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중요한 건 삶의 질”이란 소신, 시장 판도 바꿀까?
#사례1
‘자유롭게 돈 벌기’ 컨설턴트 션 오글 “스타트업보다 낫네”
두꺼운 눈으로 덮인 알래스카 초원, 하얗게 빛나는 산봉우리와 평원 사이에 검푸른 삼나무숲이 띠처럼 늘어섰다. 그 앞쪽 눈밭 위 책상 옆, 한 사람이 앉아있다. 그는 한 손으로 노트북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고 다른 한 손으론 스마트폰으로 바쁘게 사업 대화를 하다 문득 정면을 보며 인사한다.
“당신의 직장은 어떤 모습입니까? 회색 벽, 싸구려 커피, 겨우 한숨 돌리는 금요일? 다 필요 없어요. 인터넷이라는, 기막힌 게 있지 않습니까? 어느 요일, 어느 시간에나 일할 수 있고 원하는 장소 어디서나 일할 수 있게 해주죠.”
이어 책상에 앉은 그의 뒤로 배경이 다양하게 바뀐다. 근사한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노르웨이 표르드 언덕, 파란 하늘과 베이지색 모래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빛나는 사막, 각양각색의 나무와 풀 사이로 맹그로브[1] 덤불이 늘어진 열대우림, 골프장, 차고, 와인셀러, 본인 집 거실…. 계속 바뀌는 장소를 배경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택해 일할 수 있는’ 직업의 장점을 얘기한다.
션 오글(Sean Ogle). 한때 미국 뉴욕에서 금융분석가로 일했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직업이 더 이상 자기 삶을 채워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결국 직업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비즈니스 스타트업’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머리를 식힐 겸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그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1인 기업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편의에 따라 일할 수 있다’는 강점이었다. 이후 오글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소소하게 일해주고 사례를 받으며 전 세계를 두루 여행하는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로케이션레블(Location Rebel)’이란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요즘 그는 ‘자유로운 스타일로 돈 벌기’ 컨설팅을 해주며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로케이션레블 홍보 동영상 바로 가기. 숲 한가운데 놓여있던 책상이 폭파되며 불타 없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례2
‘가장 성공한 라이프스타일러’ 준 로이자 “실패가 준 선물”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분교(UCLA)에 재학 중이던 준 로이자(Jun Loayza)는 졸업 직전 여러 기업에 서류를 내고 면접도 봤다. 하지만 이듬해 받아 든 건 수북하게 쌓인 불합격 통보 편지였다. 그는 절망에 빠졌지만 이내 발상을 바꿨다. “열심히 준비하고도 취업에 거푸 실패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들도 나와 똑같이 절망하면서 탈출구를 찾고 있지 않을까?” 이후 로이자는 맘 맞는 친구 몇 명과 함께 UCLA 재학생을 위한 컨설팅 스타트업을 차렸다. 학교 동아리방을 빌려 첫 미팅을 개최한 그는 거기서 한 여학생을 발견,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현재는 ‘딸바보 아빠’로 라이프비즈니스를 성업 중이다.
퇴직과 함께 스타트업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기로에서 고민했던 션 오글과 달리 로이자에게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별다른 밑천 없이 아내와 육아를 분담하며 할 수 있는 일의 형태는 짬짬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업무여야 했다. 아무리 소규모라 해도 타인과 사무실을 함께 내고 창업 지원을 받아야 하는 스타트업 같은 걸 차리긴 불가능했다.
틈새는 의외로 많았다. 소비자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꽤 많단 사실을 알게 된 것. 로이자는 그중 스스로 관심이 가고 할 수 있다 싶은 건 뭐든 도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고 알게 된 것에 관한 얘길 온라인 공간에 꾸준히 쏟아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커피머신을 찾는 법에서부터 친구와 함께하는 비즈니스의 장단점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마케팅 컨설팅과 프로모션, 온라인 상품 매니지먼트 등으로 소소한 수입을 올렸다. 또 한편으론 일하면서 알게 된 지식∙정보∙경험 관련 얘길 글과 동영상 내레이션으로 블로그에 올렸다.
2018년 5월 현재 준 로이자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분야에서 세계 최대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틈새를 노린 지식과 정보 제공, 공감을 기반으로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의 얘길 전하는 글과 동영상을 꾸준히 올린 게 비결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그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이길 포기할 수 없었던 덕에 이룬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사례3
낡은 한옥 고쳐 공방 꾸리는 김영선씨 “돈이 다는 아니죠”
손재주가 많아 뭐든 손수 만들어 꾸미는 걸 좋아했던 김영선(가명)씨. 그의 꿈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같이 예쁜 집 직접 만들기’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정보고등학교에 진학, 고교 졸업과 동시에 직업 전선에 나서야 했던 그는 은행 전문 웹마스터로 일하면서도 휴일마다 인사동·북촌·서촌 등 서울 일대에서 입소문 난 수공예점을 찾아다니곤 했다.
어느덧 서른둘, 영선씨는 우연히 서촌 단골 가게를 통해 인근 한옥 한 채가 싼 값에 나왔단 정보를 입수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마당을 갖춘 그 집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가슴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울림을 느꼈다. ‘이건 누가 뭐래도 내 집이다!’ 뛰는 가슴을 달래며 그는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간의 저축 금액과 퇴직금을 모아 집을 장만했고, 짬짬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릴 구해 생계를 꾸렸다. 그러는 틈틈이 집을 손수 고치기 시작했다. 2년 후 다 허물어져가던 한옥은 어엿한 ‘수공예 공방 겸 매장 겸 카페’로 변신했다.
