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근거 있다, 메∙탈∙미∙학
디자인은 보기에 아름다워야 한다. 디자인은 기능을 담는다. 디자인은 사람들의 생각과 소망을 드러낸다. 디자인은 마치 물결처럼 시∙공간을 흐르며 굽이치듯 변화한다. 끊임없이 바뀌어가는 디자인의 경향, 일상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전제품 디자인의 최근 동향은 어떨까?
2010년대에 들어서며 단연 눈에 띄게 확장 중인 트렌드가 있다. 금속성 소재를 사용하거나 금속 같은 느낌을 주는 일명 ‘메탈릭룩(metallic look)’이 그것. 가전제품뿐 아니라 인테리어 전반에 걸쳐서, 심지어 패션 분야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메탈. 그 속에 담긴 가치관과 기능, 아름다움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생각이다.
#1. 메탈은 ‘프레스티지’다
서구 선진국 디자인 비평에서 메탈릭룩과 연관되는 주요 키워드는 ‘프레스티지(prestige)’다. 특정 개인의 사회적 권위와 명망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그런 위엄에 대한 선망을 뜻하기도 한다. 이렇게 메탈 느낌을 위엄, 혹은 그에 대한 선망과 연결 짓는 행위는 종종 유전과학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메탈(금속)은 최고 지도자의 상징이었다. 대표적 상징물은 왕관. 근대 이전엔 동서양 어느 사회에서나 최고 권력자 머리 위에 황금 장식물을 둬 그 위엄과 권력의 크기를 나타냈다. 또한 최고 권력자들은 일상 속 집기 제작에 은(銀)을 많이 사용했다. 은으로 된 식기와 술잔, 화병 등은 세속에서뿐 아니라 성직자의 영역에서도 ‘높은 세계’를 상징하는 ‘잇(it) 아이템’이었다.
이런 물건들은 문학에서도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요즘 뮤지컬로 재구성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그 한 예다.
레미제라블의 원작은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1802~1885)의 동명 소설이다. 작품에서 덕망 높기로 이름난 ‘뮤리엘’ 주교는 19년간의 형기를 마친 후 거리를 방황하던 주인공 ‘장 발장’을 재워준다. 하지만 그날 밤, 장 발장은 성당에서 은으로 만든 촛대와 술잔을 훔쳐 달아난다. 거리에서 그와 마주친 경찰은 그의 거동을 수상히 여겨 배낭을 뒤지고, 배낭 속 물건들이 성당 것이란 사실을 한눈에 알아본 경찰은 장 발장을 뮤리엘 주교에게 데려간다. 하지만 주교는 경찰에게 그 물건들은 자신이 선물한 거라 말하고, 이에 감동한 장 발장은 이후 자신의 죄를 크게 뉘우치고 성실하게 새 삶을 일궈간다. 은(메탈) 제품이 ‘성스럽고 고귀한 영역 내 어떤 것’을 상징한단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줄거리다.
귀금속 아이템이 특정 계층을 상징하게 된 건 물론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힘 있는 사람’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있었다. 역시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바로 그것. 처음엔 청동으로, 이후엔 철로 만들어진 칼과 창은 영웅들의 위대한 행적에 반드시 함께했다. 그중엔 영국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명검(名劍) 엑스칼리버(Excalibur)처럼 ‘그 자체로 신비한 힘을 지닌 물건’으로 숭상된 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첨단 과학기술이 널리 보급된 오늘날에도 메탈은 위엄이나 특별한 권력 같은 느낌으로 사용되곤 한다. 다양한 소재가 한데 어우러진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도 메탈 아이템은 유독 눈에 띈다. 온통 흰색으로 장식된 주방, 혹은 한쪽 벽면을 나무나 벽돌 재질로 마감한 주방에서 메탈 소재 냉장고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그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인의 DNA 속엔 ‘나도 모르게 메탈에 주목하게 되는’ 오랜 집단 기억의 자취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무의식 저편에 깊이 각인된 메시지라 해도 시대가 바뀌면 그 맥락에 따라 적절히 변용되게 마련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며 메탈은 ‘(산업혁명의 첨병인) 기계’와 연계되며 ‘왠지 모르게 멋있고 특권적인 것’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8세기 유럽 주부들이 은제 식기와 포크, 나이프를 풀 먹여 빳빳하고 깨끗한 헝겊에 싸 소중히 보관했던 건 그 때문이다. 메탈 소재 냉장고를 들여놓고 남몰래 뿌듯해 하는 21세기 한국 주부의 마음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2. 메탈은 견고하며 진지하다
뭔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저 잠재의식 수준의 애착에서만 온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특정 소재가 많이 쓰인다는 건 곧 그만큼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능이 그 소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금은 따위의 메탈이 사랑 받아온 건 단순히 외관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가공하기 쉽고 잘 부식되지 않아 실용적이란 점도 꽤 크게 작용했다. 특히 최근 부쩍 많이 출시되는 ‘외관이 메탈릭한’ 아이템 중 상당수가 원래 기능적 이유로 쓰이던 것들이다.
