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필요한 이유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에 비하면 신체 조건은 보잘것없다. 대신 가진 걸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대표적 동작이 던지기다. 인간과 신체 구조가 유사한 침팬지도 공 던지는 속도는 시속 30㎞ 정도밖에 안 된다. 초등학생 소년도 그보다 훨씬 빠르다. 메이저리그 투수의 구속은 시속 160㎞를 오간다.
다윈[1]은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며 손이 자유로워졌고, 그 결과 독특한 던지기 능력을 얻으며 사냥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추론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가 2013년 6월 영국 과학 전문 주간지 네이처(Nature)에 소개된 적이 있다. 비결은 몸의 효과적 사용이었다. 인간의 던지기는 팔뿐 아니라 어깨(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신)까지 활용하는 게 특징인데, 이때 어깨를 감싼 인대와 힘줄이 새총의 고무줄처럼 탄성에너지를 응축했다 던지는 순간 풀어놓는다. 인간은 어깨뼈가 낮고 위팔뼈(상완골)가 몸통 축과 직각이어서 팔을 뒤로 더 많이 젖힐 수 있다. 피구 경기를 할 때 여성이 공에 힘을 싣지 못하는 건 이 같은 팔 젖히기 요령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야구하기에 적합한 인간의 어깨 구조만 해도 실은 오랜 조정의 결과물이다.
인체에 내장된 최고 기술 ‘읽고 쓰기’
흔히 ‘기술’이라고 하면 스마트폰 같은 외장 기기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던지기처럼 인간 몸에 내장된 기술도 허다하다. 각종 예체능 분야 고수들의 고난도 기량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별적으로 특화된 기술 외에 인류 범용으로 확립된 기술도 있다. 그중 (아주 특별한) 하나가 바로 읽고 쓰는 능력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읽고 쓰기의 내력은 꽤 길고 복잡하다. 출발은 5만 년 전 언어의 발명(‘출현’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 특유의 분절 언어가 생겨나게 된 과정은 학계에서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쨌거나 (학자들이 곧잘 쓰는 표현에 따르면) 그건 인류 입장에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미국 고인류학자 리처드 클라인[2]은 언어의 탄생을 “인간 운영 체제에 일어난 변화”라고까지 평가했다. 언어 덕에 비로소 인간이 마음을 길들이고 좀 더 정교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단 뜻이다. 언어는 집단 내 의사소통과 집단 구성원 간 협동을 도왔다. 인간이 개념을 통해 자문자답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학습·창작 욕구를 불태울 수 있게 된 데도 언어의 역할이 컸다.
뒤이어 언어를 담는 문자가 발명되면서 인류는 또 한 번 높이 도약했다. 이 과정에 대해선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 요즘은 문자와 글이 물과 공기처럼 익숙하지만 (모든 기술이 출현 초기에 그랬듯) ‘말의 시대’에서 ‘글의 시대’로 넘어올 때의 저항은 만만찮았다. 소크라테스[3]가 저항군에 속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플라톤[4]의 대화 ‘파이드로스’[5]에 따르면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인류에 문자를 선사한 테우트신이 “이 발명품은 이집트인을 더 현명하게 만들고 이집트인에게 보다 좋은 기억력을 선물할 것”이라고 하자, 타모스왕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대의 발명은 학습자의 정신을 나태하게 만들 것이다. 학습자는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을 사용하지 않을 테고, 스스로 생각하려 하기보다 문자로 쓰인 외부 자료를 보다 신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발명한 ‘그 특별한 것’은 추억을 보조한다. 그러니 그대가 제자들에게 준 건 진실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많은 걸 듣는 청자(聽者)가 되겠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거의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지루한 인간이 될 것이며, 실재하지도 않는 지혜를 보여주려 할 것이다.”
천하의 소크라테스도 틀릴 때가 있었다. 이후 장장 4000년간 인류는 글의 혜택 속에 살고 있다. 문명이란 단어부터가 ‘글로 밝아진다’는 뜻이다. 종교·과학 등 사피엔스의 모든 위업이 글 위에 쌓이고 전수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가 뇌 속 소프트웨어 향상시킨다?
