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스 꿈으로 대화하다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노래, ‘거위의 꿈’ 의 가사입니다.
세계가 사랑한 한국이라는 책의 9장, [사람] 감성의 한국인을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꿈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해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우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 블로거스들의 꿈을 주제로 포스팅을 풀어가려고 해요. 먼저 가장 신입이지만 얼굴로는 최고참 격인 손경수 사원(3년차)을 필두로, 개발일을 하다 기획으로 전환한 김기영 대리(8년차), 반도체에서 개발일을 하고 있는 한송이 선임(6년차)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1. 나 어릴 적 꿈
지금은 이제 까마득한 어린시절, 우리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저의 첫 번째 꿈은 축구선수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차범근 축구단이 생겨서 그 축구단에 들어가 초등학교 3년 반을 축구와 함께 보냈어요. 사실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재능이 많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그 때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서 지금 건강하게 지내고 있죠.^&^
조금 성장해서 사춘기에 접어 들었을 때 저의 꿈은 기자였어요. 사회의 비리나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글로써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기자가 엄청 매력적이었어요. 제 바이라인에 있는 “속삭임도 들린다. 진실이 담겨있다면” 는 말도 그 때의 마음이 담겨 있답니다.
책도 열심히 읽고 관심분야 기사도 많이 읽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공대에 들어가게 됐고 지금 S/W개발자로 살고 있네요.
한송이 선임 어린 시절의 ‘꿈’ 이라… 저는 사실 어릴 때 구체적으로 ‘무엇 무엇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그저 두 살 터울 오빠와 수다를 떨며 이상적인 세상을 상상하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우리 상상 속의 그 세계에서 사는 것이야 말로 그 시절의 제 꿈이었죠.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곳은, 먹을 것이 풍부한 정글이었어요. 상상 속에서 오빠와 나는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그런 상황이었죠. 모든 상상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캠핑카는 자동으로 운행이 되어야 해, 그래야 뒷칸에서 잠을 자지”
“응! 그리고 먹을 거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돼”
“엄마 아빠가 놀러 오실 수 있게 방도 여러 개 있어야 하는데..”
“야, 그러면 차가 너무 커져서 안돼”
“괜찮아~ 버튼을 누르면 다시 작아지는 거야!” 이런 식이었죠.
그 ‘상상놀이’ 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매일 매일 밖에서 신나게 놀다 들어와서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마루에 누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수다를 떨고 있노라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어요.
구체적인 ‘꿈’ 의 형태가 잡혀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웠는데 그게 저한테 너무 잘 맞았어요. ‘나중에 커서 꼭 프로그래머 가 되어야지’ 하고 결심을 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진학할 때는 물리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세상일이 참 신기하죠. 지금은 반도체 연구소에서 반도체 특성을 시뮬레이션 하는 업무를 하고 있으니, 어렸을 때의 꿈을 절반은 이룬 셈이 되었네요 ^^
김기영 대리 어린 시절 사진 안 올리면 안되는 분위기여서 저도 사진 하나 올리고 글을 시작할게요. 저는 유명 위인처럼 장래 거창한 포부를 가진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좋았겠지만 그냥 특별한 생각 없이 평범하게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저만의 망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건담이나 레고 같은 것 만들었다 부수기(?) 좋아하고 컴퓨터 게임이나 2400bps 전화선으로 모뎀해서 전화요금 폭탄(?)이나 만들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과학자나 엔지니어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있었으리라 추측만 할 뿐 입니다.
그 당시 빌 게이츠와 안철수의 성공 스토리와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맘껏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대학교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쳤죠. 컴퓨터 전공을 선택한 순간 험난한 공대 시험과 과제에 시달렸던 우울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2. 입사 당시의 꿈
푸른 꿈을 안고 입사한 신입사원 시절, 우리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한송이 선임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무렵, 취업과 진학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취업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제 전공(물리학)을 살려 지원을 할 수 있는 곳이 몇 곳 되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지원한 곳에서는 불합격 소식만 들려오고 있었어요. 삼성만이 유일한 끈이었죠.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합격을 하게 되었고 약 세 달에 걸친 교육을 받으며 학생티를 벗고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죠. 부서에 배치를 받아 상무님과의 첫 면담에서 저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제 꿈은 이 회사를 30년 다니는 것입니다!” (하하. 30년 다니려면.. 임원.. 해야겠네요 ㅋㅋㅋ)
손경수 사원 일단 한송이 선임님이 꼭 임원 되시길 바라면서…. 저는 ‘미션임파서블’로 정의 했는데 너무 빠른 포기인가요? ㅋㅋ 입사때의 꿈이라.. 2년 전인데도 정말 오래된 것 같아요. 당시 제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어요. 막상 큰 꿈은 아닌 것 같아서요.
첫 번째는 전 대륙에 발자국을 남기자입니다. 블로그에도 포스팅 했는데 첫 번째 휴가는 16박 18일로 이탈리아, 스페인 여행을 갔고요, 두 번째는 휴가는 14박 16일로 네팔 여행을 갔다 왔으니 현재는 잘 지키고 있는데… 할 수 있겠죠?