영선씨의 매장엔 커다란 쇼윈도가 없다. 한쪽엔 그가 손수 물건을 만드는 작업장이 자리 잡았고 그 옆엔 소파와 탁자, 1인 고객용 작업 바(bar)와 의자가 놓여있다. 원래 좁은 마당이었던 홀의 지붕은 강화 유리로 덮었다. 한낮엔 그리로 드는 햇빛을 활용, 실내 정원 식물을 키운다. 매장을 찾은 손님은 자신의 음료와 간단한 스낵을 들고 와 먹는다. 영선씨가 제공하는 차를 마실 수도,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와이파이(Wi-Fi) 환경이 갖춰져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매장 방문의 조건은 단 하나, 간단한 아이템이라도 좋으니 영선씨의 작품 중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는 빨래집게에서부터 쿠션, 액자에 이르기까지 집 안에서 활용할 수 있으면서 주변 공간을 아름답게 해주는 물건이면 뭐든 만든다. 작품들은 작은 유리 쇼케이스에 담겨 매장 내부 여기저기에 보기 좋게 배치돼있다.
영선씨는 수익에 대한 걱정도 크게 하지 않는다.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돼 손님이 하루 몇 명만 와도 관리∙유지비와 생계비, 거기에 약간의 ‘플러스알파’를 뽑기 때문. “그 정도면 충분해요. 전 이 일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고, 제가 만든 걸 귀히 여겨주는 분들을 만나 대화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요즘 제 낙은 손님들이 자기 집에 제 아이템을 놓아두고 찍어 보내주는 ‘인증샷’이랍니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란 개념을 난생처음 들어본다는 영선씨.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성공적으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왜 열풍일까
공급자도 소비자도… “내 삶은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하겠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사진으로 대표되는 잡지 화보나 광고의 영향일까?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면 흔히 시각적(visual) 요소를 떠올린다. 라탄 소재 의자와 꽃무늬 쿠션, 곡선미가 돋보이는 차기(茶器) 세트는 ‘컨트리풍 라이프스타일’이고 단순하면서도 정감 어린 원목의 꾸밈새는 ‘에코 라이프스타일’로 통한다.
하지만 오늘날 영어 문화권에서 라이프스타일은 그보다 훨씬 폭넓고 깊이 있는 뜻으로 통한다. 라이프스타일의 현대적 정의를 처음 정립한 20세기 초 독일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 사람의 출신‧성향‧가치관‧경험‧훈련‧신념 등의 종합적 성과물, 요즘 개념으로 말하면 삶의 전략에 따라 다양하며 특정 상황에서의 생각과 행동 역시 이에 기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아들러식(式)으로 해석하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구현하기 위한 기반으로서의 사업’이 된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은 묻어둔 채 특정 집단에 합류, 그 목표에 최대한 기여하는 사업과는 그 모양새가 사뭇 다르다. 우선 대부분의 형태가 예외 없이 1인 기업과 유사하다. 물론 필요에 따라 형태는 조금씩 달라진다. 서로 다른 개인이 느슨하게 동업할 수도, 규모가 좀 더 큰 스타트업 등과 협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션 오글처럼 세계 각국을 제멋대로 여행하면서, 준 로이자처럼 가사 육아를 분담하면서, 혹은 김영선씨처럼 고객과 친분을 쌓아가면서 일하려면 일 전체의 흐름을 본인 생각대로 자유롭게 조정해야 한다. 자연히 혼자 주관하는 형태일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의 ‘혼자 일하는 형태’가 통용되는 1인 기업(self-employment)과 동의어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1인 기업이라고 하면 혼자 고용인으로 등록된 경우를 말한다. 여기엔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빵집 주인이나 농부 같은 부류가 포함된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운영자는 종종 고객과의 관계가 여느 사업자보다 훨씬 친밀하다. 혼자서 소수의 (자신을 알아주는) 고객을 위해 차별성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로이자나 영선씨처럼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그러기 위해 온∙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광고 등을 통해 적극적 마케팅에 뛰어들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이만 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일하기 때문에 고객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대신 한 번 인연을 튼 고객과의 관계는 웬만하면 계속 유지한다.
주목할 점은 이런 변화를 원하는 소비자가 꽤 많단 사실이다. 그들은 믿을 수 있는 제품(혹은 서비스) 제공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래하고 싶어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정확한 통계로 잡히진 않는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조차도 기업 실태 조사 항목 중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포함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반격’ 저자 데이비드 색스[2]를 비롯, 수많은 트렌드 관찰자가 이미 ‘(전통 사회 이웃처럼) 친밀하게 지내고 제품에 대해 토론하며 거래하는’ 소비자가 점차 늘고 있단 사실을 간파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물질적으로 최소주의자(minimalist)이면서 기업과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밀레니얼(혹은 Z) 세대의 특성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향후 소비문화의 변화 행태를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관심 가져야 할 대목일 테다. 기업이 스타트업으로, 스타트업이 다시 1인 기업으로 쪼개지며 한층 자유롭고 다양하게 뻗어가는 모습은 ‘메이커 운동’[3] 등 최근 여러 방면에서 부각되고 있는 ‘분산형 문화’의 한 단면일 수 있단 점에서도 흥미롭다.
[1] mangrove. (아)열대 갯벌이나 하구에서 자라는 목본식물 집단
[2] 2017년 7월 19일자 스페셜 리포트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시작된 ‘아날로그의 반격’” 참조
[3] 2018년 3월 14일자 스페셜 리포트 “메이커 운동에 열광하는 소비자, ‘그 이면’을 읽어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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