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요? 아이디어가 풀(full)해서 ‘아이디어 풀(pool)’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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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 팀원들이 강민아(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센터, 맨 오른쪽 앉아있는 사람)씨와 자리를 함께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김민환 신광식 김은나 민지원 김혜진 신혜리 양민규 박승미 이호준 홍선기씨 지난달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의 임기는 오는 11월까지다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 팀원들이 강민아(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센터, 맨 오른쪽 앉아있는 사람)씨와 자리를 함께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김민환·신광식·김은나·민지원·김혜진·신혜리·양민규·박승미·이호준·홍선기씨. 지난달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의 임기는 오는 11월까지다

삼성전자에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이 존재한다면 믿기는지? 삼성전자 제품과 관련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대학생 아이디어 풀(IDEA POOL)’ 팀은 평균 나이 23세, 10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전자 내에서 가장 젊은 팀인 이들은 신제품 기획과 개발에 직접 참여, 제품에 대학생 특유의 창의력과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다. 실제로 △바람 없이 방을 시원하게 만드는 무풍 에어컨 △원통형 디자인을 데스크톱(desktop)에 접목한 아트 PC 같은 콘셉트가 대학생 아이디어 풀에서 나왔다.

연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어엿한 ‘삼성전자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한 이들의 비결은 뭘까? 지난달 30일, 대학생 아이디어 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Value Innovation Program)센터의 협조를 얻어 회의 현장을 찾았다.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를 소개합니다 양민규(한양대 융합전자공학) "엉뚱함이 세상을 바꾼다" 이호준(서울과학기술대 도자공예학/산업디자인) "된다고만 생각하자!" 민지원(숭실대 화학공학) "밝은 생각이 곧 좋은 해답" 신혜리(성균관대 경영학)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김은나(인하대 컴퓨터정보공학) "궁금하면 물어보자" 홍선기(서울대 컴퓨터공학/벤처경영학) "남이 안 간 길을 가보자" 김혜진(덕성여대 시각디자인) "고민보다 행동으로" 김민환(건국대 컴퓨터공학) "대화하면 답이 보인다" 신광식(국립공주대 세라믹디자인) "불편하다는 건 개선할 수 있다는 것" 박승미(상명대 산업디자인) "때론 진부함이 참신하다"

아이디어 발상, 첫 번째 비결은 ‘포스트잇 브레인스토밍’

아이디어 발상, 첫 번째 비결은 ‘포스트잇 브레인스토밍’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회의 현장은 왁자지껄했다. 본격적 회의가 시작되기 전 진행된 순서는 ‘서로에게 별명 지어주기’. 피부가 하얀 팀원에겐 ‘빛나리’란 별명이 붙여졌고 각자 좋아하는 과일과 채소의 이름을 빌려와 ‘자몽’과 ‘미나리’란 별명을 얻은 팀원도 있었다. “서로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과정에서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회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다”는 게 회의 진행을 맡은 강민아(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센터)의 설명. 일단 별명이 정해지면 회의 내내 이들은 본명 대신 별명으로 불린다.

“서로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과정에서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회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다” 강민아(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센터)

이날 회의의 주제는 ‘건강’이었다. 팀원들은 ‘건강’이란 제시어를 보고 각자 떠오르는 단어를 포스트잇에 적은 후 화이트보드에 붙여가며 대화를 나눴다. 일명 ‘포스트잇 브레인스토밍 회의’다.

’건강’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포스트잇에 적은 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놓은 화이트보드. ‘콩(건강해지려면 콩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에서부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이르기까지 등장 단어의 범위가 실로 방대하다
▲’건강’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포스트잇에 적은 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놓은 화이트보드. ‘콩(건강해지려면 콩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에서부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이르기까지 등장 단어의 범위가 실로 방대하다

포스트잇 부착 작업이 모두 끝난 후 팀원들은 토의를 거쳐 각각의 단어를 비슷한 부류의 키워드로 묶어 재분류한다. 대학생 아이디어 풀에선 이 작업을 ‘그룹핑(grouping)’이라고 부른다. 강민아씨에 따르면 그룹핑이야말로 팀원 간 아이디어가 무수히 오가는, 회의의 핵심 절차다.

