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興)부자 어르신들, ‘달리는 복지관’ 탑승 완료!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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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너와 나의 꿈을 나눔 “인권 사각(死角)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도 살기 좋은 사회,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삼성전자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나눔과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이후 복지∙문화∙환경∙기술 등 분야별 사회 이슈를 함께 해결할 비영리단체 탐색만 3년여, 그 사이 나눔과꿈은 연(年) 100억 원 규모의 국내 최대 사회복지 공모 사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지난 3년간 사회 곳곳에 스며든 나눔과꿈의 흔적을 찾아가는 기획 연재 ‘너와 나의 꿈을 나눔’을 마련했다. 오늘은 아이티로 시각장애인사회적협동조합에 이은 우수 시행 기관 현장 탐방 2탄, 충남 예산군 일대를 달리는 ‘이동형 노인복지관’ 해피버스데이 편이다.움직이는 노인복지관 해피버스

섭씨 40도를 훌쩍 웃도는 기록적 폭염으로 대한민국 전역이 펄펄 끓었던 지난 1일 오전, 낙상2리 마을회관(충남 예산군 덕산면) 앞에 하늘색 대형 버스 한 대가 들어섰다. 겉면엔 ‘해피버스데이(Happy Bus Day)’란 글자가 선명했다. 뒤이어 자녀나 친구 손을 꼭 잡은 어르신이 속속 도착했다. 버스 안에선 이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버스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저, 실례합니다!”

해피버스데이 농촌 소외 지역 거주 노인의 복지관 이용 접근성을 높이고 복지 서비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동형 노인복지관’ 형태로 특수 제작된 버스. 면밀한 지역조사를 바탕으로 선정된 서비스 소외 지역을 찾아 △노래 교실 △치매 예방 교실 △관계 형성 프로그램 △영화 관람 등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지 반응 들어보니
“칠십 평생 이런 재미는 처음”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최고 보약”

수업 중 율동중인 어르신들

편백[1] 향이 상쾌한 버스 내부는 좌석을 전부 치운 채 사랑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아까 마주쳤던 어르신들은 어느새 양쪽으로 길게 앉아 얘기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이날 준비된 프로그램은 ‘두뇌 운동 교실’. 오랜 독거 생활로 야기될 수 있는 치매와 판단력 결핍을 예방하는 데 ‘딱’인 수업이다. 어르신들은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60분 남짓 동안 △건강 율동 △명상과 호흡 △퍼즐 게임 등의 활동을 즐겼다.

“버스가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시간을 비워놓는다”는 하택진(93)씨는 김경순 강사도 인정하는 ‘모범 학생’이다. “처음 뵀을 땐 수업 따라오는 속도가 좀 더디셨어요. 그런데 갈수록 눈에 띄게 발전하시더라고요.” 김 강사는 “수업에서 다루는 게임은 단순해 보여도 하나같이 기억력이나 인지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며 “다양한 시설을 돌며 강의하고 있는데 해피버스데이 프로그램처럼 성취감이 큰 경험은 없다”고 귀띔했다.


▲이날 여러 게임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뽐낸 하택진씨. 수업 초반 손가락을 펴는 동작도 어려워했던 그는 어느새 ‘종이컵 쌓기’ 게임의 달인이 됐다

▲이날 여러 게임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뽐낸 하택진씨. 수업 초반 손가락을 펴는 동작도 어려워했던 그는 어느새 ‘종이컵 쌓기’ 게임의 달인이 됐다


해피버스데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은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다. 취재진이 참관한 수업에서도 어르신들은 연신 “(좀 느려도) 괜찮다” “천천히 하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강순례(84)씨는 “매주 버스를 타다 보니 이젠 여기가 내 사랑방”이라며 “(해피버스데이) 덕분에 자주 웃게 됐고 보약 같은 친구들도 여럿 사귀었다”며 고마워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수업 현장

사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문화 생활은 ‘그림의 떡’이었다. 여가를 즐길 여유를 갖기는커녕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도입 초기, 주민들은 반신반의했다. 이희옥(74)<위 사진 가운데>씨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요즘 그는 ‘해피버스데이 전도사’를 자처한다. “칠십 평생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엔 좀 심드렁했죠.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몇 달 해보니 재밌어요. 사는 게 더 즐거워졌다고 해야 하나? 요즘은 다른 마을 사람들도 우릴 엄청 부러워한다니까.”(웃음)

이렇게 기획됐습니다
8년차 사회복지사의 ‘드림 프로젝트’… “최종 목표는 어르신 자활”

해피버스를 기획 운영중인 김윤진 과장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산군에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이 적지 않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두 차례씩 ‘해피버스’가 찾아가는 마을 역시 대부분 이런 곳이다. 이날 오전, 수업 시작 시각(10시)보다 30여 분 일찍 도착해 어르신 맞을 준비로 분주했던 김윤진(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사회참여지원과)<위 사진>씨는 “한 분이라도 더 찾아 뵈려면 쉴 새가 없다”며 연신 굵은 땀방울을 닦았다. “단순 서비스 제공에 그치곤 하는 기존 복지 프로그램이 늘 아쉬웠다”는 그는 2016년 나눔과꿈 사업 공모를 보고 해피버스데이 프로그램을 기획, 여기까지 이끌어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사가 된 지 올해로 8년째인 그는 “지역 노인 복지 사업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제일 절실한 게 어르신 간 관계 형성 문제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럴듯한 서비스만 제공하고 떠나버리면 남은 어르신들의 상실감이 너무 큽니다. 관계 형성에 주력한 프로그램을 개발,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의 사회성 개발에 도움을 드리고 싶어 해피버스데이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그의 설명처럼 이날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어르신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 마을회관을 자리를 옮겨 과일을 깎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함께’라고 해야 밥 먹고 TV 보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혼자서’에서 ‘다같이’로의 변화는 꽤 커 보였다.

