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의 선구안’ 움직이는 그래픽, IT 날개 달고 비상하다

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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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의 선구안’ 움직이는 그래픽, IT 날개 달고 비상하다.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과 함께하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사이코(Psycho)’.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이 1960년 발표한 작품이다. ‘다중인격자의 연쇄살인’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제를 다루며 공포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소재와 줄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 전개 방식 △음악∙음향 사용 △자막 구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적 시도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다면 그중 가장 돈이 많이 들었던 실험은 뭘까?

정답은 ‘오프닝 크레디트(opening credit)’다. 영화가 시작될 때 제작자∙감독∙배우∙스태프들의 이름이 화면 위 자막으로 올라가는 걸 오프닝 크레디트라고 한다. 영상이 펼쳐지며 그 위로 자막이 떠오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이코에선 달랐다. 막대그래프 모양 이미지들이 긴장감 주는 음악에 맞춰 가로로, 또 세로로 움직이고 그 사이로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형태였기 때문. 이 오프닝 크레디트는 당시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솔 바스(Saul Bass)의 작품이다. 히치콕은 바스에게 오프닝 크레디트를 맡기기 위해 사이코 총 제작비의 약 7분의 1(3000달러)를 건넸다고 전해진다.

근 80년 전 얘기지만 요즘 IT 담론 공간에선 심심찮게 이 오프닝 크레디트 얘기가 들려온다. 제작 단가가 높아서라기보다 ‘최초의 본격적 모션그래픽디자인(motion graphic design)’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보급이 확산되고 그에 따라 온라인 정보 교류의 폭이 늘면서 모션그래픽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이다.

움직이는 그래픽, 비결은 인간 시각기능의 ‘착각’

아침에 눈을 뜨고 스마트폰 채팅 창을 열자, 귀여운 곰돌이가 원뿔형 모자를 쓴 채 폭죽을 터뜨리며 팡팡 뛰어오른다. 그 위로 흐르는 문구는 “생일 축하해!”. 친구가 보낸 축하 이모지[1]다. 입가에 절로 떠오르는 미소를 잠깐 참고 내 이모지 보관함을 부지런히 뒤져 개중 가장 매력적인 녀석으로 답장을 띄운다. 좋아하는 웹툰 캐릭터가 두 손을 모아 연신 하트(♡)를 그리는 동작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미 친숙할 이 소통 과정은 ‘애니모지(움직이는 이모지)’로 불리는 모션그래픽디자인의 대표적 활용 사례다.

모션그래픽디자인은 말 그대로 ‘움직임(motion)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디자인이다. 그래픽(graphic)은 그 어원상 ‘여러 글자를 뒤섞어 생생하게 묘사한 구성물’을 일컫는다. 신문∙잡지 등 대중 매체가 보급되면서 정보와 메시지 전달에 필수불가결한 매체로 부각됐다. 그랬던 그래픽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TV∙영화 등 영상 매체가 보급되면서부터였다.

초기에 등장한 모션그래픽디자인은 대부분 ‘화면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자’였다. 사이코 오프닝 크레디트가 주목 받은 건 글자 외에 다른 시각적 요소도 통합될 수 있단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운 계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직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통합한 모션그래픽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TV 등 화면에 ‘움직이는 가상 이미지’를 띄우는 게 기술적으로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20세기 이전 일찌감치 등장한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문제는 그걸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된단 사실이었다.

인간의 시각 기능이 한 장면의 정보를 처리하려면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짧게는 100밀리세컨드[2], 길게는 400밀리세컨드가 걸린다. 다시 말해 1초 만에 3매 내지 10매 이상의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바뀌면 대부분은 그걸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 동영상 촬영 시 하나의 정지된 이미지가 담긴 필름을 ‘프레임(frame)’이라고 하는데, 초당 프레임 수가 많을수록 움직임은 보다 매끈하고 자연스러워진다[3].

실물 촬영의 경우, 필름 프레임만 많이 확보되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그에 반해 모션그래픽디자인, 즉 가상 이미지가 움직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면 그만큼의 프레임을 일일이 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디즈니∙워너브러더스 같은 기업은 엄청난 인력을 고용해 초당 16프레임 이상 되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곤 했다.

GIF 파일이 혁신인 이유 “최소 에너지로 손쉽게”
 

인터넷 세상이 되고 여러 단말기가 모바일 기기 하나로 수렴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손끝에서 손끝으로 주고받게 됐다. 이 작업을 보다 쉽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이하 ‘앱’)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연히 그 과정에서 모션그래픽디자인의 활용도 크게 늘었다(지난 회차에 언급된 지능형 가상 도우미, 즉 IVA 역시 모션그래픽디자인이 주요 요소로 통합된 앱의 일종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할 때, 모션그래픽은 연속적 사진 여러 장을 일정 간격으로 재생시키면 구현된다. 따라서 그런 파일을 만들어 온라인 공간에 올리기만 해도 해당 공간 접속자 누구나 모션그래픽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크지 않고 에너지 사용도 제한적인 모바일 기기 내에서 모션그래픽디자인이 자유자재로 구현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지속적 기술 혁신이 축적돼야 한다. 무수한 프레임을 손쉽게 제작하는 게 하나,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 그 화면들을 재생시키는 게 다른 하나다.

