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두겠다 소리치고 돌아온 날, 밤새 아이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연재를 시작하며
“네가 얻는 걸로 네 생계가 꾸려진다. 그리고 네가 누군가에게 주는 걸로 네 삶이 이뤄진다.” 노벨문학상(1953) 수상자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말처럼 가치 있는 삶은 타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헌신’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공존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매해 국내 임직원의 90% 이상이 연평균 10시간 남짓을 투자해 크고 작은 사회공헌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지난 1994년 출범한 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옛 사회봉사단사무국)은 180여 개 해외 법인, 8개 사회공헌센터와 손잡고 24년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나눔과 공생의 기업가치를 실천해오고 있다.
사실 사회공헌 활동의 면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숫자도, 그래픽도 아니다. 그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봉사를 실천하는 임직원’을 만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봉사왕을 만나다’는 이 같은 취지 아래 출발한 3부작 연재. 총 인터뷰이만 일곱 명에 이르는 이 대형 기획의 첫 회차는 ‘교육기부’ 편이다.
▲김정수씨는 1주일에 한 번 수원 구운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야말로 내겐 진정한 ‘힐링 타임’”이라고 말했다
“(교육기부를 시작한 지) 올해로 벌써 6년째네요.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이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죠.”
김정수(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2실)씨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주 1회 구운지역아동센터(경기 수원시 권선구 구운로)에서 공부방 학습지도 봉사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가 돌봐야 할 학생은 학교나 사회에서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아이들. 초기엔 당장 ‘접근 방식’부터 막막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돌아와도 누구 하나 챙기는 이 없는 처지에 놓여있어요. 자연히 방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죠. 고심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적어도 내가 데리고 있는 동안만큼은 이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도와주자’는 거였습니다.”
사실 정수씨의 ‘나눔’은 그 역사가 오래다. 대학 시절부터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2005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엔 시각장애인용 오디오북 제작 동호회 ‘메아리’ 회원으로도 활약했다. 그중에서도 (학습 지도를 통한) 교육기부는 그 모든 봉사를 통틀어 그가 가장 꾸준히 해오고 있는 활동이다.
비록 첫 관계는 ‘교사 대(對) 학생’이었지만 그가 생각한 자신의 역할은 단순히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것, 그 이상이었다. “뭔가를 가르치고 성적을 올리기에 앞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함께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아이들이 ‘내가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구나!’ 느끼도록 해주려 애썼죠.”
▲김정수씨는 수업 틈틈이 아이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는 “공부에도, 자신의 미래에도 무관심하던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서서히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줄곧 정수씨는 ‘개인 시간을 좀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사내 사회공헌 담당 부서에서 학습지도 봉사 참여를 권하는 이메일을 받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막연한 기대로 시작한 봉사 활동은 그에게 뜻밖의 활력소를 제공했다. 그는 말하자면 ‘친구 같은 교사’다. 아이들을 훈계하거나 계도하는 대신 눈높이를 맞추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때론 수업 진행을 포기한 채 아이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올인’ 하기도 했다.
변화는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찾아왔다. 묻는 말에 답하기조차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 것.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며 미래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꿈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2년을 넘어서자, 정수씨가 맡았던 10여 명은 하나같이 ‘꿈’을 품은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훌쩍 커버린 키만큼이나 생각도 성숙해졌다. 그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다”며 “특히 ‘나중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선생님 후배가 되겠다’던 한 친구의 말은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삼성전자 수원사회공헌센터 주관으로 진행 중인 볼런테인먼트[1]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제까지보다 적극적인 봉사 활동 참여를 계획하고 있다. “흔히 ‘봉사’라고 하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남에게 베푸는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 반대예요. 매번 느끼지만 봉사의 열매는 결국 제게 돌아오더라고요. 봉사에선 시혜자가 곧 수혜자인 셈이죠.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늘 봉사를 권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1] 자원봉사(volunteering)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 ‘신나고 즐겁게 펼치는 자원봉사’를 일컫는다
▲유동일씨의 교육기부 활동은 올해로 10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사회공헌은 거창한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죠? 지금은 보여드릴 만한 게 없는데….” 유동일(삼성전자 반도체총괄 메모리제조센터)씨는 안양여자청소년자립생활관(경기 안양시 호성로)에서 교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속해있는 동호회 ‘그루터기’는 소년원 출소 청소년의 고졸학력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교육기부 동호회. 1997년 설립돼 올해로 설립 21년째를 맞는다.
사실 취재진이 동일씨에게 연락을 취한 5월 초는 고졸학력검정고시 직후여서 그루터기 활동이 ‘일시 중단’ 되는 기간이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일종의 ‘방학’이기 때문. 그는 “다행히 지난달까지 가르친 학생들이 전원 이번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성과를 거둔 건 아니었다. “공부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품는 친구가 많았어요. 근데 정말 중요한 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에요. 본인이 (공부하겠단) 마음을 먹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으로 노력하고, 그게 (시험 합격이란)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해보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동일씨가 꼽는 그루터기 활동의 최대 의의는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차례 사회에서 고립됐던 아이들, ‘다신 뭔가 이뤄낼 수 없고 사회 속에 동화되지도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너희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 그리고 저와 함께 활동 중인 그루터기 회원 20여 명에게 봉사란 단순히 시간과 재화를 나눠주는 것보다 훨씬 값진 일입니다.”
