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칼럼] ‘우플란드 마법사’와 함께한 사흘
‘영삼성(Young Samsung)’.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이 운영 중인 대학생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글로벌 경제 생태계를 탐방, 경험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다녀온 곳은 스웨덴. 영삼성 리포터즈가 현지 스타트업 CEO와 교수, 대학생을 만나 장시간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은 고스란히 영상과 기사로 만들어져 지난달 영삼성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아래는 영삼성 운영진 자격으로 스웨덴을 찾았을 당시의 소회를 정리한 글이다.
프롤로그_‘메이커스 DNA’가 흐르는 나라, 스웨덴
단풍이 절정일 때 이름난 산을 찾듯 구름이 한창일 때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아득하게 높이 떠 있는 구름도 비행기를 타서 보면 실제론 조금 높은 봉우리 근처에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사실 하늘에서 보면 구름은 오히려 지상에 가깝다.
우리에게 흔히 ‘북유럽의 복지 천국(heaven)’으로 각인된 스웨덴. 인천에서 출발해 10여 시간 비행 후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이제 도착 얼마 전이다. 기내 창 밖은 운무로 흐리다. 간헐적으로 비치는 투명한 빛 사이로 평평한 대지가 살짝 보인다. 수직보단 수평으로 이뤄진 것 같은 도시. 하늘과 땅이 맞닿은 틈새에서 피어난 들꽃 같음이 첫 인상이다.
스칸디나비아 지도를 보면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사이에 있다. 아래론 덴마크와 접해 있다. 스웨덴 작가 셀마 라게를뢰프[2]는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젊은 세대를 위해 ‘닐스의 신기한 여행’을 펴냈다. 닐스의 긴 여정에서 가을이 되자 향한 곳은 스웨덴 최남단 영토 스코네(Skåne)다.
1546년 당시엔 덴마크 땅이었던 그곳, 스코네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소년의 이름은 튀코 브라헤(Tycho Brahe). 탁월하게 타고난 시력과 꼼꼼한 성격 덕분에 맨눈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했고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한 귀족이 주최한 만찬 자리에서 와인을 폭음한 후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자리를 뜨는 게 실례라고 생각해 요의를 참다가 급성 신장염에 걸려 54세로 사망했다.
브라헤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뭘까? 적어도 ‘생리 현상은 즉시 해결하자’는 아닐 것이다. 사실 브라헤 자신은 살아있을 때 역사에 남을 만큼 대단한 업적을 남기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요하네스 케플러[3]는 브라헤가 관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 교실에서도 배우는 행성 운동에 관한 법칙을 발표했다. 한 세대 후 뉴턴[4]은 케플러의 법칙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이처럼 과거에 축적된 데이터는 현재의 정보나 지식, 지혜로 진화한다.
‘기능 없는 재능은 엔진 없는 연료와 같아서 잘 타긴 하지만 어느 것도 이뤄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축적된 연료와 재능은 적절한 때(기능과 엔진)를 만나면 성취의 불꽃을 피워 올린다. 스웨덴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5]의 영화 ‘페르소나’(1966)는 우연한 어지럼증이 만든, 스쳐가는 직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설령 획기적 발상과 마주치더라도 그 이전까지 축적돼온 창작자의 영감이 없다면 걸작은 태어날 수 없다. 스웨덴은 19세기부터 20세기 사이 안전성냥과 지퍼, 테트라팩[6]과 이식 가능한 심장 박동 조율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다. 이 나라엔 뭔가를 만들어내는 ‘메이커스(제조업) DNA’가 곳곳에 산재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게 아닐까?
어제_‘스웨덴의 정약용’ 크리스토퍼 폴햄의 후예
스톡홀롬에 있는 스웨덴 국립과학기술박물관(Tekniska Museet)을 찾았다. 1924년 문을 연 이곳은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 혁신의 과정과 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100개의 혁신’ 부스에 전시된 발명품은 비유적 의미에서 ‘야금술(冶金術)’과 ‘연금술(鍊金術)’의 산물이다. 본디 거기 속하지 않은 걸 가려내는 일이 야금술이라면 연금술은 본질을 변환하고 달리 보이도록 하는 일이다. 야금술은 증기기관과 함께 산업혁명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하다. 연금술은 본래의 목적(비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꾸는 것)을 충실히 달성하진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혁신을 이뤄냈다.