그런 점에서 GIF 파일은 가히 ‘혁신’이라 할 만하다. GIF는 비트맵 파일 여러 개가 단말기에서 일정 간격으로 재생되게 하는 파일 형식이다. 작업하기 쉬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웹브라우저가 자동으로 인식, 높은 보급률을 자랑한다. 웬만한 소프트웨어 공유 프로그램을 갖춘 운영체제(OS)에서라면 누구나 애니메이션 구성 프레임을 작성, GIF 파일로 만들어 올린 후 이미지 태그를 코드화할 수 있다. 물론 파일 크기를 줄여야 하는 관계로 아주 간단한 애니메이션밖에 만들지 못하는 건 단점으로 꼽힌다.

▲GIF 애니메이션의 개별 프레임을 나타낸 그림
                                                                                                         (자료 출처: How Stuff Works)

▲위 그림에서 살펴본 4개 프레임을 하나의 GIF 파일로 만들어 움직임을 가미하면 위와 같은 모습이 된다
                                                                                                         (자료 출처: How Stuff Works)

GIF 탄생 이후에도 △프레임을 손쉽게 만들고 △많은 움직임을 보여주면서도 △용량이 크지 않은 소프트웨어 개발 노력은 계속됐다. 다이내믹 HTML과 자바 애플릿(Java applet), 플러그인과 플래시 등이 대표적 예. 이들 소프트웨어 덕에 브라우저와 브라우저 간, 컴퓨터 언어와 컴퓨터 언어 간 호환이나 협력은 한층 쉬워졌다. 파일 크기는 점차 줄어들었고 인터넷에서의 다운로드도 이전보다 간편해졌다. 그런 생태계의 토양 위에서 연속적 콘텐츠 프레임을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주얼 아트 소프트웨어도 속속 개발됐다. 이처럼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모션그래픽디자인 관련 기반 기술이 발전했단 사실은 역으로 모션그래픽디자인 기술이 모바일 기기 생태계에서 얼마나 매력적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방증한다.

마케팅 분야까지 진출 “온라인 공간에 매력 부여”

모션그래픽디자인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분야 중 하나가 비디오 마케팅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4]이란 말도 있듯 물건을 판매하는 전략 중 최고는 그 물건이 아주 매력적으로 활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 모델로 주가를 높이는 건 그 때문이다.

최근 마케팅 업계에선 ‘드러내놓고 물건을 홍보하는’ 전략보다 ‘세련된 환경에서 친절하면서도 정확하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을 돕는’ 전략이 보다 효율적인 걸로 평가되고 있다. IVA가 뜨는 이유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모션그래픽디자인 역시 종전의 광고 패러다임에서보다 한층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관련, 마케팅용 모션그래픽 제작 기업 포워드모션그래픽(Forward Motion Graphic)은 모션그래픽(이 쓰인 비디오) 활용과 기업 판매(sales) 성과 간 상관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했다.
  ∙ 1분간 비디오를 시청하는 건 180만 개 단어를 읽는 것과 맞먹는 학습 효과가 있다 ∙ 검색 엔진 접속 시 비디오가 있으면 목록 1페이지 안쪽에 들어갈 확률이 53배 높아진다 ∙ 웹사이트 방문자는 비디오를 볼 때 평균 2분간 더 머무른다 ∙ 온라인 마케팅 웹사이트의 87%가 비디오를 사용한다 ∙ 마케팅 비디오를 본 사람의 65%가 해당 웹사이트를 방문, 구매를 결정한다 ∙ 소셜 미디어 사용자의 87%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 비디오를 팔로우한다 ∙ 비디오 링크가 있는 포스트는 방문자를 세 배 이상 끌어들인다 ∙ 온라인 비디오를 보면 사회적 행동 참여율이 두 배 높아진다 ∙ 고객의 46%가 비디오를 본 후 애호 브랜드를 바꾸며, 고객의 39%는 비디오 형태로 새로운 브랜드를 알게 된다 (자료 출처: 포워드모션그래픽)

자본주의 사회여서일까, “돈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 말대로라면 솔 바스의 사이코 오프닝 크레디트 사례 규모를 비롯, 모션그래픽디자인의 역사는 그 기술의 금전적 가치가 어느 정돈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요즘도 내로라하는 모션그래픽디자이너는 최고 급여를 받으며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션그래픽디자인을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높은 수익을 보장 받을 확률 역시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모션그래픽디자인은 인간에게 충족감을 주는 문화 아이템의 일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얼굴을 본 인간은 뇌에서 보상 회로가 작동, 돈을 벌었을 때나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와 같은 충족감을 얻는다. 이는 과학 실험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2001년 이차크 아론(Itzhak Aharon)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연구팀은 피실험자 집단에 몇 장의 여성 사진을 보여주고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fMRI[5]로 촬영,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이 실험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주관적 감정이 아니며 다수가 공통적으로 지닌 기본적 심리 기제”란 사실을 입증했단 점에서 당시 크게 주목 받았다).

요컨대 잘 설계된 모션그래픽디자인은 매력적 온라인 공간을 갖추는 핵심 요소일 수 있다. 세련되게 차려 입은 점원이 친절하게 안내하는 매장에서의 쇼핑이 기분 좋듯, 쾌적하고 빼어난 경관을 갖춘 명소 관광이 즐겁듯.


[1] 이모지 관련 내용을 보다 상세히 알고 싶다면 지난 4월 11일자 스페셜 리포트 “하루 사용 건수 50억 개… 당신도 ‘이모지 커뮤니케이터’인가요?”를 참조할 것
[2] 1밀리세컨드는 1000분의 1초다(단위 ㎳)
[3] 요즘 제작되는 영상의 초당 프레임 수는 평균 24개다
[4] ‘물건을 보면 그걸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의 사자성어
[5]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혈류 관련 변화를 감지, 두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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