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너 대체 정체가 뭐니?
전대미문의 사태로 시끄럽던 나라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정치권은 채 2주도 남지 않은 조기 대선(5/9) 준비로 여전히 분주하다. 대선 후보들은 “구습(舊習)을 정리하고 원칙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겠다”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겠다”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공약을 쏟아낸다.
무수한 공약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단연 4차 산업혁명 관련 내용이다. 실제로 주요 후보의 공약엔 “대통령 직속 추진위원회를 만든다” “10만 명의 IT 전문가를 육성하겠다” 같은 내용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짧아서일까, 대선 후보들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기보다 여전히 담론(談論)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 같은 현실은 전문가 집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용어에 담긴 철학과 방향성을 찾아내기보다 단편적 기술이나 잘 알려진 해외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선 “3차 혁명의 연장에 불과” 주장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전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2∙3차 산업혁명 당시 각각 증기기관과 전기, 컴퓨터∙로봇에 의해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의 본질도 사물인터넷∙빅데이터∙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에 의해 이뤄지는 ‘생산 혁명’으로 간주되는 게 현실이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뿐 아니라 물리학∙생물학 등이 다양한 산업과 결합해 범위∙속도∙파급효과 측면에서 이전 산업혁명과는 비견할 수 없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 양자 간 차이는 딱 거기까지다.
변화의 폭이 크고 빠르다 해서 그게 곧 새로운 산업혁명 전개를 의미하는 걸까? 1차 산업혁명은 기계화에 기반한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해 ‘공장(工場)’이란 개념을 보편화시켰다. 공장은 고용자와 피고용자를 낳았고, 이들은 다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싹트게 했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고 증기기관(으로 작동되는 교통 수단)을 활용, 남는 제품을 이웃 마을이나 국가로 수출했다. 이 과정에서 상거래와 무역 개념이 정착됐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electricity)와 함께 시작됐다. 전기의 등장으로 ‘전기분해’와 ‘전기제련’이 가능해지면서 중화학 공업의 기반이 마련됐다. 중공업의 발전은 (‘컨베이어벨트 도입’으로 대표되는) 분업화를 촉진, 작업 자동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디젤 기술과 결합한 중공업의 발전은 제국주의를 촉발하기도, 국제정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어진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로봇 기술을 활용, 분업화된 생산 모듈의 자동화를 실현했다. 인터넷 발달은 물리적 공간 한계를 극복하며 국제 무역과 금융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이처럼 기존 산업혁명은 기술 발전이 사회적·경제적 측면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이 중 어느 누구도 사회와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일자리 감소에 따른 공포심’만 조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쪽에선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 자체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이들은 “클라우스 슈밥[1]이 주창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4차 산업혁명의 내용이 지난 2011년 제레미 리프킨[2]이 발간한 책 ‘3차 산업혁명(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how lateral power is transforming energy, the economy, and the world)’ 속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1982년 존 나이스비트[3]가 펴낸 저서 ‘메가트렌드(Megatrends)나 2006년 엘빈 토플러[4]가 주장했던 ‘제4의 물결(The Fourth Wave)’과도 일맥상통한단 것이다.
3차까진 ‘생산’ 혁명… 4차부턴 ‘소비’ 혁명
오늘 말하려는 내용은 앞선 설명과 그 방향이 사뭇 다르다. “최근 나타나는 현상은 4차 산업혁명도, 3차 산업혁명의 연장도 아니며 오히려 2차 산업혁명으로 불려야 한다”고 말할 참이기 때문이다. 단, 이때 ‘2차’란 기존에 명명돼온 2차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다시 말해 1∙2∙3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 혁명’이란 점에서 1차 산업혁명으로, 요즘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은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일어나는 소비 혁명’이란 점에서 2차 산업혁명으로 다시 구분돼야 한단 게 내 생각이다.
이제까지의 사업(business) 방식은 생산자가 비용 효율적 방법으로 고성능∙고품질∙고품격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시장에서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였다. 반면, 앞으로 전개될 사업 방식은 소비자가 제품의 종류와 특성뿐 아니라 생산 시점까지 결정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소비자는 이미 제품을 소유하기보다 필요한 때에 손쉽게 이용하길 원한다. 또한 자신에게 맞춰 만들어진 제품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즉 제품 자체보다 제품이 제공하는 본질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변화의 패러다임이 4차 산업혁명이든 2차 산업혁명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용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용어 측면에서 따져볼 때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획∙제조 주체는 생산자(혹은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바뀌고 있다. 관련 사업 절차 역시 소비자를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기업들은 이 같은 시장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사업 절차를 디지털로 전환하려는(digital transformation)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 다음 칼럼에선 바로 이 얘길 다뤄볼 생각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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