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진화하는 기계, 그 종착역은?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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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Alan Turing). ‘컴퓨터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12년 태어나 한창 나이인 42세 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컴퓨터과학은 물론, 수학∙논리학∙암호학의 귀재로 많은 일을 해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영국 암호 해독기관이었던 ‘정부 암호 학교’에 근무하며 나치스 독일의 중요한 암호들을 해독, “전쟁 기간을 최소 4년은 단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일생은 지난 2014년 책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Alan Turing: The Enigma>’과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최초의 컴퓨터를 탄생시킨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출처: 미디어로그/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최초의 컴퓨터를 탄생시킨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출처: 미디어로그/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기계는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 하는 걸 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논문 ‘컴퓨터와 지능’에서 튜링은 이 같은 주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명제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이세돌 대(對) 알파고’ 바둑 매치로 무성해진 인공지능과 기계학습(딥러닝) 관련 논란에 확실한 선을 긋고 있다. ‘기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이 기계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시킬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어떻게 해서 기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걸까? 사실상 ‘기계 스스로 생각해낸 듯한’ 결과물을 도출하도록 하는 비결은 뭘까?

 

기계도 공부한다, 인간처럼_DNA와 빅데이터

위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인간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게 됐나’에 대해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기계가 그와 비슷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다음 순서다. 단, 여기서 ‘생각’이란 맘속으로 혼자 떠올리는 게 아니라 특정 사안을 판단한 후 그걸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한다.

특정 대상을 판단, 표현하기 위해 인간은 대체로 어떻게 할까? 가장 간단한 예에서 출발해보자. 갓난아기가 태어난 후 가장 처음 하는 말은 “엄마”라고 한다. 물론 “엄-마”라고 정확한 2음절어를 말하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입술을 꽉 닫았다 내뱉듯 내는, “ㅁㅁ-마” 같은 단음절 발성에 더 가깝다. 초보 부모를 감동시키는 이 첫마디를 내기 위해 아기 두뇌 속 지성 관련 구조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이와 엄마 사진

아이가 엄마를 보며 “엄마”라고 말하려면 우선 엄마의 모습을 무수히 접해야 한다. 눈∙코∙귀뿐 아니라 온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기분 좋고 신뢰가 가며 항상 자신과 함께하는 존재인 엄마. 그 모습과 느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아기의 맘속엔 ‘엄마’란 존재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특별한 가치로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엄마’란 말을 여러 차례 들려주면 아이가 그 소리와 실제 자신의 엄마를 연결 지어 판단하는 과정은 한층 단축될 것이다. “엄마가 맘마 줄까?” “엄만 ○○○를(을) 사랑해”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게” 같은 표현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어른이 입을 움직여 소리 내는 걸 보던 아이는 어느 순간, 발성기관 근육 형성에 힘입어 “음-마” 비슷한 소릴 낼 수 있게 된다. 그 광경을 지켜본 부모는 환호하며 아이를 칭찬해준다. 학습 성과에 대해 일종의 보상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기는 엄마의 존재와 ‘엄마’란 소리 간 연관성을 좀 더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 어른의 발성을 들으며 발음도 점차 분명해진다.

비슷한 과정을 기계에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엄마의 모습과 동작 유형, 음성 등에 대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기계에 주입하고 △‘엄마’란 단어를 포함, 여러 종류의 기계음을 입력시킨 상태에서 기계가 스스로 다양한 유형의 모습과 소리를 연결하도록 한 후 △특정 모습과 ‘엄마’란 소리를 짝지었을 때 그 성과를 인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넣는 식이다. 기계 역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의도한 모습을 보며 “엄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상 메커니즘만 잘 구축돼 있다면 성공 확률은 시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높아질 것이다.

제로베이스

위 예시에서처럼 사람이든 기계든 인지∙연상 능력을 가능케 하는 건 ‘경험의 반복’이다. 양자의 차이는 장구한 세월을 두고 진화해온 생명체인 인간, 그리고 정확하긴 하지만 모든 게 ‘제로(0) 베이스’에서 시작되는 기계의 특성 차에서 비롯될 뿐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조명했던 올 3월 23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 언급했듯 인간은 자신이 전 생애에 걸쳐 경험해온 내용뿐 아니라 자신의 DNA에 축적된 내용까지 실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한다(물론 정확성 측면에선 기계에 비해 뒤처질 수 있지만). 반면, 기계는 일단 접수된 내용을 끝까지 이용하는 대신 데이터를 일일이 입력해줘야 한다. 이 때문에 인간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엔 자료의 양(量) 측면에서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가 지닌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 축적), 그리고 (그렇게 쌓은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도구로서의) 빅데이터 기술이다. 인터넷 시대 도래와 빅데이터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정확성’과 ‘데이터 무제한 보유’ 등 두 가지 강점을 겸비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글로벌 정보 기술 연구∙자문 기업 가트너는 올해 IT 동향 보고서에서 빅데이터 기반 기계학습을 이전의 단순 입력식 기계학습과 구분, ‘고급 기계학습(Advanced Machine Learning, AML)’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미래의 인공지능? ‘터미네이터’ 아닌 ‘도우미’

오늘날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 비중도 점차 느는 추세다. 인류가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의 형식을 빌어 ‘기계가 장악한 부정적 미래’를 염려해온 것과 달리 현대사회의 인공지능은 무자비한 괴력을 지닌 거인이라기보다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작고 친절한 도우미에 가깝다. 이메일 사이트가 스팸 메일을 걸러줄 때, 페이스북이 사용자에게 ‘새 친구’ 목록을 제시할 때, 아마존이 회원들에게 ‘맞춤형 도서 추천 서비스’를 제안할 때 그곳엔 어김없이 기계학습을 거친 인공지능이 작동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 기초해 일정 유형(pattern)을 찾아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쇼핑몰 등 인터넷 기반 사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요즘 △고객 관리 △아이템 선정 △판매망 이용 등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다방면에서 우후죽순처럼 개발, 적용되고 있다. 이 단계에서 경영자는 인공지능의 사업 경영 활용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사업 전망 예측과 진행 관리 측면에선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만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 만만찮은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

지난해 말 가트너는 “미국 기업의 75%가 빅데이터 관련 혁신에 투자하기 시작했거나 향후 2년 안에 투자할 예정”이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추세를 반영한다면 향후 2년간 빅데이터 프로젝트 관련 투자액은 2420억 달러(약 27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무수한 아이디어가 경합을 벌이는 IT 시장에선 매 순간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극찬 받던 생각이 순식간에 퇴출되는가 하면, 수 년간 일명 ‘얼리어답터’들의 기대를 모으던 제품이 한순간 과대선전에 불과했던 걸로 판명되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기계학습과 빅데이터 관련 기술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대중의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지만 이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진 미지수다.

조지 S. 포드(George S. Ford) 미국 상급법률및경제공공정책연구소(Phoenix Center For Advanced Legal & Economic Public Policy Studies) 수석연구원은 “어떤 IT 기술이 일상으로 정착되려면 두 부문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때 ‘두 부문’이란 첨단 기술 개발자, 그리고 해당 기술 구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담당하는 정책 결정권자를 각각 일컫는다. 양 날개가 어떻게 균형을 잡고 날아 오르는가에 따라 해당 기술은 고공으로 비상할 수도, 비틀거리다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건 양쪽 모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소비자, 즉 사용자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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