“개개인의 얼굴 모양에 맞춘 프린팅 기술이 개발되면 쓸모가 많을 것 같다" 홍선기(몽자,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

이날 그룹핑 도중 새롭게 튀어나온 아이디어는 ‘화장 프린팅’이었다. “평소 미용에 관심이 많다”는 박숭미(숭미짱) 팀원은 “요즘 유튜브를 보면 유명 연예인의 화장법을 가르쳐주는 콘텐츠가 많은데 그 화장법을 3D 프린터로 본뜨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홍선기(몽자) 팀원은 “개개인의 얼굴 모양에 맞춘 프린팅 기술이 개발되면 쓸모가 많을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일상에서 잠깐 보고 스쳐 지날 수 있는 정보가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스마트 펫하우스’ ‘콜라 정수기’ 등 이색 아이디어 속출

팀원들이 자유롭게 떠올린 단어는 연관성에 따라 재분류 과정을 거친다
▲팀원들이 자유롭게 떠올린 단어는 연관성에 따라 재분류 과정을 거친다

 “건강이란 단어 하나에서 이렇게 다양한 주제가 도출될 수 있다니 놀랍다”며 “평소 건강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회의 덕에 내가 갖고 있던 건강 관련 생각을 새삼 알게 됐다” 양민규(뀨,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

이날 나온 건강 관련 키워드는 모두 21개였다. 그중 팀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분야는 ‘미용’. 그 밖에도 유전공학·보험·힐링·반려동물 등 다양한 단어가 제시됐다. 양민규(뀨) 팀원은 “건강이란 단어 하나에서 이렇게 다양한 주제가 도출될 수 있다니 놀랍다”며 “평소 건강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회의 덕에 내가 갖고 있던 건강 관련 생각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 순서는 2인 1조로 나뉘어 앞서 나열된 키워드 중 하나를 골라 관련 아이디어를 제품으로까지 구체화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제품 개요 △타깃 소비자 △사업 모델 등 세부 사항까지 모두 정해야 해 팀원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김혜진(자몽) 팀원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앞선 활동을 통해 아이디어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잡아놨던 터라 마감 시한을 넘기지 않고 제품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구상된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팀명도 정해졌다
▲구상된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팀명도 정해졌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품은 △콜라 속 유해 성분을 걸러내 다용도로 쓸 수 있도록 설계된 정수기 ’헬시 콜린(Healthy Colin)’ △반려동물 집에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이하 ‘IoT’) 기술을 접목한 ’에뿌제(POUSE)’ △침대에 IoT 기능을 더해 간병 환경을 개선한 ’풀리자(Fully자)’ △샴푸와 샤워기를 하나로 만든 ’공든 샤워기에 샴푸나랴‘ △자동으로 조명 밝기를 조절하는 장치 ’자몽’(자夢) 등 다섯 개였다. 팀원들의 투표를 거쳐 우승을 거둔 아이디어는 총 일곱 표를 획득한 에뿌제(‘나는 너, 너는 나’ 팀)였다.

 “그룹핑 과정에서 사람들이 본인뿐 아니라 반려동물의 건강까지 챙기려 한단 사실을 깨달았다”며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에뿌제가 이른 시일 내에 꼭 상용화되길 바란다” 신혜리(너는 나, 아이디어 풀 11기)

에뿌제는 반려동물(pet)과 집(house)을 합성한 신조어. 프랑스어로 ‘배우자’란 뜻도 담겨있다. 경우에 따라 반려동물이 ‘평생의 동반자’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작명이었다. 에뿌제를 구상한 신혜리(너는 나) 팀원은 “그룹핑 과정에서 사람들이 본인뿐 아니라 반려동물의 건강까지 챙기려 한단 사실을 깨달았다”며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에뿌제가 이른 시일 내에 꼭 상용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생 아이디어 풀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자동으로 삼성전자 사내 경연대회인 ‘2017 GTC(Global Technology Center) 창의콘서트 아이디어 공모전’에 등록된다. 여기서 선정된 우수 아이디어엔 100만 원 상당의 상금이 지급된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랩(C랩)’을 통해 상품화 연구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민지원(딸당) 팀원은 “내 아이디어가 상용화 단계까지 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신기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직원 회의에도 배석… “진짜 기량 발휘는 해커톤에서”

