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국 스타트업 루키, 삼성전자 임직원 멘토와 ‘다시’ 만나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매일 세상과 싸워야 한다. 열정과 아이디어가 제아무리 충만해도 적절한 인프라와 노하우가 그걸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기량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좌절하기 일쑤이기 때문. 상대적으로 ‘성공 모델’이 많지 않은 개발도상국 스타트업의 경우, 그 장벽은 더 높고 단단하다. 체계적 프로그램과 자금 부족에 직면한 이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올해 뜻밖의 선물이 전달됐다. 삼성글로벌스타트업액셀러레이션프로그램(Samsung Global Startup Acceleration Program, 이하 ‘GSAP’)이 그것. GSAP는 삼성전자의 경영 노하우를 봉사 활동에 접목, 멘토링을 이어가는 스타트업 양성 프로그램이다. 삼성전자 임직원봉사프로그램(Employee Volunteer Program, 이하 ‘EVP’)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신설돼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등 4개국에서 성공리에 치러졌다. 지난 4일, GSAP를 포함해 올 한 해 EVP의 공식 활동을 마무리하는 해단식이 개최됐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그 현장을 찾았다.
멘티들의 이야기
4개국 고민 담긴 ‘반짝반짝 아이템’… 멘토링 거쳐 날개 달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임산부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인해 출산 전 태아 검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임산부가 많은 탓이다. 출산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 병원을 찾지 않는 산모가 많은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봐온 크리스티나 셈비리노(Kristina Sembirino)씨는 온라인으로 산파를 교육시킨 후 임산부와 연결해주는 서비스 ‘모이(Moi)’를 만들었다. 취지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확장 가능성’에서 벽에 부딪쳤다. 고전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동료의 소개로 GSAP를 알게 됐다.
“모이는 규모가 작은 비즈니스 모델이었어요. (GSAP의) 멘토링 덕에 ‘서비스를 확장해가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앞으론 임산부뿐 아니라 노인, 신체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까지 치료할 수 있도록 사업 영역을 차근차근 넓혀가고 싶습니다. GSAP 기간 중 우리와 (삼성전자 임직원) 멘토들은 줄곧 가족 같은 관계였어요. 항상 저희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줬죠.이번에 얻은 자산을 기반으로 보다 많은 이를 돕는 서비스 구축에 힘쓰겠습니다.”
코에이 홍 빈(Koay Hong Vin)씨와 코 춘 키아트(Khoh Chun Kiat)씨, 고 진 유(Goh Jin Yu)씨 등 같은 대학에 다니며 바쁘게 생활하던 세 명의 말레이시아 젊은이는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밀려드는 과제와 취업 압박 등으로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한 셋은 대학생 구인구직 온라인 서비스 ‘긱즈(GIGz)’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냥 공부나 하지 그래?” 주변 비아냥이 만만찮았지만 끈기 있게 밀어붙인 결과, GSAP 지원 대상에 선정될 수 있었다.
“멘토들과 둘러앉아 그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순간순간이 소중했어요.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조언이 아닌, 사업에 바로 도입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인 얘기였죠. 긴 여정이 남아있는 만큼 힘이 되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고요. 정말 고마웠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갑작스레 직장을 잃은 네 아이의 엄마. 렌샤 마누엘(Renshia Manuel)씨는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자 생계 유지 수단으로 뒤뜰에 채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저녁 식탁에 오를 채소를 손수 고를 수 있어 좋아했다. 소규모 공간을 활용한 먹거리 자급 패키지 ‘그로우박스(GROWBOX)’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흘렀다.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 중인 사업에 조바심이 났던 마누엘 대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GSAP의 문을 두드렸다.
“남아공에서 스타트업 일을 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업무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 협업 한 건 성사시키는 데 1년씩 걸리기도 하죠. 하지만 이번 멘토링은 좀 달랐어요. 외부 업체와의 회의 진행 기술에서부터 상품 패키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영감을 받았죠. 저도 이제 막 출발한 형편이긴 하지만 언젠간 삼성전자에서 배운 노하우를 좀 더 많은 남아공 스타트업 후배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날, 오겠죠?”