▲프로그램 종료 후 맞은편 마을회관으로 걸음을 옮기는 낙상2리 어르신들. 해피버스데이 운영 전까지만 해도 마을회관을 찾는 지역 노인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

▲프로그램 종료 후 맞은편 마을회관<오른쪽 사진>으로 걸음을 옮기는 낙상2리 어르신들. 해피버스데이 운영 전까지만 해도 마을회관을 찾는 지역 노인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

요즘에야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러브콜’에 응답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지만 처음 나눔과꿈 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 ‘터’를 닦는 과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플랫폼’ 역할을 할 버스 내부를 편백으로 장식해줄 업체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았고, 프로그램의 성격을 알 리 없는 어르신을 버스로 모셔오기 위해 예산군 일대를 샅샅이 훑어가며 참여 독려에 나섰다. “초기엔 주변에서도 ‘쉽지 않은 사업이 될 것’이란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해피버스데이를 왜 기획하게 됐는지 계속 떠올렸어요. ‘어르신들이 스스로 마을 조직을 이끌게 될 순간’만 그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죠.” 김윤진씨는 “나눔과꿈 덕에 큰 금액을 지원 받고 많은 걸 시도하게 된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노인 복지에 대한 지역사회 인식 전환까지 이뤄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피버스데이와 함께하는 사람들 양인모(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버스 운전 담당) “알록달록 커다란 버스가 마을 여기저기 다니니 많은 분이 관심을 보이세요. ‘우리 동네에도 좀 와주면 안 되느냐’란 민원(?)도 많이 받죠. 휴가 한 번 맘대로 못 내는 강행군이 2년째 계속돼 고단하긴 해도 보람 있습니다. 앞으로도 예산 군내 곳곳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김경순(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수업 진행 담당) “혼자 사는 어르신 중엔 유독 마음이 닫힌 분이 많아요. 그래서 제 수업 중엔 서로 칭찬하고 안아주는 활동이 꼭 포함되죠. 처음엔 어색해들 하시지만 이내 적응하고 친해지세요.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버스데이, 예산에 거주하시는 어르신 모두가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운영진의 중간평가는
홍보대사’ 자처하는 주민들 인상적… “지역 발전 이끌 시발점 되길”

좁은 시골길을 누비고있는 해피버스

해피버스가 좁은 시골길을 오간 지도 벌써 1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 제법 많은 게 바뀌었다. 삶이 무료하고 적적하던 지역 어르신들의 일상이 다채로워진 건 말할 것도 없다. 또 하나 인상적인 변화는 앞다퉈 ‘해피버스데이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선 주민들. 김윤진씨는 “주민들의 입소문이 워낙 막강해 홍보물 제작이 필요 없을 정도”라며 “실제로 지난해 배정했던 홍보 팸플릿 인쇄 예산을 올해는 전부 프로그램 기획 쪽으로 돌려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배경진(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사업본부)씨에 따르면 이 같은 변화는 나눔과꿈 사업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지역사회 문제 중 상당수는 거주민의 인식 변화만으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여요. 제일 심각한 건 개선의 필요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죠. 그런 의미에서 나눔과꿈 지원 사업이 지역 거주민의 태도 변화와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선순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는 어르신들

지난 1년간의 안정적 운영 성과를 인정 받은 덕에 해피버스데이의 유명세는 지역사회를 넘어 이미 ‘전국구’ 수준이다. 움직이는 형태의 복지관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해피버스데이의 경우, 체계화된 프로그램(소프트웨어)에 승부를 건 점이 주효했다. 실제로 이날 진행된 두뇌운동교실을 비롯, △노래 교실 △친구 만들기 △버스 영화관 같은 프로그램은 예산군 거주 노인들에게 다채로운 외부 활동 기회를 제공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김윤진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기저기서 자문 요청을 받곤 한다”며 “해피버스데이와 유사한 형태의 문화 복지 프로그램이 좀 더 널리 전파될 수만 있다면 내가 축적한 노하우를 뭐든 적극 공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총 3년간 3억5000만여 원을 지원 받기로 하고 시작된 해피버스데이는 이제 슬슬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큰 숙제는 예산 지원이 종료된 후에도 프로그램이 문제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자생(自生) 모델’을 구축하는 것. 일명 ‘사랑가득마을’ 프로젝트는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결과물이다. 김윤진씨는 “버스 안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소외 지역 어르신과 지역 주민을 연결, 탄탄한 마을 공동체를 꾸리는 게 사랑가득마을의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올 하반기부터 △일손 품앗이 △꽃길 가꾸기 △마을 환경 정화 등 한층 확장된 프로그램으로 ‘더 큰 나눔과꿈’ 실현에 나설 계획이다.

어르신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규모가 작아서, 예산이 없어서, 참여율이 저조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돼온 걸 바꾸는 데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농번기엔 땡볕 아래서 종일 농사만 짓고, 어쩌다 시간이 나도 누려야 마땅할 문화 혜택에서 소외되는 어르신들을 지켜보는 게 너무 안타까워 해피버스데이를 기획했다”는 김윤진씨처럼 말이다. 그의 강단 있는 소신이 한 지역사회를 유의미하게 바꿨듯 ‘기분 좋은 변화의 파장’을 만들어낼 누군가는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건 나눔과꿈 사업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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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扁柏. 측백나뭇과의 상록 교목. 목재의 질이 좋기로 유명해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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