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포화 시대’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우리 아빠는 말야, 소파에 누워서 TV만 틀면 바로 잠이 드신다.” “우리 아빠도 그래. 아주 TV가 수면제야, 수면제.” “그럴 거면 뭐 하러 TV 트시는지 모르겠어. 잠드셨나 싶어서 TV를 끄면 금방 깨서 ‘나 안 자. TV 놔둬!’ 이러신다니까.” “맞아, 맞아. 우리 아빠도!”
흔히 들을(상상할) 수 있는 10대들의 대화다. 사실 ‘TV만 틀면 잠드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독거노인이나 원룸에 사는 젊은 층처럼 혼자 사는 사람 중에선 잘 준비 다해놓고 그제서야 TV를 틀고 잠을 청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비단 국내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인류 문명의 기적, ‘바보상자’로 전락하기까지
지난 2015년 삼성전자는 미국∙유럽 소비자를 대상으로 ‘라이프스타일 기반 TV 소비문화 행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침실은 거실 다음으로 TV 설치 비중이 높은 장소였다. 미국의 경우 조사 대상 전체 가구의 94%가 거실에, 78%가 부부 침실에, 54%가 자녀 침실에 각각 TV를 둔 걸로 나타났다. 네 번째로 많은 응답을 얻은 장소가 주방(13%)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거실과 침실이 TV 설치 공간으로 얼마나 압도적 존재감을 갖는지 알 수 있다. (응답자의 7%는 ‘TV를 한 대 더 둔다면 어디에 놓고 싶느냐’는 질문에 ‘부부 침실’을 꼽기도 했다.)
이 조사 결과는 오늘날 TV가 소비자에게 갖는 의미를 함의한다. 아울러 그동안 이 명제에 대한 해석이 부단히 바뀌어온 사실도 떠올리게 한다.
처음 시장에 출현한 TV를 두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란 점에 초점을 맞췄다. “RCA가 말한다. TV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The RCA Tells. What TELEVISION will mean to you!)” 1939년 미국 뉴욕, RCA[1]가 TV 실험 방송 시작을 알리며 내보냈던 광고의 첫 번째 문구다. 포스터 왼쪽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02층 옥상에 세워진 TV 안테나 사진이 앉혀졌다. 그 사이사이, TV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다양한 설정으로 삽입됐다.
포스터 오른쪽엔 TV의 향후 가능성에 대한 RCA 측 주장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요(要)는 ‘TV 관련 사업은 라디오 사업처럼 엄청난 이익을 창출할 신규 영역이니 많이들 투자하라’였다. TV 사업을 처음 개척한 사람들에게 TV가 어떤 존재감을 지녔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이 시기 사람들은 향후 TV로 인해 소비자가 받게 될, 아니 사회 전체가 거쳐갈 변화의 물결까진 미처 내다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렇게 시작된 TV 방송은 이내 소비자 일상을 엄청나게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세상 모든 얘길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구현해내는 이 기기의 출현에 열광했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지난 2015년 2월 11일자 스페셜 리포트(‘SUHD TV, 현대인의 삶에 손 내밀다’)에서 TV 보급 초기 풍경을 묘사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 시기 TV는 가정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온 마을 사람이 집∙이발관∙식당 등 ‘TV 있는 공간’에 모여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웃고 떠들었다. 몇몇 선진국에서 시작된 이 풍경은 얼마 안 가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장 1960년대 서울에서도 저녁 무렵, TV 있는 집에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TV 프로그램 시청에 집중하는 풍경이 흔하게 펼쳐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TV는 ‘현대 문명의 기적’ 정도의 대접을 받았다. 그야말로 ‘요술상자’가 따로 없었다. ‘저렇게 작은 통에 어쩜 저리 많은 사람이 들어가 움직이며 노래하는 걸까?’ 사람들은 그저 신기해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TV를 ‘공동체적 유대감의 핵심’으로 인지했다. 이후 TV 보급률이 점차 높아져 TV가 ‘거의 모든 가정에 있는 가전’이 되면서 초기 TV를 향한 동경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TV는 가정의 중심 공간인 거실(한옥의 경우 대청마루) 한복판을 차지하며 가구 구성원을 장악했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TV에 높은 몰입도를 보였다. 주부가 가사에 집중하고 싶을 때 아이를 TV 앞에 앉혀놓으면 될 정도였다. 이처럼 개별 가정으로 침투한 TV는 모든 구성원의 관심을, 시간을 빠른 속도로 독점해가기 시작했다.
