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S, 남아공 하늘이 허락한 ‘20분의 기적’에 만세 부르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7로 촬영됐습니다
‘치안상태: 유의’
‘여행경보: 여행 유의 전 지역’
‘무조건 위험하다’는 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으로 오기 전 내가 접한, 사실상 유일한 여행 정보였다. 오래전부터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어온 한 남아공 여성을 영상에 담기 위해 18시간을 꼬박 날아왔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미지(未知)의 대상에 대한 공포, 라고 했던가. 막연한 국가 정보 몇 가지만 손에 쥔 채 이곳으로 날아온 지도 어느덧 1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일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회심의 역작 ‘석양 댄스’ 촬영 대작전
그렇잖아도 치안이 불안한데 고가의 영상 촬영 장비까지 들고 다녀야 해 이번 출장은 늘 조마조마함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진 분실한 장비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적도 없다. 종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서일까, 목덜미와 어깨에 신경성 통증이 좀 재발했지만 이 정도면 가히 ‘신의 가호가 함께한’ 수준이다.
▲포몰롱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들. 남아공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이 이번 영상의 주인공 ‘레파’의 고향이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눈을 뜨자마자 창 밖을 내다봤다. 사실 이번 출장에서 치안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바로 날씨였다. 봄에서 여름을 향해 가는 시기, 이곳 날씨는 그야말로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오전에 햇빛이 쨍하게 비치다가도 어느새 대륙 가득 먹구름이 몰려오곤 했다. TV에서나 보던, 무지막지한 규모의 천둥과 번개에 혼비백산한 것도 여러 차례. 차 천장을 뚫을 듯 퍼붓는 빗줄기는 막연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매일 밤, 이튿날 날씨를 걱정하며 잠들기가 예사였다.
“일단 비는 안 오는데….” 이번 방문의 목적이 ‘단순 관광’이었다면 비가 오건 구름이 끼건 전혀 상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겐 일정 중 꼭 찍고 싶은, 아니 찍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절대 ‘살지 않는’ 그림이었다.
영상의 처음과 끝을 장식할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석양이 지는 초원을 뒤로한 채 춤을 춘다. 장대한 아프리카 초원,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의 실루엣, 그 사이로 붉게 번지는 석양…. 영상 제작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장면이다.
▲레파는 자신이 나고 자란 포몰롱의 작은 학교에서 난생처음 인터넷을 배웠다
하지만 날씨는 늘 내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했다. 내내 맑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비가 쏟아졌다. 오로지 날씨 때문에 미루고 또 미뤄온 촬영이었다. 그리고 출장 마지막 날. ‘오늘은 날씨가 어떻든 무조건 찍자!’ 다짐하고 촬영 채비를 마쳤다.
주연 겸 해결사 ‘여장부 레파’의 활약
▲‘레파의 세계’는 5년 전 삼성전자의 도움으로 난생처음 인터넷을 접하고, 그 일을 계기로 어엿한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한 레파가 한 고향 소년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영상이다
‘레파의 세계(Lefa's World)’로 이름 붙여진 이번 영상은 ‘레파’라는 여성이 고향을 찾아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소년의 멘토가 돼주는 내용이다. 사실 문제의 ‘석양 댄스’ 장면을 제외하면 이번 촬영은 제법 순조롭게 진행된 편이다. 이게 다 영상의 주인공 레파(Lefa Magato, 22) 덕분이다.
