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술 제조 공정, 똑 소리 나게 바뀌었습니다”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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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공장 전수 우수 기업에 가다 - 전통주 제조 업체 '명인안동소주'

안동소주는 고려 시대 때부터 전승돼온 증류식 소주다. 예부터 임금에게 진상될 만큼 명성이 자자한 전통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안동 소주 공장이라고 하면 으레 전통적 주조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모든 업체가 그런 건 아니다. 전통적 체험 공간과 현대적 설비가 조화를 이룬 명인안동소주(경북 안동시 풍산읍) 사업장이 대표적. 삼성전자 뉴스룸이 아이리녹스에 이어 삼성전자 스마트공장 전수 우수 기업, 두 번째 주인공으로 여길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스마트공장에 대한 세간의 오해 중 가장 흔한 게 ‘스마트공장=자동화공장’이란 인식이다. 자동화 설비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 이런 통념은 더 공고해진다. 하지만 공장 자동화는 스마트공장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스마트공장의 정의는 보다 총체적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없는 자동화 설비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기왕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아래 박스 참조>. 취재는 지난 11일 명인안동소주 본사에서 진행됐다.

스마트공장

삼성전자가 정부(산업통상자원부∙경상북도)와 협업, 지방 기업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사업이다. △공장 운영 시스템 △제조 자동화 △공정 시뮬레이션 △초정밀 금형 등 4개 분야 중 지원 대상 업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 지원이 이뤄진다. 3년간 1000개사 지원을 목표로 진행 중이며 9월 15일 현재 완료 업체(724개)를 포함, 올해 말까지 1080여 개사 지원 달성이 예상된다

제조현장 혁신 활동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제조 현장으로서의 ‘기본’을 갖추는 활동이다. 스마트공장 지원 기업 중 대표이사가 희망하는 업체(9월 15일 기준 192개사)에 한해 삼성전자 전문 멘토 세 명이 짧게는 4주, 길게는 8주간 해당 기업에 상주하며 임직원에게 △공정 프로세스 개선 △생산성·품질 혁신 기법 전수 등 ‘삼성식(式) 제조 현장 노하우’를 전수한다


안동 명가 25대손 거쳐 ‘전통 방식 그대로’ 빚는 소주

박찬관 명인안동소주 대표

박재서 명인은 국내 최고(最古) 소주 명가 중 하나인 반남 박씨 가문 25대손으로 1995년 7월 나라에서 지정하는 ‘전통식품 명인 6호’가 됐다. ‘명인안동소주’란 이름으로 대규모 생산에 나선 건 1990년 5월, 제품은 1992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체계적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전통주 개념이 생소했을 때라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1995년 한 해 매출만 200억 원에 육박하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 박 명인의 뜻을 이어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아들 박찬관 명인안동소주 대표는 “자본금 40억에 직원을 86명이나 둔 적도 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브랜드화(化)된 전통주가 속속 출시되며 명인안동소주의 매출은 조금씩 주춤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찬관 대표는 2010년 지나치게 큰 기존 사업장을 정리하고 풍산읍으로 이전, 정착했다. 그 사이, 매출은 10억 원대까지 주저앉았다. 시설과 인원도 한창 때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는 ‘새 장소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각오를 다잡았다. 다행히 그 무렵, 정부가 전통주 활성화 사업에 힘을 실으며 새로운 판로 개척을 모색해볼 수 있게 됐다. 박 대표가 ‘단순히 제품만 잘 만들어선 승산이 없으니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자!’고 결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안동소주를 만들었던 전통 공간

대표적인 게 ‘상품 다변화’다. 안동소주는 본래 알코올 도수 45도일 때 맛과 향이 가장 좋다. 실제로 상당수 업체가 이 같은 이유 때문에 ‘45도 제품 단일 제조’를 고집해왔다. 하지만 박 대표는 날로 변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알코올 도수를 19도와 25도, 35도 등으로 달리한 제품을 속속 선보였다.

제품을 ‘체험’과 연계시키는 마케팅 전략도 도입했다. 양조장을 찾은 관광객이 안동소주의 이모저모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업장 공간 일부를 전통주 박물관으로 조성했다. 방문객이 막걸리나 청주를 옛 방식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이런 노력은 금세 성과로 이어졌다. 사업장을 방문한 고객이 저마다 특별한 경험을 갖고 돌아간 덕분에 제품 재구매율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아진 것.

운(運)도 따랐다. 2014년 한 커뮤니티 사용자 게시글에서 비롯된 일명 ‘안동소주 대란<아래 박스 참조>이 계기가 돼 회사 인지도가 급상승한 것. 늘어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 확장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무렵, 박 대표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전자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이었다.

