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지금, 한국 오케스트라는 진화 중!

2015/07/23 by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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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성 음악평론가


 

한국 최초 오케스트라는 19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이다. 당시 단원들은 계정식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1948년엔 서울관현악단이 창단됐다. 6∙25 전쟁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음악가들은 1953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모여 정기 연주회를 열었고 1960년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으로 변신했다. 육군 악대도 1956년 ‘KBS교향악단’으로 개명,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 교향악단의 역사는 대한민국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뿌리 깊다. 각 대학은 저마다 음악대학을 신설, 매년 수많은 연주가를 배출하고 있다. 그 결과,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적지 않은 오케스트라가 창단됐다. 2000년대 들어선 사립 오케스트라도 속속 생겨나 불과 50여 년 만에 국내 음악 시장의 수요를 맞춰가고 있다.

 

베를린필∙카라얀, 대한민국 강타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탄생한 오케스트라 문화는 자생적인 민속문화나 대중문화와는 그 특성이 확연히 다르다. 국내 오케스트라 종사자들이 유럽에서 비롯된 오케스트라 문화에 대한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온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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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 분야에서 온갖 ‘퓨전’과 ‘스타일’이 난무하고 있지만 전통과 기본에 대한 기준이나 이해 없인 본질적 완성도를 담보할 수 없는 것처럼, 음악 역시 제아무리 발전∙해체∙변주가 역사의 핵심이라 해도 그 출발점인 고전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없다면 근본적 품질 향상은 요원하다. 바로 그 점에서 해외 오케스트라의 잦은 내한은 국내 오케스트라의 자체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전문 음악가와 일반 애호가 모두에게 ‘좋은 음악’을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 체험의 폭을 넓혀줄 뿐 아니라 세계 오케스트라 문화의 흐름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문화회관 개관 당시 내한했던 해외 오케스트라들은 한국 음악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국내 음악 팬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84년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필’)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내한 공연은 한국 음악계에 일종의 ‘문화 충격’을 안겼다. 당시 관객들은 음반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전설적 지휘자’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실연(實演)을 접하며 오케스트라 예술의 극점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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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본격화된 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였다. 국가 경제력이 향상되며 문화 경쟁력 역시 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가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시발점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국내 클래식 공연계에서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무대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제 매년 봄과 가을이면 미국과 유럽의 유명 악단이 앞다퉈 몰려와 ‘오케스트라 대첩’을 벌일 정도가 됐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점차 악화되는 유럽 경제 상황, 그리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 중인 아시아 경제 상황이 맞물린 데 따른 것이다. 아직 영세한 국내 음악 시장 규모를 떠올릴 때 무조건 반색할 환경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순기능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관제 지원에 의존하던 구조를 벗어나 민간 자본과 기업 후원이 뒷받침됐다. 오케스트라 음악의 다양성이 확보됐고, 클래식 음악 향유층의 저변이 확대되며 감상 수준 또한 눈에 띄게 높아졌다.

 

‘제2의 서울시향’, 탄생할 수 있을까?

한편, 유학파 연주자가 많아지면서 해외 오케스트라에 수석이나 단원으로 입단하는 사례도 늘었다. 또한 이들이 학업을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국내 오케스트라 수준도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유의미한 변화는 지휘자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그때까지 이렇다 할 지휘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한국 오케스트라들은 경험 많은 외국인 지휘자들을 적극 영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시향은 2005년 세계 최정상급 마에스트로로 발돋움한 정명훈을 상임 지휘자로 추대했다. 이 ‘사건’은 서울시향이 세계 음악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며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실제로 ‘정명훈 체제’의 서울시향은 아시아 오케스트라 가운데 최초로 명문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과 레코딩 계약을 맺는 쾌거의 주인공이 됐다. 서울시향은 이후에도 실력 있는 해외 연주가를 적극적으로 스카우트, 레퍼토리와 연주회 횟수를 대폭 늘렸다. 협연자와 객원 지휘자의 풀(pool)은 물론, 해외 공연 범위 역시 적극적으로 넓히며 점차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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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오케스트라의 과제는 ‘얼마나 훌륭한 연주자를 영입하는가?’ ‘얼마나 유능한 지휘자와 협연자를 섭외하는가?’ 등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함께 조직 운영 인력과 경영진, 국내외 마케팅과 자문위원 등에 요구되는 전문성도 한층 높아졌다. 현재 전문적 실력을 갖춘 국내 오케스트라는 약 15개. 하지만 서울시향 외엔 예산이 터무니없이 낮고 연주도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다. 치열한 ‘오케스트라 전쟁’에 동참할 수 있는, 노련한 경영 능력을 갖춘 인재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오케스트라는 한 나라의 문화적 경쟁력으로 세계 공통의 지표다. 향후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음악(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자국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유럽 무대에 진출시키는 한편, 해외 오케스트라를 적극적으로 상주시키며 유럽과의 경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중국 오케스트라 또한 전폭적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맹렬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그 배경엔 해당 국가 정부와 기업의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중국 오케스트라 성장에서 배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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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역사는 짧지만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경제성장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한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 그 뒤엔 오케스트라 자체의 노력 못지않게 열정적인 국내 청중의 성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의 경쟁력과 상업적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건강한 오케스트라 생태계 조성’이라 하겠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박제성

음악평론가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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