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 감상, 이렇게도 가능하네!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전(展)
전형필(1906~1962)과 백남준(1932~2006). ‘간송(澗松)’이란 호로 더 잘 알려진 문화재 수집가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가 만난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전(展)은 그 질문에 좋은 답이 될 만한 전시다. 과거와 현재를, 회화와 비디오아트를, 평면과 입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전시 현장을 둘러봤다.
옛 그림의 붓놀림, TV로도 관찰할 수 있을까?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삼성 SUHD TV(이하 ‘SUHD TV’)가 눈에 들어온다. 본격적인 작품 관람에 앞서 SUHD TV를 통해 간송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맛보기’로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것. 게다가 간송미술관은 정선·김홍도·신윤복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이 같은 경험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고화(古畵) 특유의 신비로운 색채로 가득 채워진 SUHD TV 화면은 첫눈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실제 작품을 육안으로 봤을 때에도 관찰하기 어려웠을 붓놀림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놀라웠다. 각 작품의 미세한 표현과 풍부한 색감이 한층 실감나게 다가왔다.
전시장 한편엔 삼성 기어 VR(이하 ‘기어 VR’)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여기서 기어 VR을 착용하면 눈앞에 보화각(葆華閣,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 전경이 펼쳐진다. 이어 아름다운 그림이 영상 형태로 재생된다. 너울거리는 파도와 야트막한 산기슭으로 정신 없이 시선을 옮기다 보면 마치 그림 속 세상으로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선을 360도로 압도하는 화면 덕에 오롯이 미술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돼 작품의 세세한 특징을 포착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이곳에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우리나라 산수를 소재로 한 조선 후기 풍경화)를 기어 VR로 체험한 한 관람객은 “작품이 지닌 영상미가 한층 두드러져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다각도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편엔 진경산수화 등 간송미술관 소장 작품을 기어 VR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같은 소재, 다른 화가’ 비교 감상 묘미 있어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이 여느 전시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 간 연결고리에 각별히 신경 쓴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장승업(1843∼1897)의 ‘기명절지도[1]’(창작연도 미상)와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1989)이 나란히 자리 잡은 게 대표적 예. 실제로 기명절지도엔 ‘길상(吉祥, 운수가 좋을 조짐)’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가 하면 백남준 작품의 소재 샹들리에는 서구 문명에서 ‘부유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주최 측은 이 두 작품을 ‘복록(福祿)과 수명, 그리고 부귀의 상징’이란 주제 아래 나란히 배치, 문화권별로 복(福)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단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이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 뒤쪽으로 보이는 그림이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일부)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달’ 코너도 흥미롭다. 이 공간에서도 백남준과 장승업의 작품을 견줘가며 감상할 수 있다. 일찍이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란 말을 남긴 백남준은 달을 ‘상상력의 원천’으로 봤다. 실제로 ‘달에 사는 (옥)토끼’가 과학적으론 난센스이지만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는 설정인 건 그 때문이다. TV 모니터에 떠오른 달을 응시하는 그의 작품 ‘달에 사는 토끼’(1996)에도 그런 감수성이 오롯이 살아있다. 한편, 장승업의 ‘오동폐월’[2](창작연도 미상)엔 보름달이 뜬 밤에 달빛을 받은 국화와 그 국화를 바라보는 개가 아름답게 표현됐다. 시대도, 무대도 서로 다르지만 두 작가는 달이 내포한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작품에 녹여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달’ 코너에 전시된 백남준 작품 ‘달에 사는 토끼’. 그 뒤로 장승업의 ‘오동폐월’이 보인다. 아래 사진은 오동폐월을 확대한 것(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이상향을 찾아가는 방법’을 연결 고리로 정했다면 어떤 그림이 탄생할 수 있을까? 전시 주최 측은 이 질문의 답변으로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1999~2001)와 심사정(1707~1769)의 ‘촉잔도권[3]’(1968)을 제시했다. 코끼리 마차는 과거와 현재의 정보 전달 수단을 표현하고 있다. 앞서서 걸어가는 코끼리는 과거의 통신 방식, 마차에 올려진 전자제품은 (누구나 쉽게 정보를 누리는) 오늘날의 통신 방식을 각각 의미한다. 백남준은 이 작품으로 ‘정보’라는 이상향을 좇는 인간의 여정이 드러나길 바랐다. 촉잔도권에도 인간의 여정이 담겨있다. 실제로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면 한 인간의 일대기를 그린 한 편의 동화가 떠오른다.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위 사진)와 심사정의 ‘촉잔도권’(일부,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두 작품 모두 ‘이상향을 찾아가는 방법’ 코너에 전시돼 있다
‘주제별 작품 배치’와 ‘첨단 전자 제품 활용’으로 관람객에게 색다른 미술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5일까지 계속된다. 평소 평면적이고 밋밋한 전시가 지루했다면 DDP도 둘러볼 겸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전시장을 찾아보자.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각각의 소장 작품을 내놓으며 성사된, 귀한 전시인 만큼 희소 가치가 상당하다. 각 코너에 자리 잡은 작품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짚어보고 싶다면 주최 측이 마련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관람 정보
– 기간: 2017년 2월 5일까지
– 장소: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 운영 시간: 10시~19시(화~일)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권 가격: 성인 8000원(만 18세 이상, 20인 이상 단체는 6000원)/ 학생 6000원(20인 이상 단체는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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