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꿈꾸는 기업이 유념해야 할 키워드 3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디지털 트윈, 엣지 컴퓨팅, 대화형 플랫폼, 몰입 경험, 블록체인, 이벤트 드리븐, 사이버 시큐리티…. 이 단어들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꾸준히 ‘2018년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선도할 트렌드’로 꼽혀온 키워드란 사실이 그것이다. 실제로 올 한 해 사람들이 이런 단어에 익숙해지는 사이, 각각의 키워드로 표현되는 기술은 현대인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정착돼왔다. 그리고 그 속도는 내년이면 더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주 스페셜 리포트(“내년 ICT 트렌드? 새로운 건 없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에서 살펴본 것처럼 디지털 부문에 관한 한 내년 한 해는 전혀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기보다 기왕의 기술이 서로 융합되며 현실적으로 정착돼갈 공산이 크다. 굳이 이런저런 예측을 기웃거리지 않더라도 앞서 제시한 키워드 중 상당수는 수 년 전, 아니 십수 년 전부터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인공지능 같은 개념은 그 역사가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고 ICT가 인류의 기본적 생존 방식과 밀접하게 통합되기 시작하면서 관련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쏟아져 나온단 것, 그리고 그 기술이 인류의 삶을 직접적으로 바꿔놓고 있단 것이다.
기업 생존의 필수 전략 된 ‘디지털 전환’
현대인의 일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기술 역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기업 입장에서 이 모든 변화는 생산 활동의 단초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기업 경영에서 변화는 시작이자 끝이라 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변화가 일상다반사의 영역으로 편입된 세상에선 변화란 단어 자체의 영향력(impact)이 그리 크지 않다. 이에 따라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예전 변화’와 유사한 힘을 지니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혼란(disruption)’이다.
영단어 ‘disrupt’의 사전적 정의는 ‘혼란스럽게 하다(방해하다)’다. 이 단어는 ICT 기술 동향을 정리하는 글에 꽤 자주 등장한다. (“2019년엔 어떤 기술이 ICT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할까? 같은 표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는 ICT 생태계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치열한 경쟁 구도를 띠고 있단 방증으로도 읽힌다. 일부 기업은 자진해서 혼란을 만들어내고(self-disrupt), 그 상황을 역시 스스로 극복해내며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용어가 있다. 사업을 디지털 시대에 맞춰 다시 구상하고 변형, 적용하는 일을 일컫는다. 오늘날 기업 경영자에게 디지털 전환은 최우선적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 기업 활동’을 주제로 한 연구 기관이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 기업의 96%는 “디지털 전환이 중요하다”고, 88%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각각 답했다. 85%는 “향후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2년 이내에 디지털 전환 작업을 상당 수준으로 진전시켜야 한다”고 내다봤다[2].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특정 개체는 환경 변화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진화하기 위해 종종 다른 성공적 개체의 행동을 학습, 응용한다. 선행 사례를 분석, 모방하는 편이 전혀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데서 오는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도 마찬가지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려면 그에 따르는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제아무리 변화를 위한 투자라 해도 ‘스마트(smart)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때 눈부시게 주목 받았다 슬며시 자취를 감추는 기술이 있는가 하면, 날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는 기술도 존재한다[3]. 이 경우, 선행 사례의 성패를 면밀히 따져 그 결과로 취득한 지식을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디지털 전환은 △조직이 거대하고 △역사가 길며 △기술과 거리가 먼 기업일수록 실행이 쉽지 않다. 하지만 노드스트롬[4]·디즈니·맥도날드·메리어트 등 몇몇 기업의 성공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통설도 언제나 들어맞진 않는다. 다시 말해 기업 규모나 주력 기술과 무관하게 통용되는 ‘디지털 전환 성공 키워드’가 존재한다. 이는 ‘사람(소비자) 중심의 체계적 변화’로 요약된다.
#1 기술 통합, 그 중심엔 ‘소비자’ 둘 것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한 소비자 경험을 혁신하고 만족도를 제고하는 것.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는 기업 대다수의 목표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다양한 기술의 융합이나 적용이 시도되기도 한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소비자와의 직접적 상호 작용을 통해 맞춤형 제품(이나 서비스)을 제공하는 유형이 하나, 연결성(connectivity)을 개선함으로써 이용의 편리성을 증대하는 유형이 다른 하나다.