국립과학기술박물관에서 유독 눈에 띈 인물은 17세기 스웨덴 과학자 크리스토퍼 폴햄(Christoper Polhem, 1661~1751). 살았던 시기는 다르지만 15세기 장영실이나 18세기 정약용 같은 조선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폴햄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혁신적 수력 공장 설립 등의 공로를 인정 받아 국왕에게 귀족 작위와 성(城)을 받았다. 오늘날 많은 성취의 출발점이 된 산업혁명 시대가 동트기 전, 말하자면 새벽녘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그가 운영을 맡았던 스웨덴 팔룬[8] 구리 광산은 17세기 중반 당시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약 3분의 2(60~70%)를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성과는 훗날 스웨덴을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폴햄의 재능과 성취는 영국에서와 같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스웨덴인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닷투닷(dot to dot)’이란 게임이 있다. 번호가 붙은 점(dot)을 순서대로 연결, 기린·소나무·코스모스 따위의 모양을 먼저 완성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얼핏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선을 잇기만 하면 의미가 드러난다. 혁신적 기술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것도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선진국이야말로 ‘혁신을 향한 지식과 경험이 모여있는 곳’이란 사실이다.
놀라운 혁신은 그 어떤 것도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축적된 역량이 발현된 결과다. ‘혁신은 오래된 별빛’이란 말이 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도 알고 보면 과거 스웨덴 바이킹이 북유럽 바다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빛나던 것일 수 있단 얘기다. 결국 과학이 다루는 건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혁신엔 익숙한 것과 낯선 것, 관습과 파격이 공존한다.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긴장이 생겨난다. 지형이 단조로우면 누가 잘라도 단면은 동일하다. 복합적 지형일수록 잘라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혁신의 요체란 그런 것이다. 꽃만 봐선 씨앗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꽃을 다시 피우고 싶다면 씨앗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씨앗은 아름다운 꽃을 땅 위로 밀어 올리는 알뿌리 같은 존재다. 응용이나 혁신, 진화란 꽃도 마찬가지다. 본질과 개념, 원리 같은 씨앗이 있어야 비로소 그 형체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오늘_이케아와 H&M, 아크네스튜디오, 그리고…
수 세기 전 크리스토퍼 폴햄의 혁신 DNA는 오늘날 스웨덴 경제·산업 분야로 계승됐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이케아(IKEA)와 H&M, 아크네스튜디오[9] 등은 스웨덴을 넘어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랐다.
알렉산드르 옛트스트룀(Alexander Hjertstrom)은 현재 스웨디시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헬스케어 액세서리 제조 기업 에어리넘(Airinum)의 최고경영자(CEO)다. 한국에도 ‘프리미엄 황사 마스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 흔히 쓰는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는 혜성이 우리(대중) 눈에 띌 때까지 얼마나 오랜 여정을 거쳐왔는지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비유가 아니다. 옛트스트룀 역시 오늘날의 성취를 이루기 전 컨설턴트 경력을 쌓고 인도와 영국에서 수학하는 등 오랜 고민과 모색의 길을 걸어왔다.
두 발을 살짝 벌리고 꼿꼿한 자세로 선 채 자신의 경영 철학을 얘기하는 모습은 그가 창업한 기업의 이니셜(‘A’)을 닮았다. 머릿속에 먼지 한 톨 떨어져 있지 않을 듯 대답이 명료했다. 생략도 군더더기도 없었다.
