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스포츠맨십∙모험정신,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색 신입사원을 만나다 [下]
봄 자체가 개화(開花)의 계절이긴 하지만 그래도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은 벚꽃이다. 하지만 환하게 피어난 그 분홍빛 꽃잎은 짧아진 봄만큼이나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신입사원 시절도 어쩌면 벚꽃과 비슷한 것 아닐까? 회사 생활 전체에 비하면 짧지만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시기이니 말이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바둑 고수와 싱어송라이터 경력을 지닌 이색 신입사원을 만났던 지난 회차에 이어, 역시 입사 전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쟁력을 쌓은 후 삼성전자에 입성한 세 명과 마주했다.
“이게 다 종이 한 장으로 만든 거라고요?” 눈을 의심했다. 금방이라도 초원을 내달릴 듯한 말부터 두 귀를 쫑긋 세운 여우까지…. ‘종이’라고만 해도 신기한데 ‘한 장’이라니. 게다가 전부 ‘순수 창작품’이란다. 누구의? 정재일(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테스트앤드패키지센터)씨의!
눈썰미 하나로 도면 없이 ‘한 장 접기’ 작품 완성
“어린이 친구들, 오늘은 뭘 만들어볼까요?” 종이접기라고 하면 대부분 어릴 적 TV 어린이 프로그램 속 어른들의 안내를 따라 색종이로 뭔가 조물거리던 추억을 떠올린다. 자연히 종이접기와의 추억은 철이 들며 조금씩 멀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일씨는 예외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종이접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그걸로도 모자라 꾸준한 훈련을 통해 종이접기를 어엿한 ‘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급기야 2015년 ‘세계 종이접기 창작작품 공모대전’(이하 ‘공모전’)에선 최고상인 대상을 거머쥐었다.
재일씨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사준 교본을 스승 삼아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5학년 때였어요. 종이접기에 한창 재미를 붙이던 차에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죠. 당시 일본 작가가 종이 한 장으로 접은 용(龍)을 봤는데 얼굴이 정교하고 비늘까지 있더라고요. 정말 멋있었죠. 저도 만들어보고 싶은데 도면을 구할 길이 없더라고요. 몇 날 며칠 고민해 따라 만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종이 한 장으로 작업하는 습관이 그때 생긴 것 같아요.”
용돈 벌려 도전한 세계대회서 1등… ‘SNS 스타’로
그에게 종이접기는 취미이자 ‘힐링(healing) 수단’이었다. “취업을 준비할 때나 학교 시험 공부할 때 틈틈이 종이를 갖고 다니며 접었어요. 한창 몰두하면 명상할 때처럼 잡념이 사라져요. 다 접고 나면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머리도 맑아지고요.” 창작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공모전 수상 이후부터다. “솔직히 처음엔 용돈이 필요해 도전했어요. 상금이 꽤 크더라고요.”(웃음)
준비 기간은 약 6개월. 완성된 작품을 제출하고 발표를 기다리던 중 공모전 주최 측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상인진 얘기 안 하고 그냥 ‘높은 상’이라고만 하더라고요. 내심 ‘3∙4등쯤 했나 보다’ 했는데 대상을 호명할 때 제 이름이 불리는 거예요. 소리를 지를 뻔했죠. 얼떨떨하기도 하고…. 정말 기뻤어요.” 그 일로 재일씨는 일명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를 만났고 크고 작은 기사 속 주인공도 됐다. 주변에 알린 적도 없는데 한 친구가 소셜 미디어에 수상 기사를 공유하며 얼떨결에 유명 인사가 되기도 했다.
공모전 수상 이후 재일씨의 종이접기 방식은 한층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보통 종이접기 작품엔 사각형 종이가 쓰입니다. 그래서 22.5도(˚)가 중요해요. 90도를 반의 반으로 접은 각도거든요. 종이접기 할 때 모든 부분에서 22.5도의 배수, 즉 22.5도∙45도∙90도만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걸 ‘정형화’라고 해요. 이렇게 하면 균형도 더 잘 맞고 다른 사람이 따라 접도록 도면을 만들 수도 있죠.”
