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칼럼] TV 부품 구매 담당자가 국제뉴스에 귀 기울이는 이유
안녕하세요. 두 번째 칼럼으로 인사 드립니다. 지난번엔 자재들이 얼마나 공들여(?) 생산되는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렸었는데요. 이번엔 땀과 노력이 깃든 그 자재들이 제조업체를 떠나 어떻게 TV 생산법인까지 도착하는지 생생히 알려드리려 합니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부품들의 여정, 찬찬히 따라 가볼까요?
주요 운송 수단은 배… ‘반 년 후’를 산다
제가 담당하는 부품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 대개 배(船)로 운송됩니다. 생산 일정이 급할 때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지만 운임이 높아 선호하진 않습니다. 반면, 사이즈가 작고 가볍거나 온도·습도에 민감한 부품은 비행기를 타고 비교적 빨리 공장에 도착합니다.
이처럼 제품 특성에 맞춰 기본 운송 방식을 설정해두면 그에 따라 납기가 정해집니다. 예를 들어 배를 타고 한국에서 멕시코법인으로 출하되는 부품은 약 한 달 후 멕시코법인에서 소요될 분량을 미리 준비한 후 보내야 제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두 달, 길게는 반 년 후를 준비하다 보면 오늘을 살면서도 미래에 와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비행기 탑승 시각에 늦지 않게 공항으로 가야 하듯 자재들도 계획대로 생산되면 배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합니다. 제때 마감된 물건은 정해진 날짜에 항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날씨가 심술을 부리기라도 하면 일정에 차질이 생깁니다. 지난여름 막바지에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태풍이 대표적 예입니다.
“강력한 태풍이 몰려온다”는 예보가 들리면 행여나 강풍에 집 창문이 깨질까 창문 틀에 테이프를 붙이다가도 문득 자재들이 일정대로 배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담당자마다 배가 지연되지 않았는지, 지연됐다면 법인 생산에 차질을 주진 않을지 점검도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늦어졌다면 따로 비행기를 태워 자재를 보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운송비가 더 들긴 하지만 생산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선 안 되니까요.
천재지변·사고… 도착할 때까지 ‘노심초사’
사실 태풍은 수많은 변수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구매 조달 업무를 맡은 후부터 뉴스에 나오는 각종 글로벌 이슈를 접할 때마다 ‘저 소식은 내 자재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부터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직업병 아닌 직업병’인 셈입니다.
몇 년 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 폭발이 있었던 것, 기억 나세요? 당시 전 아이슬란드가 한국에서 지구 반 바퀴쯤 돌아가야 만나는 나라여서 뉴스를 접하고도 처음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엄청난 화산재로 유럽 전역의 항공기 운항이 마비되면서 제가 담당했던 부품 공급에도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지진 뉴스에도 민감합니다. 일본이나 대만에서 공급 받는 부품의 경우, 공장 근처에서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천재지변 말고도 변수는 많습니다. 얼마 전 자재 출하 정보가 확인되지 않아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원자재를 싣고 오던 배가 바지선과 충돌하는 바람에 한동안 하역이 보류돼 생산이 늦어졌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에 잠깐 말문이 막히더군요. 육로로 이동하던 차량도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건을 싣고 항만으로 향하던 트럭이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통에 컨테이너 안에 있던 제품들이 손상돼 부랴부랴 새 제품을 출하했던 적도 있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일이 가득한, 긴 여정을 끝으로 도착지의 항만에 안전하게 내려진 부품은 통관을 기다리게 됩니다. 다행히 한국으로 수입하는 품목 중 통관 지연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나라마다 그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비행기로 꼬박 24시간을 날아가야 도착하는 브라질은 통관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입 신고가 끝난 화물은 녹색·황색·적색·회색 등 네 가지 채널로 자동 분류되는데요. 이때 어떤 채널로 분류됐는지에 따라 검사 방법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특히 통관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녹색 채널을 제외한 나머지 세 채널에선 일일이 화물 검사가 실시됩니다. 자연히 △통관 대기 건수 △현물 수량 △세관 인력 상황 등에 따라 통관 소요 시간도 각기 다르게 결정되죠. 한시 바삐 도착해야 하는 자재가 적색 채널에 배정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비상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 소풍 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처럼 다양한 상황을 전부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모든 경우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하는 게 또 저희 일이기도 합니다. 더 많이, 더 미리 준비하면 물론 최선이겠지만 그 경우 불필요한 재고가 많아지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필요한 만큼만, 일정에 딱 맞춰 준비하면 돌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할 위험이 큰 만큼 매일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은 개중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자재를 공급하기 위해 늘 고민합니다. 그 와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두 팔 걷고 해결할 준비도 돼있고요.
어쨌거나 제 부품이 가는 길은 기왕이면 순탄하길 바랍니다. 화창한 날씨에 안전하게 떠나는 여행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어린아이를 소풍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엔 또 다른 주제로 찾아 뵙겠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 모두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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