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바꿀 내일 ‘미리 보기’ 해보니
‘기록된 정보를 공개적으로 공유, 온전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기술’. 연재를 시작하며 소개했던 블록체인의 정의다. 더 간단하게 설명하면 ‘삭제와 수정이 불가능한 기록물을 남기는 기술’이라 해도 좋겠다. 이후 칼럼에선 블록체인이 어떻게 ‘신뢰’를 전파할 수 있는지, 또 신뢰를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작업이 자동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각각 살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블록체인의 미래 적용 방향, 더 나아가 블록체인이 만들어갈 미래를 다뤄볼 생각이다.
재화∙서비스 대가, 꼭 ‘돈’으로 치러야 할까?
블록체인의 앞날을 말하기에 앞서 블록체인을 탄생시키고 세상에 알린 계기였던 암호화폐 얘기부터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돈에 붙여지는 이름은 화폐, 통화 등 여러 가지다. 돈을 이용하면 부(富), 즉 가치를 저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건을 사거나 교환할 수도 있다. 인류가 돈을 수단 삼아 가치를 저장, 교환해온 역사는 꽤 오래다. 누구나 돈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고, 그래선지 뭔가의 가치나 대가를 말할 때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돈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아이에게 심부름 값 1000원을 건네며 음료수를 사오게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이때 A는 아이에게 ‘(물건) 구매 대행 서비스’를 위탁하는 게 된다. 당연히 그 대가는 심부름 값이다. 즉 아이가 제공한 서비스 가치가 돈으로 환산된 것이다. 좀 유치한 가정이지만 아이가 이 1000원을 A에게 주고 1주일간 수학을 배운다면? 이번엔 A가 아이에게 제공한 교육 서비스 대가가 다시 돈으로 환산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각 상황에서 모든 대가는 꼭 돈으로 바뀌어야 하는 걸까?
앞선 사례에서 (아이가 A에게 제공한) 구매 대행 서비스와 (A가 아이에게 제공한) 교육 서비스가 교환될 수 있다면 그 상황에서 돈의 존재는 없어도 무방하다. 비단 이 예가 아니라도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마련되는 순간부터 돈은 더 이상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아니다. 실물 화폐 거래 없이 기록만으로 돈을 대신하는 신용카드가 대표적이다.
A와 아이의 사례에서도 모든 거래가 신용카드로 이뤄졌다면 돈 대신 신용카드 거래 내역 기록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을 관리하는 주체는 은행이다. 만약 거래 당사자가 은행을 믿지 못한다 해도 신용카드 이용이 가능할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사람이라면 두 가지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돈은 거래 기록으로 대신할 수 있다. 둘째, 이때 거래 기록은 믿을 수 있는 기관(이를테면 은행)을 통해 관리된다.
“제품 값, 유기농인 게 확인되면 지불할게요”
앞서 연재된 세 편의 칼럼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블록체인이 위 두 요소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란 사실을 금세 알아챌 것이다(물론 첫째 조항을 통과하려면 거래 기록을 보호하고 거래자 신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이 추가돼야 한다).
암호화폐는, 은행 대신 (믿을 수 있는) 블록체인을 사용하고 거래 기록을 사용자 중심으로 바꿔놓은 형태다. 핀테크(fintech)의 하나로 분류되는 암호화폐 응용 분야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최초 사례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돈이란 수단에 얼마나 익숙한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테크는 블록체인 응용의 시작이긴 해도 전부는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서비스의 대가가 반드시 돈으로 환산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합당하고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가치 교환’이다. 만약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상황에 일정 조건을 걸 수 있다면 현재의 돈으론 불가능했던 ‘고급 가치 교환’도 가능해진다.
이번에도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유기농 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있다. 편의상 B라고 해두자. B는 유기농(이라고 광고하는) 상품을 사면서 그게 실제 유기농 상품이 맞을 때만 판매자에게 지불되는 돈을 쓰고 싶어 한다. 현행 실물 화폐 체계에서 이런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블록체인 체계에선 조건에 따른 행위 정의가 가능하다. B의 사례에 이를 적용하면 B는 거래가 성사되는 시점에 자신이 구입할 물건 제조 과정 기록에 “모든 거래는 물건이 유기농 요건에 맞게 제조됐을 때에 한해 이뤄진다.”는 단서를 달면 된다. 이런 가정이 실현되려면 제조 과정 기록 일체가 블록체인에 남아야 한다. 거래 과정에서 가치뿐 아니라 (제조 관련) 정보까지 함께 교환되는 셈이다.