“목에 건 사원증 꿈같아… 밥값 하는 엔지니어 될 것”
올 2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며칠 전 반도체 프론트(front) 공정을 담당하는 지금 부서로 배치됐다. “업무에 대해선 아직 잘 몰라요. 다만 교육 때 배운 걸 돌이켜 보면 반도체 공정에선 모든 작업이 마이크로나 나노 단위로 이뤄지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아요. 종이접기도 비슷해요. 맨 처음 각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전체 작품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단계별로 꼼꼼하게 맞춰 접는 집중력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종이접기를 하며 길러온 세심함과 집중력이 앞으로 제가 맡게 될 일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취업 준비가 힘겨울 때마다 재일씨는 ‘좋은 회사 다니는’ 자신을 상상하며 버텼다. 그 상상 속 ‘베스트 시나리오’가 바로 삼성전자 사원증을 목에 건 모습이었다. “꿈꾸던 회사에 들어온 만큼 얼른 열심히 배워 밥값 하는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포부처럼 삼성전자에서 멋진 엔지니어로 성장해갈 그의 앞날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투구 보여드릴까요? 스윙도 되고요.” 야구 자세 좀 보여달란 요청에 흔쾌히 자세를 잡더니 금세 눈빛이 매섭게 바뀐다. 가상의 야구공을 쥐고 던지는 모습은 영락없는 마운드 위 선수다. 하지만 자세를 풀자마자 이내 환하게 미소 짓는 신입사원 얼굴로 돌아온다. “안 한 지 오래돼 (자세가) 제대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헤헤.”
친구들과 우연히 창단 결심… 1주 만에 40명 모집
김보연(삼성전자 DS부문 환경안전팀)씨는 ‘소싯적 야구 좀 했던’ 여자다. 한국 최초 대학생 여자 야구단 ‘플레이걸스’ 창단 멤버이기 때문. 어릴 때부터 구기 종목을 좋아했던 그는 실제로 웬만한 구기 종목은 한 번씩 도전해봤다. “제가 여중∙여고∙여대를 나왔는데 동성 친구들끼리 지내 그런지 운동할 기회는 남녀공학보다 더 많았어요. 클럽 활동으로 탁구와 테니스를 해봤고 점심 시간엔 축구도 했죠.” 당시에도 야구를 좋아했지만 직접 해볼 엄두까진 내지 못했다. 유니폼과 장비를 장만하고 연습 장소를 대여하는 등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대부분의 동아리가 남자 선수 위주로 꾸려져 있었기 때문. 하는 수 없이 ‘보는 야구’로 만족하며 지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야구 시즌이었어요. 그날도 평소처럼 야구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어느 팀이 우승할 것 같다’ ‘어젠 잘 못하더니 오늘 이기더라’ 같은 대화가 오갔죠. 그런데 마침 그 카페 사장님이 엄청난 야구 팬이자 사회인 야구 선수였던 거예요. 저희 얘길 듣다가 제안하시더라고요, 자기가 도와줄 테니 직접 야구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우연한 계기였지만 야구 좋아하던 여대생들은 솔깃했다. 반신반의하며 학교 게시판에 선수 모집 공고를 올렸다. “몇 명 안 모이면 직관(직접 관람) 동아리나 만들지, 뭐.” 하지만 오산이었다. 1주일 만에 무려 40명이 가입 신청을 한 것!
야구를 사랑하는 40명이 모이긴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야구를 정식으로 배워본 사람조차 전무했다. 하지만 그래 봬도 ‘국내 최초 대학생 여자 야구단’이었다. “그냥 한 번 해보자, 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저희 이전에 대학생 여자 야구단이 없었더라고요. 야구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고 주변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여자야구연맹에 등록해보라’는 제안까지 받았죠.”
내친김에 전국대회 도전… 패배 통해 얻은 ‘값진 교훈’
국내 여자 야구엔 프로리그가 없다. 대신 여성사회인야구단은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에 등록한 후 각종 대회를 치른다. 문제는 연맹 등록 후 반드시 대회를 준비해야 한단 것. “등록을 할지 말지, 대회를 나갈지 말지 엄청 고민했어요. 저희는 말 그대로 초보 중의 초보였으니까. 그래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웃음) ‘참가에 의의를 두자’며 전국 대회 출전까지 결정해버렸어요.”
