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일깨우는 장인의 혼, 국가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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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배너 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백두대간의 중심 경상북도 문경, 험준하지만 수려한 산세가 장인의 풍모를 닮은 이곳에 국가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의 ‘영남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7대째 이어 오는 가업인 도자 작업을 계속하며 흙과 불이 빚어내는 예술의 경지를 구축해 온 김정옥 선생을 삼성전자 뉴스룸에서 만나 보았습니다.

60년 세월을 하루같이 물레를 돌리고 불을 지피며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도자 부문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이기도 한 백산 김정옥 선생에게 도자기는 가족의 역사이자 삶 그 자체입니다. 조선 시대 왕실의 도자기를 만들었던 최고의 사기장 중 한 분인 김비안 사기장(5대, 김정옥 선생의 조부), 그리고 선친인 6대 김교수 사기장의 재능이 7대 김정옥 선생에게도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25 동란 및 근대화를 거치며 가문의 업인 도자기의 명맥은 위태로워졌습니다. 가벼우면서도 저렴한 소재의 식기가 많이 개발되며 도자기는 무겁고 불편한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옥 선생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가마를 지키며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선친께서는 경기도 광주 관요(왕실 납품 도자기 작업장)에서 갈고닦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백자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문 사람들이 몸으로 익힌 기술과 전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말씀이셨죠. 60년 동안 다른 길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이 일은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명감이 몸에 밴 까닭이겠지요.”

흙과 불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 쉬고 싶다고 흙을 미뤄 두거나 가마의 불을 끌 수 없습니다. 흙이 부를 때 빚으러 가고 불이 부를 때 지키러 간 60년 세월 동안 김정옥 선생이 지켜 온 조선백자의 전통과 가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전통 도자 작업이라고 하면 옛날 방식 그대로만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은 오랜 시간을 거쳐 여러 사람의 경험이 응축된 결과물이며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수 백 년에 걸쳐서 했던 최상의 경험들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대 사기장께서 전하신 방식에 제 나름의 기술을 더해 후손에게 물려 주고, 후손은 다시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참된 전통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세월 속에 머무르거나 자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새로움을 추구해 온 백산 김정옥 선생.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젊은 세대와의 교류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전통을 이어 가는 선생의 에너지 덕분일 것입니다.

 

수많은 노력과 도전이 있어야 완성되는 달항아리처럼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도자기를 만들 때 이 그릇이 ‘사람에게 좋은 벗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해요. 시름에 젖은 사람에겐 술잔으로, 아픈 사람에겐 약사발로, 배고픈 사람에겐 밥그릇이 되어 그들의 곁을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사람에 빗대어 생각해도 도자기는 괜찮은 벗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흙의 질박함을 본성으로 품고 있을뿐더러 앙칼지게 자기주장을 하기보다 부드럽게 상대의 뜻에 따라 제 모습을 바꾸지요. 섭씨 1,300도의 뜨거운 불길을 말없이 견뎌내는 참을성을 갖고 있고요. 무척 뜨겁고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말갛고 뽀얀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음식물이나 음료를 오래도록 신선하게 지켜 주니 쉽게 변치 않는 그 모습이 믿음직한 존재입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김정옥 선생의 달항아리 작품

한 점 한 점 ‘인격’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김정옥 선생의 작품. 그중에서도 선생이 가장 아끼는 작품은 ‘달항아리’입니다.

“증조부께서 달항아리를 잘 만드셔서 관요로 발탁되셨습니다. 선친께서도 달항아리를 만드셨고,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제 아들과 손자도 만들고 있으니 저희 가문은 5대가 달항아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저희 가문의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우선 소중하고요.

달항아리는 두 쪽을 따로 만들어 붙입니다. 이런 제작 방식 때문에 작품마다 모양새가 각자 다릅니다. 섭씨 1,300도의 가마 안에서 근 20시간을 구워내고 나면 굽기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 되죠. 큼직한 양감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게 보입니다. 만들 때마다 새로우니 가마에서 꺼낼 때마다 기대와 설렘, 걱정도 갖게 되는 것이 달항아리죠. 항상 처음처럼 기대와 걱정을 품게 한다는 점에서 달항아리는 도전이 되는 대상입니다.”