아쉽게도 B 사례에 등장하는 가치 교환 수단은 아직 상용화 전 단계다. 최근 관심을 모드는 암호화폐의 경우, 금전적 거래 쪽으로 응용 분야가 치우쳐 있어 개선된 신용카드처럼 쓰이는 게 사실이다.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1] 등이 등장하며 조금씩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보편적 실용화 단계까지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류 제출은 간소하게, 이익 분배는 공정하게
블록체인의 가치 보존∙교환 기능이 제대로 활용되려면 블록체인에 저장되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의 연결이 필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물 정보가 저마다의 고유한 문서 형태로 블록체인에 저장되고, 이들 간 거래 정보가 가치 교환과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블록체인은 제 몫을 다하게 된다. 블록체인이 제대로 응용되려면 블록체인에 의해 보존(교환)된 가치가 이용(거래) 정보와 잘 결합돼야 한단 얘기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블록체인이 바꿀 미래, 그 시작은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모순적 상황의 해결이어야 한다. 이때 모순적 상황의 예로 들 수 있는 건 서류 중복 제출, 불공정한 이익 분배 따위일 것이다.
우선 서류 중복 제출부터. 행정 업무를 보거나 보험 처리 절차를 진행하며 똑같은 서류를 거푸 제출해본 경험,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서류 저장소를 블록체인으로 설정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제출된 서류를 보관해야 하는 기관이 직접 블록체인을 가동, 접수된 서류를 직접 처리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블록체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고 관련 서비스 개발 정도도 미흡해 이런 체계가 곧바로 적용되긴 힘들겠지만 적절한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그리 먼 얘기도 아니다. 친구끼리 한 약속이나 가족 간 내기 같은 소소한 기록을 증명할 때에도 기록 저장 수단을 블록체인으로 설정해둔 후 필요 시 해당 기록을 꺼내 확인하면 불필요한 분쟁이나 충돌을 막을 수 있다.
이익 분배의 공정성을 꾀할 수 있는 대표적 분야로 저작권료가 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작곡자나 제작자는 자신이 만든 음악이 어디서 이용되고 얼마나 팔리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관련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음악 제작에 관여한 사람들 간 이익 배분 비중도 종종 합리적이지 못했다. 이래저래 정당한 대가를 챙겨 받지 못하는 음악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자동화 절차에 응용, 판매 수익을 일정 비율에 따라 배분하도록 미리 정하고 그에 맞춰 이익을 자동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된다.
공유경제∙직접민주주의 실현에도 기여 가능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블록체인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디지털 신원(digital identity)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봄 직하다. 개개인의 신원이 확실히 보장되는 사회엔 장점이 많다. 일단 공유경제 운영이 가능해진다. 상품 공급∙유통망이 투명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 소유권 문제도 한층 명확해진다.
공유경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유보다 사용”쯤 될 것이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 자산을 적절히 운영하려면 개별 사용자의 신원이 확실히 파악될 필요가 있다. 또 개인 정보와 고유 자산 이용 관련 정보 일체는 투명하면서도 결점이 없어야 한다. 블록체인은 이 모든 전제를 충족시키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의 특성인 무결성(integrity)과 신뢰는 안전한 물류 운송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섭씨 5도의 냉장 상태를 유지하며 운반해야 할 물품이 있다고 했을 때 운전자 개인 정보와 운반 수단(냉장차)의 운행 정보를 블록체인에 남겨두면 이들 정보를 연결함으로써 유통망을 투명하게 유지할 수 있다. 차 내 온도의 비정상적 상승이나 하락도, 시동이 꺼진 채 방치되지 않았는지 여부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원 보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생산해내는 정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도 용이해진다. 이를테면 소비자 C는 자신의 쇼핑 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소정의 정보 사용료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블록체인의 지속적 발전은 민주주의의 형태도 바꿔놓을 수 있다. 특히 탈(脫)중앙화를 통한 분산자율주의, 더 나아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물론 아직은 여러 변수가 있어 미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섣부른 감이 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총 네 편의 칼럼을 연재하며 블록체인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술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개중 일부 내용에 관해선 비약이나 무리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한 흔적으로 널리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 기술에서 일정 거래 조건을 만족시키면 당사자 간 거래가 자동으로 체결되는 기술(보다 상세한 내용은 9월 6일 발행된 ‘자동화 앞에 놓인 과제, 최고 해결사는 블록체인?!’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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