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T머니∙하이패스∙블랙박스… “이보다 더 통(通)할 수 없다”
직장인 K, ‘따릉이 홍보대사’로 변신한 사연
직장인 K는 요즘 “건강미 넘친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집에서 회사까지 적절한 버스 노선이 없어 자가용을 몰고 다니던 그는 두어 달 전부터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전거 공유 시스템 ‘따릉이’를 이용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자전거 대여소까지 10분가량 걸은 후 △자전거를 타고 한강 둘레길을 따라 약 30분간 달린 다음 △회사 근처 자전거 대여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걸어서 5분이면 정확히 회사 앞에 도착하는 식(式)이다. 승용차를 이용하던 때보다 출퇴근 시간은 더 걸리지만 따로 짬을 내지 않아도 햇볕 속에서 충분히 유산소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향상된 소화력과 깊은 숙면은 덤이다.
회사에서, 또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K는 ‘공유 자전거 전도사’가 됐다. 알고 보니 K와 같은 공유 자전거 이용자는 그 폭이 꽤 넓었다. 가까운 시내를 이동하거나 마땅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을 때 따릉이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몇몇 친구는 “요즘은 따릉이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을 가리켜 (역세권을 본떠) ‘따세권’이라고도 한다더라”며 K를 부러워했다. K는 “자전거 공유(sharing)는 개인적으론 건강과 이동 수단을 챙겨주고, 사회적으론 도시의 고질적 문제인 교통 혼잡과 그에 따른 환경 문제를 개선해주는 기발한 시스템”이라며 공유 자전거 홍보에 열을 올린다.
K가 애용하는 따릉이는, 알고 보면 IT 기술이 향상되고 인프라가 정착되며 비로소 가능해진 서비스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활용한 신청 편의성, 비밀번호 발급과 자동 지불 시스템 등은 자전거 공유의 필수 요건이다. 자칫 번거롭게 느껴지기 쉬운 자전거 이동을 쉽게 해준 건 이 같은 IT 활용 편의성이었다. 종로에서 빌린 자전거를 용산에 갖다놓아도 되는 대여 시스템은 예전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힘들었을 방식. 하지만 오늘날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자전거에 내장된 ID 신호기가 중앙 통제 컴퓨터에서 전부 인식, 관리해주기 때문이다.
미국, 교통 체증으로 GNP 0.7% 날린 적도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그야말로 ‘도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게 될 거란 얘기다. 여러 사람이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 살면 어쩔 수 없이 혼잡의 문제가 발생한다. ‘도시’라는 공간 사용 형태가 출현한 이래 지금껏 혼잡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성 문제는 오랫동안 도시인의 골칫거리가 돼왔다.
하지만 혼잡 문제가 반드시 인구 규모와 정비례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인구가 비교적 적어도 혼잡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인구가 많고 도시 규모가 크거나 복잡하지만 혼잡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역사상 교통 혼잡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게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 브리지 교통 체증’이다. 19세기 말 런던 인구는 지금의 3분의 1 수준인 300만 명 정도였다. 시 중심부에서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런던 브리지의 길이는 270미터가 채 안 되는데, 한창 혼잡할 땐 이 다리를 건너는 데 한 시간 이상 소요됐다고 한다. 성년이 된 장수거북이가 시간당 10킬로미터 이상 움직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거북이 걸음의 40분의 1도 안 되는 속도다.
21세기에 접어든 후에도 교통 체증은 여전히 가장 심각한 도시 문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상습 정체 지역은 어딜까? 정답은 ‘중국 국립 고속도로 110번’이다. 2010년 개통된 이 도로는 교통사고라도 나면 차량이 100킬로미터 이상 줄을 이으며 흐름이 꼬인다. 이 정체를 완전히 해소하려면 평균 열흘 이상 소요된다. 문제의 원인은 잘못 설계된 도로 인프라. 주변 거주∙유동인구와 차량 이동 시간대, 고속도로와 지방 도로 간 연결 구조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도로 모양만 만든 것이다.
도로 설계∙운영 측면에서 선진적 지역이라 해도 교통 체증에서 늘 자유로운 건 아니다. 미국 텍사스교통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동안 미국 75개 도시에서 발생한 교통 체증으로 인해 소모된 시간은 무려 360억 시간이었다. 그뿐 아니다. 도합 216억 리터의 연료가 허비되면서 미국 국민총생산(GNP)의 0.7%에 이르는 675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IT, 인프라 재설계 없이 교통 혼잡 문제 잡다
교통 전문가들은 흐름이 보다 원활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연구하고 정책을 건의해왔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건의는 도시공학적 설계와 운용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실제로 교통신호 체계를 합리적으로 바꾸고 터널이나 교량 등 차량이 불가피하게 몰리는 지역엔 혼잡 통행료를 부과하는 등의 제도 개선으로 교통 혼잡 문제는 상당 부분 줄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도시를 설계할 때부터 인구 밀집 지역을 예측한 후 진입로와 우회로, 고가도로 등을 적절히 배치하는 데 있다. 문제는 이미 상당한 발달을 이룬 도시에 이런 대책을 적용하는 게 쉽지 않단 것.
