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경쟁하며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직후 ‘사피엔스’(김영사)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우리나라를 방문, ‘인공지능이 인류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 극단적으로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하라리에 관해서라면 ‘과거를 통찰하는 능력에 비해 미래에 대한 견해엔 허술한 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얘기 중 몇몇은 적극적으로 공감할 만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 내지 90%는 그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 없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연장자에게 배운 교육 내용으로 여생을 준비하는 게 불가능한 역사상 첫 세대가 될지 모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가장 중요한 기술은 ‘어떻게 해야 늘 변화하면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하며 살 수 있을까?’일 것이다.”
혼자선 전공 교과서 못 읽는 대학생, 진짜 문제는 ‘이것’
전자공학 기술은 ‘알파고 사건’ 이전부터 이미 2년 후를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학생이 졸업해 사회로 나가는 시점이면 이미 구닥다리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대학 교육은 ‘가르치는 내용 자체’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아주대학교는 국내 주요 신문사 평가에서 15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중 전자공학과는 10위권쯤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주대 전자공학과의 평균적 학생들은 혼자서 교과서를 읽지 못한다. 영어로 쓰여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한글로 쓰인 교과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전공 서적을 처음 읽으면 그 내용의 3분의 1이나 이해될까 말까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읽을 때엔 절반쯤 이해되고 네댓 번 읽으면 비로소 대부분의 내용이 이해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처음 읽을 때 이해가 안 되면 그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동안 학원과 인터넷 강의에서 이해될 때까지 떠 먹여주던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원래 대학수학능력시험 지문은 플라톤의 ‘국가’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처럼 여느 고교생이라면 절대 읽어보지 않았을 곳에서 가져온다. 낯선 텍스트를 접할 때 짧은 시간 내에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지 평가하려는 의도다. 정공법은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이지만 우리의 놀라운 사교육 체계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나은 건 상상력… 어떻게 키울까?
객관식 보기 중 정답을 골라내는 일이라면 사람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상상력이라면 얘긴 좀 달라진다. 상상력을 직역하면 ‘어떤 모양(像)을 떠올리는(想) 능력(力)’이 된다. 상상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은 독서다. 영화 ‘마션(The Martian)’은 2015년 개봉됐지만 원작 소설이 출간된 건 2014년이었다. 영화로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열 배는 힘들다. 묘사된 문장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상상력을 기르는 훈련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머지않아 인공지능과 경쟁하며 살아야 할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는 뭘까? 문제지 열심히 풀게 해 소위 명문 대학 보내는 게 그들을 진정 위하는 길일까? 이제 대기업 정규직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프리랜서가 될 공산이 크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빨리 찾아낼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인 시대가 오고 있다.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은 일찍이 “체스 인공지능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지각·운동 능력이 한 살짜리 아기 정도인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바둑의 역사는 2500년이 채 안 된다. 알파고가 단기간에 인간을 따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인간이 두 다리로 걸어 다니기까진, 즉 직립보행하기까진 수백만 년의 학습(진화) 과정이 필요했다. 2족 보행 로봇 개발엔 알파고 개발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하단 얘기다.
‘현존 최고 2족 보행 로봇’으로 꼽히는 ‘아틀라스(Atlas)’[1]는 2000년 등장한 ‘혼다 아시모(Honda ASIMO)’[2]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과 비교하긴 초라한 수준이다. 얼마 전 아틀라스가 눈 덮인 비탈길을 그런대로 잘 걸어 내려오는 영상이 공개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는 로봇이 모터를 자율적으로 제어한 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주요 변수를 사전에 면밀하게 설정해준 덕분이었다. 결국 가상 공간에서 숫자로 이뤄진 정보를 처리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대체하더라도, 물질 세계를 돌아다니며 타인과 의견을 소통하고 감정을 이해하며 상호 작용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식 급변 시대의 어른, “나도 틀릴 수 있다” 인정해야
인공지능(로봇)이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인간의 능력은 곧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갖춰야 할 경쟁력이다. 대화와 타협의 기술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협업하는 능력 등은 인성교육 측면에서 예전부터 강조돼온 덕목이다. 하지만 이젠 우리 교육이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됐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은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와 ‘카톡’ 단문에 익숙해진 나머지, 긴 글을 쓰거나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일을 지나치게 어려워한다. 그 와중에 어른들은 상대평가 시스템으로 그들을 극단적 경쟁으로 내몰며 “남을 배려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기대가 가당하기나 한가?
내겐 올해로 만 5세 된 아이가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실은 내 아이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몰라 늘 고민이다. 아이가 갖게 될 직업은, 지금은 존재하지조차 않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저런 교육이 좋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게 최선이란 확신도 없다.
내가 알고 있던 성공 법칙은 이미 깨졌다. ‘내가 해봤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내 아이를, 내 제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을 권해보지만 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난 이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아 권유하지만 솔직히 확신은 없어. 네 생각은 어떠니? 우리 함께 고민해보자.”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성공 확률이 높을뿐더러 ‘꼰대’ 소리 듣는 것과 같은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소리만 지르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으면 좀 겸손해질 텐데. 지식과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려면 더 많은 융통성과 적응력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가 개발한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2] 일본 기업 혼다(Honda Motor)가 선보인 세계 최초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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