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상 수상’ – 여성 엔지니어로 산다는 건
"남자 없어요? 남자? 여자는 불안한데…" 여성 엔지니어 박소향 대리가 삼성전자에 입사해 고객응대를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며 과거 몇 년을 회상했습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입사를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은 실전에서 활용되지 못했죠. 기술리더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 저는 이론보다는 수리업무를 잘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한 3년 정도를 수리업무에 집중을 했고, 돌이켜 보면 가장 힘든 시기이자 일에 대한 열정을 느꼈던 시간이 바로 그 때였습니다."고 말하는 박소향 대리.
아직까지도 엔지니어 하면 남성들만의 전문 직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최근 여성들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엔지니어 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2010 국가품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금상)을 수상한 박소향 엔지니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여성 엔지니어로 산다는 건
Q. 여성 엔지니어가 아직까진 그리 많지 않죠? 여자라서 힘든 점도 있고, 유리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
A. 네, 아직까진 여성 엔지니어가 많지 않죠, 제가 근무하던 서울지사 중앙센터에서도 17명중 저만 여성이었고요. 그래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요. 요즘은 여자 엔지니어만 별도로 뽑기도 하고요.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고객대응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죠. 아예 처음부터 '여자 말고, 남자가 수리해줘라. 여자는 못 믿겠다.' 이러는 분들도 계셨고요. 고장의 수위가 높아 수리가 늦어지면 '여자가 뭘 한다고… 여자가 하니까 이렇지..' 라는 식의 눈총도 받았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라서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여자들만의 섬세함과 깔끔함은 그 어떤 베테랑 엔지니어보다도 더 뛰어나거든요. 이제는 '아이고~ 아가씨가 깔끔하기도 해라. 기술도 참 좋네~' 라며 만족하시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답니다.
Q.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한 건 언제였나요?
A. 처음부터 엔지니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했죠. 입사하자 마자 배치 받은 곳이 리더기술의 업무를 하는 서울지사 중앙센터였어요.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 일에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Q. 여성 엔지니어로 산다는 건?
A. 쉽진 않지만 굉장히 매력적이고, 비전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저는 남편도 저와 같은 전공을 해서 저를 잘 이해해 주고 있죠. 또,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잖아요. 앞으로는 여성 엔지니어들이 많이 늘어날 거라 생각하고요. 특히 애니콜 담당 엔지니어는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크기가 작고, 섬세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업이죠. 예전엔 여자는 할 수 없는 일, 여자가 싫어하는 일이라고 단정짓곤 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죠.
Q.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뭐든 힘들다고들 하잖아요. 정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텐데 힘들진 않나요?
A. 기분 좋은 상태에서 서비스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요. 일단은 고장이 났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고, 수리를 하면 돈이 들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고, 게다가 시간과 다리품을 팔아서 AS센터까지 직접 오셨으니 기분 좋은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하죠. 처음부터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 손님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더 긴장되는 것도 사실인데요. 수리를 하러 온 고객들에게 최대의 서비스는 완벽한 수리라고 생각해요. 웃으며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완벽하게 수리해서 건네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Q.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A. 물론 상냥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완벽한 수리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절실히 느꼈던 사례가 있는데요. 제가 '여자 대장부' 라는 소리도 듣는 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에요. 사소한 일에 상처도 잘 안 받고, 털털하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었어요.
정말 무더운 한 여름에 아주머니께서 갓난 아이를 업고, 한 손에는 유치원생쯤 되는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저희 센터를 찾아주셨죠. 핸드폰을 물에 빠트려 고장이 난 상태였는데요. 물기를 완벽히 빼고,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서 드렸는데, 40분만에 다시 돌아오시더라고요. 가는 길에 갑자기 또 전원이 꺼졌는데 안 켜진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당연히 다시 수리를 해드렸죠. 그런데, 정말 웬일인지 그때 그 아주머니의 핸드폰만 4-5번을 수리하게 됐어요. 수리가 완벽하게 안됐었죠. 침수가 된 제품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유독 이 아주머니 제품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4번째 다시 방문해서 수리를 완료해 건네드리는데,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아이 둘을 데리고 4번이나 방문하시게 만들다니… 내가 저 고객님의 시간을 이렇게나 많이 허비했구나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그 아주머니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요. 4번이나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시면서도 저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 해주셔서 미안함이 더 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아가씨 왜 울어… 할 만큼 해줬는데.. 아가씨 잘못으로 그런 것 도 아닌데 울지 마요." 라고 말씀하시는 아주머니를 보면 정말 감사하고, 더 죄송하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그래서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제품 고장으로 인해 AS센터를 찾는 고객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은 '완벽한 수리' 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Q. 기억에 남는 고객이 많을 것 같아요.