안동소주 대란

한 소비자가 자신이 즐겨 접속하던 커뮤니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앞으론 위스키∙보드카 같은 양주 대신 안동소주를 마셔라. 향이 은은하고 맑은데다 숙취도 없어 깔끔하다.” 글을 본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호기심에 안동소주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기 시작했고, 마셔본 이의 호평이 이어지며 때 아닌 ‘안동소주 인증’이 앞다퉈 진행됐다. 인증 행렬에 동참하는 사람 수가 크게 늘며 급기야 공급 물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네티즌들은 이 사태에 ‘안동소주 대란’이란 명칭을 붙였다


“단순 
설비 지원인 줄 알았는데 전부 바꾸라 하더군요”

공장 설비를 점검해보는 박찬관 대표

물량은 늘어나는데 믿을 만한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기존 수작업 방식으론 까다로워지는 소비자 요구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그 즈음, 박찬관 대표의 눈에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이 들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작업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처음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땐 단순한 설비 지원 사업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 접어들고 보니 그저 자동화 라인을 설치하는 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삼성전자 멘토들은 제조 라인 구성에서부터 자동문 설치, 크고 작은 모니터링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개선 사항을 알려주며 함께 팔 걷어 붙이고 도와주셨어요. 그 조언을 모두 따르자면 돈도 적잖이 들어가 처음엔 고민이 많았습니다.”

박 대표의 고민은 비용 말고도 또 있었다. 스마트공장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지난해, 명인안동소주는 늘어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을 증축하고 있었다. 스마트공장 혁신과 신공장 증축, 두 가지 대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저희가 ‘도자기 용기 자동화 라인 구축’이란 기술 과제를 완료한 건 작년 9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설비를 만들어놓고도 꽤 오랫동안 가동하지 못했어요. 원래 신축 공장 건설이 완료되는 시점이 작년 10월이었는데 그걸 고작 한 달 앞두고 인근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거죠. 그래서 설계 마무리 작업까지 마친 신축 공장을 포기하고 내진(耐震) 설계가 포함된 방식으로 공장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이 겹치다 보니 심적으로도 힘든 나날이 이어졌죠.”

명인안동소주 공장 내부 모습

명인안동소주의 기술 멘토 중 한 명이었던 이상열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 위원은 “크고 작은 난관이 겹친 상황에서 박 대표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결실을 맺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화 라인 설치 단계에서 1주일에 이삼 일 가동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제작 지원’ 절차를 구축, 소비자의 요구 사항을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대표적. 삼성전자 멘토진의 의견을 적극 청취한 덕에 설비 구축 비용도 당초 예상보다 훨씬 저렴하게(8500만 원) 완성할 수 있었다.

“제조 공정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대표 모습 보며 신뢰 생겨”

이상열 위원에 따르면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의 성패는 첫째도, 둘째도 지원 대상 기업 대표의 자세에 달렸다. “일선 현장을 돌며 스마트공장을 홍보해보면 대표가 아니라 실무 담당자가 응대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은 성가신 가욋일일 뿐이죠. 그러다 보니 실제 결정권자인 대표에게 저희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어찌어찌 지원 대상에 선정된 후에도 현장에 나가보면 ‘마지못해 지원 받는다’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가 잦습니다. 그런 경우엔 저희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그게 실제 혁신으로 이어지긴 어렵죠.”

(왼쪽부터) 최영철 위원, 서병렬 파트장, 이상열 위원
▲(왼쪽부터) 최영철 위원, 서병렬 파트장, 이상열 위원. ‘확 달라진 명인안동소주’를 가능케 한 삼성전자의 기술 멘토들이다

하지만 “명인안동소주는 첫 방문 때부터 남달랐다”는 게 이 위원의 얘기다. “예전에도 다른 안동소주 제조 업체를 지원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느꼈던 인상과 명인안동소주의 인상은 판이했습니다. 대다수의 전통주 공장은 예전 방식을 고집스레 고수하기 때문에 설비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으려 합니다. 막상 현장에 가보면 제조 공정은 비위생적이고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죠. 그런데 박 대표님은 스스럼없이 제조 공정을 외부인에게 보여주더군요. ‘다른 건 몰라도 위생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구나!’ 싶었죠.”

