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모호해지는 인간과 로봇 간 경계, 그 끝은?

2017/09/14 by 임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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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망한 등반가였던 휴 허(Hugh Herr)는 뉴햄프셔주(州) 어느 계곡에서 얼음 등반을 하던 중 눈보라에 갇혀 길을 잃었다. 간신히 구조되긴 했지만 동상에 걸려 무릎 아래 두 발을 절단해야 했다. 20세기였다면 등반가로서의 경력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티타늄 스파이크가 장착된 의족 보형물을 스스로 제작, 착용한 후 다시 등반에 나섰다. 이 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이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생물의학 기기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지금도 MIT 부교수로 재직하며 인간 생체 능력을 증강시키는 보조기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의족 보형물

 

팔다리가 ‘인공’인 사람을 로봇이라 부르진 않는다

티타늄 스파이크로 된 의족 보형물을 착용한 휴 허. 사람들은 그를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 일부가 남다른 사람은 허 말고도 많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태어난 지 채 1년도 안 돼 두 다리를 절단했지만 탄소섬유 재질의 의족을 단 채 올림픽에 출전, 유명세를 얻었다

발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생긴 휴 허. 사람들은 그를 로봇이라고 생각할까? 그럴 리 없다. 질문 자체가 우습다. 따지고 보면 신체 일부가 남다른 사람은 휴 허 말고도 많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는 태어난 지 채 1년도 안 돼 두 다리를 절단했다. 하지만 칼날처럼 생긴, 탄소섬유 재질의 의족을 단 채 올림픽에 출전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올림픽에서의 성취가 퇴색하긴 했지만, 아무튼 어느 누구도 그가 (로봇이 아닌) 사람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인공 심장

로봇공학과 생체의학의 발달 덕분에 요즘은 절단된 팔다리를 정교한 보조기구로 보강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실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강화 슈트나 가상현실 장비 따위를 착용한 장애인이 신체적 한계를 넘어 걷고 보고 듣는”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보조기구의 활약은 눈에 보이지 않은 몸속에서도 이어진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인공심장 같은 건 어떨까? 아직 완성된 기술이라곤 할 수 없지만 인공심장 역시 다른 생체 보조기구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다. 인공심장도 로봇 팔다리와 다르지 않다. 인공심장을 달고 있다 해서 그를 로봇이라고 의심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 머리를 잘라내어 다른 몸통에 이식하는 상상은, 10년 전만 해도 실현 불가능한 걸로 치부됐겠지만 이젠 아니다. 동물(원숭이) 대상 실험은 지난해 이미 중국에서 성공을 거뒀으며, 후원자를 찾지 못해 불발되긴 했지만, 러시아에서 인간으 대상으로 하는 동일 수술이 실제로 시도될 뻔했다.

이번엔 사람 머리를 잘라내어 다른 몸통에 이식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10년 전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치부됐겠지만 머리 이식 수술은 지난해 이미 중국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성공을 거뒀다. 불발되긴 했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머리 이식 수술도 한때 실현될 뻔했다. 러시아 컴퓨터 프로그래머 발레리 스피리도노프(Valery Spiridonov)가 그 주인공. 사고로 머리 외 근육 기능을 전부 상실한 그는 뇌사자 가족에게서 기부 받은 타인의 몸통에 자신의 머리를 이식하는 수술 참여를 자원했다(해당 수술은 후원자를 찾지 못해 성사되지 못했다). 이쯤 되면 머리 이식 수술은 더 이상 머릿속 상상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두뇌 이식 수술

 

온몸이 실리콘과 플라스틱, 탄소섬유인 존재라면?

여기서 상상력을 조금만 더 발휘해보자. 사람 머리를 이식해 연결하는 몸통이 다른 사람 몸이 아니라 인체 형상을 한 보조기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 머리를 잘라 붙이는 대상이 뼈와 살로 이뤄진 진짜 몸이 아니라 탄소섬유와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로봇 육신이라면 어떨까? 그런 형태로 ‘만들어진’ 사람도 여전히 사람으로 여겨질까? 아마 그럴 것이다, 물론 앞선 사례에 비해선 좀 망설여지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말할 수 없지만, 로봇이나 생체의학 기술이 더 발전하면 우리의 눈, 코, 입 모두가 보조기구로 대체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 그럼 두개골 속 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전부 탄소섬유와 플라스틱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여전히 사람일까? 아니면 로봇일까?

