥’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고, 어떨 땐 (믿기지 않겠지만) 폭설과 추위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고생을 하기도 한다. 사막이 아니라 알프스 산맥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눈앞에 펼쳐진 초원과 양떼를 바라보며 현실 감각이 무뎌질 때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생사를 걸고 헤쳐가야 하는 ‘리얼 서바이벌’이다.

사막길을 횡단하는 청년의 모습입니다.

포 데저트 레이스에 도전하며 내가 마주한 최고 온도는 58℃(사하라사막), 최저 온도는 영하 40℃(남극)였다. 대회 출전 초기엔 힘들 때마다 스스로 묻곤 했다. ‘나 혹시 미친 게 아닐까?’ 어떤 날은 함께 뛰는 선수들이 죄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두 번 다시 이런 대회 출전 안 한다’는 다짐을 거듭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다른 대회 없나?’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어이없어 낄낄댄 적도 있다. 오지 레이스에 도전하며 사막을 한 번이라도 밟아본 이라면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알면 알수록 묘한 ‘사막 바이러스 감염’ 증세다.

 

오지 레이스가 건넨 ‘뜻밖의 교훈’

묵묵히 사막을 달리는 러너들의 모습입니다.

“아 유 크레이지(Are you crazy)?” 이런 질문을 주고받으면서도 엄지를 치켜세우는, 끊임없이 상대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묵묵히 사막을 달리는 러너(runner)들. 오지 레이스는 이들에게 뜻밖의 교훈을 선사한다. 끝없이 달리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행복은 지구 밖 안드로메다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여기, 현실 속에 있다. 그리고 난 지금 이렇게 충만한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있다!’

삼성투모로우 독자 여러분께도 권하고 싶다. 일생에 단 한 번, ‘나만의 이색 여행’에 도전해보시라고 말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기획·연재 > 오피니언

기획·연재 > 오피니언 > 외부 기고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