인도 방갈로르에서 클라우드 보안 솔루션 운영 스타트업 ‘지로랩스(Ziroh Labs)’를 운영 중인 바스카 메디(Bhaskar Medhi)씨는 매일 거절 당하는 게 일이었다. 안전한 데이터 관리가 주된 업무인 만큼 신뢰가 생명이었지만 사용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한 방’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식견을 듣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런 ‘알짜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이도 드물었다. 그가 절박한 마음으로 GSAP에 손을 내민 이유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고. 제겐 GSAP가 바로 ‘우주가 도운’ 기회였습니다. 자신의 분야, 그중에서도 최고 위치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의 조언은 아무나 들을 수 없는 거잖아요. (삼성전자) 멘토들과는 요즘도 (화상)전화와 이메일 등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나눠요. 앞으로도 GSAP가 지속돼 좀 더 많은 인도 내 스타트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멘토들의 이야기
물고기 ‘잡는’ 방법 알려주며 개도국에 ‘스타트업 DNA’ 심다
매일 그날의 기억을 일기로 남기는 정지현(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혁신팀)씨의 최근 일기장은 온통 네팔 얘기로 가득하다. 얼마 전 EVP를 통해 네팔 여성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IT 교육을 진행했던 경험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5세 학생에서부터 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강생들과 교류하며 보낸 시간은 그에게 ‘2018년 최고 추억’이 됐다.
“이제 겨우 네팔 여성들을 자립의 출발선에 세워놓은 정도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끝난다면 봉사 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죠. 귀국 후에도 그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멘토 역할을 지속하는 건 그 때문입니다. 내년에도 몇몇 동료와 다시 네팔을 찾으려 해요. 새로운 형태의 봉사를 기획한 회사가 내년에도 그 기조를 유지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입니다. 분명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거예요.”
올해 GSAP에서 멘토 자격으로 남아공을 찾았던 강익선(삼성전자 삼성리서치 싱크탱크팀)씨 역시 이번 활동을 통해 ‘진심의 힘’을 느꼈다. 그는 “국경을 초월한 소통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는데, 남아공 사람들 특유의 흥(興)과 진지한 눈빛 덕에 일정 내내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며 “국내에선 당연하게 여겨졌던 경영 이론과 분석 도구가 현지에서 특별한 자산으로 인식되는 점 역시 인상적이더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진행했던 강의 도중 제 좌우명인 ‘당신의 성장이 중요하다(Your growth matters)’는 조언을 말한 적이 있어요. 한 멘티가 그 내용을 받아 적더니 제 서명까지 받아 가더라고요, 소중히 간직하겠다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저 자신이 성장한 느낌이었어요.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는 격언처럼 현지인의 자립을 돕는 GSAP 같은 봉사 모델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끝이 아닌 시작
단단히 심은 씨앗, 머지않아 튼실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진: 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 제공)
이날 4개국 우수 멘티들이 한국을 찾은 건 GSAP의 연장선이었다. 각 팀은 2박3일 일정 동안 사업 성격에 맞춰 연계된 국내 기업들과 차례로 ‘비즈 미팅(biz meeting)’이란 이름의 회의를 진행했다. 그로우박스는 삼성전자 크리에이티브랩(C랩) 스핀오프 출신 스타트업이기도 한 유관 업체 ‘플랜트박스’, 모이는 간병 서비스를 제공 중인 ‘다솜이재단’ 관계자와 각각 마주앉았다. 긱즈는 역시 C랩 과제 중 하나인 1인 홈쇼핑 플랫폼 ‘보고스랩’ 팀원들에 이어 청년 구인구직 서비스 기업 ‘알바천국’ 실무진과도 만났다.
지로랩스 역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국내 클라우드·보안 서비스의 선두주자 격인 삼성SDS 관계자를 만나 그간의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한 것. 바스카 메디씨는 “GSAP 덕분에 성사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며 “높은 수준의 기술 트렌드를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고 앞으로도 (삼성SDS와) 유의미한 협업을 진행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GSAP를 통해 ‘창업 DNA’를 전수 받은 4개국 ‘스타트업 루키’들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다. 실제로 몇몇 기업은 멘토링 이후 다른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 벌써부터 사업 영역을 착착 키워가고 있다. GSAP 전반을 기획, 운영한 윤지현(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씨는 “프로그램 구상 당시 ‘이게 정말 될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현지 기관들이 막상 우리 회사 임직원 멘토의 열정과 현지 스타트업 멘티가 빚어내는 시너지를 접하곤 여러 차례 놀라더라”며 “앞으로도 개도국 스타트업의 자립을 돕는 ‘지속 가능한’ 형태의 봉사를 지속,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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