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널리즘 분야까지? VR의 ‘거침없는 하이킥’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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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이제 저널리즘 분야까지? VR의 ‘거침없는 하이킥’

“1871년 10월 8일 시카고 대화재. 당신은 거기 있다(You are there)!”

마치 (사건∙사고) 현장의 한복판에 있는 듯 듣는 이를 두근거리게 하는 이 문장은 1953년부터 1971년까지 방영된 미국 CBS 방송국의 역사 재현 TV 다큐멘터리 ‘당신은 거기 있다’의 오프닝이다. ‘스타 앵커맨의 원조’로 꼽히는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 1916~2009)가 진행했던 이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유명했다. 특히 “당신은 거기 있다!”는 비장한 목소리로 시청자를 단숨에 빠져들게 했던 서두는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저널리즘 업계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당신은 지금, 뉴스의 현장에 있다!”

TV 다큐멘터리 제작 장면▲미국 CBS TV 다큐멘터리 '당신은 거기 있다' 진행자로 인기를 끌었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현장감 있는 진행 방식으로 시청자의 몰입감을 높였다

성공적 스토리텔링의 주요 비결 중 하나는 시청자를 해당 콘텐츠로 끌어들여 그 세계를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저널리즘 종사자들이 ‘어떻게 하면 시청자를 좀 더 몰입시킬 수 있을까?’ 백방으로 고민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그 방법은 시대가 바뀌고 문화∙기술이 발달하며 조금씩 진화돼왔다. 재현 다큐멘터리 형식 도입, 컴퓨터 그래픽 기법 채택 따위는 모두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6년 3월, 그 꼭대기에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 자리 잡고 있다.

 

#‘온몸이 반응하는’ 스토리에의 유혹

“스토리의 아름다움과 힘은 사람들을 움직여 변화를 만드는 것, 사람들이 세계를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은 ‘지구촌 시민’이 되게 하는 겁니다.”

노니 드 라 페나(Nonny de la Peña) 엠블메틱 그룹(Emblematic Group) 최고경영자(CEO)에겐 ‘VR 보도(혹은 몰입 저널리즘)의 대모(代母)’란 별명이 늘 따라다닌다. 지난 2013년 8월 그가 제작, 발표한 VR 활용 보도물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Hunger in Los Angeles)’은 공개 당시 수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 (노니 드 라 페나의 TED 강의 영상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삼성 기어 VR 착용 모습▲VR 저널리즘의 대표작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은 VR 고글을 착용한 관람자에게 빈곤층의 참상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듯한 체험을 제공,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전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드는 얘길 구성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또 그렇게 일해왔습니다. 신문과 잡지에서 일했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방송 분야에도 종사했습니다. 하지만 VR로 작업하면서부터 비로소 사람들이 진정으로 치열한 반응을 보이는 걸 봤고 거기에 매료됐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는 미국 내 빈곤층의 참상을 시청자에게 직접 체험하게 하는 형식의 미니 VR 다큐멘터리다. 시청자가 VR용 고글(VR 기어)을 쓰면 눈 앞에 급식 배급소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피곤에 찌든 사람들은 몸을 겨우 가눈 채 하염없이 서 있다. 그 순간, 갑자기 앞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당뇨성 저혈당증으로 쓰러지고 그의 몸은 경련으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혼란에 빠진 이들은 남자를 둘러싸고 그 틈을 타 일부는 새치기를 시도한다. 보안요원들은 질서를 잡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 모든 광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VR 기어를 착용하고 그걸 체험한 이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쓰러진 남자를 밟지 않으려 황급히 물러서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며 “저 남자 좀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일부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의 다음 작품 ‘프로젝트 시리아(Project Syria)’ 역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리아 내전 상황과 난민 캠프의 참상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오랜 전투로 황폐해졌지만 잠시나마 평화가 깃든 듯 보이는 거리, 어린 소녀 하나가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 순간, “쾅!” 하고 로켓포가 터진다. 흙먼지가 이는 가운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흩어지는 사람들…. 모두 눈 앞에서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다.

내전 모습▲VR 기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가상현실로 접한 이는 동일한 뉴스를 활자나 단순 영상으로 접한 이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사실을 신문(이나 잡지) 기사로 접했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심한 표정으로 지면을 넘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동일한 장면을 VR로 접한 이들은 (비록 TV보다 화질이 낮아 사실감은 좀 떨어진다 해도) 깊이 공감하며 뭔가 행동을 취하려 노력했다. 이와 관련, 영화 제작가 겸 저술가이며 비디오 큐레이션 전문 기업 웨이와이어(waywire.com) CEO이기도 한 스티븐 로젠바움(Steven Rosenbaum)은 “VR 저널리즘의 위력은 체험자(독자)의 역할을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20조 원 시장’ 선점 경쟁 이미 시작

지난해 6월 미국 마케팅 조사 전문지 마켓앤드마켓(Markets and Markets)은 “오는 2020년이면 VR 저널리즘 시장 규모가 약 160억 달러(2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 로열티는 포함해 장비와 구성 요소(센서∙디스플레이∙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분야까지 망라한 수치다.