모르긴 해도 메탈 소재가 전자제품 외관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최초 사례는 노트북일 것이다. ‘방 안에 붙박이로 놓여 있던’ PC가 점차 소형화되고 휴대성이 강화되면서 기기 외부를 한층 가볍고 견고하게 만들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메탈은 견고성 측면에서 이전까지 PC 외장재로 흔히 쓰이던 강화 플라스틱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반면, 단점도 뚜렷하다. 일단 종류에 따라 무게 차이가 크고 대체로 플라스틱보다 무겁다. 도장(painting) 문제도 있다. 노트북은 사용할 때 손이 자주 닿고 이동 시 주변 물건들과 마찰도 잦아 피막을 도포해도 벗겨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도장 과정을 포기하면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사용하기에 불편할 수 있다. 부식(腐蝕)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때마침 이런 문제를 모두 해소할 수 있는 소재가 등장했다. 일명 ‘AAO’로 불리는 양극산화알루미늄(Anodic Aluminum Oxide)이 그것. AAO는 산화알루미늄 분자를 나노미터[1] 수준의 미세한 구멍이 벌집처럼 규칙적으로 배열되도록 가공한 신개념 메탈이다. 가볍고 견고하며 부식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어떤 구조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다양한 질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자연히 도장 공정 없이도 그 자체로 상당히 품위 있는 질감과 색감으로 마감될 수 있다.
▲메탈 소재가 채택된 삼성전자 제품들
1990년대 들어 AAO 양산 기술이 개발되면서 메탈 활용 관련 연구가 크게 늘었다. 처음엔 노트북처럼 ‘반드시 가벼워야 하는’ 소형 전자제품에 주로 적용됐지만 최근엔 TV나 냉장고처럼 집 안 특정 공간에 고정적으로 배치되는 대형 가전제품의 외관 구조 제작에도 널리 쓰인다.
냉장고를 예로 들어보자. 메탈 외관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냉장고 외관은 스틸 강판으로, 내부 구조물은 강화 플라스틱으로 각각 구성됐다. 하지만 AAO는 내∙외관 할 것 없이 두루 활용될 수 있다. 특히 기기 내부에 AAO를 활용하면 기존 냉장고에 비해 에너지 효율성과 (균등한) 냉장 효과가 단연 업그레이드된다. 플라스틱은 냉기 순환을 차단, 소형 팬을 사용해 강제로 순환시켜줘야 하지만 AAO는 나노미터 수준의 미세한 구멍이 냉기를 기기 내부 구석구석 전달해줘 비교적 적은 에너지로도 늘 일정한 내부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한참 전부터 이 기술을 선구적으로 도입, 활용해오고 있다. 적용 상품은 김치냉장고. 김치가 먹기 좋을 정도로 맛있게 익으려면 ‘김치 익는 환경과 온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가장 맛있는 김치는 겨우내 땅속, 딱 김장독이 적당히 묻힐 만큼의 깊이에서 숙성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에 살며 ‘김장독 묻을 마당’을 갖춘 이는 손에 꼽을 정도인 게 사실. 설사 공간이 확보됐다 해도 겨울 날씨 온도가 예전과 달라 적절한 맛을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로 대형 스탠딩 김치 냉장고를 개발한 데 이어 역시 국내 최초로 메탈그라운드 쿨링 방식을 채택,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을 수 있는 온도를 큰 변화 없이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김치가 알맞게 발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생물이 안정된 환경에서 생장할 수 있도록 일정 저장 공간을 창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삼성 김치냉장고가 2014년부터 3년 연속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건 이 같은 기술 개발에 기울여온 노력의 결과다.
