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프 TV를 사랑하는 사람들_③사진작가 백성현

2016/07/15
공유 레이어 열기/닫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리프 TV를 사랑하는 사람들 3편 사진작가 백성현

어떤 계기로 한 번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쉬 잊히지 않는다. 그 대상이 잘 알려진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심한 경우 그 이미지는 일종의 선입견으로 작용,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다. 유명인의 삶과 관련, “겉으로만 화려해 보일 뿐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by100’이 새겨진 카메라

3인조 혼성 그룹 코요테의 래퍼로 잘 알려진 ‘빽가’ 백성현씨의 오른팔엔 ‘1 2 3 Cheese’란 글씨와 사진 찍는 사람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올해로 10년째 ‘by100’이란 닉네임으로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는 그는 프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사진가로 활동해온 이력을 인정 받아 아시아 최초로 독일 라이카사(社)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대중 앞에서 사진작가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또 다른 인생’이 빽가란 이름에 가려지는 걸 원치 않아서다. 가수 활동만으로도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사진작가 by100’은 어떤 의미일까?

 

 

‘카메라가 곧 장난감’이었던 소년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백성현씨

어린 시절 그의 가정 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변변한 장난감 하나 장만하는 일에도 큰맘을 먹어야 했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BB탄 총이나 자전거는 그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놀러 가거나 총싸움에 열중할 때 그는 동네에 혼자 남아 구슬치기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그가 유일하게 ‘대장’ 노릇을 하던 순간이 있었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줄 때였다.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메라 덕에 소풍이든 수학여행이든 각종 기념 사진 촬영은 늘 그의 몫이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그가 찍어주는 사진을 무척 좋아했다. 그의 사진이 교실 뒤 게시판을 당당하게 장식하는 일도 잦았다. 늘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자랐던 그가 난생처음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게 된 계기였다.

 

by100과 빽가가 동일인이었다니!

고교 시절의 백성현씨▲고교 시절의 백성현씨. 그는 이 시기에 사진과에 진학하며 정식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카메라가 안겨준 기억은 그를 자연스레 사진의 길로 이끌었다. 고교에선 사진과에 진학, 사진을 정식으로 배우기도 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대학 진학을 잠시 미루던 즈음, 당시 ‘절친’이었던 정지훈(가수 ‘비’)씨의 권유로 얼떨결에 오디션을 보게 되면서 가수가 됐다. 하지만 가수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속엔 늘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수로 처음 번 돈을 카메라 구입에 쏟아 부었을 만큼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은 깊고 또 강했다.

"대중이 유명인에게 선입견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진에서만큼은 '빽가'가 아닌 '백성현'으로 온전히 인정 받고 싶습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미니홈피’ 열풍이 정점에 이르렀던 2006년, 직접 찍은 사진을 타인과 맘껏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그에게 남다른 기쁨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by100’이란 이름으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패션 매거진 보그(VOGUE) 코리아에서 연락이 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일반인이 찍은 사진 중 우수 작품을 꼽아 잡지에 실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당시 편집장은 그에게 “괜찮다면 우리 잡지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해달라”고 덧붙였다. 물론 그가 ‘코요테 빽가’와 동일인이란 사실은 전혀 모른 채였다.

그 일을 계기로 ‘사진작가 by100’의 삶이 시작됐다. 그는 보그를 비롯해 ‘엘르(ELLE)’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아레나(ARENA)’ 등 여러 패션 매거진 한국판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사진작가로서의 이력을 차근차근 쌓아갔다.

인물 촬영 중인 백성현씨

이후에도 사진 작업에 관한 한 그는 되도록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by100으로 활동했다.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 편견 없이 평가 받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대중이 내게 선입견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사진에서만큼은 가수가 아닌 사진작가로 온전히 인정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브레송, 그리고 35㎜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로 찍은 바다와 창가에 맺힌 빗방울 이미지백성현씨가 찍은 자연과 인물 사진▲요즘 그의 관심은 ‘자연’이다. 감성적이면서도 뚜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by100’의 작품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흡사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때론 몽환적 느낌으로, 때론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움으로 다가오는 그의 작품은 감성적이면서도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는 프랑스 출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브레송의 사진은 정확한 공간 처리와 절묘한 순간 묘사로 오늘날 포토 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과에 막 진학했던 1997년, 서울 인사동의 작은 갤러리에서 브레송 전시를 접한 그는 이전보다 훨씬 사진에 매료됐다. “역동적 구도, 그리고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게 특히 놀라웠어요. 피사체를 주의 깊게 관찰하다 ‘결정적 순간’을 담아내는 그가 마치 사냥꾼처럼 느껴졌죠.”

나무 사이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백성현씨

백성현씨는 디지털 카메라보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선호한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사용했던 35㎜ 필름 카메라가 여전히 익숙하다. 요즘은 ‘자연’을 주제로 한 개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가방에 필름을 가득 채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작품은 ‘사람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는 사진’. 그는 “공식이나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로 사랑 받는 난 행운아”

그는 자신이 쓸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그리고 일단 손에 넣은 후엔 쉽게 바꾸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 시대에 35㎜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것도 “처음 느낌 그대로의 편안함”이 좋아서다. 필름 카메라 특유의 감성도, 기껏해야 30매 정도인 필름 한 통에 저장 가능한 사진 수도 그에겐 더없이 편안하고 정겹다.

"곧 이사를 가요. 새 집에선 세리프 TV를 제일 아끼는 의자와 스피커 사이에 둘 거예요."

백성현씨가 최근 세리프 TV를 집에 들여놓은 것도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리프 TV는) 지금껏 봐왔던 TV와 전혀 다른 제품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보통 TV는 구입 후 몇 년이 지나면 바꾸기 마련인데 세리프 TV는 디자인적 완성도가 높아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사를 앞둔 그는 세리프 TV의 공간 배치 계획까지 이미 세워뒀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 프로그램은 빠짐 없이 챙겨보는 편이에요. 이사를 가게 되면 제일 아끼는 의자와 스피커 사이에 TV를 두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싶습니다.”

"이제껏 운 좋게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앞으로 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으면 합니다."

백성현씨에겐 가수와 사진작가 외에도 몇 가지 타이틀이 더 있다. 선인장숍 운영자와 에세이 작가 등도 그중 하나. 그가 서울 연남동에 낸 선인장숍 ‘씨끌로드’는 선인장 애호가 사이에선 이미 꽤 유명한 장소다. 그가 선인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 2009년 뇌종양으로 투병 생활을 했을 때. “병실에 있던 꽃들이 죄다 시들어버리는데 홀로 꿋꿋하게 살아있는 선인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성현씨의 선인장숍

씨끌로드를 처음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선인장 화분이었다. 빈 깡통과 석고상, 서랍장에 이르기까지 정형화되지 않은 각종 소품이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선인장숍 운영을 결심하게 된 것 역시 우연히 집에 있던 빈 캔에 선인장을 담아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부터였다. 그는 요즘도 재활용기 등을 갖고 오는 고객에게 선인장을 직접 옮겨 심어주곤 한다.

백성현씨

백성현씨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비록 단계마다 노력하긴 했지만 그때그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데 대해 그는 “늘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꽤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어요. 다행히 반응도 괜찮았고요. 앞으로 또 무슨 일을 하게 될진 모르지만 그 일 역시 많은 분께서 좋아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랜 기간 그와 함께해온 35㎜ 필름 카메라처럼 그의 음악과 사진, 그리고 앞으로 그가 시도할 다양한 활동도 대중에게 오래도록 사랑 받을 수 있길.

by 100, shutter for u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