그런데 2010년대에 접어들며 이 문제의 해법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실마리를 드러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고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반 기술(인프라)이 확산되면서 IT가 교통 체증을 막고 원활한 흐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교통 혼잡 문제에 IT를 이용하면 인프라를 새로 설계하지 않고도 기존 시스템의 상황을 실시간 반영, 도로의 기타 인프라를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2015년 미국 통신사 AP(Associated Press)에 ‘도시 교통 혼잡을 피하는 다섯 가지 방법(Traffic in the US is going to get worse-but things are changing)’이란 기사가 게재됐다(관련 링크는 여기 참조). 이 글에 언급된 다섯 가지 방법은 △대중교통 확대하기 △톨게이트 증설하기 △(일대 교통 상황을 파악, 가장 원활한 길을 안내해주는) 스마트카 도입하기 △자율주행차 확대하기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 활용하기 등이다.
이중 첫 번째인 ‘대중교통 확대하기’엔 “버스나 지하철 이용 시 역에서 타고 내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 인식기 활용을 늘리자”는 얘기가 들어있다. 두 번째 방법 ‘톨게이트 확대하기’를 설명하는 대목에도 이런 문장이 포함돼 있다. “미래엔 통행료를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차량에 장착된 ID를 인식, 소유자 신용카드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될 테니까.” 결국 이 기사에서 제시된 다섯 가지 방법 모두가 ‘IT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실현, 정착된 항목이 미국의 미래로 제시되고 있는 것만 봐도 한국이 얼마나 IT 강국인지 실감할 수 있다.
첨단 IT 심은 도시 교통 서비스 “잘나가네”
IT가 도시의 소통을 돕는 매개로 활용되는 현장은 이 밖에도 많다. 가장 널리 쓰이고 눈에 띄는 게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쉽게 말해 내비게이션 기술이다. GPS는 흔히 ‘인공위성을 활용한 위치 파악 시스템’으로 요약되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IT 기술이 접목될 수 있다. GPS로 파악된 위치 정보의 활용 방식 역시 온전히 IT의 영역인데 스마트폰 보급 덕분에 누구나 GPS 기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됐다. T맵∙네이버지도∙카카오지도 등 내비게이션 앱만 해도 꽉 막힌 도로를 피해 실시간으로 원활한 길을 안내해주니 잘 알려진 도로에만 차량이 집중돼 혼잡을 빚는 상황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모든 요소에 IT가 작용,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있다. 버스에 탑승,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접촉시키는 행위만으로 통행료 지불이 순식간에 끝나는 T머니 등의 서비스는 ‘버스 안내양’과 잔돈 문제로 시비 벌이는 승객 한 명만으로 버스 출발 시간을 몇 분간 지연시켰던 1970년대 일을 대번에 영화나 드라마 속 과거로 만들었다. 대중교통 이용 시 피할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요즘은 자신이 기다리는 버스나 지하철이 몇 분 후 도착할지 전광판이 다 알려주니 속 편하게 앉아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다 여유롭게 탑승할 수 있다. 그런 게 없었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행여 버스를 놓칠까 신경 곤두세우며 다가오는 버스 전부를 눈으로 쫓아야 했다.
IT가 통행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사실은 유료 통행 도로를 지날 때 하이패스 등 무선 단말기로 통행료를 지불해보면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유인 통행료 처리 부스를 크게 줄인 곳에서라면 그 차이는 더더욱 눈에 띈다. 쏘카 같은 카 셰어링(car sharing) 서비스도 대중교통 이용이 여의치 않은 장소에서 도로 혼잡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다. 카 셰어링은 차가 필요할 때 대여 업체에서 빌려 쓴다는 점에선 렌터카와 비슷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쓴 후 지정 장소에 세워두면 된다는 점에선 렌터카와 다르다. 불필요한 주행을 줄일 수 있는데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신청하고 지불도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어 자전거 공유 서비스만큼이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마트 주차(smart parking) 역시 IT가 교통 혼잡에 따른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얼마나 줄여주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스마트 주차 서비스를 이용하면 스마트폰 앱으로 빈 자리를 적절히 안내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시 앱을 활용한 사전 결제로 주차장을 가뿐히 벗어나는 쾌감도 얻을 수 있다. 이 밖에 교통사고 발생 시 고성이 오가는 힘겨루기 과정을 생략해주는 블랙박스 역시 IT 기술이 없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기기다.
낮아진 정보 접근성에 주목… 다음 변화는?
이상의 사례들은 IT가 도시의 교통 생활을 어떻게 개선해주는지 사용자를 중심으로, 미시적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실제로 IT는 보다 구조적으로, 또 거시적으로 도시 교통 전체가 원활하게 소통되도록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예전엔 구역이나 도로의 특성에 따라 도로교통정보센터가 지정돼 있어 CCTV를 이용, 교통 흐름을 관리해왔지만 요즘은 전체가 통합돼 하나의 정보 시스템으로 구축됐을 뿐 아니라 일반 사용자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교통 흐름을 구석구석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장치와 다량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저장소나 데이터 처리 시스템 등 최근 부쩍 IT 기술 분야의 약진이 이뤄진 덕분이다.
IT 기술의 진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그림을 계획할 수 있게 해준다. ‘자동차 사물인터넷의 꽃’으로 불리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충분히 상용화되면 도시 도로 상황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스마트폰 앱 시장 역시 도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사용자 편의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으로 하루가 다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21세기 도시는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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