사실 이날 지켜본 대학생 아이디어 풀 회의는 그들의 활동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팀원들은 임기 중 삼성전자 임직원이 참여하는 신제품 기획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공유하는 한편, 보다 풍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견학도 다닌다. 실제로 이들은 지난주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대형 쇼핑 테마파크 ‘스타필드(Starfield)’를 찾아 최신 소비 동향을 조사했다. 다음 번 회의 장소는 삼성전자서울R&D캠퍼스(서울 서초구 성촌길). 삼성전자 UX디자인 실무 담당 임직원과 함께하는 기획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이디어 구상’이 주된 활동인 만큼 대학생 아이디어 풀의 일정은 대부분 크고 작은 회의로 이뤄진다. (왼쪽부터)김은나·신광식·김민환·신혜리씨
▲‘아이디어 구상’이 주된 활동인 만큼 대학생 아이디어 풀의 일정은 대부분 크고 작은 회의로 이뤄진다. (왼쪽부터)김은나·신광식·김민환·신혜리씨

팀원들이 꼽는 ‘대학생 아이디어 풀 활동이 내게 준 최대 변화’는 “기획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김은나(나는 너) 팀원은 “실제 삼성전자 임직원과 함께하는 회의에 참석, 전문가들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들으며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민환(미나리) 팀원 역시 “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기획할 때 조원들이 내 의견을 많이 반영해준다”며 “대학생 아이디어 풀에서의 경험 덕분”이라고 말했다.

 “해커톤에 도전장을 내밀기엔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중간 점검’이라 여기고 내 생각을 최대한 펼쳐볼 생각” 신광식(빛나리,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

이들에게 주어진 다음 ‘미션’은 이달 중 열릴 ‘2017 해커톤[1]’ 출전이다. 삼성전자 임직원과 함께 팀을 꾸려 그간 익힌 아이디어 기획·진행 기량을 펼칠 예정이다. 신광식(빛나리) 팀원은 “해커톤에 도전장을 내밀기엔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중간 점검’이라 여기고 내 생각을 최대한 펼쳐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의 다음 행보는 이달 중 개최될 예정인 2017 해커톤 출전이다. 팀원들이 해커톤에서의 건투를 기원하며 VIP센터 임직원과 함께 ‘점프’하는 포즈를 취했다
▲대학생 아이디어 풀 11기의 다음 행보는 이달 중 개최될 예정인 2017 해커톤 출전이다. 팀원들이 해커톤에서의 건투를 기원하며 VIP센터 임직원과 함께 ‘점프’하는 포즈를 취했다

세상을 바꾸려면 수많은 기존 틀을 깨부숴야 한다. 그리고 창의력은 그 일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가까이서 지켜본 대학생 아이디어 풀 팀원 10명은 튼실한 창의력으로 세상 바꿀 채비를 마친 청년들이었다. 이들만의 통통 튀는 생각이 머지않아 ‘세상에 없던 뭔가’를 불러낼 수 있길, 그래서 진짜 세상을 확 바꿔놓을 수 있길 기대한다.

[미니 인터뷰] 대학생 아이디어 풀 총괄하는 장동섭 삼성전자 상무

“올해로 11년째… 기존 제품 뛰어넘는 ‘진짜 혁신’ 기대해볼 만”

장동섭 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센터 상무는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대학생 아이디어 풀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삼성전자는 명실공히 각계 전문가가 모여있는 곳이죠.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만큼 자기 분야에선 최고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다양한 아이디어 도출이 방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생각했죠. ‘삼성전자 임직원이 풀 수 없는 문제, 대학생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장동섭 삼성전자 글로벌품질혁신실 VIP센터 상무는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대학생 아이디어 풀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장동섭 상무는 대학생 아이디어 풀의 매력을 ‘젊음’으로 정의한다. “젊은이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뿜어낼 수 있습니다. 아직 특정 틀에 갇히지 않아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대학생 아이디어 풀이 운영돼온 지도 벌써 11년이다. 장 상무는 “그간 학생들이 보여준 잠재력에 감명 받아 이번 기수부턴 좀 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이제까진 기존 삼성전자 제품에 추가할 기능 연구에 활동의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세상에 없던 것’을 찾아 달라’고 주문하고 싶어요. 충분히 해낼 거란 믿음도 있습니다.”

 


[1]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디자이너, 사용자인터페이스 설계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이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소프트웨어 관련 프로젝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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