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스토브 한 대 쓰는 걸로 뭐가 달라지냐고요?
위 글은 올해 아홉 살이 된 케냐 어린이 엘빈(Lvin∙9)의 일상을 일기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케냐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기 공급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의 약 80%가 숯으로 불을 피운다. 하지만 숯은 타는 과정에서 그을음 현상이 발생할 뿐 아니라 유해 물질이 포함된 연기를 잔뜩 뿜어낸다. 실제로 케냐 국민 중 90%는 급성 호흡기 질환에 노출돼 있으며 매년 1만5천 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이하 현지 시각) 나이로비에서 케냐 정부와 협약을 맺고 케냐 북서부에 위치한 카쿠마 난민캠프에 ‘저탄소 친환경 쿡스토브(cookstove)’를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7일에도 케냐 남부 항구도시 몸바사(Mombasa) 빈민촌에 쿡스토브 1만 대를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지원되는 쿡스토브는 바이오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일 뿐 아니라 건강에도 무해한 제품이다. 제품의 개발∙제작∙보급은 루럴디벨롭먼트솔루션(Rural Development Solution’s limited)이, 가격 지원은 삼성전자가 각각 담당한다. 삼성전자의 지원으로 대당 판매 가격은 6000케냐실링(약 6만 원)에서 1995케냐실링(약 2만 원)으로 줄었다. 단, 제품을 무상으로 지원하진 않는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이 지급 받은 제품을 재판매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숯 연기 매캐하면 ‘밥 때 됐구나’ 바로 알죠”
지난달 25일, 몸바사 소재 초등학교 조참아카데미(Zocham Academy)를 찾았다. 때마침 교실에선 숯의 위험성을 주제로 한 교육이 한창이었다. 셸라(Shella) 교사에 따르면 숯으로 불 피우는 방식은 폐가 약한 아이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이곳 아이들은 숯 때문에 어릴 때부터 먼지 많고 더러운 곳에 노출돼 있어요. 콧물은 물론, 재채기나 가려움증 등의 증상을 안고 살아가죠. 심한 경우 어린 나이에 폐기종이 생겨 고생하기도 하고요.”
이곳에서 만난 월린(Wallin∙11)군은 “끼니 때가 되면 매번 연기가 방으로 들어와 기침이 많이 나고 눈이 따갑다”며 “어떨 땐 집안 곳곳에 차오르는 연기만으로 ‘엄마가 밥 짓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챌 정도”라고 말했다.
쿡스토브는 케냐인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 건강까지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를 베었을 때 그중 실제 숯으로 만들어지는 건 10%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나머지 90%는 쓸모 없이 버려진다. 반면, 바이오에탄올을 연료로 쓰는 쿡스토브는 열효율이 숯의 여섯 배나 된다. 나무 벨 필요가 없으니 벌목량을 줄일 수 있는 건 물론, 산림 파괴나 토양 침식 같은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삼성전자 덕에 쿡스토브를 처음 접했다”는 주부 아네트(Annet)씨는 쿡스토브에 대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모두 지키는 기기”라고 잘라 말했다. “케냐에선 벌채 활동이 불법이라 인적 드문 새벽 몰래 숲으로 들어가 나무를 베는 사람이 꽤 있었어요. 그러다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아 죽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쿡스토브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되면 이런 사고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요? 케냐 국민들도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을 테고요.”
싸고 건강에 좋은데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일석삼조’
이튿날인 26일, 이번엔 몸바사의 한 시장을 찾았다. 거리는 온통 연기로 자욱했다. 불을 피우고 있는 한 상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연기가 많이 나는데 나무로 불을 피우신 건가요?” “네, 가장 저렴하게 불 피울 수 있는 방법이 이거거든요.” 골목에서 감자튀김을 파는 상인 마리(Mary)씨는 “숯을 살 경제적 여유조차 없어 나무로 불을 피운다”고 밝혔다. “숯으로만 요리하면 하루에 40케냐실링(약 400원)을 써야 하지만 나무를 이용하면 15케냐실링(약 150원)만 있어도 돼요. 물론 나무는 연기와 먼지 둘 다 숯보다 훨씬 많이 생기지만요.”
쿡스토브가 빈민촌에 널리 보급되려면 가장 먼저 가격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아무리 제품이 좋다 해도 빈민 가구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사용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 쿡스토브는 비용 측면에서도 숯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숯으로 불을 피워 밥 한 끼를 지으려면 1㎏의 숯(20케냐실링, 약 200원)이 필요하다.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연료 값으로만 60케냐실링(약 600원)이 드는 셈이다. 쿡스토브는 처음에 기계 값으로 1995케냐실링을 내면 이후엔 하루 평균 약 20케냐실링어치 바이오에탄올만 써도 된다. 두 달만 써도 같은 기간 숯을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절감된다. 실제로 쿡스토브를 사용 중인 유세프(Youssef)씨는 “20케냐실링은 작은 바나나를 낱개로 두 개 살 수 있는 돈”이라며 “숯 대신 쿡스토브를 쓰면서 경제적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쿡스토브의 또 다른 장점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울 수 있단 사실이다. 몸바사 현지에서 쿡스토브 보급 임무를 맡고 있는 스벤 르네(Svein Rene) 루럴디벨롭먼트솔루션 CEO는 “우리가 쿡스토브의 원료로 바이오에탄올을 쓰기로 한 건 케냐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바이오에탄올은 제당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당밀(廢糖蜜)을 발효해 얻습니다. 다행히 몸바사 지역엔 제당 공장이 많아 바이오에탄올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가스는 재생할 수 없지만 바이오에탄올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란 사실도 고려했고요.”
‘쿡스토브 보급’ 날갯짓, 케냐인 삶 바꿀 큰 바람 되길
미국 기상학자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는 일찍이 ‘나비효과’란 이론을 주창했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예상치 못했던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골자다. 불 피우는 법 하나 바꾸는 것, 어쩌면 그저 작은 변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변화로 인해 열한 살 월린군은 더 이상 집 안 연기 때문에 눈 비비지 않아도 되고, 여덟 살 데이비드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숯을 사러 다녀올 필요가 없다. 시장 상인 마리씨가 숯과 나무에서 나오는 연기 속에서 괴로워할 일도 ‘안녕’이다. 그 사이, 불법 벌채가 사라진 케냐의 산림은 한층 더 짙고 푸르게 우거질 것이다.
로렌즈의 주장처럼 세상을 바꾸는 힘은 강하게 밀어붙이는 태풍이 아니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인지도 모른다. 삼성전자가 시작한 ‘쿡스토브 보급’의 작은 날갯짓이 머지않아 더 큰 바람이 돼 보다 많은 사람과 마을, 더 나아가 국가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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