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기억 속 반짝이던 화려한 시절, 밴드 이야기

2011/07/18 by 블로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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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 프로그램은 공중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서바이벌’ 의 홍수인 것 같다. 예전부터 외국에서 방영하던 『프로젝트 런웨이』나, 『도전 슈퍼모델』 같은 프로그램들을 즐겨 봐왔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어쩐지 ‘드라마’에만 치중하는 느낌이 들어 솔직히 좀 거부감이 들었다. (『위대한 탄생』의 ‘멘토 스쿨’ 편은 윤아님이 나와서 꼬박꼬박 챙겨보긴 했지만 ㅎㅎ)

지난 주말엔 채널을 돌리다가『TOP 밴드』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직 프로그램의 초반부라 그런지 노래를 중간중간 잘라먹어서 아쉽긴 했지만, 어쩐지 그들의 열정이 느껴져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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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그동안 두 번이나 밴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보컬로.. 썩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아닌지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친구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보컬을 하게 된 이유는 상당히 단순했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고, 여자이기 때문에!’

시작은 한창 술을 마시던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달리 자주 모였던 멤버가 있었는데, 우연인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밴드 동아리에 가입을 해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술 기운에 밴드나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자리에서 “Click-A” 라는 밴드가 결성됐다. 당시 인기가 있던 아이돌 밴드인 “Click-B”의 패러디 밴드였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던 난 자연스럽게 보컬이 되었는데, 베이스라도 배워보려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일단, 보컬은 여자가 해야해.  남자가 하면 어지간히 잘 부르지 않고서는 욕만 먹거든!”

애초에 시작을 술자리에서 했으니, 우리들이 연습을 핑계로 술을 얼마나 마셔댔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오후에 연습을 마치고 가볍게(?) 술자리를 가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촌에서 오전 11시에 연습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시작해 낮 3시쯤 만취가 되어 집에 돌아온적도 있었던 것 같다. 안 올라가는 음정 때문에 고민도 많이 하고, 각자 학교가 다 다른 탓에 모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들은 공연을 했다.

8년 전 "Click-A" 밴드

보기만 해도 낯 부끄러워지는 8년전의 사진이다. 입고 있는 이상한 옷은 고등학교 시절 3년간 입었던 체육복인데, 다른 학년의 체육복이 파란색, 초록색인데 반해 무려 형광 주황색이었다. ㅡㅡ; 저 옷을 다시 입고 공연을 하기 위해  당시 나와 3년 차이가 나던 후배에게 부탁해서 체육복을 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우리 공연의 컨셉이 ‘Funk’ 였기 때문에 저 옷이 딱 이라고 생각했다. 1부 공연 때는 그럴싸한 정장을 입고, 2부에서는 형광색 체육복을 갈아입고 공연을 했다. 공연 중간에는 무려 소주 퍼포먼스(사실은 물이었다)까지 했었다. 아무튼 당시의 공연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추억을 만들기 위한 단순한 장난이었는데, 기묘하게도 여기서 두 번째 밴드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몸 담고 있었던 풍물 동아리 친구들이 공연을 보러 왔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중에 한 명이 고등학교때 기타 좀 쳐 봤던 녀석이었던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 녀석)

팔짱을 낀 밴드 멤버

그로부터 2년 후, 동아리 방에서 쇠 채를 만들다 손가락을 다친 녀석에게 형광색 밴드를 건네다 말고 우리는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거 보니까 생각나는데, 우리도 밴드나 한번 할까? 그때 되게 재밌어 보였는데”

지난 번에 보컬을 해 봤다는 이유로 나는 또 다시 보컬이 되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해보니 드럼 좀 쳐본 선배, 피아노 좀 칠 줄 아는 후배 등등이 있어서 나와 녀석이 속한 물리과를 필두로 내 생에 두 번째 밴드, 형광 밴드가 결성되었다. 밴드 규모가 커진 관계로 노래 좀 할 줄 아는 보컬 녀석들도 몇 명 함께 하기로 했다.

the fluorescence band 형광밴드 그들이 돌아왔다! 9월 15알 18:00 학생회관 소강당


다른 학교 내 밴드와는 달리 순수하게 친목을 목적으로한 밴드다보니, 실력도 모자라고 동아리 방이 없어 연습 할 곳도 마땅치 않아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자작곡!
당시 건반을 담당하던 P 군과 드러머 J 군이 특유의 재능으로 곡을 썼고, 나와 베이스를 치던 B 군이 가사를 붙였다. 우리의 자작곡들은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했던 곡은 바로 『Delta Function』 이었다.

수리물리시간에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 말고 써 내려간 곡인데,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사랑에 아파하는 이학도의 슬픈 마음을 Delta-Function 의 특성에 빗대어 묘사한 걸작이다.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싱글 메일로 ‘공대생 시리즈’ 가 떠돌던 시절 답 메일에 슬쩍 보냈더니 역시나 폭발적인 반응이 ㅋㅋㅋㅋ

 

Delta Function

작곡 – 박은성(건반 P군) / 작사 – 한송이
반짝이는 눈동자와 탐스러운 붉은 입술 / 그대란 함수 만의 고유값.
처음 본 그 순간 부터 내 Peak은 오직 그대 뿐 / 다른 건 내게 zero 일 뿐이야.
아~ Delta Function / 다가갈 수록 그대는 Divergence!
멀어질까 조심스레 바라보기만 할 뿐 / 가까이 갈 수가 없어

떨리는 이 마음도 저 하늘로 Divergence! / 아~ 아~ Delta Function

아~ Delta Function / 다가갈 수록 그대는 Divergence!
달아날까 조심스레 지켜보기만 할 뿐 / 가까이 갈 수가 없어

떨리는 이 마음도 저 하늘로 Divergence! / 아~ 아~ Delta Function

 

그렇게 노래를 만들며 밴드 멤버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노래 실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

첫 번째 밴드는 내가 여자라서, 두 번째 밴드는 내가 만든 주체자라서 보컬이 되었지만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하나 둘 보컬로 들어오게 되면서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었고 두 번째 공연을 끝으로 나는 밴드를 그만두게 되었다.

맘씨 착한 밴드 멤버들은 내 목소리가 좋다며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될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호흡도 짧고 음역대도 낮은 내 목소리에 결국 좌절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다른 걸 해보겠다며 마지막 공연에는 기타를 치며 ‘Knocking on heaven’s door’ 를 부르기도 했었다. 뒤에 손 흔들고 있는 세 명이 바로 뛰어난 보컬들!

 

Knocking on Heaven's door을 부르는 형광밴드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버린 이야기지만, 가끔 멋진 공연을 볼 때면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그때 내가 좌절하지 않고 노래를 갈고 닦았으면 지금쯤 멋진 보컬리스트가 되어 있을까?

보컬로서는 영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베이스나 기타를 배워서 섹시한 미니스커트에 찢어진 망사 스타킹을 신고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멋드러지게 연주 한번 해보고 싶다!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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