로봇이나 생체의학 분야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 눈·귀·코·입 모두 보조기구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진 말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자, 그렇다면 두개골 속 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전부 탄소섬유와 플라스틱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여전히 사람일까, 아니면 로봇일까? 사람, 이라고 답하고 싶지만 슬슬 찜찜해진다. ‘보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게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이점(singularity)’ 개념으로 잘 알려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 두뇌 속 정보를 송두리째 읽어 컴퓨터에 저장하는 기술, 이를테면 마인드업로딩(mind uploading)이나 정신 전송 따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미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나와 당신에게조차 황당한 만화처럼 들리겠지만 한편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바둑을 익혀 이세돌을 이기는 마당에 앞으로 무슨 일이 불가능하겠는가!

인간 두뇌 속 정보를 송두리째 읽어 컴퓨터에 저장하는 일명 '마인드업로딩' 기술은 "두뇌의 물리적 구성물도 언젠간 실리콘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간 정신이 컴퓨터와 하나의 사물로 통합되는'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단 얘기다.

마인드업로딩 기술은 “인간 두뇌의 물리적 구성물도 언젠간 (현재의 단백질에서) 실리콘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간 정신이 컴퓨터와 하나의 사물로 통합되는’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단 얘기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상상해보자. 두뇌를 포함,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가 실리콘과 플라스틱, 탄소섬유 등으로만 구성된 존재가 당신 눈앞에 있다. 그는 사람일까, 로봇일까? 아마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것이다. 사람 의식을 일부 기억하는 로봇, 이라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한 개념이지 않을까?

인조인간

 

어쩌면 우린 생물학적 진화 담당하는 마지막 세대

최근 인공지능(AI)을 둘러싼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와 엘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최고경영자 간 논쟁이 화제다. 저커버그는 “인공지능이 운전과 진료,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 인간 삶을 보다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낙관한다. 반면, 머스크는 “인공지능 발전이 국가 같은 공공기관의 개입과 통제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진다면 궁극적으로 인류 생존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논쟁은 상당히 많은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논점은 역시 인공지능의 자기 인식 여부다.

인공지능의 자기 인식

인공지능(혹은 컴퓨터)은 언젠가 자기(self)를 인식할 것이다. 이때 ‘자기’가 정확히 뭔가 하는 문제는 다분히 철학적 주제인 만큼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내가 이해하는 인공지능의 자기 인식은 ‘자기애나 슬픔, 분노 같은 감정적·심리적 요소가 아니라 목적의 자율적 설정’에 방점이 찍힌다. 자기 인식의 출발점을 ‘스스로 목적을 세우는 행위’로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단의 첫 문장은 이렇게 다시 쓰일 수 있다. 인공지능(혹은 컴퓨터)은 언젠가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게 될 것이다.

인류 입장에서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는 인공지능은 거대한 재앙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풍요와 편리를 안겨주는 건 우리가 정해둔 목적에 철저히 복무할 때에 한해서다. 인공지능 스스로 할 일을 정하고 합리성을 추구하면, 그 깊고 빠른 사고 속에 인간이 존재할 자리는 거의 없다.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는’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류 입장에선 거대한 재앙이다. 저커버그가 말했듯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풍요와 편리를 안겨주는 건 인간이 정해놓은 목적에 철저히 복무할 때에 한해서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할 일을 정하고 합리성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그 깊고 빠른 사고(思考) 속에 인간중심주의가 존재할 자리는 별로 없다. 고도로 발달한 지능이 보기에 인간은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지금 이 시각 지구상에 살아있는 우리야말로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를 담당하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고 상상한다. 앞서 살펴본 생체 보조장치가 발전하며 인간과 로봇 간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질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역시 사이보그의 일부로 통합될 게 자명하다. 그 결과,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파멸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과 통합된다.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영화 속 인간 대(對) 로봇(인공지능) 간 대결은 어쩌면 무의미한 상상인지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 ‘우리가 로봇이자 인공지능인’ 새 시대가 시작될 테니까. 그때가 되면 인간과 로봇의 경계 같은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너무 황당한 상상일까?

인간과 로봇의 경계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임백준

삼성전자 상무(DMC연구소 데이터인텔리전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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