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술 혁신, ‘삼성전자 맥가이버’ 덕 좀 봤습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안경남<위 사진> 위더스코리아 대표는 빗자루를 손에 쥐고 대표이사실 청소를 시작합니다. 각종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조금 무리하면서까지 시간을 내는 이유는 얼마 전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섭니다.
위더스코리아는 충남 논산시에 위치한 면테이프 제조 업체입니다. 올 1월 삼성전자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추진 중인 스마트공장 사업 ‘제조자동화’ 부문 대상 기업에 포함됐죠. 5월엔 삼성전자가 주관하는 ‘제조현장 혁신활동’ 대상자로도 추가됐습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위더스코리아에 ‘제조 혁신 DNA’를 이식하기 위해 전문 멘토단을 파견, 각종 지원에 나섰습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효율적 제조 공정 개발과 공장 내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죠.
스마트공장
삼성전자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방 기업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사업입니다. △공장 운영 시스템 △제조 자동화 △공정 시뮬레이션 △초정밀 금형 등 4개 분야 중 지원 대상 업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 지원이 이뤄집니다
제조현장 혁신활동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제조 현장으로서의 ‘기본’을 갖추는 활동입니다. 스마트공장 지원 기업 중 희망 업체를 대상으로 선정하며, 최종 선정 업체엔 삼성전자 전문 멘토 3명이 약 8주간 파견, 해당 기업 임직원에게 △공정 프로세스 개선 △생산성·품질 혁신 기법 전수 등 ‘삼성식(式) 제조 현장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안경남 대표가 ‘아침 집무실 청소’에 나선 것도 그 즈음부텁니다. 제조 혁신과 청소, 언뜻 전혀 무관한 듯 보이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무실을 청소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느낀다”는 안 대표의 얘기, 그 행간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혁신 돕겠다고 온 사람들이 왜 청소만 하고 있지?’
지난 5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 공장을 둘러보던 안경남 대표는 생소한 광경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 셋이 기계 밑에 들어가 시커먼 때를 벗겨내고 있었던 거죠. “삼성전자에서 왔다”는 그들의 인사를 받고 나서야 안 대표는 아차, 싶었습니다. ‘맞다, 오늘부터 우리 회사 제조현장 혁신활동 지원하러 삼성전자 멘토들이 오기로 했지! 그런데 제조 혁신 때문에 왔다는 사람들이 왜 청소를 하고 있을까?’
바로 그때, 그는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희 셋이서 넓은 공장 청소를 모두 하긴 버거우니 1주일에 두 번 정도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 9일 취재진과 마주한 안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삼성전자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대뜸 지저분한 기계 밑에 들어가 5년 이상 묵은 때를 벗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던 게 사실”이라며 “대체 뭘 하려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반신반의했지만 기왕 스마트공장 도입을 결심한 만큼 일단 힘을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테이프에 접착제를 바르는 공간의 개선 전(왼쪽 사진)과 후 모습. 기기에 페인트를 칠해 깔끔하게 만들었고 안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구동 체인 커버도 추가로 부착했습니다
원단 보관 방식도 변경 전(왼쪽 사진)과 후 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보관 랙(rack)을 설치, 이전 대비 두 배가량의 보관 공간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쓰임새에 맞는 원단을 찾는 데 들이는 시간도 90% 가까이 줄였습니다
이튿날부터 안경남 대표를 비롯한 위더스코리아 임직원이 공장 청소 작업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 천종태 차장, 곽태영∙배석우 과장 등 삼성전자 창조경제지원센터 스마트공장실행팀 소속 세 멘토와 합심해 기계 곳곳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설비와 자재도 정돈했죠. 그렇게 2주쯤 흘렀을까요, 사업장 내엔 신기하게도 어떤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공간이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그전까진 눈에 띄지 않던 직원들의 동태가 하나둘 드러나게 된 거죠.
▲삼성전자 파견 멘토들은 제조 혁신에 필요한 도구를 대부분 손수 만들어 씁니다. 위더스코리아 임직원은 그들에게 ‘맥가이버’란 별명을 붙여줬죠. 기존 장비(왼쪽 사진)보다 4배 더 많은 물품을 나를 수 있는 자재 운반 도구 역시 ‘삼성전자 맥가이버’의 작품입니다
이후 위더스코리아의 제조 혁신 작업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불필요한 동선을 최소화하고 업무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속속 구체화되기 시작했죠. 자재 운반에 쓰이는 소형 수레, 일명 ‘대차’가 신형 장비로 대체된 게 대표적 예입니다. 삼성전자 멘토들이 직접 만든 이 장비는 기존 대차보다 네 배 더 많은 자재를 탑재할 수 있어 자재 운반에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상황에 따라 갈아 끼워야 하는 부품을 단일형으로 개조, 번거로운 부품 교체 절차를 건너뛸 수 있게 되기도 했죠. 안경남 대표는 “공장이 깔끔하게 정리되니 개선해야 할 부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성과도 나오더라”며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오던 일들이 단시간 내에 이뤄지는 모습이 무척 놀라웠다”고 말했습니다.