옛트스트룀은 최근 공개된 삼성전자 제작 웹드라마 ‘고래먼지’에도 관심을 보였다(고래먼지는 미래 사회의 환경 이슈를 다룬 작품이다).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지속 가능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제가 에어리넘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는 “스웨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뛰어나고 교육 수준이 높아 새로운 걸 시작하기에 좋은 시장을 갖고 있다”며 “동일한 환경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혁신 기업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고래먼지의 마지막 장면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와 대조적으로 무척 행복해 보이는 그와의 만남은 추운 날 주머니에 넣어둔 핫팩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그 온기를 거듭 만지작거렸다.
다음 인터뷰이는 송한석 스웨덴왕립공과대학(KTH) 교수였다. (한국계이지만 스웨덴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가 서툰 그와의 대화는 영어로 진행됐다.) 그는 “스웨덴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어느 곳 할 것 없이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 구성원 개개인의 독립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업무 환경 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90%는 올바른 질문을 찾는 데, 나머지 10%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각각 써야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송한석 교수는 취재진이 어떤 질문을 던져도 사람 좋은 얼굴로 화답했다. 본인 전공인 경제학적 지식은 물론, 유머·재치·겸손으로 가득한 답변이 이어졌다. 인터뷰 내내 색색의 실로 포근히 엮은 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질문이 적확하지 않으면 답을 찾는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 제대로 된 질문이라면 설령 답을 찾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 자체가 유의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올바른 질문을 찾기 전 단계는 풀코스 정찬에서 이제 겨우 애피타이저를 맛본 상태, 혹은 본 영화 시작 전 예고편을 감상한 상태에 불과하다.
내일_시공간 초월한 한국·스웨덴 대학생 간 만남
스톡홀름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엠마누엘 갈레토 벨로(Emmanuel Galletto Bello)는 “스웨덴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교육과 경험 간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막상 해보니 정말 힘들더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역시 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요즘 내 최대 고민도 경제적 자립”이라며 “대학 졸업 후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 스톡홀름대학에서 만난 마르쿠스 무세손(Marcus Mosesson, 한국학 전공)은 “스웨덴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기업가 정신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글로벌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난민 문제는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경제 난민 문제가 3년 전부터 심각해졌어요.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고 일자리는 무슨 수로 구할지, 우리 사회엔 어떻게 동화될지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스톡홀름대 재학생과의 인터뷰 도중 최영숙의 존재를 아는 이가 있어 반가웠다. 1920년대 당시 조선 젊은이 중 일부는 ‘여기보다 넓은 세상’을 동경하며 국경을 넘었다. 최영숙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27년 그는 동양인 중 최초로 스톡홀름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처음엔 낯선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었지만 교내 도서관에서 일하며 현지 지식인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1930년 스톡홀름대 경제학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지만 2년 후 꿈을 채 펼치지 못한 채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걸출한 스타트업을 만들고 성공시킨 옛트스트룀은 역설적으로 인터뷰 당시 “창업가가 된다는 건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하겠단 뜻”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대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취업(창업)에 성공하기란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2018년 가을, 스웨덴과 한국 대학생이 서로의 미래를 두고 나눈 고민은 어쩌면 1920년대 최영숙의 고민과 어떤 면에선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스웨덴 할 것 없이 취업과 창업은 대학생의 양대 진로다. 특히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스타트업 창업에서 대기업 등 엑셀러레이터[11]의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와 같이 창업을 돕는 인프라는 일종의 스펀지 역할을 한다. 체조로 치면 선수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맘껏 연기할 수 있도록 착지 지점에 놓아두는 안전 매트라고나 할까?
스톡홀름 중심부에 위치한 노르스켄하우스[12] 역시 그런 일을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의 역할은 “기업과 투자자 간 협력과 교류를 지원하는 것”이다. 아크네스튜디오와 수년간 협업해온 스웨덴 건축가 안드레아스 포르넬(Andreas Fornell)은 지난해 11월 브랜드 전문 잡지 ‘매거진 B’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살펴보니 문에서 가까운 자리에 침대가 있었던 경우 더 강인하고 올곧게 성장할 확률이 높았다. 누군가가 불을 끄고, 잘 자라고 말하면서 한 번이라도 더 토닥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물리적 접촉이 필요하다.” 노르스켄하우스 관계자와의 인터뷰 도중 문득 그 기사 내용이 떠올랐다. 노르스켄하우스가 하는 일 역시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한 사람 간 거리감을 좁히고 소통을 증진시키는 것이리라.
