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젊음, 두려움 앞에 서다_③전문가 인터뷰<연재 끝>
갓난아기는 엄마와 떨어질 때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공포는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접하는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사회가 급격히 변모하며 사람들이 접하는 공포의 유형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여기엔 범죄나 테러처럼 안전을 위협하는 현상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크고 작은 일상 속 공포도 포함돼 있습니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도 어찌할 줄 모르고 흔들리는 눈동자, 수십 명은커녕 서너 명 앞에만 서도 덜덜 떨리는 목소리…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고소공포나 발표불안을 호소합니다. 특정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두려움인 만큼 자칫 대수롭잖게 여겨질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더없는 고통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해소 방안을 고민하는 건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가상현실 기술, 정신의학과 만나다
‘사람들의 일상 속 두려움 완화에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의 생각은 ‘론칭피플 2.0’ 캠페인의 하나였던 ‘비피어리스(#BeFearless)’ 활동을 통해 구체화됐는데요. 캠페인에 동참한 전 세계 수많은 청년이 삼성 기어 VR(이하 ‘기어 VR’)을 착용하고 자신 안의 두려움과 마주했습니다.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이는 초고층 빌딩 옥상이나 스카이워크(skywalk) 입구에, 남 앞에 서는 일이 쉽지 않은 이는 무수한 청중을 마주해야 하는 대형 무대 앞에 각각 서야 했죠.
기어 VR을 활용한 두려움 완화 훈련,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요? 삼성전자 뉴스룸은 그 대답을 듣기 위해 김재진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았습니다. 김 교수는 인간의 감정 중 특히 ‘공포(fear)’에 깊은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데요. 최근엔 비피어리스 캠페인 기획 단계에 동참, 정신의학에 VR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재진 교수는 “갖가지 공포에 시달리며 남모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학적 도움을 주고 싶어 이번 캠페인 참여를 수락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현대인은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 문 두드리길 꺼리곤 하는데요. 그런 만큼 ‘병원에 가지 않고도 스스로 공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다면 적잖은 이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김 교수가 원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고요.
“VR은 공포 적응 훈련의 최적 환경”
김재진 교수에 따르면 공포는 ‘훈련으로 극복하기 가장 쉬운’ 감정입니다. 무서워하는 상황이나 대상에 자신을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후 그에 적응하는 훈련을 거듭하며 공포의 역치(閾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세기)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가상현실이야말로 공포 적응 훈련을 가장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가 (VR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기 훨씬 전인) 지난 2003년부터 이 분야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연구해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재진 교수는 “한때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증) 환자들이 후유증으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치료와 가상현실을 접목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가상현실 환경에선 부작용 없이 대인관계를 훈련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번 캠페인 참가자들은 그의 말대로 가상현실 환경에서 각자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결과는 “그렇다”입니다. 실제로 국내 임상 실험을 통해 2주간 공포 극복 훈련에 참여했던 대다수에게서 긍정적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이들은 기어 VR을 활용, 각자 공포를 느끼는 가상 상황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고 적응하는 훈련에 참여한 후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제출했습니다. 기어 VR과 (생체 반응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있어 가능한 방식이었죠.
먼저 고소공포를 겪고 있는 대상자 40명의 훈련 결과부터 보실까요?<아래 표 참조> 훈련 전후의 고소공포지수(AQ, Acrophobia Questionnaire) 차이를 살펴본 결과, 대상자 가운데 87.5%(35명)의 증상이 호전됐으며 불안감이 평균 23.6% 개선된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발표불안을 겪는 참가자 대상 훈련 결과입니다<아래 표 참조>. 앞선 훈련과 달리 사회적 상호작용 불안 척도(SIAS, Social Interaction Anxiety Scale)가 효과 측정 준거로 활용됐는데요. 훈련 결과, 대상자의 88.1%는 증상이 호전된 걸로 나타났습니다(평균 감소율 18.7%). 특히 공포 강도가 낮은 참가자(81%)보다 높은 참가자(95.2%)에서 공포 완화 효과가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세계 최초 연구… “난항의 연속이었죠”
사실 이번 훈련이 시종일관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이번 캠페인은 가상현실에서 공포 상황을 체험하던 시각(visual) 중심의 기존 훈련 방식에 더해 웨어러블 기기(기어 VR)를 연결, 맥박 등의 인체 반응 변화 관찰 결과까지 포함시켜 공포 완화 정도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참여자의 공포나 두려움이 개선됐는지 여부를 측정하는 방식이죠.
김재진 교수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기준점’을 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맥박 수치가 ○○BPM 이하는 돼야 특정 단계(level)를 통과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등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 여기에 해당하죠. 김 교수는 “사실상 세계 최초로 시도된 연구인 만큼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가상현실과 정신의학 간 협업 모델을 꿈꿔온 그에게 ‘세계 최초 웨어러블 기기 접목 가상현실 공포 극복 프로젝트’ 비피어리스는 여러모로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세계 각지 청년들이 ‘나만의 공포’를 정면 응시하도록, 그리고 스스로 극복하도록 도왔단 사실이 가장 뿌듯합니다. 이번 캠페인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가상현실 훈련 시스템이 앞으로도 개선,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재진 교수는 ‘가상현실을 이용한 공포 완화 훈련’의 가능성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 캠페인에서 다뤄진 고소공포나 발표불안은 물론, 보다 다양한 정신의학 치료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는 또한 “VR 활용 훈련 프로그램 운영에선 (생체 반응 기록 기능을 담당하게 될) 웨어러블 기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가상현실과 웨어러블 기기 간 조합이 인류의 삶에 가져올 변화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라고 덧붙였습니다.
‘VR X 웨어러블’ 조합, 가능성은 무궁무진
공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비피어리스 캠페인으로 공포의 불가항성에 과감하게 맞섰습니다. 그리고 ‘공포 역시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얻는 데 성공했죠. 더욱이 이번 캠페인에 활용된 기어 VR은 이제 막 가능성을 인정 받기 시작한 가상현실 분야의 대표적 웨어러블 기기입니다. 가상현실과 웨어러블 기기, 이 두 조합은 앞으로 또 어떤 가능성으로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할까요? 여러분은 그저 느긋하게, 그리고 즐거운 맘으로 그 순간을 기다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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