백자의 담박함을 그대로 품은 달항아리. 하지만 꾸밈없는 그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도전이 있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존재입니다.

 

도자기의 건강한 아우라가 지켜 주는 신선함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2년 반 동안 냉장고 신소재를 찾아 헤매던 삼성전자 연구진이 ‘백자’에서 답을 발견하고 김정옥 선생을 찾았을 때, 선생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전통으로 입증된 백자의 우수성과 도전으로 완성되는 전통의 가치를 아는 김정옥 선생께 이는 응당 찾아야 할 정답을 찾아온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사람이 제가 만든 병에 10년 동안 물을 담아 뒀어요. 10년이 흘러 물을 따라 봤는데 상하지 않고 처음 그대로였습니다. 어느 교사는 도자기의 보존성을 논문으로 쓰기 위해 제가 만든 그릇에 우유를 담아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이나 유리그릇에 담긴 것과 달리 백자에 담긴 우유는 오랜 시간 상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도자기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데 확실히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정직한 도자기가 전해 주는 건강한 아우라, 김정옥 선생은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도자기에는 자연의 순리가 담겨있고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공들여서 개발한 삶의 지혜가 깃들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은 전통적 방법 그대로 도자기를 만듭니다. 태토(재료가 되는 흙)를 선별하는 일, 발 물레를 돌려 빚는 과정, 잘 말린 적송을 땔감으로 전통 장작가마의 불을 올려 그릇을 굽는 것까지 변함없습니다. 한 점 한 점 아낌없이 정성과 시간을 담아 만들 때 비로소 사람에게 유익한 도자기가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김정옥 선생의 영남요 가마 현장

“이번에 삼성에서 만드는 냉장고(셰프컬렉션 포슬린)에 도자기가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참 좋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과학자가 아니니 이론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도자기가 건강한 기운을 오래도록 지켜 준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거든요. 냉장고는 식품을 신선하게 지켜 주는 것이잖아요? 도자기도 그런 효과가 있으니, 좋은 데 더 좋은 것이 더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의 역사를 빚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한 가마에 다완(찻그릇) 100점을 구우면 실제 사용 가능한 작품은 3~4점밖에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97점의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장인’의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실패를 아랑곳하지 않는 김정옥 선생의 거듭된 도전이 있었기에 가문의 전통은 후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냉장고에 백자를? 깨지지 않을까? 무겁지 않을까?’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거듭된 도전을 통해 셰프컬렉션 포슬린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선생이 보여 준 ‘도전의 역사’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합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3대가 한 자리에, (좌로부터) 8대 김경식 님, 7대 김정옥 선생, 9대 김지훈 군

김정옥 선생의 아들 김경식 님과 손자 김지훈 군 또한 선생과 함께 도자기 장인으로 한길을 걷고 있습니다. 7대 선생을 넘어 8대•9대로 이어지는 조선백자의 전통, 선생의 작업이 그러했듯 미래로 이어지는 후대의 전통 또한 새로운 도전 속에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품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영국과 한국의 문화 교류 프로젝트에도 협력 요청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삼성전자의 도자기 냉장고 제작에 협업하지 않았습니까. 저희 같은 사기장에겐 도자기를 더 많은 사람이 써 주고 벗해 주는 것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협업 요청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는 것입니다. 도자기를 활용한 냉장고처럼 현대인들이 생활 속에서 도자기의 가치를 체감하고 다양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 아들과 손자 또한 다양한 분야와 교류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도자기의 가치를 알려 주면 좋겠습니다.”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을 만나다

발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빚는 김정옥 선생의 손은 두툼하고 강인해 보였습니다. 고집스러움이 묻어나는 손마디로 촉촉하고 유연한 흙 반죽을 만지는 선생의 모습, 이내 섬세한 주름과 곡선이 잡힌 맵시 있는 다완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강함과 부드러움, 전통과 도전처럼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나 빚어내는 김정옥 선생의 도자기에는 변치 않는 신선함으로 오래 지켜질 전통의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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