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라, 그만큼 보상 받을지니… 이색 헬스 트래킹 앱 ‘워크온’이 탄생하기까지
▲가로 폭이 좁은 직사각형 공간에서 매일 동고동락 중인 스왈라비 식구들. (왼쪽부터)이상재 이사, 유현조∙고영태 매니저, 정해권 대표, 오인창∙우승우 매니저. 이상재 이사와 정해권 대표가 들고 있는 건 지난해 8월 삼성전자에서 독립할 당시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에게 받은 격려 메시지다
스왈라비(Swallaby). 삼성전자 C랩 프로젝트에서 출발, 지난해 9월 스핀오프 절차를 밟은 스타트업이다. 주요 사업 품목은 고객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헬스케어 플랫폼. 지난 5일엔 그중에서도 주력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워크온(WalkOn)’을 출시했다. 이날 오후, “앱 출시로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스왈라비 사무실(서울 서초구 서초동)을 찾았다.
‘건강 관리의 숨은 1인치’ 동기 부여에 주목
워크온은 일종의 헬스 트래킹 앱이다.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에 설치만 해두면 사용자의 움직임을 분석, 관련 기록을 제공한다. 여기엔 걸음 수와 이동 거리∙경로 등의 활동은 물론, 멈춘 상태나 수면 등의 비(非)활동도 포함된다. 얼핏 ‘그냥 좀 똑똑한 만보기’쯤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확실한 차별화 지점이 존재한다. ‘동기 부여’다.
‘움직인 만큼 보상 받는다.’ 워크온의 기능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정해권(34) 대표는 사무실을 찾아온 취재진을 앞에 놓고 워크온을 직접 실행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연령과 성별 등 사용자의 신체정보를 입력합니다. 그럼 개개인의 조건에 맞춰 우리가 설정한 1일 목표 걸음 수가 뜨죠. ‘1만 보’ ‘800보’ 하는 식으로요. 그런 다음, 사용자는 ‘보상’을 선택합니다. 워크온 플랫폼의 파트너들이 제공하는 혜택 중 고르실 수 있어요. 이때 혜택은 커피전문점 할인 쿠폰, 유용한 생활 ‘꿀팁’ 등 다양하고 폭넓습니다. 목표치를 달성하면 각자 선정한 혜택을 획득하게 되죠. 일종의 게임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친구들과 비교해가며 즐길 수도, 다른 사용자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어요.”
▲취재진이 스왈라비 사무실을 찾은 건 지난 5일. 때마침 이날 ‘워크온’ 베타버전이 정식 출시됐다. 워크온은 사용자의 걸음 수만큼 쿠폰 등 각종 혜택을 돌려주는 ‘보상형 헬스케어 플랫폼’이다
워크온은 사용자의 시간대별 동선과 걸음 수 로그 등을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한다. 일명 ‘TPO(Time-Place-Occasion)’에 맞는 콘텐츠와 이벤트 정보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선 더 많이 걸을 수 있는 동기 부여 수단이, 제공자 입장에선 자신의 기업(이나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광고 창구가 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윈윈(win-win)’이다.
“작심삼일 운동족(族) 제 경험 반영했죠”
“제가 그랬어요. 운동 좀 해야겠다 싶어서 피트니스센터 회원권을 끊어놓곤 한 달도 채 못 가곤 했죠. ‘언제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뭘까?’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게 ‘걷기’였어요. 운동 효과가 있는 건 물론, 스트레스 해소도 되잖아요.”(정해권)
공동창업자인 정 대표와 이상재(31) 이사의 고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걸으면서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낼 순 없을까?’로 이어졌다. “칼로리 소모량이나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앱은 워크온 이전에도 많았거든요. 저희는 여기에 재미 요소를 더해주고 싶었어요. 타인과 연계돼 있다면 혼자일 때보다 더 쉽게,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을 테니까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는 정해권 대표는 “일단 나부터 재밌게 운동하며 쓸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립해 나온 후부턴 일과 삶이 통합돼버렸어요. 요즘은 걸으면서도, 자려고 누워서도 온통 워크온 생각뿐입니다.”
두 사람은 이내 ‘건강 관리’를 주제로 한 최신 논문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퍼뜩 눈에 들어오는 트렌드를 찾았다. ‘병에 걸린 후 약을 먹고 치료하기보다 평소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 병을 예방하는 게 낫다’는 흐름이 그것. 미국 내셔널아카데미의료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 of National Academies)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예방 정책 정립에 기여해온 마이클 맥기니스(J. Michael McGinnis) 박사의 논문도 그중 하나였다.
맥기니스 박사는 “신체 활동을 적절히 늘리는 것이야말로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의 최선책이며, 그러려면 정부와 기업 등 공적(公的) 행위자들의 발상 전환과 협력이 절실하다”는 주장을 관련 연구 성과와 함께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와 별도로 지난 2008년 미국 국립만성질환예방및건강증진연구소(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선 “평소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성인에게 규모가 작더라도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그들의 건강 증진에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정해권 대표는 이런 접근과 관련, 스마트폰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란 사실에 착안했다. ‘요즘 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 없잖아. 하루 종일 몸에 지니고 다니니까. 게다가 사용자 개개인을 사회적 시스템과 언제 어디서든 연결시켜주고. 그래, 이거다!’ 워크온의 초기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건강, ‘무거운 명제’에서 ‘즐거운 게임’으로
“힌트를 얻은 후 저흰 스마트폰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걷기가 즐거워지고 건강 관리에도 도움 받을 수 있는 독자적 솔루션을 만들고 싶었죠. 그러려면 사용자에게 실질적 이득이 되는 인센티브 적용 방식을 찾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고심 끝에 나온 결과가 ‘쿠폰 제시 방식’이었다. 정 대표는 “여러 연구 성과를 종합해본 후 ‘걷기 목표를 달성한 사용자에게 쿠폰을 주면 실제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서더라”고 말했다.
