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①정치_SNS, ‘아테네 민주주의’ 부활의 신호탄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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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d%98%ed%85%90%ec%b8%a0-%ec%95%88%eb%82%b4-%eb%b0%b0%eb%84%88-5-1 스페셜리포트 송년특집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1.정치_SNS, '아테네 민주주의' 부활의 신호탄탄 정치 경제ㆍ경영 교육 엔터테이먼트 몸과 마음


연재를 시작하며

2016년도 어느덧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페셜 리포트 송년 특집 5부작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를 연재합니다. 말 그대로 디지털, 그리고 정보통신(IT) 기술이 바꿔놓은 사회 전반을 다각도로 조명해보는 심층 기획입니다. 오늘날 첨단 기술, 즉 테크놀로지는 모든 이에게 ‘좋든 싫든 껴안고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생업에 몰두하는 사이,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디지털 혁명의 면면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만나보세요

 


발칸반도 남단에 위치해 바다에 면(面)한 아테네는 기원전 480년 무렵, 그리스 최강의 도시국가였다. 당시 아테네에선 “북(北)으로 아티카를 정벌해 영토를 넓히자”는 ‘육상파’ 아리스티데스(Aristeides)와 “무조건 바다로 진출해야 한다”는 ‘해상파’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가 팽팽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고심하던 아테네 시민들은 투표로 승부를 가린 후 패자는 추방하기로 했다.

투표는 ‘깨진 도자기 조각에 추방됐으면 하는 후보 이름을 적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명 ‘오스트라시즘(ostracism)’으로 불린 이 제도는 민주정치를 중시했던 아테네가 균형 잡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일종의 시민심판이었다. 추방하고 싶은 정치가 이름이 적힌 도자기 조각, 그리스어로 ‘오스트라콘(ostracon)’이 일정 수 이상 되면 해당 정치가는 이후 10년간 아테네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THE OSTARCISM OF ARISTIDES Painted especially for "The Historians' History of the world" by A. Rayolt Greece History - Ancient(1904)▲이미지 출처: 뉴욕공공도서관 디지털 갤러리

아리스티데스는 ‘공정한 아리스티데스’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청렴결백하고 성실한 정치가였다. 오스트라시즘이 있던 어느 날, 아고라(광장)로 향하는 아리스티데스를 한 노인이 붙잡았다. 노인은 그에게 도자기 조각 하나를 내밀며 거기에 ‘아리스티데스’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일단 공손한 태도로 자기 이름을 적어 건네며 아리스티데스는 물었다. “혹시 이 사람이 어르신께 뭐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아니, 난 그 사람 누군지도 몰라요. 다만 다들 공정하다, 공정하다 하니 나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 에피소드는 “민주주의가 대체 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종종 인용되는 사례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세력의 균형’이란 것이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이처럼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갖게 된 기반은 뭘까? 오늘날 대다수의 정치사(政治史) 학자들은 그 해답을 ‘정보 공유’에서 찾는다.

실제로 아테네엔 ‘정신적 중심지’로 불린 판테온 신전이 있었다. 아고라는 그 바로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 좀 안다’는 사람들은 매일 아고라에 모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그 주변엔 누군가의 얘기에 귀 기울이려 틈 날 때마다 아고라를 찾는 군중이 끊이지 않았다. 아테네 시민이 자국은 물론, 인근 지역 정세까지 훤히 알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일찍이 영국 철학자 겸 정치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아는 게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l)’라고 말했다. 실제로 누구든 상황을 잘 알면 그 상황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갖는다. 고대 아테네에선 시민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권력의 균등 분배’를 전제로 한 민주정치가 이곳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인터넷은 21세기형 팬옵티콘” 푸코는 틀렸다?!

“머지않아 인터넷 민주주의가 득세할 것”이란 예언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학계였다. 1980년대 초, 최초의 인터넷 모델 아르파넷(ARPANET)이 미국 국립과학재단 지원금으로 구축됐고 이에 따라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는 가운데 이론을 형성하는 게 학계의 성격인 만큼 인터넷 민주주의에 대한 예견은 이내 반론에 부딪쳤다. 두 입장 간 논쟁은 (전 세계 대중에게 인터넷이 채 보급되기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치열했다.

논점은 명확했다. 인터넷 사용률 증대는 (정치로서의) 민주주의 구현에 기여할까,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는 쪽에선 “역사적으로 볼 때 정보 공유가 확대되면 민주주의가 구현돼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드는 ‘정보 공유 확대 수단’의 대표적 예가 바로 인쇄술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SAMSUNG NEWSROOM 독일 신학자 마틴 루터의 동상

고대 아테네 이래 유럽에서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실종 상태였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며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계기는 종교개혁이었다. 서기 380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이래 기독교는 1300년 이상 ‘유럽의 종교’로 자리매김해왔다. 그 사이, 구(舊)기독교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개혁이 본격화한 건 1517년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비밀의 열쇠는 구텐베르크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쇄술이 쥐고 있다. 독일 신학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위 사진>가 쓴 ‘95개조 반박문’이 수천 장씩 인쇄돼 뿌려진 덕에 대중이 구(기독)교의 진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으리란 추론이다. 실제로 프랑스혁명(1789~1799)이 왕정을 뒤엎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이 당시 파리에서 성업 중이던 인쇄소였단 얘기도 있다.

