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저쪽 길’로 한 발짝만 내딛기

2016/01/01 by 홍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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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에세이 저쪽 길로 한발짝만 내딛기.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마난보세요. 매주 목, 금요일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홍정은 맨즈헬스 코리아 에디터


보채듯 날이 추워졌습니다. 올해는 어서 빨리 보내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하라네요. 늘 찾아오는 연말이지만 올해는 어깨가 좀 무겁습니다. 뭔가 스스로 더 많이 바뀌어야만 할 것 같아서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먹어보지 않은 음식, 들어보지 않은 음악은 평생 입과 귀에 담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서른 이후의 삶’에서 새로운 건 되도록 피하게 된다는 의미일 겁니다. 새로운 걸 피하면 그 짜릿함과 즐거움은 어디서 얻는단 말입니까?

2016년을 맞이하여 여성이 점프를 하는 이미지입니다.

이제 겨우 인생의 3분의 1을 달렸을 뿐인데 남은 시간이 모두 지루하고 무미건조하면 어쩌나,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안 해본 것 중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 하나를 얼마 전에 마쳤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계획 캠핑’을 떠난 겁니다.

 

모른다, 는 것의 두려움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캠핑은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행위였습니다. 어느덧 캠핑이 트렌드의 ‘끝물’ 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지금껏 말입니다. 그냥 싫었습니다. 아니,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잠자리는 편안해야 한다, 그 비싼 장비들에 눈 돌리기 시작하면 평생 빚쟁이가 될 거다…

캠핑을 떠나기 위해 준비한 배낭, 신발 등 각종 도구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전 캠핑을 ‘싫어한’ 게 아니라 ‘몰랐던’ 거였습니다. ‘텐트에서 자면 불편할 거야’ ‘싸고 못생긴 캠핑 장비만 갖곤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거야’ 같은 생각들이 앞서며 지레 움직이지 않기로 정해버린 겁니다. 대신 편안한 잠자리와 (다른 취미를 즐길) 금전적 여유를 택했습니다. 결국 새로운 걸 향해 한 발 내딛는 덴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인해 바뀔 뭔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놀고 즐기는 일일 뿐인데 말이죠.

 

모른다, 는 것의 즐거움

결국 제가 캠핑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캠핑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던 데 있습니다. 캠핑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캠핑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모르니 굳이 비용을 지불해가며 불편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계획도 없이 급하게 캠핑을 떠나게 됐습니다. 일 때문이었습니다. 계획해놓은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두 시간 만에 새로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스태프가 있었고 그중 아무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 때문에 ‘최소한의 장비’만 전문 대여점에서 빌려 떠났습니다. 최근 유행했던 ‘미니멀 캠핑(minimal camping)’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두 명의 여성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취재하면서 알게 된 정보만 견줘봐도 제대로 된 캠핑을 해내기엔 턱없는 장비들이었습니다. 겨울인데 봄∙가을용 침낭을, 멋지고 성능 좋은 텐트 대신 소풍용 텐트를 챙겼습니다. 심지어 랜턴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평소 같았으면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아 매우 불안해야 정상인데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설레는 겁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끝내야 하는데 즐겁다니요.

 

누구에게나 한 발짝은 있다

그날의 캠핑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텐트 설치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주운 화롯대에 빌린 번개탄으로 불을 붙이느라 한참을 낑낑댔습니다. 한겨울용 점퍼를 입고도 덜덜 떠느라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의 말소리 말곤 바람에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뿐이던 그 공간, 밤하늘을 뒤덮은 잣나무 줄기들, 춥고 힘들고 정신 없었던 시간까지 모두 짜릿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떠난 그 하룻밤 야영이 제게 얼마나 많은 걸 남겨줬는지요!

두려움을 야기하는 요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무지(無知)’입니다. 모르는 일엔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서도록 인류가 진화한 탓이겠죠. 하지만 바로 그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에 한 발 내딛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겨우 캠핑처럼 별것 아닌 일도 그런데 이 세상엔 짜릿하고 멋진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을까요? 이보다 더 큰 두려움 앞에서 침 한 번 꿀꺽 삼킨 후 한 발 들어올린다면 남은 삶은 얼마나 더 멋질 수 있을까요? 

어두운 밤 텐트 너머로 밤하늘의 별이 빛나고 있다

이건 비단 제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의 남은 한 해와 다가올 2016년, 아니 남은 삶도 전부 바로 그 ‘한 발짝’ 덕분에 즐거울 수 있습니다. 분명해요.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홍정은

맨즈헬스 코리아 에디터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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