새로운 ‘블루오션’의 등장에 관련 업계는 이미 들썩이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통신사(AP 등)와 신문사(뉴욕타임스 등), 방송국(NHK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경제신문사∙조선일보사 등이 앞다퉈 VR 저널리즘 영역 개척에 나섰다.

VR 조선이 국내 최초로 공개한 360도 영상 콘텐츠 ‘자연이 바꾼 산업의 미래’ 중 한 장면▲VR 조선이 국내 최초로 공개한 360도 영상 콘텐츠 ‘자연이 바꾼 산업의 미래’ 중 한 장면. 미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제작한 것이다

오늘날 ‘VR 저널리즘 콘텐츠’라고 하면 대개 360도 촬영 영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360도 영상이 모두 VR 저널리즘 콘텐츠인 건 아니다. 가상현실은 어디까지나 실제 있는(있었던) 일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상’의 일이므로 원칙적으론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만 해당된다. 생생한 현장을 360도로 촬영한 후 전용 기기를 통해 관람하게 하는 경우, 이는 360도 영상일 뿐 가상현실이라고 하긴 어렵다.

반면, 언론 보도에서 ‘VR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가상현실 보도와 360도 영상을 한데 묶어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현 단계에선 앞서 소개한 노니 드 라 페나의 작품 같은 것보다 360도 영상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 사례를 살펴봐도 한국경제 TV가 도입한 ‘360이 간다’나 조선일보가 제공 중인 VR 콘텐츠 서비스 ‘VR 조선’은 대부분 360도 촬영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가끔은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전쟁 난민 어린이 관련 보도 영상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The Displaced)’은 실제 촬영분과 가상현실을 절묘하게 조합, 몰입도를 높였다.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떠나지 않을 것”

저널리즘의 탄생과 진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그 관계망 안에서 크고 작은 전략을 결정하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새로운 것, 즉 ‘뉴스(news)’에 목말라 해온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는 글자가 없던 시대엔 입소문이나 이미지(조각∙회화 등)로, 글자가 생긴 이후부턴 포고문의 형식으로 주요 사항을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전달해왔다.

소식지가 등장한 건 ‘교역’이 경제 활동의 주요 근거로 자리 잡으면서부터였다. 최초의 소식지는 1556년 무렵, 베니스공국에서 만들어졌다. 그 시절 베니스공국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근동(近東, 유럽의 관점에서 유럽과 가장 가까운 아시아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말) 교육의 중심지였다. 당시 소식지 한 부 가격은 베니스 화폐로 1가제타(gazetta). 현대 서구 신문 매체명 가운데 종종 ‘가제트(Gazette)’란 용어가 눈에 띄는 이유다.

이후 과학기술과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며 소식을 전하는 형태와 방법도 빠르게 진화했다. 위 그래픽에서 알 수 있듯 19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약 150년간 저널리즘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20세기 말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터넷 뉴스가 등장하면서부터 저널리즘은 한층 빠르고 과격하게,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해왔다. 분명한 건 뉴스 콘텐츠와 그 소비자 간 상호작용(interaction)이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몰입도도 날로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VR 저널리즘은 그 첨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ONLINE 저널리즘의 확산▲인터넷 보급 이후 한층 더 빠르게 진화해온 저널리즘, 그 첨단엔 VR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VR 저널리즘에서 ‘강력한 몰입도’는, 말하자면 양날의 검이다. 기대 효과가 큰 만큼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소비자가 현실과 가상 간 경계를 불분명하게 여기도록 할 수 있다”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직업 윤리를 엄격하게 교육 받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보도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VR 저널리즘 환경에선 누구든 콘텐츠를 만들어 관객을 현장으로 이끌 수 있다. 비윤리적 보도가 횡행할 경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구조다. 일부에선 “VR 보도물을 제작하려면 상당한 제작비를 감수해야 하므로 결국 ‘돈 있는 소수’를 위한 메시지만 제작, 소비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VR 저널리즘은 더더욱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아울러 한층 강력해지고 생동감 있어질 것이다. 스티븐 로젠바움의 말마따나 VR 저널리즘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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