한편,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지 않다. 다만 이들은 무조건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라기보다 “인터넷이 발달한다 해서 그게 무조건 민주주의 확산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맥락에서 종종 인용되는 게 일명 ‘팬옵티콘(panopticon)’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SAMSUNG NEWSROOM 제러미 벤담의 초상화

18세기 영국 계몽사상가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위 사진>이 처음 고안한 이 개념은 ‘소수 권력자가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은 채 세상을 감시,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이란 뜻을 지닌다. 20세기 초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가 ‘지식을 독점해 민중의 눈을 가리고 조정하는 절대 권력자’의 아이콘으로 제시하며 일약 유명해졌다. ‘인터넷 민주주의 회의론자’들은 “인터넷은 (대중이 쉬 접근하기 힘든)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자칫 소수의 권력자가 장악, 제어하게 되면 ‘21세기형 팬옵티콘’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푸코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지도 어느덧 3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학계에선 엄청난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찬반 목소리는 여전히 섞여있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오늘날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정치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단 사실이다. 인류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디지털이 삶의 기반을 이루는’ 길로 가고 있다. 정치는 그런 경향을 가장 단적으로 반영하는 분야 중 하나다. 권력의 본질은 지식(정보)에 있으며,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정보)에 접근하는 일은 날로 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포럼 주제로 ‘테크놀로지’가 채택되는 세상

‘아랍의 봄(Arab Spring)’이란 시사용어가 있다. 지난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2012년 중반 아랍연맹[1]과 인근 국가로까지 확산된 대규모 정치 저항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라크∙리비아∙시리아∙예멘에서 발발한 내전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바레인∙이집트∙알제리∙이란∙레바논∙요르단∙쿠웨이트∙모로코∙오만∙수단에선 대규모 시민봉기가 이어졌다. 지부티∙모리타니∙사우디아라비아∙소말리아∙서(西)사하라, 그리고 팔레스타인 영토에서도 소규모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삼성전자 뉴스룸 SAMSUNG NEWSROOM SNS 소통

아랍의 봄 사태를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발단부터가 그랬다. 거리를 떠돌며 잡상인 노릇을 하던 23세 튀니지 청년 무하메드 부아지지가 정부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이 장면은 동영상으로 촬영돼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특히 부아지지의 모국이었던 튀니지 국민들은 그렇잖아도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에 갖고 있던 불만을 폭발시키며 혁명을 일으켰다.

튀니지발(發) 혁명의 불씨는 아랍 세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압제적 정부는 시위 대중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며 언론 통제에 나섰지만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한 대중과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스마트폰과 PC로 SNS에 접속, 가공할 인권 유린 현장을 실시간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통치자의 억압적 행동은 오히려 일파만파로 인근 국가의 저항 행동을 자극했다.

삼성전자 뉴스룸 SAMSUNG NEWSROOM sns를 이용하고있는 사람들

2013년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전 세계 인구의 SNS 사용 실태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SNS로 정치적 사안 관련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비율은 비(非)아랍권 20개국 평균치가 약 34%였다. 반면, 이집트와 튀니지 두 나라 평균치는 60%를 넘어섰다. ‘내가 속한 지역공동체’를 SNS 대화 화제로 떠올리는 사람 비율도 비아랍권 20개국 평균은 46% 선이었지만 아랍권 4개국(이집트∙튀니지∙레바논∙요르단) 평균은 70% 이상이었다. SNS 활용과 정치적 행동 간 상관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정치적 행동이 늘 아랍의 봄 사태처럼 극단적 형태를 띠는 건 아니다. 정치(政治)의 학문적 정의는 ‘자원을 분배하는 사회적 방식’이다. 다시 말해 ‘먹고사는 데 필요한 걸 어떻게 나누는가?’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정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왜 ‘지식(정보)의 폭넓은 공유’가 민주주의 정치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지는지 이해가 된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첨예한 관심사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모든 이가 똑같이, 그리고 훤하게 알고 있다면 특정인이 그걸 독점하고 아닌 척하긴 사실상 어렵다.

이처럼 정치적 행동 방식이 바뀌면서 정치의 관심 분야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 사회적기업 퍼스널 데모크라시 미디어(Personal Democracy Media)는 매년 ‘퍼스널 데모크라시 포럼(Personal Democracy Forum)’이란 회의를 열어 ‘현대인의 일상에서 구현되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관련 사례를 발표한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테크놀로지(The Tech We Need)’. 참석자들은 △알고리즘 신뢰성 △시민기술 대(對) 정부기술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시민 권리 △우리가 원하는 웹 △모두를 위한 공유경제 등의 안건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민주주의 구현이 필요하다’고 보는 공간이 하나같이 IT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실은 이 행사 하나로도 명확해진다.

 

밀레니엄 세대, ‘투명한 미래 정치’ 이상 실현할까

삼성전자 뉴스룸 SAMSUNG NEWSROOM 밀레니엄 세대를 표현한 글

지난해 미국 하와이대학교 이스트웨스트센터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명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 generation, 1980년부터 1995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는 SNS를 통해 크고 작은 수준의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일을 놀이처럼 자연스레 즐긴다. 동아리 결성이나 지도자(leader) 선출에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예산 집행 방식 모니터링,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 파악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스마트 기기로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각자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습득하며 자란 세대는 그에 기반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자원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행동이 갈수록 투명하게 진행될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1] Arab League. 중동 국가들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고 주권과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1945년 3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결성된 지역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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