A. 국회의원부터 연예인들까지 많은 분들을 만나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미소가 아름다운 박소향님께' 라며 감사 편지를 써주신 분이었답니다. ^^
대통령상이 주는 의미
Q. 얼마 전에 대통령상(금상)을 수상했다고 들었어요.
A. 한국표준협회에서 매년 국가 품질 부분에 대해 경영대회를 하고 있어요. '차별화 된 스마트폰 서비스로 고객불만율 감소' 라는 주제로 출전해 대통령 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서울지사 중앙센터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 곳에서는 5년 만에 최초로 금상을 수상한 것이라 남다른 기쁨이 있었고요.
Q. 품질 경영대회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우리에게는 1년 농사를 수확하는 대회인 거죠. 이 대회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 4개월을 꼬박 소비했답니다. 업무가 끝나면 우리 조원들(정기환, 신정균, 김두인, 유희문, 조성우, 송기원, 이재환)이 모여 우리가 했던 데이터를 정리하고, 성과를 만들어 PPT로 정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애니콜 기술그룹장 이재운 부장님께서 정말 지도를 잘 해주셨어요.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멘토를 제대로 만났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감사하신 분이죠. 기술적인 부분 말고도 인간적으로도 너무 존경할만한 분이세요. 이 자리를 빌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Q. 차별화 된 스마트폰 서비스로 고객불만율이 감소됐다는 것을 보여준 것인가요?
A. 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스마트폰 고장 관련해서 표준화를 만들어 고객불만율을 줄이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작년에는 스마트폰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서비스를 상담해오시는 분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스마트폰과 기존의 휴대폰이 다른 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점인데요. 스마트폰은 하드웨어적인 고장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고장이 더욱 많이 발생하죠. 소프트웨어는 예측할 수 없는 고장이 많습니다. 스마트 폰 비중이 40%까지 올라와 스마트폰 서비스 사례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연구를 통해 개선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들을 취합해 표준화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대통령상(금상)이 나타내주고 있고요. ^^
Q. 그 중에서 스마트폰 관련해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고장은 무엇인가요?
A. 멈춤과 부팅이었습니다. 루팅을 한다거나 정규 어플이 아닌 어플을 받은 상태에서 많이 벌어지는 현상인데요. 이 밖에도 정말 다양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이 주로 쓰는 어플들을 다 깔아보고 직접 체험을 하고 있어요.
Q. 상을 받으니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참, 부상을 받은 상금이나 상품은?
A. 일단 우리 팀에게 주어진 상금 50만원, 메달, 부상으로 일본여행을 다녀왔어요. 좋더라고요. 상 받은 것도 좋은데, 이렇게 부상도 푸짐하니… ^^ 주변에서는 다들 잘 했다고 축하해주셨고요. 특히 남편이 많이 축하해줬어요. 학교 CC였던 남편이 지금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 일본에 갔을 때, 디즈니랜드를 방문해서 많은 걸 느꼈는데요. 청소하시는 분들 조차도 CS활동을 하고 계시는 거에요. 비록 쓰레기를 줍고 궂은 일을 하고 있지만 고객에게 밝게 웃음을 주고, 친절함을 보여주면서 자기 일에 대한 자신감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Q. CC에 이어 사내커플이라니.. 좋은 점이 더 많은가요?
A. 제가 이 대회를 위해 고객응대를 끝나고 발표를 위한 준비만 4개월을 했어요. 그 4개월 동안 남편이 야식도 직접 싸다 주고, 참 고맙더라고요. 서로의 일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고, 챙겨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한가지 좋은 점은 취향이 너무 똑같다는 거에요. 둘 다 기술 쪽 일을 하다 보니 옷이나 외모를 가꾸기 보다는 전자제품 하나 더 사자라는 주의죠. 얼리어답터라고들 하죠. 저희는 CC에서 사내커플까지 매우 만족하고 산답니다. ^^
Q. 여성 엔지니어로서 목표가 있다면?
A. 최초가 되고 싶어요. 무엇이 되었든 여성 엔지니어 박소향이 이룬 최초의 000. 이런 타이틀을 얻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언제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목표가 있고 꿈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화이팅 하며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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