#3. 메탈은 조화롭고 아름답다
권력이 늘 강하고 압도적인 건 아니다. 진정한 힘은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력에 있다. 그런 힘을 가진 존재를 가리켜 사람들은 기꺼이 “아름답다”고 평한다. 그렇게 볼 때 메탈은 천연 소재 중에서도 포용력이 큰 편이다. 어떤 재질을 썼든 무슨 스타일로 꾸몄든 모든 인테리어 환경과 완벽하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메탈은 벽지나 가구, 소품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조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주변 공간을 확 살릴 수도 있다. 기본적으론 빛을 반사하는 소재이지만 어느 정도로(혹은 어떤 느낌으로) 반사하도록 마감하는지에 따라 어두워 보이는 공간을 환히 살릴 수도, 반대로 너무 화사해 안정감이 부족할 수 있는 공간을 차분히 만들어주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뭔가 광택을 내는 아이템에 점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에 메탈 소재를 잘 활용하면 보다 많은 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공간을 연출할 수 있을 겁니다.”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최근 인테리어 동향을 설명하며 클레어 저먼(Claire German) 첼시하버디자인센터(Design Centre, Chelsea Harbour) 이사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메탈 디자인과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충고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금속이 지닌 ‘임팩트(impact)’ 자체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탈은 지난해 10월 26일자 스페셜 리포트(‘심미적 기능주의’ 빌트인 가전이 뜬다)에서 언급했듯 ‘미니멀리스트 룩’과 최적의 조합을 이룬다. 단, 여기서 미니멀리즘은 메탈 요소를 최대한 ‘적게(minimal)’ 사용하란 뜻이 아니다. 다른 장식 요소를 줄이고 메탈이 주는 효과를 최대한 살리거나, 아니면 여러 요소 속에서 메탈 가전제품을 ‘포인트’로 사용하는 게 좋다는 권고다.
삼성 가전에 채택된 메탈은 최신 디자인 트렌드에 담긴 이 모든 정서를 끌어안는다. 김치냉장고 ‘지펠아삭’만 해도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아트 브러시’ 모델은 나무와 패브릭 소재로 장식된 컨트리풍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며 △강인한 인상의 ‘클래시 실버’ 모델은 고전적∙현대적 인테리어 어디서든 특유의 존재감을 더한다. △가벼운 핑크 빛이 도는 ‘크리스탈 듀 핑크’ 모델은 사랑이 넘치는 신혼 공간을 영롱한 크리스탈 광채로 감싼다<아래 사진 참조>.
#4. 그리하여 메탈, ‘예술’이 되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현대장식∙산업미술국제전’이 열렸다. 행사장엔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청년 디자이너들이 총출동, 건축·패션·가구 등 부문별로 새로운 콘셉트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시기에 선보인 작품들은 일명 ‘아르데코(Art Deco)’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르데코는 수공예적 곡선을 강조하던 기존 흐름에 반기를 들고 공업적 생산 방식을 미술과 결합시켜 기능적·고전적 직선미를 추구한 걸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산업형 물질문명을 끌어안으며 모더니즘으로 진입하는’ 세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흐름이었다.
▲삼성전자가 CES 2017에서 선보인 QLED TV는 메탈 퀀텀닷 기술을 적용, “외관뿐 아니라 기능 측면에서도 화질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360도 어떤 각도에서 봐도 아름다운 디자인 역시 공간을 구성하는 오브제로서 손색이 없다
아르데코가 탄생한 지 근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메탈 가전 디자인의 흐름은 ‘기존 유행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아르데코 때와 비슷하지만 그 방향성은 사뭇 달라졌다. 제품 자체를 중시하는 모더니즘을 넘어, 기기 고유 기능은 유지한 채 자연 소재가 지닌 아름다움과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아르데코와 메탈릭룩의 공통분모는 또 있다. 100년 전 아르데코가 선진국, 그중에서도 가장 엘리트 집단을 구성하는 디자이너 사이에서 태동한 것처럼 메탈릭룩 역시 업계를 선도하는 주체에 의해 하나의 트렌드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빚어낸 글로벌 단위의 집단지성은 디자인 분야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 ㎚. 빛의 파장처럼 짧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1나노미터는 1미터의 10억 분의 1이다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