약 9주간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과 위더스코리아 임직원이 개선한 사항은 200개를 훌쩍 넘겼습니다. 안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당연시해온 일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몸 사리지 않고 진심을 다해 도와준 삼성전자 측에 너무 큰 고마움을 느꼈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안경남 대표는 “몸 사리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삼성전자 측에 정말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은 천종태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 차장과 안 대표, 김동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실행팀 과장(왼쪽부터)
위더스코리아의 스마트공장 선정과 이후 변화를 통해 안 대표가 얻은 교훈은 또 있습니다. ‘열 마디 말보다 작은 실천 하나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거죠. “사실 삼성전자 멘토들이 저희에게 어떤 지시를 내린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적 역시 없고요. 그저 본인들이 앞장서서 업무 효율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지 보여줬을 뿐이죠. 요즘 제가 매일 아침 집무실을 청소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혁신은 행동에서 나온다’는 교훈을 직원들에게 몸소 보여주고자 하는 거죠.”
테이프 두께 측정 시스템 도입으로 불량률 75% ↓
▲위더스코리아는 테이프 두께 측정 시스템 도입으로 품질 향상과 생산량 증대 등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습니다. 위 사진 빨간색 원 부분이 해당 기기. 좌우로 반복 이동하며 균일한 두께가 확보되는지 점검합니다
스마트공장 지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며 위더스코리아가 얻은 대표적 성과는 제조 자동화에 필요한 기반을 확보한 겁니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다양한 기술 과제 지원을 통해 불량률 감소와 품질 향상 등 다방면에서 위더스코리아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요. 대표적인 게 테이프 두께 측정 시스템 도입입니다.
기술 과제 지원을 담당한 양승영 부장과 김동인 과장 등 삼성전자 창조경제지원센터 스마트공장실행팀 파견 멘토들은 사전 조사를 거쳐 ‘면 접착 테이프 두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는데요. 테이프 두께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 불량품이 발견되는 즉시 조치할 수 있도록 한 거죠. 결과는 ‘대성공’. 위더스코리아는 테이프 두께 측정 시스템 도입으로 공정 불량률을 75%, 시간당 생산량을 11% 각각 개선시켰습니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품질은 오히려 더 높인 셈이죠.
▲이용관 위더스코리아 상무가 스마트공장 사업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안경남 대표는 “7개월간의 스마트공장 사업 노하우를 발판 삼아 위더스코리아를 1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위더스코리아는 동남아 시장에서 50%, 유럽에서 1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 중일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그 품질을 인정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기업용 테이프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등 후발주자의 약진이 계속되며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 대표는 “후발주자들의 경쟁을 뿌리치고 시장 점유율을 올리려면 제조∙마케팅 분야에서의 체질 개선이 필수”라며 “스마트공장 도입을 통해 제조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이제껏 다른 기업이 도전하지 못했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위더스코리아는 스마트공장 과제가 끝난 이후에도 자체 개선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는 등 삼성전자의 혁신 DNA를 계승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데요. 80여 개의 추가 개선사항을 자체적으로 발견, 조치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달성했습니다.
전국 295개 기업 혜택… 내년까지 1000개 지원 목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개월간 위더스코리아는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최신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됐는가 하면 공장 환경도 몰라보게 개선됐죠. 이 같은 변화가 누구보다 흐뭇한 건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동고동락한 삼성전자 멘토들이었습니다.
양승영 부장과 김동인 과장은 위더스코리아의 변화에 대해 “지역 중소기업이 새로운 시도에 나선 계기를 제공했단 점에서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며 “앞으로도 (담당 지역인) 충남 소재 기업을 좀 더 많이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천종태 차장은 “다양한 곳에서 현장 혁신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결국 사업의 성패는 임직원의 의지에 달려있더라”며 “위더스코리아 역시 임직원의 합심과 노력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만큼 앞으로도 끊임없는 혁신 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위더스코리아의 제조 혁신을 일군 주역들. (왼쪽부터)천종태 차장, 안경남 대표, 양승영 부장, 김동인 과장
지난해 경북지역에서 첫발을 뗀 스마트공장은 올해 적용 규모가 전국 단위로 확산되며 각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요. 2016년 7월 말 현재 전국 295개 기업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 혜택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총 1000개 기업에 제조 노하우를 전수, 지역 업체들의 경쟁력 제고에 힘쓸 방침입니다. 삼성전자 멘토와 임직원의 특별한 노력으로 혁신 기업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위더스코리아처럼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스마트공장 사업을 거쳐 특별한 변화를 이뤄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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