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면 균형 있는 삶을”_문영수 마스터 편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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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마스터칼럼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면 균형 있는 삶을" 5편 문영수 마스터(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선행개발그룹)문영수 마스터

마스터 칼럼을 준비하며 지난 2014년 12월 마스터가 되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봤습니다. 그 길은 결코 그냥 주어진 것도, 쉽게 이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개는 즐거운 여정이었지만 종종 굴곡이 심했고, 심지어 일부 구간은 끊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제1장. 같은 회사에 두 번 입사한 사나이

전 삼성전자에 두 번 입사했습니다. 1988년 당시 삼성전자 종합연구소 레이저 프린터 개발 부서로 첫 입사를 했죠. 기계공학 전공자였던 제게 주어진 역할은 ‘기구 설계’ 쪽에 한정됐습니다. 내심 프린터 모터 제어 쪽 업무에 흥미를 느꼈지만 그 업무는 관련 전공자들에게만 주어지더군요.

전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회사 생활, 업무 측면에서 좀 더 욕심을 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회사가 그런 제게 기회를 줬습니다.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일명 ‘학술파견’ 프로그램으로요.

인터뷰에 응하는 문영수 마스터

전 회사가 필요로 하는 전문 기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습득하기 위해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전공을 ‘제어와 컴퓨터 비전’으로 과감히 바꿨고, 회사에 복귀한 후 정말 하고 싶었던 ‘레이저 프린터 모터 자동제어와 화질 분석’ 업무를 맡기 위해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기회란, 한 사람에게 연속적으로 주어지긴 힘든 건가 봅니다. 학술파견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공교롭게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이란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쳤거든요. 삼성전자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학위를 마치기 위한 마지막 논문을 채 완성하지도 못한 채 회사로 복귀한 전 ‘회사 상황도 어려운데 나가서 학위부터 마치자’는 생각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가게 됐습니다. 1998년 일이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야말로 제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고 암담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나라도 어려운데 저 개인적으로도 그토록 바라던 회사에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게 됐으니까요. 회사는 제게 더 공부할 기회를 줬는데, 막상 새로운 기술을 터득해 온 제겐 회사에 기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인터뷰 중인 문영수 마스터

눈앞에서 닫혀버린 기회의 문. 하지만 전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 대사 중 이런 게 있습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어디선가 또 다른 문이 열린다(When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아쉽긴 했지만 한편으론 제가 지닌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휴지(休止)기라면 그동안 나만의 기술력을 더 갈고 닦자. 그러다보면 기회는 또 오겠지!’

그리고 정말 기회가 왔습니다. 뜻밖에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쪽에서 재입사 제안이 온 겁니다. 그렇게 2001년, 전 두 번째로 삼성전자에 입사했습니다. 회사를 위해 제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였습니다.

 

제2장. 끔찍한 실패 이후 다시 도약하다

지금까지 전 무수한 기회를 잡고 또 놓치며, 그 과정에서 숱한 선택을 해오며 걸어왔습니다. 특히 40대 이후 중요한 갈림길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 일이네요.

삼성전자에 다시 입사한 후 제가 맞닥뜨린 첫 번째 갈림길은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느냐’ 여부를 시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흔을 갓 넘겼을 때였죠. 그맘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접할 법한 순간이었지만 당시 전 리더로서 활약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발표력이나 리더십 등의 자질이 한참 부족했어요. 솔직히 ‘관리자’보다 ‘개발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 업무 스트레스가 지나쳤던지 중요한 발표 하나를 망쳐버렸습니다. ‘아직 리더가 되긴 이르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만 같아 이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느라 한동안 고생해야 했습니다.

끔찍한 실패였지만 당시 경험을 계기로 전 제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날 이후 전 ‘기술 전문가’로서의 길, ‘마스터’로서의 길로 집중했죠. 직장 선배와 면담하며 기술 리더로 진로를 수정했고, ‘지금 내겐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맞닥뜨렸습니다. ‘업무에만 매몰된, 편협한 자세론 어떤 도전도 해나갈 수 없다’고 결심한 거죠.

그런 다음, 전 저만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기술 전문 서적은 물론, 그때까지 소홀히 했던 인문 교양도 쌓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심신의 리프레시(refresh)가 필요했기 때문에 꾸준히 책을 읽었고 여행과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찾으며 전 의도치 않게 인생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회사 업무든 개인의 삶이든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란 사실이 그거였습니다. 그러곤 다짐했죠. ‘임원이 되든 기술자가 되든 일단 균형 잡힌 인간이 되자!’

 

제3장. 일 편식? 돌아오는 건 지친 심신뿐

문영수 마스터는 후배들에게 늘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말한다. 그 자신도 매일 30분씩은 꼬박 운동에 할애한다
▲문영수 마스터는 후배들에게 늘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말한다. 그 자신도 매일 30분씩은 꼬박 운동에 할애한다

얼마 전, 학술파견을 다녀온 후배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제가 그들에게 건넨 조언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연구∙개발만 잘한다고 해서 회사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균형(balance)이 맞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에서의 역할도, 가정에서의 역할도 잘해낼 수 있다.”

사실 젊을 땐 일에만 미치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편식’ 증세는 결국 정신적, 육체적 피폐함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평소 몸도, 마음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오랜 ‘헤맴’ 끝에 깨달은 교훈입니다.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선행개발그룹은 말 그대로 미래 기술 발굴에 기여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은 조직입니다. 전 이곳에서 기술적 리더로서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회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기술 개발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관리 업무에 매진하게 마련입니다. 제 개인적 목표가 있다면 설사 관리자 역할을 하더라도 꾸준히 실제 기술 구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 요즘도 제 전문 분야인 화질 처리와 컴퓨터 비전에 관한 최신 논문을 주기적으로 챙겨 읽으며 최신 동향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문영수 마스터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느냐고요? 아뇨.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주어진 길을 성실히 가는 것’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수동적으로, 비판 없이 산다는 뜻은 전혀 아니니까요. 그보다 주변 상황이 어떻게 움직이든 제게 주어진 역할을 적극적으로 소화하며 맡은 임무를 수행해간다는 뜻에 보다 가깝습니다. 제게 주어진 ‘마스터의 길’을 걸어가는 방식이라고나 할까요? 전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회사 선후배, 동료들과 어깨동무 한 채 오래오래 걸어가고 싶습니다.

문영수 마스터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1988년 종합연구소로, 2001년 종합기술원으로 삼성전자에만 두 번 입사했다. DMC(Digital Meadia Communication)연구소를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VD사업부 선행개발그룹에서 차세대 DTV∙LED 제품 화질 차별화 아이템 발굴과 관련 핵심 기술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2014년 12월 마스터로 선임됐다

균형있는 삶은 전문가로서의 성장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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