대회 준비는 녹록지 않았다. 일단 연습 공간부터 문제였다. “교내 야구장이 없어 흙바닥 운동장에서 연습했는데 흙바닥에선 공 각도가 이상하게 튀거든요. 초반엔 다치기도 많이 했죠.” 실내 야구장과 운동장을 전전하는 신세였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 여덟 시면 다 함께 모여 공을 주고받았다. 조금씩 나아지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기운을 내기도 했다. “처음엔 높이 뜬 공 잡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연습을 거듭할수록 제대로 잡는 횟수가 늘더라고요. 우리 연습이 헛되진 않았구나, 싶어 뿌듯했죠.”
약 반 년간의 준비 끝에 한국여자야구대회 예선전을 치렀다. 결과는 대패(大敗). 수 년간 훈련해온 사회인 야구단에 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대회 기간 내내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저희가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했잖아요. 아마 예선 당일이 잔디구장에서 제대로 경기해본 첫날이었을 거예요. 잔디를 밟으며 야구 경기를 하고 있단 사실 자체가 마냥 행복했어요.”
박스 스코어에 점수가 뜬 것도,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보연씨를 비롯한 단원들은 경기 도중 상대 팀 선수에게 우려 섞인 조언(?)도 들었다. “프로 경기에선 아무리 친해도 경기가 한창일 때 상대 팀한테 조언 같은 것 못 해주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대회 출전 경험이 전혀 없는 대학생 동아리란 사실을 알곤 저희가 실수할 때마다 ‘그럴 땐 이렇게 했어야지!’ 하며 안타까워들 해주셨어요. 승패와 무관하게 하나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야구 하며 배운 팀워크 가치, 업무에도 쓸모 있을 것”
삼성전자 입사 후 보연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삼성전자나노시티(경기 화성시 삼성전자로) 환경 안전 점검. 야구단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그의 든든한 자양분이다. 우선 순간에 충실한 삶의 가치를 배웠다. “저희 같은 오합지졸 야구단도 불모지 같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전국 대회에까지 나갔잖아요. 실제 경기 당일에도 성적과 무관하게 야구를 즐기는 순간순간이 즐겁더라고요. ‘꼭 무슨 목표를 달성해야 행복한 건 아니구나’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가는 자체가 행복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회사에 들어온 후에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노력합니다.”
팀(team) 스포츠를 경험해본 것 역시 직장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야구란 게 혼자 잘한다고 이기거나 혼자 못한다고 지는 스포츠가 아니거든요. 서로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줘야 성적을 올릴 수 있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금은 아직 신입이라 뭐든 서툰데 그걸 같은 팀 선배들이 채워줘요. 고맙죠. 이 시기를 지나 제가 ‘어엿한 1인분’으로 제 몫을 다하는 날이 오면 그때 만나게 될 후배를 돕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호주 북부 다윈에서 남부 애들레이드까진 3000㎞.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로 달리는 거리(약 390㎞)의 7.7배다. 시속 100㎞로 운전해도 30시간이 걸리는 이 종주에 겁 없이 도전한 청년이 있다, 그것도 손수 만든 태양광 자동차로! 최성민(삼성전자 DS부문 테스트앤드패키지센터)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저 자동차가 좋아” 동아리 친구들과 ‘무모한 도전’
성민씨는 대학에 다니던 2013년 호주 태양광 자동차 종주대회 ‘월드솔라챌린지(World Solar Challenge, WSC)’에 출전했다. WSC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청년들이 손수 태양광 자동차를 만들어 6박 7일간 3000㎞를 완주하는 행사다. “기계공학을 전공해 그런지 예전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동차야말로 기계공학의 꽃이거든요. 다양한 역학과 기술이 망라된 기계니까요. 2012년 교내 자동차 제작 동아리 ‘KUST’의 초기 멤버로 합류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WSC도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준비했죠.”