에필로그_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미국의 33대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자문을 구하는 경제학자마다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이렇다”란 식으로 토를 다는 데 대한 푸념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있다. 외팔이 경제학자는 무협 영화에 나오는 외팔이 검객보다 휠씬 위험하고 위협적이다.
프랭크 바움 소설 ‘오즈의 마법사’[13]에서 처음에 오즈는 아름다운 이상향, 마법사는 놀랍고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런데 막상 맞닥뜨려보니 보통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존재였다. 현실 세계도 이와 같다. 멀리서 볼 땐 완전한 것 같아도 반드시 빛과 그늘이 함께 존재한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낙관주의자는 도넛을, 비관주의자는 구멍을 각각 떠올린다고 한다. 세상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마법사의 요술 같은 비기(祕技)는 현실에 없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팽팽한 밧줄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진실이 곡예사가 될 때 비로소 그것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씨가 있는 과일을 과도로 자르면 어느 순간 칼날이 들어가지 않는다. 굴곡을 느끼는 순간에야 딱딱하게 응결된 채 부드러운 과육 아래 숨었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한 나라의, 그리고 다른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기란 몇 번에 걸쳐 고개를 넘고 협곡을 건너야 할 만큼 만만찮은 일이다.
귀국 후 스웨덴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헤이 스웨덴’(지콜론북)을 읽었다. 두 필자(이성원·조수영)가 2년여간 스웨덴에서 생활하며 겪은 일을 묶은 책이다. 그중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던 대목을 옮겨본다.
‘밤하늘은 아무리 별을 사랑해도 자신을 온통 별만으로 채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 성격과 개성이 그때 대부분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라면, 어쩌면 평생을 가져갈 자산인 취향 발견과 축적에 시간을 아끼지 말길.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쓰고 경험하기, 그것만이 남는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영화감독 임권택씨는 한 인터뷰에서 “평생에 걸쳐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건 (무엇보다) 귀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자신의 ‘무엇’이 뭔지 알아내려는 노력 또한 귀하다.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다만 기회가 노크할 때 시끄럽다고 불평만 늘어놓는다면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한, 기회가 왔을 때를 위해 준비한 우플란드. 그에게서 오늘도 난 많은 걸 배운다. 설령 우플란드가 스톡홀름을 품지 못했다 해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1] Uppland. 스톡홀름·웁살라 등 스웨덴 여러 주(州)를 아우르는 지역명
[2] Selma Lagerlof(1858~1940). 190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14년 여성으로선 최초로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3] Johannes Kepler(1571~1630). 독일 천문학자 겸 대학 교수
[4] Sir Isaac Newton(1642~1727). 영국 물리학자 겸 천문학자
[5] Ingmar Bergman(1918~2007). 스웨덴 영화감독 겸 연출자
[6] Tetra Pak. 음료용 종이 용기로 오늘날 종이팩의 원형이다. 1951년 동명의 스웨덴 기업에서 제작된 사면체 우유팩이 그 시초다
[7] 영국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가 2014년 발표한 장편소설
[8] Falun. 스웨덴 중부 코파르베리주도(州都)
[9] Acne Studio. 1996년 조니 요한슨이 스톡홀름에 설립한 패션 브랜드
[10] 건축가 유현준씨는 자신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을유문화사)에서 조운 메이어스-레비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교수진의 연구 결과를 인용, “3미터 높이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 생각이 나온다”고 밝히기도 했다
[11] accelerator. 창업 초기 기업이 성장 궤도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자금과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12] 노르스켄(norrsken)은 ‘북쪽의 빛’이란 뜻의 스웨덴어다
[13] 열네 권으로 구성된 동명의 시리즈(문학세계사) 중 1권 ‘위대한 마법사 오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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