명인안동소주 원자재 창고

물론 개선돼야 할 부분도 많았다. 역시 기술 멘토를 맡았던 최영철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 위원은 명인안동소주 임직원과의 첫 회의 당시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일종의 킥오프(kick-off) 회의였는데 박 대표님이 ‘완제품과 원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창고를 찾았는데 옛날 시골 광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원자재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제품 상태도 도무지 판단할 수 없었죠. 원자재와 완제품 배치 모두 한 명이 관리하는 상황이었고요. 고심 끝에 △창고 위치 표준화 △재고 관리 절차 수립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을 제안, 누구나 물류 흐름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조언했습니다. 그 밖에도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았는데 다행히 대표님이 흔쾌히,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덕에 다른 업체에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멘토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제품 자동 생산 등 성과로 15억 이상 매출 신장”

명인안동소주 제조 현장

박찬관 대표가 꼽는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의 최대 장점은 ‘생산 효율성 향상’이다. “삼성전자를 만난 후 작업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그 덕에 생산 효율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성과는 매출 향상으로 이어졌죠. 스마트 공장 도입 전 10억 원에서 15억 원 사이를 오가던 매출이 올해는 25억 원, 많게는 30억 원까지 올라갈 것 같습니다.”(웃음)

서병렬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 파트장은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 이후 명인안동소주가 동종 업체가 달라진 ‘포인트’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가장 큰 변화는 도자기 제품 제조 라인을 자동화한 겁니다. 명인안동소주에서 생산하던 알코올 도수 45도짜리 도자기 용기 제품의 경우, 시장 수요가 꾸준해 반드시 제조해야 하지만 매끈하지 않은 외형 때문에 자동화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제품 출하에 시간이 많이 걸렸죠. 더욱이 용기가 불투명하다 보니 술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워 뚜껑을 씌우기 전 일일이 육안으로 살펴야 했습니다. 삼성전자 멘토들은 이 부분에 주목, 도자기 용기 제품 자동화 라인을 개발했죠. 그 밖에 제품 생산 과정을 단계별로 점검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나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상세 내용은 아래 박스 참조>

명인안동소주,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을 만난 후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변화 하나_술 주입량, ‘만년필 잉크 넣는’ 방식서 착안해 자동화

명인안동소주의 변화인 피스톤 필러

생산되는 제품 중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낮은 건 유리병에 담기기 때문에 자동화 라인을 적용하는 게 큰 무리가 없었다. 반면, 45도주 제품은 도자기병에 담겨 선물용으로 판매돼 용기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자동화 라인 구축’ 작업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멘토들이 중점적으로 고려한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만년필에 잉크를 넣을 때 자주 사용되는 일명 ‘피스톤 필러’ <위 사진 속 원 안> 방식을 도입해 병 하나당 들어가는 술 주입량을 일정하게 맞췄다. 둘째, 이제까진 술을 주입한 후 코르크 마개를 고무망치로 두드려 끼워왔지만 이 작업 역시 기계가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코르크 마개가 끼워진 용기에 필름을 씌운 후 일일이 열풍기를 쬐어 비닐을 수축시켰던 게 기존 방식이라면 혁신 이후엔 컨베이어 라인에 히터를 설치, 병이 자동으로 히터를 지나며 열풍기 역할을 대신하도록 했다.

변화 둘_특유의 맛 지키는 ‘40일 발효 공정’ 실시간 모니터링

명인안동소주 40일 발효 공정 실시간 모니터링 중인 발효 공정

특정 제조업체를 방문, 창고나 생산 공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게 돕는 일은 여느 스마트공장 지원 대상 기업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명인안동소주엔 ‘플러스 알파’가 있다. 안동소주 특유의 맛을 좌우하는 자체 발효 공정을 시스템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한 것. 명인안동소주의 전 제품은 40일간의 발효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하지만 스마트공장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떤 술이 어느 발효통에서 며칠째 발효되고 있는지’는 오로지 담당자 본인만 알았다. 박찬관 대표조차 발효 공정이 궁금하면 담당자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니터링 시스템<위 사진>이 도입되며 임직원 누구나 공정 진행 상황을 손쉽게 확인,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삼성에서 배운 것, 다른 전통주 업체에도 널리 알리고파”

명인안동소주 대표와 삼성 스마트공장위원들

박찬관 대표의 바람은 명인안동소주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명주(名酒)로 거듭나는 것, 그리고 스마트공장으로의 혁신 경험을 다른 동종 업체에 최대한 널리 알리는 것이다. “친환경적으로 제조되는 우리 전통주를 보다 많은 소비자가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저와 저희 회사가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 예로 지게차 드나드는 문을 자동문으로 바꾸기만 해도 먼지 발생량이 눈에 띄게 줄더라고요.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긴데 저만 해도 삼성전자 멘토가 조언해주기 전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좋은 아이디어는 준비된 환경에서 나온단 사실을 새삼 실감했죠. 우리나라 전통주 업체들이 기존의 폐쇄적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스마트하게’ 바뀌도록 저부터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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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뉴스 > 상생/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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