WSC는 2년마다 열린다. 바꿔 말하면 2년은 준비해야 출전할 수 있는 대회란 얘기다. 하지만 성민씨와 친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이 채 안 됐다. 그런 만큼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했다. 성민씨의 말마따나 “군대 시절보다 힘든” 시기였다. 어찌어찌 22명이 모였지만 시간과 돈, 정보 어느 것 하나 충분하지 않았다. “제일 힘들었던 건 금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어요. 태양광 자동차 한 대 만들려면 적게는 2억 원, 많게는 20억 원까지 들어가거든요. 그렇게 큰 돈을 어디서 지원 받겠어요. 연구비를 따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죠. 한정된 예산으로 태양광 자동차를 완성해내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과제였다. 태양이 떠있는 동안 한정된 에너지를 축적해 달리는 태양광 자동차의 특성상 차체를 가볍게 만들고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과정은 필수다. 공기 저항이야 설계 단계에서 어떻게 한다 해도 문제는 경량화였다.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성민씨 팀은 값비싼 탄소섬유 대신 저렴한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탄소섬유와 알루미늄은 무게도 무게지만 작업 과정에서 차이가 엄청나요.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만들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하거든요. 실제로 차체 제작 작업 당시 두 달 가까이 집에 가질 못했어요. 작업장에서 합숙하다시피 했죠.”
갖은 고생 끝에 출사표… 2013㎞ 달리며 ‘절반의 성공’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가 완성됐지만 이번엔 주행 점검 도중 문제가 생겼다. 속력에 무게가 더해지며 주요 부품이 휘어버린 것. “테스트하고 고치는 작업이 3주간 반복됐어요. 당시 제가 팀원들 식사 담당이었는데(웃음) 자동차 보수하랴 메뉴 고민하랴 엄청 고생했죠.” 시험 주행할 장소가 마땅찮아 전남 영암까지 내려갔고 ‘텐트 치고 노숙하며’ 테스트를 마쳤다. 씻을 곳이 없어 급한 대로 인근 화장실을 활용하기도 했다. “군대 시절보다 더 힘들었다”는 그의 말이 절로 이해됐다.
스물두 명의 젊은이가 1년 가까이 피와 땀, 눈물을 쏟아 마침내 ‘독도’란 이름의 태양광 자동차가 완성됐다. 이제 남은 건 호주 대륙 종주. 성민씨와 친구들은 대회 기간 내내 낮엔 달리고 밤엔 차량을 정비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완주하고 싶었지만 2013㎞를 달리는 데 만족해야 했어요. 그 이후엔 날씨가 좋지 않아 태양광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2013년 출전한 대회에서 딱 2013㎞를 달린 것, 의미 있죠?”
(출처: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홈페이지)
완주 목표를 이루지 못해 아쉬울 법도 한데 성민씨의 대답은 달랐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잖아요. 목표 거리의 3분의 2 이상은 달렸고요. 사실 대회를 준비하며 외부 지원을 너무 못 받아 팀원들이 많이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당시 도전을 계기로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좀 더 나은 준비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맘이 컸어요. 작업했던 데이터를 꼼꼼히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바람은 이뤄졌다. KUST의 도전이 여기저기서 조명 받으며 여러 기업이 후원 의사를 밝힌 것. 그리고 2년 후인 2015년, 성민씨의 후배들이 제작한 태양광 자동차 ‘백호’는 당당히 완주에 성공했다. 독도의 도전이 없었다면 얻기 어려웠을 결과였다.
“도전정신 새겨 반도체사에 발자취 남기는 인재 될게요”
WSC 도전 이후 성민씨는 내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제 웬만한 일은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해요. ‘강철 멘탈’이 됐다고나 할까요? 입사 이후에도 그런 자세가 크게 도움이 돼요. 동기들과 얘기 나눠보면 다들 자기 능력 밖의 일이 주어졌을 때 부담을 많이 느끼더라고요. 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보통은 ‘일단 해보자!’ 생각하고 진행합니다. 그리고 막상 부딪쳐보면 걱정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던데요.”(웃음)
삼성전자의 일원이 된 후 성민씨는 ‘반도체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새 목표를 정했다. “신입사원 환영회 때 팀장님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알게 된 사실인데 현재 생산 중인 반도체 규격 중 굉장히 많은 부분을 그 팀장님이 만드셨더라고요. 훗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가 제게 ‘삼성전자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뭔가가 있는 사람. 그러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역량을 쌓고 준비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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