두 번째 목표는 누구보다 앞에서 No 라는 말을 많이 하자는 거였어요. 입사할 때 쯤 아는 형과의 술자리에서 요즘 신입사원들은 기존 사원들보다 더 속된 말로 ‘딸랑 딸랑’ 해서 싫다고, 저는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제 성격상 그런 거를 너무 못해서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고 있죠.
제가 제안해서 저희 부서에서 수행하는 것 중에 하나를 말씀 드리면, 주말이나 퇴근한 사람들한테 연락할 때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 ‘전화 가능하면 전화 주세요’ 라는 문자를 보내는 문화를 만든 거에요. (결국 제 자랑인가요?? ㅋㅋ)
마지막 목표는 회사에 Happy Virus를 전파하고자 노력하는 거예요. 첫 번째 사진은 제 회사 프로필 사진인데요. 제 사진 보고 한 번이라도 웃으시라고 올린 건데 나름 성공(?)하고 있어요…^&^ 어쨌든 지금까지는 잘 달려 온 것 같네요.
김기영 대리 고군분투, 산전수전(?) 끝에 입사에 성공! 왠지 여기서 3-4년만 삽질하면 멋진 구루의 경지에 입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 와서는 주어진 일만 하기에 급급했어요. 아키텍쳐, 순서도, 재사용성 같은 이상은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매일 쏟아지는 버그 수정하고 과제 일정에 쫓기느라 Copy & Paste 신공만 늘고… 하루에 수백줄씩 코딩했다가 꼬여서 다시 프로그래밍 하는 삽질의 연속! (아시는 분이 하루의 최적 코딩은 4줄이라고 하셨는데 -.-)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가 우연히 그룹 입문 교육 지도 선배 파견 기회를 잡았죠. 솔직히 제 앞가림도 못하다가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들떴는데 신입사원 때의 꿈과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복귀 후 나름 자극(?) 아니면 바람(?)이 들어서 자기계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지 잔뜩 뒤집어 쓴 토익 책 꺼내고 영어 회화 강의 등록하고 거의 매달 영어 시험을 한번씩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잡학(?)에 자신이 있었던 소질을 살려서 기획 업무로 사내 공모에 지원해서 삼수(?) 끝에 업종을 변경했어요. 업종을 바꾸니 다시 신입사원이 된 듯한 느낌은 좋았지만 시집살이 하듯이 벙어리, 귀머거리 생활의 시작이 되었으니…
해외업체와 미팅이나 컨퍼런스 콜 때 읽기 쓰기만 주로 했었던 나의 영어 실력은 바로 바닥… 1년동안 다시 삽질을 해서 겨우 업체와 독대(?)를 할 정도까지 레벨 업(?) 했습니다.
3. 지금 나의 꿈
현재진행형, 지금 이순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꿈은?
언제가 이런 멋진 업체를 내 손으로 만들고 이렇게 무제한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두고, 원해서 밤샘 업무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 것이 제가 꿈꾸는 지금의 제 목표입니다.
뭐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랄 수도 있지만 피하기 보다는, 일단 부딪혀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적어도 하나의 목표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한송이 선임 와우! 멋지십니다! 전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새삼 제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이나, 입사 당시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는데 회사를 한 해 한 해 다니면서 그 목표 의식이 점점 흐려지더라고요. 문득, “내가 왜 회사를 다니고 있지?” 하는 생각까지 ^^;
지금의 제 목표는 세 가지! 첫 번째는 제 분야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제가 있는 반도체 연구소에는 뛰어나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 분들을 보면서 자극도 되지만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많거든요. 조금 더 자존감을 회복하고, 멍 때리는 시간에 논문 한 줄이라도 더 읽기! 그래서 저만의 무기를 만드는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보석 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 외적인 모습 말고 내면을 갈고 닦아서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 해 한 해 갈수록 더더욱 멋진 사람, 언제라도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책도 많이읽고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 여행도 하고 봉사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마지막, 신랑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 아하하 ^^
손경수 사원 위에 한송이 선임님 결혼사진 보니…. 쩝…. 저에게도 여자친구를.. ^&^
아 다시 진지하게… 막상 제가 제안했는데 앞에 분들 꿈을 보니 내 꿈이 정확히 뭐지? 생각이 드네요. 두 분 다 글을 너무 잘 적어서 제가 적을 내용이 별로 없어 보이네요..^&^ 업무적인 것은 한선임님, 김대리님 두분 꿈들과 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세가지로 정리해서 적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세가지 꿈을 말해볼게요.
첫 번째는 제가 만드는 카메라가 많이 팔려서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선행회사를 추격하는 입장이지만 카메라도 TV와 휴대폰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어요.
두 번째는 좀 더 사람냄새가 많이 나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회사 안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지만 외부인들에게는 삼성은 아직도 냉정한 회사로 비춰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내부적으로도 사람 냄새 많이 나는 회사로 또한 외부 사람들에게도 참 따듯한 회사로 보이는 삼성이 되길 바라고 제가 그 속에서 부족하지만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는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일명 비주류라고 불리는 분들이 좀 더 사랑받는 사회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철학관을 이야기하는 강신주 철학자님 다양성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CGV 무비 꼴라쥬와 같이 다양성이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지금도 약간 그런 일을 하고 있고요.
우리는 모두 삶속에서 작고 큰 꿈을 꾸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2012년 여러분의 소중한 꿈들이 조금씩 현실이 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p.s : 2012년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들의 꿈을 특별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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