ICT 기술은 보다 빠르고 체계적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맥도날드는 최근 매장을 찾은 소비자가 자기 입맛에 맞는 햄버거를 맞춤형으로 만들어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125년 역사의 향신료 회사 맥코믹앤드컴퍼니(McCormick & Company)는 몇 년 전 ‘음식업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온라인 플랫폼 ‘플레이버프린트(FlavorPrint)’를 론칭했다. 소비자가 자신의 식습관과 입맛에 관해 20개의 퀴즈를 풀면 그 데이터를 활용, 해당 소비자에게 적합한 레시피와 추천 메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디즈니월드가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마이매직플러스(MyMagic+)’는 웹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손목 밴드를 활용해 소비자 행동을 추적·분석함으로써 디즈니월드 이용 고객에게 예약 단계에서부터 실시간으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에게 배부되는 손목 밴드엔 △숙소 열쇠 △디즈니월드 입장권 △지갑 등의 기능이 탑재된다. 생일을 맞은 고객에겐 특별한 이벤트가 제공된다. 고객이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엔 미키마우스 분장을 한 직원이 해당 장소로 출동, 그 고객을 즐겁게 해준다. 비교적 대기 줄이 짧은 놀이기구 쪽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디즈니월드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 손목 밴드 사용자의 90%는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소비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업끼리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는 중국인 관광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와 파트너십 관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알리바바 회원들은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여행 서비스 플랫폼 ‘플리기(Fliggy)’와 디지털 결제 수단을 이용, 메리어트 객실을 예약할 수 있게 됐다. 그뿐 아니다. 호텔 정문에 도착한 고객은 중국어 구사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인근 관광 명소나 레스토랑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이처럼 소비자에 초점을 둔 기술의 조합은 실질적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한 예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 모바일 혁신을 통해 1년 만에 예금 잔고를 300억 달러(약 33조9150억 원)나 늘렸다(2017년 기준). 브라이언 모이니한(Brian T. Moynihan) BoA 최고경영자(CEO)에 따르면 BoA 예금 중 20%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유입된다. 이는 오프라인 지점 1000여 곳에서 거래되는 예금 규모와 맞먹지만 관리 비용은 그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향후 은행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는 연결성 증대와 정교한 의사 결정, 디지털화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 CEO가 ‘끌고’ 유능한 임직원이 ‘밀고’
오늘날 디지털화는 ‘고객 만족’이나 ‘주주 가치 창출’ 따위의 모호한 목표 수립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즉 기술 관련 비용 지출로 직결되는 전략을 수립, 실행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를 따라 잡으려면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자가 디지털 전환을 주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분기마다 펴내는 경영 전문 학술지 MIT 슬로언매니지먼트리뷰(MIT Sloan Management Review)는 “디지털화에 성공한 기업의 41%는 최고경영자 수준에서 디지털 전환 작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CIO(Chief Information Officer)나 CDO(Chief Digital Officer)에 의한 변화는 16%로 줄어드는 추세”라고 밝히기도 했다.
디지털 전환 작업을 CEO가 주도하는 건 △재원 확보 △변화 적응을 위해 필요한 기술 훈련 △조직 문화와 조직 구성원의 마음가짐(mindset) 변화 △재능 발굴과 배치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 조직 내에서 디지털 전환 작업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건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술 자체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임직원의 관련 역량 증진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세기 넘게 명맥을 유지해온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임직원의 판매 역량 증대에 꾸준히 투자해온 걸로 유명하다. 이 기업은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이 부문을 한층 강화하는 투자에 나섰다. 그 결과가 노드스트롬닷컴(Nordstrom.com)과 노드스트롬 앱이다. 이 두 플랫폼은 각각 재고 관리 체계와 통합돼 있어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소비자에게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적합한 기술과 능력을 갖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 문제는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조직 내에서 해당 임직원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게 필수다. 디즈니 마이매직플러스도 서비스 론칭에 앞서 7만여 명의 임직원을 훈련시켰다. 그뿐 아니다. 점점 많은 기업이 기술 훈련과 조직 양성에 초점을 둔 디지털 전환 전략을 추진 중이다.
#3 전 부문이 통합, 호환되는 역량 구축
*출처: 디온 힌치클리프(Dion Hinchcliffe, 콘스텔래이션 리서치 부회장 겸 ZD넷 컨트리뷰트 에디터) 블로그
기업 내 디지털 역량의 강화는 모든 사업 부문과 통합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적시 대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 전문가들은 “앱이나 소셜미디어 도구를 최고 수준으로 갖추는 것보다 중요한 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을 체계적으로 구성, 세세한 부분까지 통합·호환되도록 관련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새로 구축된 디지털 경로를 통해 기존에 쌓여있는 고객(이나 제품) 관련 필요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가 효율적으로 구축돼 있지 않으면 제아무리 그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이뤘다 해도 효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통합적·체계적 디지털 변용은 ‘디지털 부채’라는 형태의 비용이 누적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디지털 부채란 ‘새로운 솔루션 도입 초기에 체계 없이 부분 개선 작업만 진행하는 과정에서 추가 기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누적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장기적으론 새로운 작업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데, 이는 부채에 이자가 붙는 현상에 비유되기도 한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 작업을 추진하는 기업의 경우, 디지털 부채가 누적되지 않도록 초기 구상 단계에서부터 잘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
디지털 변용 시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사이버 보안이다. 고객이나 제품에 관한 정보가 기업들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고, 데이터 수익화가 하나의 사업 모델로 자리 잡으며 인적 정보 누출 등 사이버 보안 사고 발생 위험도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와 그 특성)가 거래에 활용되는 방식을 스스로 통제하는 한편, 제3자에게 선별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고 사이버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하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탈로스(Talos)는 구리로 만든 로봇의 일종으로, 크레타 섬을 지키기 위해 하루 세 번 섬을 돌았다고 전해진다(관련 링크는 여기 참조). 또한 기록에 따르면 고대 중국과 이집트의 엔지니어들도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었다(관련 링크는 여기 참조)
[2] 관련 링크는 여기 참조
[3] 이를테면 빅데이터 관련 기술은 머신 러닝을 거쳐 최근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다뤘던 ‘액셔너블 애널리틱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거치며 변신을 거듭하는 중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싱즈(smart things)’ 역시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함께 ‘인텔리전트싱즈(intellegent things)’로 그 개념이 확대되며 스마트시티 구축의 기반 기술로 인정 받고 있다
[4] Nordstrom. 미국 유통 전문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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