레파는 요하네스버그의 한 광고회사에서 PR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그가 처음 삼성전자를 만난 건 지난 2011년 10월. 당시 삼성전자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레파의 고향인 포몰롱(Phomolong)[1] 소재 학교에 인터넷 교실을 열었고, 당시 고교생이었던 레파는 이곳에서 난생처음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웠다. (그는 이 인연으로 당시 삼성전자가 제작한 CSR 영상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꾸준히 컴퓨터 기술을 익혀 대학에 진학, 마케팅을 전공했고 취업에도 성공했다. 레파는 “대학에서 컴퓨터 수업을 듣는데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더라”며 “그 덕에 나도 몰랐던 컴퓨터 관련 재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앞쪽 청바지 차림의 여성이 레파다. 호탕한 여장부 같은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영상 촬영 작업은 매번 난관의 연속이었을 거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잘 웃는 레파는, 말 그대로 ‘여장부’였다. 단언컨대 그가 없었다면 이번 영상 촬영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다.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포몰롱 등 남아공의 주요 도시는 하나같이 외지인에겐 다소 불친절하고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우리 촬영 팀만 해도 건장한 성인 네 명으로 꾸려졌지만 일단 촬영 작업을 시작하면 ‘건장’이고 ‘성인’이고 다 필요 없었다. 눈앞의 작업에 집중하느라 누군가 앞 주머니에서 지갑을 훔쳐 가도 모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모든 상황을 제어하는 건 고스란히 프로듀서인 내 역할이자 책임이었고 ‘촬영 인력∙장비 보호책 강구’는 일정 내내 내게 던져진 숙제였다.
▲삼성전자가 남아공에 세운 첫 번째 태양광 인터넷 교실. 레파의 꿈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막막했던 내게 레파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일단 포몰롱 지역 토박이로 우리가 촬영해야 할 장소 일대에서 ‘알아주는 마당발’이었다. 프리토리아에서 대학을 다녀 그곳 사정에도 훤했다. 일단 레파의 추천을 받아 두 청년을 소개 받았다. 레파의 고교 동창이라는 그들은 촬영 내내 미더운 보디가드이자 현지 가이드로, 통역사 겸 해결사로 종횡무진 활약해줬다. 실은 이들이 나설 필요조차 없을 때도 많았다. 현지인이 촬영 팀에 시비라도 걸라치면 레파가 나서서 한마디로 정리해주곤 했기 때문이다. “야, 나야. 레파라고!”
▲일정 내내 촬영 작업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든든한 ‘보디가드’가 돼줬던 두 청년. 모두 레파의 고교 동창이다
포기하려는 찰나, 거짓말처럼 나온 해
‘아, 이제 날씨만 좋으면 만사형통인데!’ 모든 촬영을 마치고 이제 단 한 컷, 대망의 그 장면만 남았다. 다행히 날씨는 아직 맑았지만 저편에서 어느새 커다란 먹구름 떼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에 따라 하늘도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촬영 장비를 챙겨 석양 댄스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미리 봐둔 초원으로 이동했다. 설상가상, 가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오늘도 깨끗한 석양 찍긴 글렀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찍고 보자!’ 고심 끝에 일단 리허설 촬영을 시작했다. 출연자들의 춤사위는 점차 흥을 더했지만 카메라 앵글 속 영상은 구름 그림자에 덮여 뿌옇게 보였다. 제작자 입장에선 한숨만 거푸 나오는 상황이었다. 촬영 감독의 표정도 잔뜩 찌푸린 하늘만큼이나 어두웠다.
▲이번 영상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석양 댄스’ 장면 촬영을 앞두고 춤 연습에 한창인 출연자들. 이들은 과연 멋진 석양을 배경으로 춤추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접어야 하나….’ 거지반 포기하려 마음 먹었을 때 오디오 감독이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S프로, 저기 좀 봐요!” 그의 손끝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기던 난 100년 묵은 산삼이라도 발견한 심마니마냥 외쳤다. “만세!”
구름 틈새로 붉은 해가, 마치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 속, 딱 손바닥만큼의 크기였지만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영상 시놉시스를 구상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붉은 초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이야, 어서들 찍읍시다!”
덩달아 신이 난 출연자들이 석양을 배경으로 ‘본격 댄스’에 돌입했다. 대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은 딱 20분. 고대했던 장면 촬영을 무사히 끝내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였다. 그러곤 이내 굵은 빗줄기를 쏟았다. “S프로, 이건 진짜 하늘이 도운 거다. 그렇지?” “그럼요, 이번 영상은 진짜 ‘하느님이 보우(保佑)’하셨네요, 하하!” (남아공 하늘이 특별히 허락해준 석양 댄스 장면은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다.)
[1]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인근에 위치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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