특정 대상의 영향력이 과도해지면 반드시 그에 대한 반작용이 생기게 마련. 실제로 1970년대 후반 들어 사람들은 TV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앞다퉈 쏟아내기 시작했다. 관련 근거가 될 만한 연구 결과도 속속 발표됐다. 이들 보고서는 하나같이 “TV는 △청소년의 학습 부진을 초래하고 △언어 발달에 지장을 주며 △폭력성과 반(反)사회성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자녀의 TV 시청 시간을 철저히 제한하는 게 교양 있는 부모의 척도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TV만 보고 있으면 머리 나빠진단다, 얘야.” TV의 위상이 ‘바보상자’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공감 능력’ 업고 ‘대리적 현실’로 재조명 받다
한때 완전히 세(勢)가 꺾인 줄로만 여겨졌던 TV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방송통신 기술 발전과 함께 오히려 예전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인간을 사로잡고 있다. TV의 영향력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한 사회과학자들의 답변은 대체로 일치한다. “인간 특유의 공감 능력 덕분”이란 것이다. 영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 Titchener, 1867~1927)가 처음 주창한 공감 능력은 ‘타인의 상황과 심리를 이해하고 그에 필요한 적정 반응을 보이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혹자는 공감 능력을 가리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일 수 있는 근거’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뇌신경과학의 최근 연구 결과는 공감 능력이 발현되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좀 더 확실히 보여준다. 지난 2013년 폴 잭(Paul Zak)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 교수(신경경제학) 팀이 진행했던 실험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감동적 실화가 담긴 비디오 클립을 보여준 후 그들의 혈액을 채취, 혈중 호르몬 성분을 검사했다. 그 결과, 대다수 참가자의 옥시토신(oxytocin) 농도가 실험 참가 전보다 높아졌다.
옥시토신은 타인의 상태를 공감하며 관련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호르몬이다. 말하자면 ‘공감 능력을 만들어주는 호르몬’인 셈이다. 따라서 TV 관람 도중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어나는 건 TV 속 상황도 실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공감 능력을 불러일으켜 특정 행동으로 이끌게 한단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실험 직후 연구진이 출구 쪽에 “비디오 클립 속 주인공 소년에게 전달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놓아둔 모금 상자엔 적지 않은 돈이 모였다. 영상을 접한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금액이었다.
폴 잭 교수의 실험은 ‘TV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TV가 제공하는 모습이나 소리는 현실 경험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신경계와 호르몬계에 작용, 마치 현실에서 경험하고 반응할 때처럼 심신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TV는 그저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줘 흥미를 유발하는 ‘오락상자’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 대체 효과를 갖는 ‘대리적 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폭발적 소프트웨어 성장세, 제조사에도 ‘호재’
국제연합(UN)이 발표한 ‘세계 개발 지표(Global Development Indicator)’에 의하면 2010년 현재 전 세계 총 가구 수의 약 89%(14억2000만 가구)가 16억 대의 TV를 이용하고 있다.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포함한 지구상 인구의 61%(42억 명)이 일상에서 TV를 접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TV 시장은 가히 ‘포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TV 기기 자체의 소비는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15년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TV 보유 대수는 2009년 이래 약간 늘어났을 뿐 기본적으론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유럽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부문의 변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 중이다. 실시간 TV의 수요가 유의미하게 줄지 않는 건 물론, 시간과 무관하게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볼 수 있는 일명 ‘OTT(Over The Top)’ 서비스의 비중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 분야의 공급량이 증가한다는 건 관련 수요 역시 늘고 있단 사실을 방증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TV로 뭔가를 보는 시간의 총량 자체가 늘어난단 것이다. 이 때문에 한쪽에선 “이제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생산 능력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콘텐츠의 성격도 다양해졌지만 특정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 역시 상당 부분 바뀌었다. 실제로 ‘TV가 청소년의 반(反)사회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던 지난 세기 말까지만 해도 폭력적∙선정적 내용으로 보는 이의 아드레날린(adrenaline, 공격성 호르몬의 일종) 농도를 높이는 콘텐츠가 우세를 보였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의 콘텐츠 소비 행태는 사뭇 달라졌다. △흐름이 비교적 느린 드라마 △보는 이가 편안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여럿이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음악 방송 등의 선호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제공되던 서부 활극이나 액션, 서스펜스 영화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시절과 달리 한국식 드라마나 대중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주목 받게 된 배경도 이 같은 변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CES 2017에서 선보인 '원리모트(One remote)' TV·셋톱박스· OTT 등 주변 기기를 리모컨 하나로 제어할 수 있어 다양한 콘텐츠를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신규 수요가 하드웨어의 신규 수요로 연결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대답은 “당연히 연결될 수 있다”다. 다만 수요의 ‘성격’을 잘 읽어야 한다. 오늘날 TV는 한 가구의 구심점이란 위상에서 벗어나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라이프 파트너’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해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동네 이발소는 말할 것도 없고) 집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 보는 것조차 번거로워한다. TV 시청 역시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형태로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2015년 삼성전자가 발간한 미국∙유럽 지역 TV 소비문화 보고서 역시 그런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요컨대 오늘날 소비자가 원하는 TV의 양상은 이런 것이다. △눈에 너무 튀지 않을 것 △집 안 다른 인테리어 요소들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갖출 것 △거실은 물론, 부부와 자녀 침실에도 한 대씩 두고 싶은 모양일 것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을 것 △보는 이의 기분과 필요에 따른 프로그램 선택이 가능할 것 △시청하다 언제든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사실적 영상과 음향을 갖춰 일체감을 느끼게 해줄 것….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TV 제조사가 유념해야 할 TV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1] Radio Corporation of America의 약칭. 1919년 설립된 미국 전자제품 제조 기업. 1986년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인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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