▲워크온은 정해권 대표(사진 왼쪽)와 이상재 이사가 오랜 연구와 고심 끝에 내놓은 작품이다. 사진은 이번 취재를 위해 기꺼이 ‘거리 모델’로 나선 두 사람의 익살스런 모습
“몸을 적절히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건강 증진의 기본이죠. 또한 몸을 움직이게 하려면 대단하진 않아도 금전적 보상이 제공되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봤습니다. 원래 사람은 혼자 있으면 ‘비활성’ 상태에 머무르지만 집단으로 묶일수록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분주한 현대사회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누군가와 연계되는 느낌을 받으면 누구라도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확신했고 관련 연구도 진행했죠. 워크온은 그 과정의 산물인 셈입니다.”
건강에 대한 정해권 대표의 지론 역시 명료하다. ‘(건강은) 무겁고 심각한 방법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 즐겁게 활동하는 과정에서 강화될 수 있다’는 것. 그는 “걷기처럼 단순하고 경우에 따라선 대단히 즐거울 수 있는 운동도 좀처럼 안 하게 되는 게 현대인”이라며 “그런 생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려면 작지만 꾸준한 인센티브의 존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스왈라비 임직원들은 요즘 바로 이 인센티브의 ‘양’과 ‘질’을 강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일단 서울시와의 협업을 확정 지었고 대학교나 커피전문점 브랜드 등과도 활발하게 논의를 진행 중이다.
“최대한 여러 기관이나 업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폭넓게 구축, 우리 회원들만 누릴 수 있는 쿠폰 혜택을 늘리려 합니다. ‘단순 1회 클릭’의 가치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저희에게 주어진 숙제죠.” 정 대표에 따르면 스왈라비 측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업체 입장에서도 얻을 게 많다. 무엇보다 “목표 걸음 수에 도달하는 기간 동안 사용자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게 되는 만큼 ‘우호 고객 확보’ 차원에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사가 만사… 생사고락 함께할 이들과 일한다”
“삼성전자 입사 직후 사내 공모전에 여러 차례 도전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0년 증강현실(AR) 아이디어 관련 공모전에서 SNS와 접목해 제안한 작품이 채택된 후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죠.”(정해권)
스핀오프 직후였던 지난해 9월 스왈라비의 구성원은 정 대표와 이상재 이사 둘뿐이었다. 이후 고영태 엔지니어가 합류하며 식구가 하나둘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근무 당시 말 그대로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이들의 사업 아이템은 독립한 후 비로소 앱 개발로 본격화됐다. 물론 정 대표의 말마따나 워크온처럼 파트너십 연계가 중요한 앱에서 기술 개발은 어디까지나 첫걸음에 불과하다.
▲정해권 대표(사진 오른쪽)와 이상재 이사는 지난 2010년 삼성전자에 나란히 입사했고 지난해 스왈라비를 공동으로 창업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삼성 근무 당시엔 다른 부서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뜻이 잘 맞는 동료”라고 입을 모았다
“워크온은 기본적으로 건강 증진 플랫폼이거든요.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는 점 중 가장 중요한 게 ‘(동기 부여 수단이 되는) 인센티브’고요. 그러려면 각 분야의 이해관계자가 잘 엮여 일종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결국 저희 입장에선 경쟁력 있는 파트너를 어떻게 소싱(sourcing)하느냐, 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과제예요.”
이와 관련, 정 대표는 비교적 확고한 사업 철학을 갖고 있다. ‘매사 길게 보고, 비전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운영해가야 한다’는 것. 그 중심엔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있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회사 밖에서 작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부대끼며 동고동락해야 하는 경우가 잦죠. 그런 만큼 생사를 함께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리하고 활기찬 왈라비처럼 뛰겠습니다”
워크온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삼성전자 내에서 “사업화 가능성 높은 우수 과제”로 평가 받으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스핀오프 과제로 채택됐다. 스왈라비란 사명으로 독립한 후에도 꾸준히 사업 모델 개선을 거듭했고, 마침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마쳤다.
▲스왈라비는 삼성전자를 뜻하는 머리글자 ‘S’에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왈라비(wallaby)’를 더해 만들었다. 왈라비는 온화하고 영리하며 평소엔 게으른 듯하지만 이동할 땐 씩씩하게 뛰는 모습이 특징적인 동물. 개발할 땐 연구실에 틀어박혀 꼼짝 않다가 완결된 사업 아이템을 대외적으로 알릴 땐 누구보다 활기를 띠는 IT 스타트업의 특성을 닮은 사명이다
2016년 4월 현재 스왈라비의 최대 파트너 중 하나는 서울시다. “일단 ‘시민의 건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울시와 우린 비전을 함께합니다. 당장 25개 자치구 중 자체적으로 걷기 대회나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곳이 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죠. 서울시를 포함한 초기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신뢰를 쌓아가고 비전이 공유되도록 설득해가며 차차 파트너십의 범위를 넓혀갈 생각입니다.”(정해권)
현 단계에서 스왈라비의 1차적 목표는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트너십을 체결, 사업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이후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치 기반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지역 기반의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의 가상 고객을 실제 구매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걷기를 통해 보다 많은 현대인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책임지겠다”는 이 자신만만한 스타트업의 미래, 이쯤 되면 기대해봄 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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