대량 인쇄술 발명은 여기에 터보 엔진 같은 역할을 했다. ‘글 읽는 뇌’의 저자인 프랑스 인지심리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6]은 “종이 위 점과 선이 눈을 거쳐 인간 의식에 심상으로 떠오르고 의미로 이해되는 과정은 경이 그 자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인간은 한눈에 단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글꼴에서 의미를 곧바로 얻지 않는다. 문자열을 부분으로 쪼개고, 그것들을 다시 문자·음절·형태소 등의 위계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 같은 분해와 재결합이 모두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다시 말해 읽기는 뇌신경에 길을 내고 닦은 결과물이다. 실험에 따르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성인의 뇌와 문맹 성인의 뇌를 비교하면 전자가 좌반구 자원을 훨씬 더 많이 이용하고 언어의 기억 폭도 더 커진다. 드앤은 “오늘날 뇌과학은 여러 유형의 정보를 조합, 통합하는 능력이 언어와 연결돼있다고 규정한다”며 “인간이 초월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된 건 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책 읽는 뇌’의 저자인 미국 인지과학자 매리언 울프[7]는 “독서는 뇌가 새로운 능력을 학습해 지능을 확대시켜가는 방법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글을 곧바로 이해하는 능력은 초기 판독에 드는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더 깊이 분석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고 썼다.
사실 인류가 이런 읽기 능력을 습득한 건 불과 수천 년 전이다. 더구나 대중 차원의 글 읽기는 불과 수백 년 전, 근대 교육이 도입된 후에야 실현됐다. 인류 종(種)의 긴 역사로 보면 비교적 최근 일인 셈이다. 던지기가 사냥을 위해 발달한 고도의 신체 기술이었던 것처럼 읽기도 뇌 속 정교한 소프트웨어 향상을 위한 신생 기술이었던 셈이다.
부의 양극화보다 두려운 ‘지의 양극화’
많은 사람이 자동화로 인한 인간의 위기와 부(富)의 양극화를 걱정한다. 그런데 실상 그 못지않게 우려해야 할 게 ‘지(知)의 양극화’다. “오늘날처럼 대중이 ‘짧고 쉬우며 직관적인’ 이미지에만 반응하면 자칫 사고마저 얕고 단순해질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획일적 대중과 창의적 소수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럴 경우, 가짜 뉴스와 선동을 앞세운 포퓰리즘의 위험도 커진다.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창의적) 소수도 안심할 수 없다. 그런 양상은 이미 지식 생산 영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표면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과학 시대의 지식은 인프라와 인력을 먼저 갖춘 곳에서 격차를 벌려간다. 출판과 저널리즘 품질 면에서도 글로벌 양극화의 징후가 뚜렷하다.
울프는 “독서야말로 인간이 딛고 심연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도,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는 도약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마법의 기술은 얕고 가벼운 공짜 오락물을 앞세운 또 다른 기술의 파상 공격으로 주춤거리는 중이다. 분명한 건 그 어떤 신기술도, 그리고 그 기술이 만들 새로운 세상도 인간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으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일 수밖에 없단 사실이다. 인류가 꿈꾸는 미래 역시 ‘기술 사회 너머’를 생각하는 인간 능력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Charles R. Darwin(1809~1882). 영국 생물학자로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을 주장했다. ‘종(種)의 기원’ 등의 책을 썼다
[2] Richard G. Klein(1941~).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교수. “인류 역사의 한 지점에서 발생한 유전학적 돌연변이가 언어 능력과 관련 있는 두뇌 능력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했다
[3] Socrate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자였던 플라톤의 ‘대화편’에 주요 사상이 수록돼 전해진다
[4] Plato.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국가’ 등의 저서를 남겼다
[5] 원제 ‘Phaidros’. 아름다운 강변 숲 속에서 이뤄진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담은 작품
[6] Stanislas Dehaene(1965~). 인지신경과학 전문가로 프랑스 인지신경촬영연구소(SACLAY) 소장을 맡고 있다
[7] Maryanne Wolf(1950~). 미국 터프츠 대학 엘리엇-피어슨 아동발달학과 교수 겸 독서와언어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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