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은 4차 산업혁명기의 ‘공기’
4차 산업혁명은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일명 ‘다보스포럼’의 의제(agenda)로 등장한 후 미래를 상징하는 대표적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1차 산업혁명이 1760년대 증기기관 발명과 함께 시작된 면직물 공업의 기계화를 의미한다면, 1870년대에 화학∙자동차 등 당시 신(新)산업을 중심으로 태동한 2차 산업혁명은 전기에너지 기반의 대량 생산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차 산업혁명기를 지나며 포드주의[1]∙테일러주의[2] 등 생산성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진 관리 시스템 덕에 철강∙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가 크게 성장했다.
이에 반해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은 ‘지식정보혁명’ 또는 ‘정보통신기술혁명’으로 불린다. 이 시기, 기존 제조업이 속속 디지털화(化)됐을 뿐 아니라 구글∙페이스북 등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기반의 전혀 새로운 거대 IT 기업도 탄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이 유효한 가운데 느닷없이 부각된 4차 산업혁명은 뭘 의미할까?
4차 산업혁명, 핵심 키워드는 ‘융합’
4차 산업혁명은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공통적 의미를 추려 요약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사람∙사물∙공간 등 거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이어지고(초연결), 그로 인해 생산되는 빅데이터를 기계학습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진화하는 지능이 존재하며(초지능), 그 지능이 서로 연결된 대상을 다시 하나로 아우르는(초융합) 시대”
알쏭달쏭하다. 대체 어떤 원리로 이렇게 만병통치약 같은 현상이 가능하단 걸까? 이쯤 해서 4차 산업혁명을 그나마 쉽게 풀어낸 전성철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의 표현[3]을 잠시 들여다보자.
전 회장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이뤄지는 융합은 △인간과 기계 간 융합(인공지능∙빅데이터) △현실과 가상세계 간 융합(가상현실) △공학과 생물학 간 융합(바이오∙생명공학) △조직과 비조직 간 융합(공유경제) 등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앞선 네 가지가 다시 융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야흐로 ‘융합 혁명’이다.
전성철 회장은 이 같은 변화를 가리켜 “100개의 레고 조각으로 놀던 아이에게 별안간 1억 개의 레고 조각을 쥐여준 격”에 비유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신(神)의 영역에 한발 내디딘” 상황이다. 물론 여기에 선악(善惡) 판단은 없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다(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하라리 교수의 다른 책 ‘호모데우스’를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커버그는 왜 오큘러스를 인수했을까?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엔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드론∙자율주행차∙3D프린터∙가상현실(VR) 등의 기술이 있다. 인공지능을 두뇌에, 빅데이터를 혈액에 각각 비유할 수 있다면 가상현실의 역할은 눈이나 손발에 가깝다. 핵심 요소 기술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체 기관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서로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가상현실은 홀로 존재하기보다 다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제 역할을 찾아가는 만능 양념이자 최고의 조연이다. (2014년 당시 제대로 된 제품 하나 보유하지 못하고 있던 오큘러스를 2조 원 넘게 주고 인수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즉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상현실은 다른 기술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공기 같은 필수 요소 기술이 될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Iron Man)’ 시리즈를 한 번 떠올려보자. ‘스타크’는 충직한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와 무슨 수단을 통해 대화(혹은 협업)하는 걸까? 극중에서 그들이 만지고 확대하며 분석하는 ‘비전시스템’ 기술이 바로 (증강현실과 홀로그램을 포함하는) 가상현실의 영역이다. 물론 아이언맨을 비롯해 ‘매트릭스’ ‘데몰리션맨’ ‘아바타’ 같은 SF영화 속 획기적 가상현실 기술이 며칠 내에 일상 속으로 들어올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지구에서 달까지’(1865)를 발표한 후 실제 인류가 달에 발을 내딛기(1969)까지 걸린 100여 년보단 훨씬 짧아지리란 사실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Fordism. 조립라인∙연속공정 기술을 활용,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소비하도록 설계된 체제.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 창설자이기도 한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확립했다
[2] Taylorism. 노동자의 움직임과 동선, 작업 범위 등을 표준화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체계. 미국 경영학자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가 처음 주창했다
[3]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2017년 1월 14일자 참조
기획·연재 > 오피니언 > 세상을 잇(IT)는 이야기
기획·연재 > 오피니언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