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고흐 그림이 눈앞에?… 예술이 쉬워지는 가상현실

주소복사

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고흐 그림이 눈앞에?… 예술이 쉬워지는 가상현실 세상을 잇(IT)는 이야기.

예술과 가상현실(VR)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가 입장에선 붓과 끌이 아닌, 새로운 창작 도구로 기존과 다른 표현을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으니 꽤 즐거운 일일 것이다. 예를 들면 거대한 백자(白磁) 위에 꽃잎이 흩날리거나 눈이 내리는 등의 영상을 투사해 4계절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작가의 의지에 따라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신규 채널이 생기는 셈이니 그 또한 흥미롭다. 가령 센서를 활용, 관람객이 접근하면 그림이 관람객을 향해 “옆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또 몸 동작에 자신 있는 작가라면 붓 대신 센서가 달린 리모컨을 들고 초대형 Q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창작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도 있다. 동료 작가는 물론, 관람객과의 협업(collaboration)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관람객 입장에선 어떨까?

미술관이 살아있다, 진짜로!

“왼쪽부터 바르톨로메오, 작은 야고보, 안드레아, 유다, 베드로, 요한, 그리고 예수, 토마스, 큰 야고보, 필립보, 마태오, 유다, 시몬. 다 모였습니까?”  “다빈치 선생님,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시려고 저희를 이렇게 모델로 세우신 거죠?”  “다들 이렇게 모이고도 모르겠소? 하하하!”

2008년 일명 ‘살아있는 미술관’ 프로젝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 위 대화는 당시 전시작 중 하나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1]의 ‘최후의 만찬’ 속 등장 인물 예수와 다 빈치가 나눈 것. 물론 ‘가상’이지만 그림 속 인물이 웅성거리며 화가의 지시대로 자리 잡은 후 묻고 답하는 상황이 생생하고 재밌다. 대화 도중 제작 배경 등 작품 설명까지 곁들여지며 미술관은 ‘어렵고 지겨운 장소’란 오명을 벗었다.

‘살아있는 미술관’ 프로젝트는 2008년 서울에서만 30만 명 넘는 관람객을 동원했다. 가상현실이 미술의 재미를 알리는 수단일 수 있단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혹자는 디지털 기술과 순수 예술의 융합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키우고 공감대를 끌어내는 게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면 예술을 향한 디지털적 접근에 조금쯤 관대해도 되지 않을까.

당시 전시 관람료는 유명 놀이공원 자유이용권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만 30만 명 넘는 가족 단위 관람객을 기록했다. 가히 ‘가상현실 기술이 미술에 대한 재미와 호기심을 일깨운’ 최고 사례라 할 만하다. 만약 전시회 분야에서 ‘슈가맨[2]’을 찾는다면 살아있는 미술관이 분명 상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나저나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디지털 기술과 순수 예술의 융합에 대해선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고 상업성만 추구한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 근육을 단련시키고 서로를 공감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란 사실에 동의한다면 예술을 향한(혹은 이해하기 위한) 디지털적(的) 접근에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독자가) 극단적 표현을 허락한다면 이런 융합의 시도는 기술 기반 상상력에서 출발했으므로 예술의 그것과 다름없는 창작의 일종이라 우겨보고 싶다.

기술도 예술도 원천은 ‘상상력’

사물의 본질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한 미술은 19세기 중반 사진의 등장으로 ‘창조적 재해석’이란 새 영역을 개척해야 했다. 미술을 위협할 줄 알았던 사진 기술이 오히려 미술의 진화를 촉진한 매개체가 된 것. 물론 이 같은 ‘미술의 홀로 서기’ 바탕엔 작가의 상상력이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려는 시도 역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미술사적으로 보더라도 이런 우격다짐엔 그럴듯한 근거가 있다. 미술의 기원이 사물의 본질 모방(mimēsis)에 있긴 하지만 19세기 중반 사진의 등장으로 미술은 대상에 내재된 뭔가를 꺼내 (그게 본질이든 아니든) 화폭에 옮겨 담는 ‘창조적 재해석’ 작업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의도치 않았던 사진 기술의 침공(?) 덕에 미술은 ‘종교나 권력의 부속물’이란 오명을 벗고 예술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됐으니 역사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 이 같은 미술의 홀로 서기와 진화도 결국 그 원천은 (작가의) 상상력(imagination)이었다. 이때 상상력이란 이미지(image)를 만드는 힘이다. 독일어로 ‘상상’을 의미하는 ‘판타지(phantasie)’는 ‘출현시키다’란 뜻의 그리스어 ‘판타시아(phantasia)’에서 나왔고, 이 단어의 어원은 ‘빛’이란 뜻의 ‘파오스(phaos)’다. “뭔가를 보려면 빛의 존재가 필수”란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역시 “상상력은 단순히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각이 제공하는 실제적 복제물을 변형하는 역동적 힘”이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상상력은 단순히 사물의 형체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능이 아니다. ‘외형 이상의 것’을 꿰뚫어보는 능력이고 ‘그것이되 그게 아닌 것’을 간파하는 힘이다. 더 나아가 이질적이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매개 능력이기도 하다. 요컨대 소위 ‘융합’으로 불리는 행위 일체의 원천이다.

