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소녀 쿠숨이 쏘아 올린 시 한 편
시(詩) ‘초현실’을 지은 소녀의 이름은 쿠숨(Kusum). 교육 환경이 열악한 네팔 농촌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부모님 덕에 수도 카트만두로 유학을 왔다. 그가 단상 위에 올라 직접 지은 시를 낭독한 이유는 단 하나. 꿈꾸는 것마저 용기가 필요한 네팔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쿠숨이 자작시로 또래 여성들을 응원한 이유는 뭘까?
서남아시아, 여성 인권 사각지대의 민낯
지난 수 년간 여성 인권 신장을 주제로 다양한 국제 포럼들이 개최되며 수백만 여성이 그 행진에 발을 맞췄다. 일면 여성 지위는 큰 보폭으로 진전을 이룬 듯했지만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에서 발표한 성평등지수(Gender Development Index, GDI)와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를 보면 상황은 다르다. 특히 서남아시아 여성 인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2016년 기준 서남아시아 국가의 성평등지수는 0.822로 전 세계 평균(0.938)을 밑도는 수준. 반면 성불평등지수는 0.520으로 전 세계 평균(0.443)을 넘는 기형적 수치를 보인다.
서남아시아 국가별 사례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유엔인구기금(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 UNFPA)의 조사 결과, 지금도 파키스탄 소녀(15~19세)의 30%는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걸로 나타났다. 집 안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의 표적이 돼 사망하는 성폭력 피해자도 수백 명에 이른다. 더욱 충격적인 건 파키스탄 10대 여성 응답자 중 53%가 “가정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기본적인 인권 교육의 부재가 낳은, 참담한 결과다.
이에 심각성을 인지한 국제연합기구(United Nations, UN)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통해 여성 인권 신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수립된 개발 목표 중 빈곤 해소 등 일부는 달성했지만 성 평등과 여성 역량 강화는 여전히 목표 수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바탕이 됐다. 목표는 명확했지만 사회 지표 아래 깔린 여성 인권 인식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했다. 결국 “교육만이 해결책”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교육으로 무너진 지붕 세우는 네팔 여성
지난해 9월, 삼성전자 임직원 25명으로 구성된 해외봉사단이 네팔을 찾았다. 히말라야 기슭에 위치해 ‘세계의 지붕’으로 통하는 이곳은 거듭된 지진으로 현재 사회 안전망이 무너진 상황. 복구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층인 여성은 성폭력·인권 유린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네팔 최악의 풍습’으로 불리는 차우파디[1]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네팔 여성(15~49세) 중 약 20%가 차우파디를 경험했다. 중부와 서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50%까지 치솟는다.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은 네팔 여성들의 ‘지붕’이 돼줄 꿈을 선물하기로 했다. 꿈을 갖는다는 건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 봉사 활동에 참여한 유경화(삼성전자 글로벌전략실)씨는 “여성으로서 자립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다”며 “본인 스스로 발전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스스로 일어선 여성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심어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음 단계는 ‘기술’을 전파하는 것. 사회적 제약이 많은 네팔 여성들의 특성상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실용 기술 교육이 필요했다. 이에 봉사단은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여성을 대상으로 ‘디자인 스쿨’을 열었다. 커리큘럼은 구직 전반을 아우르는 △비즈니스 이론 △비즈니스 마케팅 △면접 기술 △이력서 작성은 물론,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인 △레이아웃 등 프로그램 도구(tool) 교육 등으로 꾸려졌다. 앞서 자작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읊었던 쿠숨이 바로 이 디자인 스쿨의 커리큘럼에 참여했었다. 쿠숨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희망을 얻었다”며 “또래 친구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고 함께 꿈을 펼쳐보자는 의미로 시를 낭독했다”고 말했다.
교육을 담당했던 임지혜(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씨는 “처음엔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모든 수업이 열정으로 가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조차 반납해가며 질문을 던지는 등 엄청난 의욕을 보였죠. 교육 내용을 응용해 색다른 디자인 패턴을 만들기도 했고요. 프로그램 후반부엔 네팔 지역 디자이너와의 만남도 준비했는데, 그간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디자이너에게 이력서를 낸 학생도 있었습니다.”
‘바닷속 누비는 인어처럼…’ 다시 꿈을 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디자인 스쿨 종료 무렵,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빛나는 별, 바닷속을 누비는 인어, 하늘을 나는 스튜어디스 등 각양각색의 대답이 쏟아졌지만 소녀들의 꿈은 결국 하나로 귀결됐다.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통해 힘들어하는 여성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새로운 꿈을 찾은 것과 동시에 여전히 고통 받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여성의 자립이 또 다른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 이게 바로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이 생각한 이 활동의 궁극적 목표였다.
삼성전자는 네팔 여성에게 싹 틔운 희망의 씨앗에 꾸준히 물을 줄 계획이다. 당장 쿠숨과 네팔 현지 이야기를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게재, 클릭 한 번으로 기부가 가능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은 네팔 여학생을 위한 디자인·휴대전화 수리 학교 운영에 사용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인도 등 개발도상국을 돌며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가진 비즈니스 전문성을 각국 청년들에게 전파,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서다. 각국에 파견될 임직원은 삼성전자 최초로 ‘개발도상국 창업 엑셀러레이터’가 돼 현지 창업가들을 직접 선발한다. 그간 인프라와 노하우 부재로 한계에 부딪혔던 개발도상국 청년들에게 자립심과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는 게 목표다.
현지에서 네팔 여성들의 실태를 몸소 체험한 임지혜씨는 이처럼 ‘지속가능한 방식의 자립’을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시도에 거는 기대가 크다. “네팔 여성들이 뜨개질을 많이 하는데, 누군가가 그걸 상품화해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여성이 동참해 사업 규모가 커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전통을 살려 성공한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야말로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인권은 꿈이나 바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보장돼야 하는,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권리이자 가장 인간적인 약속이다. 누군가의 권리는 저절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다 함께 보장하고 약속을 지켜나갈 때 비로소 약속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때마침 오늘(8일)은 ‘세계여성의날’. 여성 인권을 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1] 여성의 생리혈을 부정하게 여기는 힌두교 사상에 따라 생리 중인 여성이 남성·소·종교적 상징물· 음식 등에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집 밖에 격리하는 풍습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