▲유동일(사진 왼쪽)씨가 ‘그루터기’에서 함께 학습지도 봉사를 펼치고 있는 회사 선배 이천안(반도체총괄 메모리사업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달까지 가르쳤던 학생들은 전원 고졸학력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지난 2008년 미혼모 보호 시설 홀트재단에서 시작된 동일씨의 봉사 활동은 올해로 벌써 10년째에 접어들었다. 봉사에서 그가 최고로 꼽는 가치도 ‘지속성’이다. “1회성 봉사와 지속적 봉사는 뭐니 뭐니 해도 파급력 측면에서 그 차이가 상당해요. 봉사 활동의 가치는 나비효과처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배가되거든요.”
그루터기 내 ‘베테랑 교사’인 동일씨에게도 첫 수업은 언제나 어렵다. “매 학기 첫 수업, 특히 수학 수업은 늘 좌절과 함께 시작하곤 해요(웃음). 학생들은 교사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 답답하고 교사들은 ‘이번 학기는 또 어떻게 나려나’ 싶어 착잡하죠. 늘 비슷한 유형이 반복돼요.”
‘투입’과 ‘산출’이 확실한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봉사 현장의 시간은 영 더디게 흘러간다. 더욱이 빠르고 정확한 업무를 중시하는 삼성전자 기업 문화에 익숙해있다 아이들과 마주하면 이유 없이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떨 땐 자신도 모르는 새 ‘이 정도 시간을 투자했으면 이 정도는 이뤄야 하는 것 아냐?’ 하며 효율성을 따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쓴다. “봉사 활동의 성과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면 십중팔구 실망하고 좌절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봉사의 진짜 의미는 출발점, 그러니까 수업 그 자체에 있어요. 그걸 깨닫기까지 2년 넘게 걸렸네요.” 그는 “한두 시간 수업으로 아이들이 확 달라지진 않지만 한 학기 내내 꾸준히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학습 효과도 몰라보게 커진다”며 “그런 변화가 (성과에 대한) 내 조급증과 강박 관념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봉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고 귀띔했다.
▲3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새강지역아동센터 앞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한 스기하라씨. “봉사, 늘 쉽고 즐겁기만 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가끔 아이들이 건네는 ‘고맙다’ 한 마디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풀립니다.”
“솔직히 힘들 때 많죠. 그만두고 싶은 적도 여러 차례였고요.” 스기하라 히로유키(Sugihara Hiroyuki,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LSI사업부)씨의 ‘고백 아닌 고백’은 좀 놀라웠다. 취재진이 만난 임직원 중에서도 봉사 시간이 긴 편에 속했고, 그 성과를 인정 받아 상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연재 주제인 ‘봉사왕’에 마침맞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인 그는 올해로 3년째 새강지역아동센터(경기 화성시 동탄중앙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목은 ‘일본어 기초 회화’. 수업은 매주 한 시간씩 진행된다. 일본에서도 봉사 활동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사실 ‘타의(他意)’에 가까웠다.
스기하라씨는 한∙일 임직원 간 교류 증진을 목표로 개설된 사내 모임 ‘요키토모 한일교류회’ 초기 멤버 중 한 명이다. 처음엔 그저 ‘소규모 동호회 하나 만들자’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사팀 담당자에게서 “단순히 어학 공부나 친목 도모만을 위한 동호회 결성은 안 되니 취미든 봉사든 ‘테마’를 정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봉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동호회를 만들기 위해 봉사를 시작한 셈이다.
난생처음 해보는 봉사였지만 걱정은 별로 안 했다. 그리 힘들 것 같지 않았고, 뭣보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모국어(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쯤이야!’ 싶었다. 하지만 웬걸, 그는 첫 수업에서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가장 힘든 건 도통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이었다. 몇몇 학생은 아예 대놓고 수업을 방해했다. “수업 도중 도저히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해 센터장에게 ‘오늘은 못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당시엔 너무 화가 나 봉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더라고요.”
▲사내 모임 ‘요키토모 한일교류회’ 소속 동료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 중인 스기하라씨. 그는 매주 화요일 새강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아이들에게 일본어 회화를 가르친다
사실 ‘주 1회 봉사 참여’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봉사 시간은 60분에 불과하다지만 수업을 준비하고 교실을 오가는 데만 해도 만만찮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 봉사를 다녀와 녹초가 된 아버지를 본 스기하라씨의 중 2 딸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그만두지 않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을 끝내고 돌아서는 길, 그의 눈엔 아이들이 자꾸 밟혔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부분 맞벌이 부모를 둬서, 혹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제대로 된 방과 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집 자녀였다. 장난이 심하긴 해도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써 내려갈 땐 그렇게 진지할 수 없었다. 결국 스기하라씨의 발걸음은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진심은 개구쟁이 아이들도 조금씩 바꿔놓았다. 아이들은 어설프긴 해도 조금씩 기본 회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툭하면 스기하라씨 뒤통수로 날아들던, 짓궂은 농담도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수업 도중 말썽을 가장 많이 일으켰던 한 남학생은 학기 말 ‘롤링 페이퍼’에 “사실은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수줍은(?) 사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제일 뿌듯한 건 아이들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남아있던, 일본인에 대한 오해나 거부감이 사라졌단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스기하라씨에겐 새로운 바람이 하나 생겼다. “제 봉사가 최근 급격히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훗날 자라 ‘내가 어릴 때 만났던 스기하라 선생님을 떠올리면 일본인은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추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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