러빙 빈센트’의 남다른 감동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1889)

살아있는 박물관 프로젝트와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개봉, 예술 영화론 드물게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폴란드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Dorota Kobiela)의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다. 이 애니메이션은 4000명의 화가 지원자 중 선발된 107명이 2년간 그려낸 6만2450점의 유화가 모여 완성됐다. 총 제작 기간은 10년, 극중 등장하는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그림만 100점이 넘는다.

고흐 그림 100여 점을 포함, 6만2450점의 유화로 완성된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를 접한 관객은 인간 고흐의 고뇌에 공감하고 그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굳이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찾지 않더라도 고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예술의 매력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깨달을 수 있는 사례가 또 있을까?

 “팝송 ‘빈센트(Vincent)’의 가사 중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당신이 내게 말하려는 걸 이젠 이해한다)’란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됐어. 정말 눈물이 나더라.” 평생 음악을 해온 친구가 남긴 러빙 빈센트의 감상평이다. 굳이 이 평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러빙 빈센트를 보고 나면 누구나 인간 고흐의 고뇌에 공감하고 그의 작품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영화를 본 이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직접 본 감동과 그 종류와 정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영화를 보고 나면 고흐의 그림, 아니 고흐란 화가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리란 사실이다.

같은 그림을 서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두 남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나오는 구절이다. 난 감히 이 구절을 흉내 내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 잘 알고 싶다.” 미술은 물론, 모든 예술 작품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일단 알게 되면 재미가 붙고 애정이 가며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선(善)순환 고리를 부러 거부할 작가가 있을까?

예술 대중화, VR이 이끌 것”

사람들은 이제 가상현실 기기로 로마의 거리 예술이나 제우스 신전을 집 안에서 편안하게 구경할 것이다. 인터넷이 정보의 평등을 가능케 했다면 가상현실은 삶의 질 측면에서 문화 불균형을 해소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가상현실 기술 덕분에 한때 소수 지식인의 전유물이던 예술 장르를 한층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가상현실(VR)은 한때 소수 지식인의 전유물이던 예술 세상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구글이 2011년 시작한 문화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철학도 이런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구글이 만든 애플리케이션 ‘아트앤드컬처(Art & Culture)’는 세계 최고 작품을 모아놓은 대형 미술관이다. 그뿐 아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람 인파에 떠밀려가며 멀리서 봐야 했던 모나리자의 눈썹(만약 있다면!)을 코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확대할 수 있다. 구글 카드보드[3] 같은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하면 로마의 거리 예술이나 제우스 신전도 집 안에서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다. 인터넷이 정보의 평등을 가능케 했다면 가상현실은 삶의 질 측면에서 문화 불균형을 해소해준다. 아트앤드컬처를 비롯한 구글의 여러 실험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가상현실과 에술의 결합을 상상하며 바라보는 여자

가상현실에 기반을 둔 디지털 기술과 예술 간 결합 사례는 또 있다. 삼성전자 영국법인과 대영박물관의 공동 프로젝트가 그것. 갤럭시 기어∙노트 같은 삼성 디지털 기기와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접목, 대영박물관을 더 흥미롭고 재밌게 체험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 이미지를 클릭해보자.

▲삼성전자 영국법인은 삼성 디지털 기기를 활용, 대영박물관을 보다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삼성전자 영국법인은 삼성 디지털 기기를 활용, 대영박물관을 보다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사실 이 같은 ‘가상 박물관’의 개념과 운영 방식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최근 자신의 저서 ‘예술로 읽는 4차 산업혁명’(별출판사)에서 그 추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세대가 주로 온라인상에서의 아카이빙과 홍보 기능에 머물렀다면, 2세대는 1세대가 가진 기능에 이러닝(e-learning)과 같은 박물관과 방문객 간 기초 소통 기능이 추가됐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3세대 가상 뮤지엄은 박물관의 벽을 넘어 시간과 지역에 구애 받지 않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기능을 구현한다. 특히 이전 세대의 가상 뮤지엄과 달리 커뮤니티 형성과 상호작용성이 강화됐다”  (출처: ‘예술로 읽는 4차 산업혁명’ 165쪽)

어느덧 가상 박물관도 4세대로 접어들었다. 4세대 가상 박물관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합쳐지고 예술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일 것이다. 어쩌면 놀이동산이 이런 형태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미술과 행위예술이 융합된 체험형 예술 장르도 생길 것이다.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을 몰고 다니는 ‘인터랙티브형 조각가(이런 작가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가 탄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Leonardo da Vinci(1452∼1519).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과 겸 과학자
[2]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어느 틈엔가 잊힌 가수를 찾는 TV 프로그램. 단 두 장의 앨범을 남기고 사라진 뮤지션을 찾아가는 2011년작 영화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에서 명칭을 따왔다
[3] Google Cardboard. 구글이 규격을 제정한 보급형 가상현실 플랫폼

Samsung Newsroom Newsletter

구독 신청폼
닫기
SAMSUNG NEWSROOM
댓글

인기 기사

Samsung Newsroom Newsletter

구독 신청폼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