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슬래브에 내려진 특명, “소비자가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라”
스타트업에선 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곧 그곳의 성장 동력이다. 망고슬래브의 오늘을 만든 것 역시 8할은 사람이었다. “때가 됐다. 같이 나가자!” 정용수 대표의 한마디에 선뜻 스핀오프행(行)을 결정지은 이들은 “마지막까지 웃으며 헤어지자”는 사훈(社訓)을 품고 지금 이 시각에도 뜨겁게 달리는 중이다.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선 ‘삼고초려’를 넘어 ‘이십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 정신, 전문가 의견이라면 사심 없이 믿고 따르는 자세. 좋은 사람들이 쌓아 올린 소프트웨어의 힘 덕에 “스핀오프 후 아직까진 웃으며 지낸다”는 망고슬래브 사람들의 이야기.
#망고슬래브_사람들을_소개합니다
재밌는 일, 잘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점이요. 영어를 못하면 영어 잘하는 사람과, 영업 능력이 부족하면 영업 전문가와 각각 함께하면 되니까요. 처음 스핀오프 할 때 창업 멤버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빨리 돈 벌고 헤어지자”고 말했는데 요즘은 우리끼리 얘기하곤 해요. “이렇게 쭉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웃음)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애초 밑그림밖에 없던 제품을 실물 형태로 시장에 내놓기 위해 망고슬래브는 기획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에서 ‘기초공사’를 탄탄히 하는 데 집중했다.
정용수 C랩 때부터 함께했던 넷이 뭉쳐 스핀오프 했어요. 2년간 직원 수가 23명으로 늘었습니다. 추가된 인력 중엔 삼성전자 출신이 세 분 더 있어요. 인재를 모시려고 백방으로 뛰었거든요. 초기 멤버 넷으론 다 해낼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처음부터 간파한 거죠. (웃음)
김진아 처음 스핀오프 제안을 받았을 때 (정용수) 대표에게 그랬어요. 내가 뭘 할 수 있길래 날 데리고 가려 하느냐, 고요. “그냥 늘 하던 것 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실제로 여기서의 제 일이란 게 그래요. 주어진 일 중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방면으로 소화하죠. 스타트업의 특성상 워낙 다양한 일을 하니 시간에 쫓기기 일쑤지만 확실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특히 새로운 영역에 눈뜨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합니다.
정용수 특히 영업이나 생산 쪽 인재 확보가 절실했어요. 제 분야가 아니니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도 제대로 소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별 수 있나요. 여기저기 수소문, 경험 많은 분을 찾아가 설득을 거듭했죠. 발로 뛰며 애쓴 덕에 다행히 회사 대표를 맡았던 분, 생산 분야에서 ‘재야의 고수’로 불리던 분 등을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김진아 막상 사업에 뛰어들고 보니 제품 생산에서부터 마케팅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더군요. 정 대표 말처럼 저희 입장에선 ‘좋은 사람’ 구하는 게 곧 생존이었어요. 회사를 키우고 제품을 제대로 팔려면 일 잘하는 분들을 찾아 설득하고 매달리면서 모셔와야 했습니다. 저희 넷 모두 ‘우리가 못하는 건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자’ 주의였거든요. 어쩌면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정용수 우리 회사에선 각 팀이 전부 개별 스타트업처럼 일합니다. 특정 업무가 팀 안에서 완결성 있게 돌아가도록 결정권을 부여하는 거죠. 그러려면 팀 내 소통이 필수예요. 한 예로 네모닉 마케팅 담당자가 스물한 살이에요. 아직 어리지만 회사 운영 원칙에 따라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합니다. 물론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라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팀장이 활약하죠. 전 이런 체계에서야말로 팀장, 즉 중간관리자가 ‘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상연 일이 빨리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최종 결재까지 며칠씩 걸리면 힘 빠지잖아요.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데 자칫 반려라도 되면 그 스트레스는 또 어쩌고요. 우리 회사는 그런 절차 자체가 없다시피 해요. 필요하면 사내에 공유 정도만 하죠. 동기 부여와 업무 처리 속도, 책임감 측면에서 특히 효과적이에요.
김진아 직원들에게 특히 고마운 게 있어요. 바로 낮은 퇴사율! 다들 큰 기업에 가고 싶은 맘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도 회사를 믿고 남아준 친구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요. 일한 만큼 모두에게 이익이 고루 돌아가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다행히(웃음) 아직은 웃으며, 서로 긴밀하게 도와가며 일하고 있어요. 솔직히 요즘 분위기, 정말 좋습니다!
요즘 소비자는 기성품을 쓸 때에도 정해진 용례를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방식을 찾으려 한다. 일명 ‘모디슈머(modisumer)’[1]의 탄생이다. 평범한 소비 행위 하나에도 자신만의 개성을 담고 싶어하는 모디슈머의 출현은 생산자의 경향도 바꾸고 있다. 소비자의 창의적 소비 유형을 적극 수용, 그걸 기반으로 신규 시장 창출에 나서고 있는 것. 그런 측면에서 망고슬래브는 모디슈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진아 C랩 당시만 해도 네모닉은 사무용으로 제안된 기기였어요. 스핀오프 이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용도를 확대하고 광고도 그에 맞춰 진행했지만 내부적으론 ‘좀 더 명확한 시장’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홈페이지를 통해 한 임용고시 준비생이 질문을 해왔어요. 네모닉을 오답노트로 활용 중인데 관련 기능을 좀 더 개선해 달라, 는 내용이었죠. 그걸 읽으며 ‘이거다!’ 싶었어요. 그 길로 곧장 오답노트 기능을 탑재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정용수 오답노트, 만들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틀린 문제를 일일이 손으로 쓰면 시간이 꽤 걸려요. 네모닉 스캐너는 그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수험생 입장에선 그만큼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죠. 저희가 주목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고요. 향후 네모닉 스캐너 사용 행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유형별 문제 정리 등 부가 서비스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김상연 네모닉은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제작된 앱이에요. 당연히 네모닉을 활용해도 충분히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죠. 다만 출력했을 때 해상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어요. 네모닉 스캐너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앱입니다. 촬영과 동시에 그림자가 자동으로 보정되고 글자도 한층 진하게 출력되죠. 앞으로도 적정 수요가 생기면 네모닉 스캐너 같은 앱을 다양하게 개발, 출시할 예정입니다.
김진아 한번은 모 치킨집 사장님이 “출력 용지에 ‘덤’ 한 글자가 꽉 차게 인쇄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치킨 배달할 때 덤으로 주는 제품에 붙여 고객에게 자신의 서비스를 각인시키고 싶다면서요. 기존 앱이 제공하는 방식으론 느낌이 영 안 살더라고요. 결국 그 얘길 전해 들은 디자인팀이 ‘덤’은 물론, ‘감사합니다’ 등 소규모 매장 자영업자가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 서식을 만들어 앱에 추가했죠. 사용자가 우리 제품을 (문서가 아니라) 특정 이미지나 글자 인쇄용으로 쓰고 있었단 사실을 저희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정용수 요즘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중엔 모바일 앱으로 주문 받는 곳이 많아요. 어떤 카페에선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네모닉으로 인쇄해 주문 용지로 활용하더라고요. 그런 광경을 접할 때마다 ‘이렇게 소비자에게 또 배우는구나!’ 해요. 특히 요즘은 네모닉을 다양하게 활용하시는 분이 많아 구체적 사례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네모닉 홍보대사’가 돼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사용자가 활짝 열린 가능성을 탐색하며 최종 결과물을 손수 만들어가는 모델, 그게 네모닉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대표에 따르면 곧 출시될 라벨지 역시 망고슬래브가 네모닉 사용자 반응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제품이다. “일단 부분점착 형태로 만들었는데 전면점착 제품도 출시할 예정이에요. 붙였다 떼어낼 때 흔적이 남지 않는 게 장점이죠. 오답노트 쓸 때에 편리한 건 물론이고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사이에서도 쓰임새가 많으리라 확신합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해 시장 규모를 키워가려고 생각 중입니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호흡으로 뛰어야 한다. 출발 신호를 들으며 첫걸음을 떼기 시작하던 순간의 마음가짐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관건. 말 그대로 ‘초심(初心)’이다. 사실 초심의 중요성은 세상 만사에 통용된다. 망고슬래브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택한 기업 철학 역시 초심이다.
김진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되고 갤럭시 노트8 사전예약 이벤트 사은품으로 선정됐을 땐 솔직히 ‘이제 우리 제품 모르는 사람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웃음) 요즘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매번 초심을 다잡습니다.
고한준 올 4월 미국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아직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피드백은 꾸준히 오고 있어요. “지난해 소비자가전박람회(CES) 당시 최고혁신상 받았단 소식을 접한 후 줄곧 제품 출시를 기다렸다”는 후기도 있더라고요. ‘제85회 도쿄 국제기프트쇼’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덕인지 일본에서도 반응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문구 시장이 굉장히 커 내심 기대가 큽니다.
고한준 경남 산청에 사시는 어르신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요. 네모닉을 쓰시는데 기기 연결이 잘 안 된다 하시더라고요. 한 분의 고객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는 생각에 곧장 산청으로 내려갔어요. 살펴보니 기기 문제가 아니라 네모닉이 연결된 휴대전화 기종이 아주 옛날 모델이었어요. 원래 지원 불가능한 모델이었지만 개발팀에 의뢰해 그 어르신 휴대전화로도 연결되도록 지원해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는 유지해가려고요.
정용수 우리 회사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집니다. 첫째, 웃으면서 헤어지기. 이건 C랩 때부터 계속해온 이야기인데 지키긴 꽤 어려워요. 평소 행동이나 태도를 바꿔야 하거든요. 둘째, 네모닉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융합된 글로벌 메모 브랜드’로 만들기. 삼성전자 근무 시절부터 이 기술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분이 수백 명은 될 거예요. 저희가 그걸로 독립해 나온 만큼 기술적 방점을 찍고 싶은 욕심입니다. 마지막으로 매출 자체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 만들기’에 집중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술의 중심에 늘 ‘사람’을 두는 망고슬래브의 활약, 기대해주세요!
시장에 나와보니 구체적 아이템을 갖춘 스타트업이 그리 많지 않아요. 확실히 삼성전자 출신이 좀 더 공격적이고 야심 차게 도전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효율적 시스템 아래서 효과적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나와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거니까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고용을 늘리고 사회를 바꿀 아이템도 선보이는 것, 삼성전자가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 다음 연재는 8월 24일(금) ‘쿨잼컴퍼니’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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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단어 ‘modify(수정하다)’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로 ‘(기성) 제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창조해 사용하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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